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26 굳게 닫은 문. (4)
쾅—!
“페퍼!”
숙소로 향하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커다랗고 검은 그림자는 불안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에너지 탐지. 괴물을 제거합니다.”
차가운 인형의 목소리는 나의 두 귀에 뚜렷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것이 등장하며 내뿜었던 풍압이 내 이마를 강타하고 저 멀리 등 너머로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며, 다리를 내뻗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일은 순탄하게 흐르지 않는다.
쿵—!
곧 이어서 나의 앞에도 인형이 내려 앉았다.
넓은 공터에서 뻥 뚫린 하늘이란, 인형이 또 등장하리라는 걱정으로 가득차게 만드는 것이었다.
“에너지 탐지. 괴물을….”
“비켜….”
나는 다급한 마음에 품에서 단도를 꺼내려고 했지만, 잡히질 않았다.
“아….”
잠깐 방심을 했다.
…어디로 가버린 거지?
품 안에… 단도가 없다.
틀림없이 있었어야 할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없애버린 것처럼….
쿵—!
내가 당황할 틈도 주지 않은채로 또 다른 한 체의 인형이 나의 눈 앞에 도사렸다.
“이런….”
나는 다급하게 품속에서 냉각수를 꺼내 그것들의 발을 얼렸다.
“꺄아악!”
외마디의 비명이 들리고, 나는 머리가 새하얗게 되어버렸다.
나의 눈 앞에 있는 거구의 인형들 너머로, 페퍼가 인형의 손에 목덜미를 붙잡힌 채로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었던 장갑을 서둘러 끼고는, 도약했다.
다행이도 부츠를 상시 착용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날 뻔 했다.
“잭…. 옆에 있어요?”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면서 작게 속삭였다.
어딘가서 보고, 듣고 있을 터인 잭에게 말한 것이다.
나는 다급하게 팔을 뻗었지만, 나의 몸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아…?”
뒤를 돌아보니, 인형들이 나를 쏘아보며 나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이런 젠장.”
나의 상체가 땅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고, 중심을 잃고 크게 휘청거리게 되었다.
부웅—
인형들에 의해, 나의 몸은 공중을 날아 저 멀리 던져졌다.
“크헉….”
인형의 팔에 탑재되어 있는 근력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시야가 흐릿해진다.
그동안 겨우겨우 피한 탓에 이런 고통은 겪을일은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쿵—!
상황은 절망적이게도, 또 다른 인형이 등장했다.
현재 총 4체의 인형을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이 이상 늘어난다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힘들다.
하물며 페퍼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페, 페퍼는….”
페퍼 등 뒤로 잠깐 빛이 났고, 그 사이에서 무언가 날아와 인형의 머리에 박혔다.
반짝거리고 투명한 그것은 상당히 날카로워 보였다.
꽉 붙들고 있었던 인형의 손이 페퍼의 목을 놓아주었다.
“콜록! 콜록!”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내 심장을 후벼 파는 소리가 들렀다.
또다.
또 나는 그녀를 위험에 빠트려 버렸다.
“것참….”
나는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인형들을 쏘아보고는, 내 앞을 막고 있는 인형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인형은 당연하게도 딱딱한 말을 하며, 팔에서 칼날을 꺼냈다.
“괴물을 제거합니다.”
“나는… 너를… 그리고 악을 제거한다.”
그리고 내리쳐지는 인형의 팔보다 빠르게, 그것의 심장 부위에 주먹을 꿰뚫었다.
경직.
그리고 인형은 파손은 신경 쓰지 않은채로 다음의 공격을 하기 위해서 움직일 테지.
그리고 나도.
빈틈을 주지 않을 생각이다.
바닥을 박 차고 그 녀석의 안면에 주먹을 내질렀다.
인형의 딱딱한 머리에 부딪히는 충격이 팔에 그대로 전해졌지만, 지금 그게 뭐 대수랴.
나는 꿰뚫는 것을 넘어 그대로 짓뭉개서 행동불능을 만들었다.
치지직거리며 움찔거리는 인형을 보고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아….”
날씨가 추운가.
하얀 입김이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인형들은 인간이 아님에도 묘하게 켕기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파르르 떨리는 팔을 부여잡고 인형을 발로 차냈다.
그리고 거침없이 도약을 했다.
