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25 색욕.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현재 옹졸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기분이 언짢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조그만 것에도 쉽게 화를 내거나, 쪼잔한 사람은 아니다는 것을 잘알고 있었다.
단지, 왕궁을 나서기 전에, 테리스가 보였던 태도에 기분이 상했을 뿐이다.
내가 어떤 성격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떠나서, 나도 일단 ‘사람’이다.
아무리 감정이 무감각해진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의 생각과 영향을 받은 느낌을 뇌가 인식해서 어떻게든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내가 평소에 보이는 행동과 말과 표정을 보면, 보통 사람들처럼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죄송하지만… 비켜주시면 안될까요?”
나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빈민가의 어둑어둑한 골목길 사이로 퍼져나갔다.
내가 서있는 근처에서 몇몇 사람들이 천으로 얼굴을 가린채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 휘황찬란한 건물은 이 일대를 주름잡고 있는 ‘마담’이라는 사람의 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안된, 다.”
“못지, 나간다.”
두명의 아니, 두… 그냥 편하게 인간으로 취급하겠다.
두명의 인형은 나를 가로막던 팔을 더 높이 치켜들며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뜩이나 마녀들의 함정에 보기 좋게 걸려버려 자존심이 상했었고, 뒤이어 테리스가 나를 귀찮게 하는 바람에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성급해져 있는 나에게 방해물이 되는 인형들은 내 기분을 더욱더 안좋게 하는 것이었다.
“…이거, 부술수도 없고….”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모종의 협상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상대방의 기분을 언짢게 하는 일은 상대방이 보는 나에 대한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괜한 행동을 하지 않고 얌전히 있는 것이다.
“그럼, 당신들의 주인을 좀 만나고 싶은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나는 마음을 다시 차분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주인, 못 만난다.”
“얼굴, 가리면.”
“…그래요?”
“얼굴, 을 보여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 다.”
“것참… 장난하나….”
조이드와 비슷한 그것들은, 어디서 얻었는지, 말을 참 예쁘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언어를 내뱉는 코어가 손상이 되었는지, 좀처럼 또박또박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목’은 연결되어 있는 듯 했다.
누군가의 지시로 말을 하는가?
아니면, 자신들의 머리 부분에 있는 고성능의 코어가 그들 스스로 생각하며 어떠한 행동을 취할 수 있게 해줄 수도 있겠다.
지금 중요한 것은 ‘마담’이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만남이 결렬되면 물어보면 되는 것이다.
“하아…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는 천천히 나의 얼굴을 밤거리보다 더욱더 어두운 색으로 물들게 하고 있었던 모자를 걷었다.
“어머, 나.”
“이게, 뭐야.”
…?
내가 모자를 걷자마자, 인형들 입에서 우락부락한 남성이 말할 만한 것이 아닌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뜬금없는 그들의 말투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들어, 와라.”
“들어, 와.”
얼굴 한번 보여줬다고, 이리도 쉽게 출입을 허가 받을 수 있다니, 세상 만사가 이처럼 손쉽게 넘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해졌다.
나는 함정 일지도 모를 ‘그녀’의 초대에 어느정도 경계하며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 *
온갖 자제들로 치장된 외부와 달리, 내부는 어두침침하고, 비좁았다.
이 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음침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었다.
“것참.”
어둡고, 장식이라고 하기에는 묘한 느낌의 물건과 가구들로 가득찬 이곳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쪽이야….”
바로 귓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렀다.
그 목소리는 어른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며, ‘고혹적’ 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녀’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서, 한마디 만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목소리를 가졌다.
“…좋은 밤입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채로 조용히 인사를 했다.
낮게 깔린 나의 목소리는 어두운 색의 벽을 차고는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작은 소리도 울리는 구조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점점 퍼지는 나의 목소리는 잔상을 남기며, 아니, 잔음을 남기며 사라져 갔다.
“…좋은… 밤 이네.”
한번 더 나의 정신을 뒤흔드는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버렸다.
어둠속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한 여성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보기 드문 굽이 높은 구두가 적막이 흐르던 고요함을 깼다.
또각- 또각- 또각-
천천히 울리는 그 소리는 점차 가까워져 어느새 내 바로 앞에 멈추어섰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에 온 몸을 빨간색으로 치장한 그 사람은 나를 느끼한 눈빛으로 훑었다.
나는 털이 곤두서며, 온 몸에서 이 여자는 위험하다고 경고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들어 내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지…?”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말하는 그녀의 음성은 너무나도 부드러워, 성욕에 미친 사람이라면, 이성을 잃고 그녀의 다리에 매달렸을 것이다.
“…”
내가 그녀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없자, 그녀는 자신의 팔다리로 내 몸을 휘감았다.
나의 몸에 밀착한 그녀의 몸에서 은은하게 향기로운 향이 내 코를 스쳤다.
“왜, 아무말도 없어?”
“실례지만, 떨어져 주겠습니까?”
나는 차분하게, 그리고 정중하게 물었다.
“아니요.”
그렇게 대답한 그녀는 싱긋 웃고는 천천히 내 몸에서 떨어졌다.
모순.
그녀에게서 모순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냥 단순히… 말과 행동이 반대라는 점이다.
“감사합니다.”
“흐음… 신기하네.”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신의 검지로 꼬았다.
“…제가 여기에 온 것은….”
“것은…?”
그녀는 내 말끝을 따라하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녀의 움직임에 맞게 긴 머리카락도 스르르 넘겨졌다.
