소설리스트

〈 120화 〉#24 신세계 (6) (120/128)



〈 120화 〉#24 신세계 (6)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는 바람에 나는 눈이 떠졌다.
왠지 행복한 꿈을   같아서 몽롱한 상태로 아쉬운 마음이 들고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꿈의 내용에 의하면, 내가 보았던 '비옥한 땅'에서 나는 한가로이 누워있었다.
그리고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두 여인이 나의  옆에 앉아있었던 것 같았다.

"아, 일어났네요."
"크흠, 흠! 이, 일어났어?"
"아…."

피로감이 상당했는지, 평소보다 더 잠에서 깨기 힘겨웠다.
나는 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으로 나란히 앉아있는 엘리스와 페퍼를 발견했다.

"음…? 좋은 아침…입니다?"

창밖을 보니 해는 기울어 밤이 찾아왔었다.

"그래요, 좋은 밤입니다."

친절하게도 엘리스가 나의 말을 고쳐주었다.

"페, 페스틴, 이제 막 일어난 상황에서 미안한데… 혹시 우리 이야기 들었어?"
"이야기…? 아니."

아마도 그녀들은 무슨 대화를 하고 있었던  같았다.

"후우… 다행이다…."
"저는 딱히 들어도 상관 없습니다만…."
"뭐, 뭐어…?"
"응…?"

좀처럼 이해가 가지않는 그들의 반응에 나는 무어라 말도,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보다 흙과 땀과 먼지로 뒤덮여 꿉꿉함과 찝찝함이 가득할 터인 나의 몸이 말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뭐지…?"

여전히 현재 상황을 파악을 못하고 있자, 엘리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왜요, 입고 있던 옷이 아닌가요?"
"뭐… 그렇죠?"

나는 나의 몸에 입혀져 있는 하늘의 색을 담고있는 잠옷처럼 보이는 옷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렇게 관찰하지 않아도 잠옷이라는 것은 바로  수 있잖아…."

페퍼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녀의 행동에 엘리스는 헛기침을 하더니, 조용히 나에게 사실을 말해주었다.

"페스틴이 옷도 갈아입지 않을 것 같아서 서둘러 달려와 갈아입히고…."

엘리스의 말을 딱 자르며 페퍼도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 나, 나도! 흙이랑 먼지를  뭍힌 수건으로 닦아줬다고…?"
"…? 아…, 다들 고맙습니다."

그들의 행동과 말이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과하게 받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일일이 반응할 만한 힘이 없었다는 것을 너무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대답한 것이다.
아마도 조금 멍한 지금, 누군가 나를 보게 된다면 초점이 흐려진 눈을 통해 이 사람이 피곤에 쪄들었구나 라고 생각할 정도일 것이다.

"음… 아무래도 이럴 때가 아닌 듯 하네요."
"그, 그러게… 전혀 반응을 안해주는 걸."
"…? 무슨… 반응?"
"아, 아닙니다."
"그래…. 푹 쉬어."
"어…. 나가줘야 푹 쉬는데…."

금방이라도 나갈 것 처럼 말하는 그녀들은 자신들이 앉아있는 의자에서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하아, 그럼."

그녀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관찰할 힘조차 없었기 때문에 나는 포기하고 드러누워버렸다.

"아, 아…."

페퍼의 아쉬운 듯한 탄식이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저…. 페스틴."
"...네?"

내가 누워버려 조금 당황한 듯한 엘리스가 주저하며 나를 불렀다.

"혹시…. 아니, 알거라 생각됩니다. 조이드가… 당신이 잠들기 전에 하려던 것을 알아챘나요?"
"조이드…가요? 아… 기억은 잘 안나는데… 뭐라고 중얼거린 듯한…."
"그렇군요…."

무언가 경직되는 듯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누운채로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될대로 되라지, 피곤하니 만사가 다 귀찮다.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할 뿐이다.

"…또…."
"응?"

페퍼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나는 언제나 페퍼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반응을 했다.

"아, 아닙니다.  쉬시죠."

엘리스는 살짝 올라온 나의 어깨를 살포시 누르고는 옆에 있는 페퍼를 쳐다보았다.
나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들끼리 무언가 눈빛교환을 한  했다.
한층 더 굳어진 페퍼의 얼굴은 끄덕거리는 고개에 따라 움직이고는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엘리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런 그녀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잊었다는 듯이, 그들에게 부탁 하나를 했다.

