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26 굳게 닫은 문. (2)
“아! 오빠, 일어났어?”
아래층으로 내려가보니, 세티가 바쁘게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어주고 있었다.
식당 한가운데에 굳건히 서있던 시계는 제 12시 4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음, 상당히 오래 잤구나.
늦잠을 자면 잘 수록, 일어나는 시간도 늦어지는 듯 했다.
세티는 자신의 손 위에 놓여져 있는 쟁반에 있던 음식 그릇들이 비워지자, 나에게 총총거리며 뛰어와 나의 등을 떠밀었다.
“오빠~ 오빠 자리는 저기야.”
“어, 어… 그래 고맙다.”
나는 억지로 등떠밀리는 상황이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음에도 호의가 어색할 뿐이다.
“자! 편히 있으라구~?”
세티는 상큼발랄하게 말하고는 주방을 향해 걸어갔다.
“…것참.”
너무나도 어색하고, 어색하고, 어색했다.
왕궁의 상황에 적응하고 나서부터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도 모를 정도로 많이 무감각해진 듯 했다.
나는 ‘마녀’라는 존재가 왕궁 내부에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마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위험으로 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왔다.
나의 감이라는 것도 상당히 날카로워져 있음을 느끼고는 한다.
하지만 그 외의 감각들이 조금씩 비이상적인 형태로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호기심보다는 경계에 가까운 기분을 가지게 해주었다.
이상할 정도로 뚜렷하게 보이는 시야와, 왕궁에 처음 왔을 때 보았던 기괴한 움직임을 어느정도 따라잡은 나의 신체가 나의 계획에 전반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그 힘의 원천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느정도는 나의 노력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그간 왕궁에서 지내는 동안, 하루하루를 그녀들과, 그리고 주위 사람들과 지내며 가벼운 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다.
최근 들어서는 어느정도 완성이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에, 수련을 잘 안하고 있다.
수련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내적과 외적인 부분을 성장시키고 다듬고 더욱더 날카롭게 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일단, 정신력을 강하게 하고 싶어서, 목표의식을 뚜렷하게 했다.
그리고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싶어서, 나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세웠다.
누구보다 빠르고 날쌘 몸을 가지고 싶어서, 근력 운동을 하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노력했다.
비상하고 예상외의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발함과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서, 나의 고정관념과 그간 쌓였던 불필요한 지식들을 정리하고 뜯어 고쳤다.
그 결과 나는 어느정도 세상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기가 갖추어졌을 뿐이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2년 정도 되는 시간에 속한 노력들이 이렇게 까지 큰 결과를 줄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하지만 현재,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날카롭고, 지나치게 성장했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나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나만의, 나에 의한 것들을 통제할 능력이 나에게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단, 적절하게 나의 비축된 체력을 사용해가며, 불필요한 것들에 대한 소비를 줄여나가며, 핵심을 찔러 나의 동선을 최소한으로 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내가 깊은 생각으로 빠질 때즈음, 밝은 미소의 세티가 음식을 내왔다.
“자, 오빠, 어서 먹고 힘내라구?”
“…어, 고마워.”
아까부터 계속되는 이 대화 패턴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내가 세티를 가만히 쳐다보자, 그녀는 갑자기 얼굴이 빨게지며 말을 더듬었다.
“무, 무, 뭐, 왜그러는 거야?”
시선을 피하며, 대놓고 어색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그녀는 은근히 자신의 바뀐 모습에대해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하긴, 저번에 잠깐 만난 것 외에는 제대로된 만남이 없었기는 했다.
당분간 만나지 못한 공백이 이렇게 크다는 것인가…라며 조금 아쉬운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세티 만큼은 예상이 잘 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 특유의 통통 튀는 듯한 반응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엿한 숙녀같이 도도한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이전의 어린 모습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때로는 순진하지만, 어쩔 때는 야비하기까지 하다고 할 정도로 비상한 머리를 보이기도 한다.
잠깐.
뭔가… 상충된다.
나도 상충된 사람임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마음 따로, 생각 따로인 상황을 모두가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아성찰 도중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왠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오빠?”
“응?”
잠시 딴 생각에 빠져있자니, 세티가 볼을 부풀리며 나를 불렀다.
“아…. 미안, 무슨 말 했어?”
“그래! 사람말을 제대로 들어야지…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야?”
“…미안.”
“아까부터 고맙다, 미안하다 라는 말밖에 안하고…. 내가 안반가운거야?”
“어, 어?”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사람 걱정시키고 있고….”
그 때 세티의 한쪽 손목에 붕대가 감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어찌 이리도,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고 마는 것인가?
나의 적에 대한 것들은 아주 빨리 눈치 채면서도, 나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것들을, 그것들의 중요성을 떠올리지도 못한채로, 기억의 저편 너머로 던져버리고 만다.
“…당연히 반갑지, 어제 방황하다가, 쉴곳을 드디어 찾았었거든.”
“…흥! 늦다구! 나참…. 사람을 걱정시키고 말이야!”
딱-!
느닷없이 날아온 꿀밤에 나는 피할생각조차 할 수 없이 곳이 곧대로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아야!”
소리를 낸 것은 꿀밤에 아픔을 느끼던 내가 아닌, 세티였다.
다친 손목이 있는 쪽으로 내리치는 바람에, 고통을 호소하게 된 것이다.
“…괜찮아?”
“괜찮지… 않아!”
울먹 거리며 말하는 세티는 뭔가, 묘한 감정을 들게 했다.
