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26 굳게 닫은 문. (5)
정말 오랜만에 들어서는 이 공간은 나에게 왠지 모를 향수병을 느끼게 해주었다.
어느 순간 부터 느껴지는 그리움이란 나에게 의문점을 갖게 만드는 것이 충분했다.
“…어서오게, 말썽꾸러기 군.”
“아하핫, 오랜만입니다.”
실로 오랜만이다.
실질적으로는 일방적인 만남이 계속 되었었지만 말이다.
“자네… 괜찮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이해했지만, 나는 그냥 모르는 척을 했다.
“뭐가 말입니까?”
그것은 내가 방금 전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에 대한 나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는 말이었던 것이다.
비꼬면서도, 현실을 부정하는 말이다.
나는 내 앞에 보여지는 모든 문제들을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어느덧 비일상은 나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그렇다면 행동에 망설임은 없다.
“…자네에게 피해는 없냐는 말일세.”
“피해…요? 딱히, 제가 피해를 입지는 않았죠.”
나는 푹신한 소파에 정신을 잃고 앉아있던 페퍼를 바라보았다.
“원래… 처음이면 다 저런가요?”
“그런 것 같네만, 자네는 멀쩡하더군.”
“…그렇군요? 그런데 한가지만 더 물어보아도 될까요?”
“…자네 입에서 나올 말이 벌써 두렵지만 괜찮다네.”
뭘 이런거에 솔직해지고 있는거람.
“당신의 힘의 한계는 뭔가요? 마음만 먹으면 뭐든 가능하신건가요?”
“그렇네.”
“뭔가… 말씀하실 때는 한계가 있다는 듯이 말씀하셨던데….”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조금 다른 의미네.”
“다른 의미요…?”
잭은 차분히 자신의 흰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여기는 나만의 ‘공간’이네, 쉽게 말해서 틈새라는 소리지.”
“틈새라 함은….”
“음… 그래, 이건 조금 복잡한 이야기네만, 애초에 사람의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네.”
이해하지 못한 도구는 사용자를 해하는 결과를 도출하기도 한다.
“빛이 있으면, 그것의 반대쪽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어둠이 존재하게 되네.”
“그야… 그렇죠? 기본적인 자연의 섭리니까요.”
“그렇지, 맞는 말 일세, 그렇다면 그것이 나뉘어지는 기준점은 어디라고 할 수 있겠나?”
“기준점이요?”
글쎄다.
그것은 육안으로도, 감각적으로도 정확하게 구분지어서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빛의 세기, 각도, 양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니 말이다.
어디가 경계점이고,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는, 그것들 즉, 빛과 어둠 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나조차도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않네만, 감각적으로 그것을 알아챌 수 있지. 내가 가진 힘으로 말일세. 한낱 인간이 금단의 영역에 대해 알게되면 천벌을 받을테지만, 나는 특별하게도 이 힘을 하사 받았으니 권한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네.”
“…마치 신이 있다는 표현 같네요.”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신과 같은 고등생명체의 존재가 한 일이 아니고서야, 이리도 정밀하고 복잡하게 설계된 것은 설명이 되지 않다는 것 뿐이네.”
“…자연을 이기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크흠, 아무튼 이야기가 조금 샜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나만 모든 권한을 가진 공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네. 그게 내 힘의 한계지.”
“그럼… 잭 처럼 다른 공간을 다루는 권한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네요?”
“…그렇지 않다네. 내 힘의 영역은 지금도 넓혀지고 있으니.”
“네? 그러면….”
“자네에게는 이르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는 내가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이네. 나에게는 타인의 것을 침해할, 그런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말이네.”
그는 공중에 떠다니는 알 수 없는 물체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세계간의 간섭은 불가능한 것 같네, 마치 그 세계 자체가 이질적인 무언가를 거부하며 분쇄시켜 버리는 것 같네. 따라서, 나의 힘에 제약이 생겼다네.”
“그렇군요.”
확실히, 이해할 수가 없다.
가상의 세계?
공간을 다루는 힘?
뭔가… 알듯 하면서도 확 와닿지 않는다.
이 간질간질한 뇌의 움직임에 따라 나의 마음은 불편함이 가득해졌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일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네?”