"토니 좀… 불러와줄래?"


* * *

"…불렀어?"

나는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몸을 일으켰다.
토니의 등장에 나는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등 뒤로 따라 들어오는  사람은 나의 태도에 조금 충격 비슷한 무언가를 얻었는지, 주춤거렸다.

"…불렀지."
"무슨…일로… 몸은 괜찮아?"
"아니."
"아… 그래…."

아까부터 무표정으로 단답만 하는 내가 낯설은 것인지, 토니를 포함한 다른 두 사람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다행인게, 몸 상태가 안좋아서 그런 태도를 보였다고 둘러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마음놓고 나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흐음… 엘리스."
"…네?"
"엘리스… 엘리스는 왕궁 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요?”

참으로 직설적인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어느정도 누가 누구인지 확정을 지어놓았다.
…엘리스는 아니다.
그것 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잭과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그들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내가 신뢰할  있는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왕궁 내에서요…?"

그녀는 보기 드물게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 안심할 것 같았다.
그녀의 입장은 단순한 메이드.
도우미로서 남들을 돕는 위치에 있는 그녀이기는 하지만, 신분을 거론하게 된다면 차이가 생겨버린 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낮다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그녀가 발언을 신중히 해야한다는 점을 스스로 무척이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해한 나는, 무언가 낌새가 있었던 그녀에게서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페퍼, 나는 엘리스가 아니라고 확신해."
"…그래? 이유가 있다면…?"

내가 이해하고 있는게 맞다면, 그녀 또한 마녀에 대한 존재를 알며, 본인이 실제로 겪은 일들을 통해 심각성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특정지을  있는 방법 중 두가지는 눈빛과 나를 대하는 방식이야."
"…속인다면?"

토니가 지극히 당연한 추론을 내세웠다.
날카로운 찌름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 그는, 나의 입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물론, 속이는 사람이 있다는 가능성이 있지, 그런데 나는 구별할 수 있어. 왜 내가 가면을 쓰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구별할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구별…?"

토니가 나의 말을 끊고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

그와 동시에 엘리스의 짧은 외마디가 들렀다.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아무리 내가 신뢰하고 있다고 해도, 잭 외에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도 사람이고, 생각을  줄 안다.
그러니, 나에 대해 더 이상 '예상'이라는 방향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말을 삼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 라고 단정 지을 수 있게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간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누군가를 속인다는 것은 자기 자신조차도 속여야 하는 것인데…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은 완전히 그러지 못해."
"…확신 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

페퍼의 물음은 나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확신을 내리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증거에 집착하는 걸까.

"…음…  점은 내가 아까 말한 또 다른 방법인 눈빛이 뒷받쳐줘."
"눈빛이라 함은…."

나는 뜬금없이 양팔을 벌려 연설을 하듯이 세 사람에게 외쳤다.

"여러분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갑작스러운 나의 튀는 행동에 세 사람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나의 입에서 나올 뒷말에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경청하는 사람.
살짝 당황한 기색이 보여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사람.
무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

"지금, 나를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어… 이상하다고…? 에헤헤…."

머리를 긁적이며 페퍼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리고?"
"그냥 다음 말이 궁금했다…?"

토니가 두리뭉실하게 대답했다.

"음… 저는 딱히… 또 페스틴이 괴상한 짓을 한다라거나…."

엘리스가 약간의 주저함을 가지며 대답했다.

"…여기서 속마음을 숨긴 사람은?"
"어?"

나의 물음에 페퍼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글…쎄요."

엘리스가 나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너?"
"나는 아니다."

토니의 검지가 나를 가리키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한번 심호흡을 하고 엘리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엘리스, 왜 제 눈을 피하나요?"

나의 물음에 일제히 두 사람은 엘리스를 바라보았다.

"…예?"

자신의 눈을 깜빡이며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엘리스가 나에게 되물었다.

"눈은… 꽤나 많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에서 말이죠?"
"그래…?"
"아무튼, 제 판단에 의하면 엘리스는 원래 다른 속내가 있었음에도 다른 것으로 그것을 숨겼습니다."
"…딱히…."
"물론, 악감정이라든지… 마녀와 관련되어 있다든지… 그런 것은 아니겠죠."
"…네?"

엘리스가 이번의 말을 듣고 상당히 동요하고 있는 듯 했다.