“…당신의 영향력을 알아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리고…”
“내 영향력?”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나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혀, 자신의 머리카락을 꼬았던 손가락으로 나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쉿~”
그녀는 더 이상 내가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다는 것처럼 고풍적인, 아니, 단순한 오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던 와중에 순간적으로 자꾸만 그녀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으로 시선이 가버렸다.
…?
본디, 나는 사람과 대화할 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상대방의 눈을 바라 본다거나, 아니면 동의한다는 행동을 취한다.
참고로, 노골적이거나, 집요하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것이 더할나위 없이 좋다는 것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뭡니까?”
나의 냉정한 물음에, 그녀는 토라졌다.
뭐?
토라졌다고?
“히잉… 안넘어 와.”
뭐야…?
그녀의 이리저리 부드럽게 움직이던 팔은 힘을 잃고 아래로 늘어뜨려졌다.
“제 예상으로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습니다. 어디 앉을 곳이 있습니까?”
“…더 있으려는 거야?”
“…그럼요?”
“후훗… 이쪽으로 와~”
그녀는 내 손을 잡아 이끌며 어느 한 방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미래의 나는 이 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후회했다.
* * *
“…뭐죠?”
그녀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장소는 단순한 응접실이 아니었다.
그녀의 침실이었다.
내가 그렇게 확정지어서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몸의 서너배가 넘는 아주 큰 크기의 침대가 방 한가운데에 있었고, 바닥에는 은은하게 촛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흘러오는 향수 냄새는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독했다.
이 방은 온통 붉은색으로 되어있었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있던 그녀는 나에게 천천히 손짓했다.
내가 주변을 경계하며 다가가자, 그녀는 자신의 바로 옆자리에 앉으라는 듯이 침대를 토닥거렸다.
“…저는 서있어도 상관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관찰하는 것을 속행했다.
“…에이….”
그녀는 살짝 투정 부리고는, 턱을 괴었다.
그녀의 등 뒤로 펼쳐진 이불은 평평하지 않고,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이질감이 느껴지고, 인기척이 느껴졌다.
“등 뒤에는 누구죠?”
“응? 아~ 신경쓰지마~ 오늘 밤은 당신이랑 나 뿐이거든.”
그녀는 매력적인 눈빛으로 나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괜찮습니다. 사양해 두도록 하죠.”
나는 그녀의 손을 살짝 뿌리쳤다.
“…그래서 단지 내 영향력만 보려고 온 건가~?”
계속되는 거절에 그녀는 조금 기분이 상한 듯 했다.
그녀는 노골적이게 대놓고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면서 툴툴대었다.
그녀의 태도에 눈살이 찌푸려질 뻔 했지만, 적절하게 무시하면서 말을 이었다.
“뭐… 당신이 제 5구역에 위치한 빈민가의 우두머리라면… 한가지 협상을 하고 싶습니다.”
“좋아.”
“네?”
내가 어떠한 조건도, 심지어 무엇에 대한 협상인지도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아주 재빨리 대답했다.
마치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아는 것처럼 말이다.
“…협상이라 함은 갑과 을을 모두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가는게 좋을 겁니다.”
“알아, 내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나거든.”
그녀는 나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
아하 알겠다.
이 사람은 나를 원하는 구나.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누구나 무료한 일상을 뒤흔드는 큰 일이 생기면 삶이 즐거워 진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계속 큰 일이 일어나게 된다면 지치게 된다.
거부감이 들게 된다.
나는 평온한 삶이 좋다는 것이다.
그런 굴곡지고 가파른 인생을 살 바에야, 차라리 흔들의자에 앉아 평생토록 무료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러니 자극적이고,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여인과 함께하는 시간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저도 원하는 것은 딱 하나 입니다.”
“그게 뭐야?”
그녀는 자신의 눈을 빛내며 ‘설마 나?’ 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의 목숨.”
“네에~? 어머, 로맨틱 하네.”
“하하하… 그런가요?”
나는 지체하지 않고 단검을 뽑아 찔렀다.
거리가 상당히 가까웠기 때문에 그녀는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못한채로 피를 토해냈다.
“…우욱… 어째서….”
“어째서냐고요? 구역질 나는 당신의 행동에 나는 주저함이 없어졌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에 당신의 가능성을 알아보려 했지만….”
그녀는 나를 원망하던 눈빛으로 돌변해 나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하며,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은 나의 ‘세계’에 필요 없습니다.”
나는 천천히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던 그녀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대화를 통해서, 당신이 어떤사람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 나는 당신에게서 협력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으…윽….”
그녀는 신음을 토해내며, 고통스러워 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혐오감’ 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그녀에게 향한 나의 마음이 포함되었기는 했지만, 그녀를 보면서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 나에 대한 혐오감도 포함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발치에 있는 펜던트를 주워들었다.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필사적으로 바닥을 더듬으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던 그 여자의 눈 앞에, 나는 그 펜던트를 가져가 보여주었다.
“…이걸 찾습니까?”
그녀는 필사적으로 펜던트를 내 손에서 뺐기 위해서 손을 뻗었지만, 곧바로 땅으로 추락할 뿐, 그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아쉽게 되었네요, 이처럼 방심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 랍니다. 목숨을 댓가로 받는 인생의 교훈은 정말 유익하지 않나요?”
나 스스로 내뱉고 있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점점 이상한 사람이 되어간다.
어쩌면, 얼마안가 ‘그녀’의 곁에 있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나는 천천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은빛의 달과 까마득한 어둠 밖에 보이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