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26 굳게 닫은 문. (1)
이곳은 빈민가이기 때문에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방안을 빠져나왔다.
빠져나오기 전에 침대를 들춰 보았는데, 성인 남성의 뼈로 보이는 것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내가 이 사람의 유혹에 넘어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대충 감이 오던 순간이었다.
아마, 알 수 없는 힘으로 나를 굴복시키고, 그 뒤로 나의 생명력을 빨아들였을 것만 같았다.
나는 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두체의 인형을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숙지하며, 양 손에 장갑을 끼면서 나갔다.
하지만 의외로 열려진 문 뒤로는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의아한 마음에 서둘러 밖으로 나갔을 때 보였던 장면은 아까 내가 세웠던 가설들 중에 일부가 맞아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인형은 아까의 펜던트로 조종하는 거였나.
힘없이 쓰러진 인형들은 입구에 있는 계단 난간에 기대어 작동이 멈추어져 있었다.
상황이 일단락 되자, 순간적으로 여러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쿠후후훅….”
특이한 웃음소리가 났고, 나는 서둘러 모자를 뒤집어 써서 얼굴을 가렸다.
이미 늦었다 라고 생각할 때 즈음, 여러명의 시선이 하나둘 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두운 골목은 다시 침묵했다.
정찰…인가.
나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걸어나갔다.
다음 목적지는 특정 지을 수 없는 장소다.
그의 거주지를 알법한 제시 아주머니에게 물어봐 한다.
따라서,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여관으로 향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보다 첫 단추 부터 잘 끼워지지 않아 조금 위축이 되었다.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라, 주저함이 가득담긴 나의 발걸음은 나를 그 여관으로 이끌었다.
* * *
현재 시각은 제 3시 36분.
오후가 아닌, 오전이다.
슬슬 나도 시간을 읽는 방식을 정해야 할 듯 하다.
12시가 넘으면 13시로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 1시로 돌아와서 읽는 사람도 있다.
이전의 나는 전자의 방식을 택했지만, 이제는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 이유는 말하는 글자 수를 줄이기 위해서다.
가뜩이나 습격이 일상인 나에게는 최소한의 에너지라도 비축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 행동이며, 의미가 없어보이기는 하다만, 나에게는 정신적인 피로를 덜어주는 나의 고유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소한 것조차 불필요한 것이라면 축소하고 단순하게 만들고 있었다.
때로는 너무 간단하게 만들어버려 기억하지 못할 정도가 되기도 했다.
다시 생각하는 것이지만, 무엇이든지 적절한 것이 최고로 좋다.
지금 시각이라면 제시 아주머니가 깨어있을지 미지수 였다.
이미 아는 얼굴이기도 하니, 식당에 비치되어 있는 의자를 이어붙여 거기서 잠을 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숙박비는 내일 아침에 아니, 앞으로 몇시간 뒤에 지불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주저함 없이, 그리고 아주 조용하게 문을 열었다.
“응?”
“꺄아아아악!”
문을 열자마자,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기운찬 여자아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명확하게 보이는 그녀의 몸짓은 심히 당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어….”
“누, 누구야 당신!”
“세티! 무슨 일이니!”
뒤이어 제시 아주머니의 다급한 외침이 들리고 나서야, 나는 두 손을 들고 조용히 말했다.
“접니다. 페스틴.”
“…오빠라고…?”
“응.”
나는 증거를 제시하듯이 모자를 벗었다.
“…틀림없는 오빠네, 조금 수척해졌지만?”
“이 시간엔 어쩐 일이야?”
제시 아주머니가 초에 불을 붙이며 다가왔다.
“…요즘에는 새벽 공기가 차가워서 노숙은 힘들겠더라고요.”
“왕궁에서 안자고?”
세티는 발빠르게 열쇠를 찾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사정이 있어서.”
“…사정이 있다면 더 이상 캐묻지는 않겠는데….”
제시 아주머니가 내가 묵을 방을 안내하며 말했다.
이 두사람, 은근히 베테랑이다.