“하하하! 자네의 가슴에 박혀져 있는 말을 그대로 따라했을 뿐이네.”
“…네?”
나는 다시 한번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분명 감정을 알아챌 수 있다고 했다.
그럼, 내 뇌속을 살필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 공간의 개념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부터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이런 끝을 알 수 없는 그의 '능력'에 대해 경외심이 든다.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가 가진 힘의 크기에 대해 감탄하는 것이다.
“당황하지 말게, 몇백번 반복되어 온 어떠한 생각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새겨지게 되어있다네, 그 사람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그것이 현실이 되든 그렇게 되지 않게 되든 하는 거라네. 그러한 정보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면 알게 되는 것이지.”
“아하하… 그렇군요.”
참으로 무시 못할 사람이다.
그는 어디까지 눈치채고 말한 것 일까?
그도 그럴게, 나도 상당히 많은 것에 대해 그에게 털어놓았기 때문에, 충분한 추리가 가능한 것 뿐이라고 나름 자신을 추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렇게 나를 빼놓고 이야기 할거야? 뭐… 대부분은 어제 이야기 한 내용이지만….”
‘유리아’ 라고 자신을 칭한 그 사람은 참다 참다 못참겠다는 듯이 말했다.
따분함이 가득 담겨진 그녀의 목소리는 참을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그녀 역시 이런 대화를 잭과 한 모양이다.
가상 세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 일까.
“허허허! 이거 미안하네.”
“할아방탱구는 조용히 하고.”
“뭣! 무슨 말버릇이 그런가!”
“아앙? ‘이쪽’은 모르겠지만, 당신 같은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한다고?”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네!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잖은가!”
“것참….”
나는 티격태격하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얌전히 잠든 것처럼 보이는 페퍼에게 다가갔다.
곤히 자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자그마한 숨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변태냐?”
“아닙니다.”
등 뒤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차갑게 대답했다.
“헹! 아닌데 왜 그러고 있는거야?”
“음… 글쎄요.”
솔직히, 지금에 와서야 그녀를 향한 나의 감정이 어떠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처음 만난 나의 친구이자,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 그런 의미를 넘어선 무언가가 그녀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말로써 설명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나도 이해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주저하게 되는 것 같았다.
“…이상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녀는 나에게서 관심을 끊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말이 나에게 와닿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에게 마녀 이상의 흥미를 가지지 않았을 뿐더러 그녀를 ‘이용’할 생각으로 살려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퍼의 모습과 기척은 나에게 와닿고 있었다.
나는 그때를 떠올렸다.
달빛이 아름다웠던 날.
나는 페퍼에게 말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곁에 있겠다고.
그 말을 그녀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내뱉었던 말이었지만, 나는 그동안 지키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녀를 죽이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타의에 의한 것이지만, 내가 그것을 바로 이겨내지 못할 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져 굉장히 마음이 찢겨지는 듯 했다.
이번에도, 나는 방심을 해서 그녀를 위험에 빠뜨리게 만들었다.
내가 조금만 더 경계를 하고 의심을 하고 감을 날카롭게 했었더라면, 그녀는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나는 가까이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나는 그렇다 쳐도,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다.
지극히 평범하다는 말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나는 비정상이다.
이도저도 아닌, 나의 감정이 무감각 해질대로 무감각 해져버린, 그런, 그런 이상한 사람에게는 감정이 없는 인형에게 목을 잡히는 것 즈음이야 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공포스런 그 인형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자신이 정말 나약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그 순간은, 그녀에게 정말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무력하다는 것은, 바로 눈 앞에 있는 벽을 치우지도, 부수지도, 넘지도 못하고, 그저 벽에 가로막혀서 갈팡질팡 하는 답도없는 자신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나라면 그것은 정말 참을 수 없어지는 것이었다.
만약에 그녀도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더라면, 나로서는 그녀가 정말 가여웠다.
괜히 나와 만나서, 괜히 내가 괴물 토벌반에서 함께 할 것을 권유를 해서, 괜히 내가 라이브의 일에 연관이 되어버려서 그녀를 슬픔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닐까 하고 착잡해졌다.
아무리 봐도, 명백하게 나의 잘못처럼 느껴지는 이 상황은 나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기만 했다.
