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1화 〉#24 신세계 (7) (121/128)



〈 121화 〉#24 신세계 (7)

“그럼, 제가 동행해도 되겠습니까?”

꽤나 적극적인 그녀였다.

“…딱히 바라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만, 웬만해서 혼자 가고 싶네요.”
“트러블에 잘 휘말리는 페스틴 군을 혼자 보낼 수야 없죠.”

나에게 차분하게 걸어오는 그녀는 철저하게 자신의 표정을 숨기며 점점 다가왔다.

“…됐습니다.”

나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나에게 오는 호의를 다 받아들이는 편이기는 하지만, 명백하게 속내가 다른 이 사람의 호의는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습니까?”

나는 일부러 지나치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 자신도 자신이 방금한 행동과 말이 나에게 어떤 반응을 하게 만드는 것인지, 스스로 알게끔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럼.”

나는 단호히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가는 것을 계속했다.

“알겠습니다. …아무쪼록 별일 없기를 바랍니다.”

명백하게 적의를 내뿜는 그녀의 눈빛을  뒤로 받으며 나는 천천히 곱씹었다.

“아무쪼록… 별일 없기를 바랍니다라….”


* * *


“뭐야, 형이야?”

내가 조심히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브가 나를 반겼?다.
인상이 구겨진 소브는 나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저번에 보여준 태도는 나의 동생을 실망시키고, 마음을 돌리는데 충분 했으니까 말이다.

“오랜만이네.”

나는 태연하게 인사를 했다.

“무슨 일이야? 여기는  온거야?”

소브는 잔뜩 경계하며 나에게 쏘아대듯이 물었다.
키가 조금 더 커지고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동생의 모습에, 나는 오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냥, 오랜만에 보고 싶어서.”
“.…누구를? 나를?”
“어.”
“허 참… 나는 형이 이정도까지 철면피인줄 몰랐다.”
“…나도 그래, 그런데 어쩌겠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주저앉듯 소브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팜 아저씨는?”
“안에 계셔.”

소브는 주방을 대충 가리키며 말했다.

“불러와?”
“아니, 그대로 둬.”
“대체 뭐하러 온거야….”

무표정 인채로 말을 하는 나를 보고 얼굴을 잔뜩 찡그린 소브가 하던 것을 마저하려고 했다.

“할만 해?”
“아… 이거? 나름?”
“다행이네.”
“그보다… 뭐야 도대체.”
“…그냥, 죽음의 문턱에 다녀오니, 나도 모르게 너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뭐어?”

솔직하게 내 심정을 토로하니, 소브가 놀라며 잡고 있던 공구를 떨어뜨렸다.

“괜찮나 소브!”

멀리서 팜 아저씨의 걱정섞인 외침이 들렀다.

“네~ 괜찮아요!”

그에 지지 않으며 소브도 우렁찬 소리로 대답했다.

“너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 졌다.”
“왜 이래? 미친거 아니야?”

누가 동생 아니랄까봐, 소브는 나에게 거침없이 폭언을 내뱉었다.

“…하하, 그런가…. 미친건가.”

나는 조용히 일어섰다.
소브는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나의 마음 상태를 눈치 챈 것인지 표정이 달라졌다.

“…더 쉬었다 가.”
“아냐, 더 이상 머무르면 폐가 돼.”
“…그럼 막지 않겠어.”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부탁?”
“팜 아저씨 부부를… 말이야. 잘, 부탁할게.”
“…그럼, 당연하지. 우리의 은인인데.”

소브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언제 이렇게 큰 것인가?
이제는 어린애 티가 잘 나지 않았다.
고작 11살 인데도 말이다.

“…그럼, 마음 내킬 때  올게.”
“그러시던가….”

나는 다시 기계를 수리하는 것에 집중하는 소브에게 등을 돌린채로, 원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내 기억속에 있는 어렸을 적의 소브는 기사를 좋아했다.
공주가 위험에 처하면, 언제든지 달려와 위협을 없애주는 아주 뻔한 이야기에 나오는 기사 말이다.
정의로우며, 남을 돕기를 좋아하고, 성실하다.
하지만, 왕궁에 있는 호위 기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느끼고 있기는 하다.
그나마 다행인게, 그들은 왕 주위에만 있지, 우리들을 감시하거나 위협하지도 않았다.
언뜻 보면 위험요소가 전혀 없어보이는데, 그런 곳에서 변수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정신차려보니, 왕궁에 있는 기사들을 떠올리고 말았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소브는 내가 보기에 ‘경비대’에 적합하다.
소브가 빌과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나는, 소브가 언젠가 왕궁 경비대와 같은 직책을 가지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내 계획의 일부에는 그런 소브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은 때가 아니지만, 언젠가 크게 판세를 바꾸어 놓을 만한 ‘도구’라는 소리이다.
것참….
가끔가다 인간성이 결여된 사람처럼 느끼고는 하지만, 이내 욕심이 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다고 자신을 세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만다.

“것보다 서두르자….”

나는 어둡고 으슥한 골목길로 나의 몸을 숨겼다.
필시 밝은 달빛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골목길은 나의 모습을 가려줄 것이다.


* * *

이리저리 모습을 숨겨가며 이동하니, 나를 지켜보던 시선이 사라졌다.
아마도 테리스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왕궁에서 나오고서 부터 느껴지는 시선을 설명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을 뿐이다.