당황하고 동요할 만한 상황임에도 ‘손님’인 나에게 적절한 조치를 이렇게 빠르게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만큼 몸에 익었다는 것이겠지.
“뭐~ 긴 이야기는 자고나서 하면 되겠네?”
“…그럴지도.”
나는 창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여기란다?”
“감사합니다. 비용은….”
“안줘도 돼.”
“네?”
아무리 내가 사람을 주저함 없이 죽일 정도로 무감각해졌어도, 기본적인 규칙과 법을 지킬 수는 있었다.
제시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려는 동작을 멈추었다.
“이미 지불 되었어.”
“누… 누가요?”
“네가.”
“아….”
내가 그런적이 있었던가?
“설마 기억 못하는거야 오빠? 왕궁에 들어갈 때 혹시 모른다고 방을 잡아 놓았었잖아.”
그것이 지금까지 유효한 것 이었나보다.
“아… 그랬…었던가?”
“그럼~ 어서 푹 쉬렴, 무슨 일이 있어도 체력이 안되면 전부 무산이 되니까 말이야.”
촛불에 비추어지는 제시 아주머니의 부드러운 미소에 나는 또 의심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호의 조차도, 내가 현재 처한 상황 때문에 다른 속내가 들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천천히 닫아진 문 뒤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방으로 헤어지는 두 사람의 ‘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안심하며 잠을 청했다.
* * *
부스럭.
응…?
내가 눈을 감고 잠들었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잠에서 깨었다.
아직은 상황파악을 위해서 실눈을 뜨며 어둠속의 사물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작고 여린 사람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살랑살랑 가볍게 움직이던 그 사람의 몸이 나에게 가까이 왔다.
“흐음….”
어린 여성의 목소리가 들렀다.
마녀라 함은 여자를 뜻했다.
그간 만나보았던 마녀들은 나이가 제각각이었다.
어쩌면 여관까지 쫓아온 마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사람의 손이 내 얼굴 주변으로 다가오자, 나는 눈을 부릅뜨며 벌떡 일어나 그 손을 낚아채었다.
“꺄아악!”
짧고 높은 외마디의 비명이 내 방안에 울려퍼졌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는 내가 헛짚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오, 오빠… 아, 아파….”
“아, 미, 미안….”
나는 황급히 손을 때며 뒤로 물러섰다.
손목을 으스러뜨릴 각오로 붙잡았던 것이라, 세티에게는 엄청 아팠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둠속에서 세티는 자신의 손목을 매만지고 있었다.
“…아.”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의 섯부른 판단에 이른 오해였기 때문에 내쪽이 더 잘못한 점이 크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내 방에 왜 들어왔냐는 질문조차도 하지 못한채로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만 뻐끔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괜찮은거야…?”
세티는 여전히 자신의 손목을 부여잡은 채로 걱정스럽게 나에게 묻는다.
자신의 아픔보다, 남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워졌다.
“너, 너야말로… 손목 괜찮아?”
나는 다친 부위를 확인하고 그 아픔을 어루만져주기 위해서 다가갔다.
하지만 세티는 흠칫 놀라며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방어적인 세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온 몸이 굳어버렸다.
…경계의 대상이 되어버렸구나.
“괘, 괜찮아…. 잘 자고 있는지 궁금해서 들어와본 건데….”
“…그래?”
“그런데 땀을 엄청흘리고 끙끙대길래….”
세티의 말에 내가 땀에 흥건히 젖어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었다.
“…고마워.”
나는 내 발치에 작은 천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천천히 허리를 숙여 그 천을 집어들었는데, 차갑고 축축했다.
땀이 나고 열이났을 나의 머리에 올려져 있었던 것 같았다.
한쪽 면은 따뜻했기 때문이다.
세티의 등 뒤로 물이 담겨져 있는 세숫대야가 있었고, 아까의 움직임은 그 천을 빨고 다시 내 이마에 올려놓았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진짜로 괜찮아?”
자꾸만 시선을 피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본 세티가 눈을 맞추며 물었다.
“…괜찮아… 이제.”
나는 숨을 가다듬고 세티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이불은…. 내가 일어나서 빨아둘게.”