“하하… 이거 어쩔 수 없구만?”
“웃지말라구!”
“…안되겠다. 내가 좀 도와줄게.”
나는 내 앞에 있는 음식을 얼른 입속으로 털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엥? 뭐, 뭘?”
여전히 아픔을 느끼는 것인지, 얼굴을 찡그리며 묻는 세티의 대답을, 나는 행동으로 대신했다.
* * *
“이야~ 덕분에 수월하게 끝냈네.”
“그러니까요~ 한 사람 더 고용하자니까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하는 제시 아주머니의 말에 세티는 불만을 표하듯 툴툴대었다.
“어때? 일해보니까?”
“일이요? 음… 할 만했습니다.”
“그래? 그럼 결정이네?”
“네?”
제시 아주머니의 적극적인 태도에 되려 당황하고 말았다.
“좋아요~ 찬성!”
“응?”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제시 아주머니는 나의 등을 두드리며 신나게 웃었다.
뭐가 그리 즐거우신지….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나는 시계에서 현재 시각이 제 6시 41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벌써 가는거야?”
“다음에 시간 날 때 와야지, 페퍼랑.”
“…그래?”
페퍼의 이름이 나오자, 잠깐 세티의 얼굴이 변했었다.
…왜지?
하지만 그녀가 단순히 나쁜 의도를 품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확실한 물증은 없으나, 그것 만큼은 확신했다.
“아, 가기전에 조금 묻고 싶은게 있는데요….”
“뭔데?”
제시 아주머니는 다른 의도로 호기심에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나의 손을 덥썩 잡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태도에 부담스러움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그 사람 기억해요? 그 왜… 혼자서 음식 많이 시켜서….”
* * *
그 사내의 집은 생각보다 왕궁과 가까웠다.
거의 뭐 코앞이라고 할 정도의 거리였다.
슬슬 왕궁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기에, 나는 조금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그가 잠을 너무나도 일찍 자는 사람이 아님을 바라며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내가 몇차례 문을 두드렸어도, 안쪽에서는 묵묵무답이었다.
나의 움직임이 멈추자, 거리는 한순간에 고요함으로 물들었다.
상당히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는 좀처럼 자신의 얼굴을 보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흐음….”
나는 시선을 돌려 창문으로 방 안쪽을 들여다 보았다.
이리저리 어지럽혀져 있는 방안은, 딱 봐도 그가 혼자 살고 있으며, 제대로 된 관리를 할 수 없는 사람임을 알게 해주었다.
“…자기 자신을 잘 못돌보나?”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성인의 나이를 훌쩍 넘은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는 강인해 보였던 사람이나, 배를 타고 성벽 밖을 조사했던 기간동안 소중한 동료들을 괴물에 의해 하나둘씩 잃은 것이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상당히 수가 되는 소중한 이들을 잃은 아픈 마음 만큼 이겨내기 힘든 것이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어렸을 적에, 부모님을 묘지에 묻었을 때, 처음보는 얼굴을 한 사람들과, 갖가지 복장을 갖추고 있었던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음을 보았다.
확실하게 떠오르지 않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 분위기 만큼은 내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나는 창문의 먼지를 살짝 쓸어내고는, 안쪽을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아…?”
나는 그 방 안에 있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사람이 살면서 방을 치우지 않아서 방 안이 어지럽혀질 때도 있다.
그런가 하면, 타인에 의해서 제멋대로 흩어진 물건들이 보일 때도 있다.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흩뜨려 놓은 집 안의 가구들은 방안에서 일어났던? 일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해주었다.
나는 시험삼아 문 앞으로 다시 가서 문고리를 돌려보았다.
내가 문을 두드렸을 때와는 달리, 너무나도 쉽게 문이 자리를 비켰다.
나는 무거운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한발자국 한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갔다.
한쪽 손을 단검이 있는 허리춤에 가까이 가져가면서 주변을 경계했다.
하지만 별다른 징조도 보이지 않은채로, 집안의 분위기는 무겁디 무거운 공기만 내려앉고 있을 뿐이었다.
고요한 침묵속에서 나는 천천히 어질러짐의 근원지를 향해 걸어갔다.
반즈음 열린 안쪽 방에서 쇠냄새가 살짝 새어나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발을 내딪으려는 순간, 어떤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또독-
똑-
때로는 일정하게, 때로는 불규칙 적이게 들려오는 물방울 소리는, 나의 불안한 마음을 가중시켜 주었다.
나는 열려진 문틈 사이로 몸을 집어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았다.
두려움이나, 긴장감 때문이 아니라, 분노 아니,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그곳에는 힘없이 벽에 기대어져 있는 그 사내의 시체가 눈에 보였다.
그의 바로 옆에 위치한 서랍장 위로 그의 손이 올라가져 있었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그의 손은 그를 살해한 사람이 얼마나 잔혹한 사람인지 알게 해주었다.
어떠한 일에 대해 심문한 모양이다.
꽤나 잔혹하게 고문을 해놓았다.
“…늦었나.”
나는 그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그에게 못다한 말이 있었지만, 그에게 닿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에 스르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어쩐담.”
나는 그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경험했는지 듣고 싶었다.
그도 세대를 물려받아 계속 모험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동안 쭉 이어져온 경험과 기록들은 앞으로의 나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나의 생각대로 일은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엉덩이에 달라붙은 먼지를 털어내며, 미련없이 방을 나섰다.
* * *
“…이제 돌아오는 길인가요?”
살금살금 나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나에게 또 다른 묘한 감정을 가지게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