"저도… 들키고 싶지 않다는 속마음 정도는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그녀를 안심시켜 주고 있음을 은연 중에 비추었다.

“아… 네….”

엘리스는 우물쭈물 대답했다.

“당신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숨기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죠. 그러니까, 제가 하고픈 말은 상대방을 자세히 관찰하면 이질감을 느낄  있다는 점입니다.”
“나도… 늘 하고 있기는 한데….”
“맞아 맞아! 나도 하고 있다고?”
“페스틴이 말하고자 하는게… 그거라면, 어느정도 납득이 가긴 합니다만,  이야기를 어째서 저에게…?”
“제가 여러분을 관찰한 바로는, 신뢰 할 만하다고 결론 지어졌기 때문에 주저함 없이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비전투원 인걸요.”

엘리스의 한마디에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 말의 의미를 모두 파악했다는 의미 일까.
아니면,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 일까.
일단, 나는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눈치챘다.
역시, 그녀 또한 왕궁 내부의 이질감을 느낀 것 같았다.
전투라는 단어는 경우에 따라 적절하지 않는 단어이다만, 지금 시점으로는 굉장히 적절한 표현이었다.

"아무튼 귀찮은 건 질색인 성격이라…. 툭 까놓고 말하자면, 슬슬 반역할 때가 되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뭐?"
"응?"
"네에?"
"하하하… 아직 이른 건가…."

나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서 왕궁 내부에 숨어있는 '마녀들'을 쫓아낼겁니다. 그전에, 정보 공유를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죠. 토니, 루이스와 히로라는 사람을 알아?"
"아, 알아…. 너, 어디까지 알고 있는…거야?”
"하하, 그건 나중에 이야기 해줄게. 그렇다면 페퍼, 줄리가 마녀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어? 그,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의 입장에서는 꽤나 충격적인 사실일 터다.
친하게 지내왔던,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사람이 사실은 시커먼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페스틴…. 당신은 얼마나 눈치채고 있었던 겁니까?"

엘리스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러는 당신은… 얼마나 기다렸습니까?"

"…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조금의 관찰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금방 알  있었다.
하지만 생각대로, 아니… 생각 외로 나에 대해서 눈치챈 사람이 없었다.
조금 슬픈 사실이 되겠지만, 현재 상황을 보면, 기뻐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계획의 진전이 빠르게 되어가다보니, 나도 모르게 조급해 진 것 같았다.
내가 시간에 쫓겨 앞뒤 다 짜르고 본론만 이야기하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성급했음을 느꼈다.

"이렇게 네명은 앞으로 '진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죠. 이대로 나를 믿어준다면 계획은 틀림없이 성공할 겁니다."
"계획… 이라니…."
"그렇다면  번째로 토니 네가 알고 있는 빈민가에 대한 정보 일부를 이야기 해주었으면 해."
“과연, 음, 알겠어.”

토니는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다.
조촐한 설명으로도 충분히 이해하고 내 말에 따라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귀와 입을 더 가까이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 * *


밤이 되고 나서 몰래 빠져나왔다.
실은, 몸이 회복된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오늘 밤은 빠져나가지 않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도록 내 자신을 꾸민 것이다.
조용히 성문으로 걸어나갔다.
조금만 더 나가면 마을이다.
발자국 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말이다.

"페스틴."

등 뒤에서 누군가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렀다.
나는 천천히 돌아보며  예상이 맞았는지 확인했다.
역시….

"테리스, 안녕하세요?"

나는 무표정한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이 밤중에 어딜나가는 거죠?"

그녀는 한층 더 험악해진 눈매로 나를 노려보았다.

"산책."
"네?"
"산책 말입니다. 안되는가요?"
"…그보다…."
"어떻게 살아 돌아왔냐고?"

나도 인상을 구겼다.

"…무슨 말입니까?"

끝까지 모른척을 하는 그녀를 보니, 구역질이 나려고 한다.
위선적인  사람은 내가 그녀를 마녀라고 단정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했다.

"…당신들은 모르겠지. 내 속마음을…."

나는 그 말을 남기고 천천히 걸어나갔다.

"멈추세요! 불필요한 외출은 금지입니다!"
"…요양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살며시 웃었다.

"요…양…?"
"많이 지쳤거든요…. 집에 좀… 다녀오려고 합니다."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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