“아니야, 푹 쉬어.”
세티는 두려울 텐데도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툭 쳤다.
지금와서 보니, 세티도 소브처럼 성장했다.
이젠 ‘어린아이’가 아니다.
전부 다 성장하고 있었다.
나 홀로, 어린아이인 채로 주위를 방황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점은 확고한 목표가 있고, 그렇게 할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희망’이라는 모습을 존재하며, 불씨가 꺼져가는 나의 마음에 땔감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었다.
“고맙다…. 너에게 도움을 받을 날이 올 줄이야.”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다시 한번 더 세티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뭐, 뭐~ 그럼 나중에 한턱 쏘시든지?”
애써 자신의 기쁜 마음을 숨기려고 억지 미소를 짓고 있는 세티는 얼굴을 붉히고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그, 그럼…. 필요하면 부르라고?”
탁-
새벽이라 나름 조용하게 대화를 했지만,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있었다.
그런 자그마한 소란스러움이 잦아들고 정적이 흐르자, 나의 마음은 소용돌이 쳤다.
나는 누군가의 시선이 있는 곳에서 절대로 내 속마음을 들춰내고 싶지 않다.
나를 보는 사람들이 신뢰할만한 사람들이고, 내가 그럴 기분이 든다면 조곤조곤 내뱉을지 모르지만, 특별한 상황이 오지 않는 이상 그런일은 자주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알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있다.
늘 그렇듯, 생각과 마음은 언제나 상충되고 있다.
나의 생각은 올바르고,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마음은 그것을 혼란스럽게 하고, 믿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서 떼를 쓰고 있다.
나는 언제나처럼 나에게 모진 말을 하며 마음을 잠재우고 다시금 평정을 되찾았다.
“후우… 뭐가 그리 불안한 거냐….”
나는 쓴소리를 마치고 부드럽게 나 자신을 타일렀다.
이대로 잠들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눈을 감은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잠이 들 수 있었다.
* * *
“페스틴? 괜찮니?”
제시 아주머니 목소리에 나는 온 몸에서 뻐근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괜찮습니다.”
잔뜩 긴장이 되어있던 탓에 제대로된 피로회복을 하지 못한 듯 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청량하고 말끔한 느낌의 햇살은 나를 환기 시켜주어서 잠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들었다.
“…정말로 괜찮은거 맞니? 일단 씻고 내려와서 식사 하렴~?”
“네, 감사합니다.”
달칵-
빛은 형태가 없으면서도,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내가 찾은 비옥한 땅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었다.
닫혀진 문은 왠지, 내가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단절…이라….”
세상의 흐름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누군가가 조작하여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모두가 누군가의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나’라는 존재가 갖가지 어려움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 아주 웃긴 모습을 보기 위해서 모두가 작당하고 짜놓은 것 일까?
“후우….”
조금 지친 듯 했다.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은 듯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휴식 일까?
아니면 계획을 발빠르게 속행하는 것 일까?
나는 또 선택의 기로에 서고 말았다.
“…역시.”
나는 창문으로 다가가 밖의 풍경을 내려다 보았다.
참으로 나는 나약하다.
그 누구의 도움없이 나 자신을 가꾸어 왔다.
물론 외부의 도움이 몇번 있었지만, 그것이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것인 왕궁에 올 수 있었던 기회를 준 팜 아저씨 밖에 없었다.
사실상, 내가 이용할 목적으로 거짓된 나 자신을 꾸며서 보여준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도움을 주게 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는 감정도 어느정도 존재하고 있기는 하다.
지금도 도움 받고 있다.
이제는 내가, 이용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주위의 손길을 순수히 받아들여서 호의 즉, 응석을 부려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지려고 하는 짐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육중한 것이다.
그런 내가 그것을 버텨낼 가능성이 있을까?
답은.
모르겠다.
가능성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나는 의지를 확고하게 굳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욱신거리는 등 근육이 나에게 도망치라고, 침대에 누워 편히 쉬라고 외쳐대고 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 문열었다.
나는 세상에게 어떠한 위협을 받더라도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열려진 문 너머로 밝은 빛이 새어나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