어쩌면 웃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무뎌져가는 감각 속에서, 일의 성공률을 위해서 인간성을 버리고, 나약한 자신을 생매장 시켜버린 내가, 이제와서 몇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고 느끼고 듣고 하면서, 다시 인간적인 사람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 말이다.
힘들면 남에게 기대라고?
웃기지 마라.
모두와 협력해서 일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웃기지 마라.
지쳤다고 해서 조금 쉬라고?
그것은 더더욱 웃기는 소리이다.
이것 보라, 내가 남들에게 도움을 구하려는 말을 내뱉었을 때 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들의 우두머리가 직접 개입하고, 나를 몰아넣었고, 그녀를 상처입혔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그들은 혼란스러워 할 뿐, 현실을 바로 직시하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사실을 말해도, 그들은 제 생각과 판단에 의해서 나의 말을 제멋대로 해석해버릴 뿐이다.
정직해서 무엇하나, 솔직해서 무엇하나.
진실을 말해주어도 듣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나는 증오한다.
나를 위협하고, 내 일을 방해하고, 내 계획을 망치려하는 그들을.
내 소중하디 소중한 그녀를 건드린 그들을 말이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쓰다듬던 손을 거두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되어, 주먹을 쥘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어라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만… 자네는 지금껏 혼자서 잘 해왔네.”
“…그런가요?”
배후에서 잭의 위로가 담긴 말이 들려온다.
나의 마음을 읽은 모양이다.
단순한 의문.
정말로 내가 잘하고 있는가?
후회할 선택을 하지 않고 있는가?
이것이 잘못된 길은 아닌가?
내가 괜히 나서서 일을 그르치고 있지는 않는가?
그런 불안한 생각은 서로를 삼키고 삼켜서 결국,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렸다.
“…이번 일은 내가 미리 알아채지 못한 것이 크네. 그저… 미안할 뿐이네.”
말도 안되는 소리다.
“뭘요, 딱히 잭은 잘못하지 않으셨는걸요?”
“…고맙네.”
그는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별다른 소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가 더….”
“…쳇.”
그녀는 우리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맹이 같은 것을 발로 차며 돌아다녔다.
툭- 툭- 툭-
아…?
“잠깐만요.”
나는 혼란스럽고 소용돌이 치는 와중에 이것 하나만큼은 똑똑하게 떠올렸다.
순간적으로 말끔해진 머리는 실로 개운하고 개운하고 개운했다.
“아? 왜 그러는데?”
그녀의 동작을 제지하던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당신… 혹시, 그녀를 인질로 삼을 것이라는 계획을 들은 적 있나요?”
“아니… 뭐, 그런 이야기가 나왔었긴 했는데, 신입이 그걸 반대 하더라고.”
신입…?
“아니, 그것보다 네녀석 말투는 왜그러는거야?”
“네? 뭐가 말입니까?”
“음… 자네는 이상하다고 느끼나?”
“그냥 오글거려서.”
“오글?”
오글거리다니… 어디가 말인가?
“뭐야… 모르고 있었던 거야?”
그녀는 정말로 이상한 사람 보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딱히… 오글거리다고 느껴지진 않아서… 말이죠.”
“…세상에는 별 희한한 사람이 많으니까… 그냥 넘어가지.”
“왜요, 더 딴지 걸어도 괜찮은데.”
“내가 딴지만 거는 사람처럼 보이냐! 이 썩을!”
그녀는 빈정이 상했는지, 괜한 돌맹이에게 발길질을 했다.
저멀리 날아간 돌맹이는 어둠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자네의 다음 계획이 뭔가?”
“…이미 일을 다 들쑤셔서, 서둘러 반대쪽의 정보들을 얻어야죠.”
“누구에게 말인가?”
그는 불가능한 일을 하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글쎄요?”
나는 명백하게 ‘유리아’라고 불린 사람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것 만큼 웃긴 상황은 없을걸세.”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살려둔건데요 뭘.”
우리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유리아’ 라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뭐, 왜그러는거야? 뭐야? 뭐냐고!”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 둘을 향해 그녀는 연신 소리지르기만 했다.
나는 씨익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마녀는 얼마나 더 남았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