바닥이 부서지든, 부츠에 들어있는 코어가 손상이 되든, 이 한번의 도약으로 페퍼에게 도달할 생각으로 그렇게 했다.
그녀의 곁에가서.
그녀를 지키고 싶었다.
이것은 숨김없는 나의 본심이다.
나는 그녀로 인해서 여전히 ‘사람’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페퍼!”
“콜록… 콜록….”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페퍼를 들쳐 업고 외쳤다.
마녀들 틈에서 제정신인 사람이 있다면 도와주러 나올테지.
“누가 좀 도와주세요! 습격입니다!”
나의 목소리가 공터에 울려퍼지며, 숙소에 있을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 소란에도, 그 누구도 창문을 열고 밖을 확인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하아… 하아… 젠장.”
어째서지?
어째서 마녀가 아닐 터인 사람들 조차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것 일까?
어떠한 ‘요인’이 방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질적인 이 상황과, 비이상적으로 통솔되어지고 있는 듯한 인형들의 움직임이 설명이 되지 않았다.
설마… ‘마담’을 제거하고 난 뒤에 느껴졌던 다수의 시선이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인가?
토니의 말에 의하면 각 구역의 빈민가에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져 협약을 맺는다고 한다.
어쩌면 그 협약을 맺는 과정에서 친밀도를 쌓아서, 일종의 교류를 즐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면 정이라는 것이 생기고, 인간들은 그것을 통해 의리를 지키려고 할지 모른다.
쿵—!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인형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건 너무나도 예상 밖이었다.
나의 발언에 마녀측의 인간들이 자극을 받아서 인가?
그렇다면, 나를 얕보지 않고 제대로 된 방식으로 도전을 해온 사람이 있다고 하는게 맞는 말일 것이다.
…이제서야 제대로 봐주시는구만.
그때 였다.
“후훗… 잔뜩 겁먹은 것 같네 우리 꼬맹이.”
나는 인형의 등에 올라타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아, 나는 무관심의 마녀. 말썽꾸러기 군에게 벌을 주러 왔지~”
이번의 마녀는 순순히 자신의 별칭을 알려주었다.
마녀와 빈민가의 그들은 연관되어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나에게 더 없이 절망스러운 사실이 될 것이다.
조력자를 구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다.
“…이것 봐…. 역시, ‘그분’이 도와주셔야 한다니까?”
극존칭으로 칭해지는 ‘그’가 이 일을 주도한 듯했다.
역시라고 한다면 역시인가?
그들의 우두머리는 마녀들과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그의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틀림없이 약삭빠르고 계략을 잘 세우는 사람일 것이다.
중얼거리던 마녀는 기쁜 듯이 외쳐댔다.
“꼴 좋네, 우리 아가. 그러게… 남들처럼 조용히 살았어야지.”
남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결국 벌을 받는거야, 그분에게 대들면 말이지… 안 그래? 유리아, 아니 비정의 마녀?”
어느새 인가 자신을 비정의 마녀라고 소개했던 그녀가 내 옆에 서있었다.
“…대든 것이 아니야, 나는 처음부터 당신들과 함께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래? 역시 비정하네. 이전에 함께 했던 것들은 뭐야?”
“뭐냐고? 강제로 떠밀려졌던 더러운 추억거리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용의 대화가 오고갔다.
“…그럼, 미련없이 너를 보내줄게.”
그 마녀는 손짓을 했다.
우웅-
공기의 흔들림이 있고 나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까지 나란히 서있던 인형들 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읍! 읍! 으으으읍!”
비정의 마녀, 아니 유리아…라고 불린 그녀는 나에게 다급한 손짓을 했다.
그리고 잭이 나에게 속삭였다.
“공간이 단절 되었네…! 일단 위험하니 페퍼는 내가 데려감세…!”
뒤를 돌아보니, 페퍼가 빛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그라면 안심이다.
그나저나 공간이 단절되었다니 무슨 소리 일까?
잠깐, 그렇다면 아까의 소동이 있었을 때,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은 이유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인가?
그 때 비정의 마녀가 나를 밀쳤다.
내가 몇발자국 뒤로 밀려나자, 내가 있던 자리의 바닥이 부서졌다.
부서진 파편의 방향을 보아하니, 주먹을 내려친 것 같았다.
인형이… 없어진게 아닌 것 이었나?
그렇다는 것은 보이지 않음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소리 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걸 대체 어떻게 타개 하란 말인가?