“여기가 맞나…?”

여기가 아닐  같은 의심에 주저함이 생겨버렸지만, 지금의 나는 딱히 망설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주저함은 금방 도망치고 말았다.

“히로…?”

나는 천천히 책방의 뒷문을 열며 히로를 불렀다.
하지만 문의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에 맞추어 일렁이는 촛불만 나를 반길 뿐, 인기척이 하나도 없는 방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사냥을 하러 나갔다거나, 아니면 자고 있다거나, 그냥 없는 척 하는 거일 수 도 있겠다는 가능성이 늘어섰다.

“뭐… 일단 기다려 볼까?”

나는 방 한쪽에 기대어져 있는 흔들의자에 몸을 누였다.

“음.”

푹신한 쿠션이 내 몸을 받아주었고, 앞뒤로 조금씩 흔들리는 의자는 나에게 편안함 이라는 선물을 선사해 주었다.

“좋다….”

아직 피로가 가시지 않았는지, 서서히 눈이 감겨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의 집에 와서 허락도 없이 잠을 자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기다리려고 했지만, 너무나도 편안한 분위기에 나는 감긴 눈을 뜨지 못했다.


* * *


“음….”

히로의 책방은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 하면서도 은근히 햇빛이 잘 들어왔다.
그래서 이 집에 곰팡이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집주인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타의나 자의가 아닌, 강렬한 태양빛이 나를 잠에서 깨게 해주었다.
그렇다는 것은 밤을 지세우지 못하고 그대로 자버렸다는 것이 되겠다.
의자에서 자는 것은 편안한 구조라고 해도,  자는 것은 힘들지도 모르겠다.
밤사이에 굳은 듯한 허리는 내가 옆으로 틀자마자, 뚜두둑 소리를 내며, 근육통을 느끼게 해주었다.

“으음….”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밤 사이에 그들이 왔는지 살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밝아진 어제의 풍경일 뿐이었다.

“뭐야…?”
“뭐긴 뭐야, 무단침입자에 무단 숙박을 한 사람이 앉아있을 뿐이지.”

히로가 자신의 양손에 커피를 들고는 내가 앉아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다.

“앗, 아… 죄송합니다.”
“뭐얼~ 죄송할 것 까지야~”

히로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루이스는요?”

“뭐야, 그녀석 부터 찾는거야? 이거… 실망이 아주 큰데?”

잔뜩 심통난 표정으로 나에게 따지듯 묻는 그가 어딘가 어린아이의 감성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를 바라보며 신선함을 느끼고 있을  바로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렀다.

“왜 나를 찾는거지?”
“그야, 보고할게 있으니까요.”
“호오~ 그래~? 뭔데 뭔데, 한번 들어나 보자고~”

그는 자기에게가 아니라 루이스에게 보고를 한다는 것에 딴지를 걸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가져온 소식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왕궁에 있는 마녀들을 한두사람 제외하고는 다 특정 지었습니다.”
“호오~그래? 그래서?”
“습격에는 대응했습니다.”
“…그게 단가?”
“그리고 마녀  명을 생포했습니다. 그리고….”

역시, 비옥한 땅에 관한 것은 나만 알고 있어야 겠다.

“그리고오~?”
“살해 당할 뻔 했습니다. 거대한 녀석에게 말이죠.”
“괴물?”
“네, 성벽 외부에 저를 유인하고는 그대로 집어삼켜서 아사 당할 뻔 했죠.”
“호오….”
“그 외에도 밤에 암살을 시도하거나, 대놓고 위협을 한다거나, 제 몸에 뭔가를 심어서 정보를 캐내려고 한다거나… 뭐, 그런 일이 있어서 말이죠.”
“음…. 그런….”

히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리고 우리가 연락할 수단 말인데요….”

나는 조용히 말하며, 품 안에 있는 몇가지를 꺼냈다.

* * *


이로써 완벽히 소통의 문제는 뿌리 뽑혔다.
다음은 그 사내에게 찾아갈 필요가 있어보였다.
나는 토니의 말을 떠올렸다.

* * *

“네가 있던  7구역의 빈민가는 제리가 휘어잡고 있어.”
“그래?”
“머리가 비상한 탓에 7구역을 짧은 시간에 통솔하더라고.”
“그래 고맙다. 그럼 제 5구역은?”
“마담. 자세한 정보는 그가 여자라는 것밖에 없어.”
“그렇구만….”

* * *

“여기인가….”

나는 빈민가에 어울리지 않게 으리으리한 집 앞에 멈추어 섰다.
내가 나고 살아왔던 제 5구역에 이런 집이 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거구의 두 사내가  문을 가로 막고 가만히 서있었다.

“…”

나는 호기심을 느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에게 가까이 갔었을 때, 희미하게 그들의 몸에서 쇠냄새가 났다.
바로 코앞까지 와서 자신들을 관찰하고 있는 수상한 사람을 봤음에도, 그들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단순한 인형처럼 느껴졌다.

“그럼, 지나가….”
“경고, 한다.”
“돌아, 가라.”
“…것참.”

내가 그들을 지나쳐 문을 열려고 하자, 그들은 내 어깨를 밀치며 나를 위협했다.
나는 그들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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