나는 아무런 힘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란 말이다.
어찌 이리 불합리하고 불합리한 상황이란 말인가.
“으읍!”
비정의 마녀가 두 손을 펼치자, 그녀의 앞으로 얼음들이 뻗어나갔다.
그녀는 어떻게 인형이 접근했다는 것을 눈치를 챘던 것 일까?
그녀의 얼음 끝에 인형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내며 얼어붙었다.
…?
어떻게….
코 끝에 쇠 냄새가 났다.
다급한 비정의 마녀의 몸짓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소리없이 내가 서있던 자리의 바닥이 다시 한번 더 부서졌다.
파괴된 바닥의 조각이 내 볼을 스쳐지나간다.
파편이 튀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나의 직감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앞을 보았을 때, 놀란 눈을 한 두 명의 마녀가 눈에 들어왔다.
마녀…?
달빛이 희미하게 비춰지며, 허공이 반짝거렸다.
물…?
나는 비정의 마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허공을 다시 바라보았다.
여전히 반짝거리며, 이리저리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한 반짝임이 점차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또 다른 반짝임은 나의 뒤로 돌았다.
이건…?
내가 다시 한번 더 비정의 마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답…? 정답인가…?
의심속에서 나는 반짝임의 움직임에 대응하여 어떻게 무력화시킬지 머리를 굴렸다.
좋아.
해보자고…!
나는 서둘러 인형의 몸집과 길이를 기억해 내려고 했다.
수십번, 아니, 수천번 조립하고 분해 했었던 그 팔다리, 그리고 나의 눈 앞, 바로 앞에서 나를 가로막았던 그것의 몸체를 기억해내려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을 정리했고, 다음의 행동을 하는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콰직-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뻗어진 왼쪽 주먹 끝에 감촉이 느껴졌다.그대로 팔에 충격이 전달 되어졌지만, 아프지 않았다.
나는 희열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이것 봐라, 나는 해냈다.
아무런 힘도 없는 내가, 힘이 있는 자에게 겨우 대항하고 있었다.
그것 만으로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나와 비정의 마녀의 협력으로 인해, 하나둘씩 인형이 파괴되어 가자, 무관심의 마녀는 점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 어째서…!”
물속에서 듣는 소리처럼 둔탁하게 들렸던 그 마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감정에 휘둘려, 자신의 힘을 통제하는 걸 뒤로한다.
인형들의 모습도 희미하지만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육안으로 확인되는 인형의 수는 단 3체.
나와 비정의 마녀는 각각 남은 한마리씩 격파했다.
그리고 천천히, 무관심의 마녀가 타고있는 인형에 가까이 갔다.
“사… 상상 이상이네…? 우리 아가….”
마녀의 소속이었던 비정의 마녀가 모종의 이유로 배반을 했기 때문에 평정심이 흐트러지는 것이 가속되었던 것 같았다.
여전히 충격이 가시질 않았는지, 그 마녀는 동공을 흔들며 동요하고 있었다.
“페스틴… 이라고 했던가? 잘 싸워줬다.”
“뭘요, 저도 덕분에 타개할 수 있었습니다.”
“살려둘거야?”
“아니요, 살려두는 것은 일단, 당신 뿐입니다.”
“하, 고마워 해야되나?”
“아니요, 제가 고마워 해야 하죠.”
잠깐의 대화를 마치고, 그녀는 주저함 없이 눈 앞에 있는 마녀를 얼려버렸다.
일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얼려버렸다.
“…당신의 힘이 이렇게나 강했습니까?”
“…약자라고 생각되면 나도 모르게 힘을 빼게 되더라고.”
“…그렇죠, 저는 힘도 없는 약자니까요.”
“…이제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던데?”
“그래요?”
나의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그녀에게 향해지자, 그녀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찾았네, 할아방탱구는 둘째 치고….”
“네?”
“할아방탱구! 어서 우리를 이동시켜 줘!”
그녀는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뭬야? 누가 할아방탱구인가!”
“하하하하!”
잘만 농담하는 그녀는 전혀 비정하지 않았다.
‘그분’은 정말 작명 센스가 없는 듯 했다.
빛이 났고, 사태의 수습을 하지 못한채로 부서져 가는 무관심의 마녀를 바라보다, 잭의 공간으로 빨려들어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