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26 굳게 닫은 문. (6)
“뭐, 뭐야… 지금, 설마~ 에이, 아니지?”
“그럴 생각이 없어보이네만… 어쩔텐가?”
“…목숨을 담보로?”
“음… 그건 아닌 것 같네.”
“그런가요?”
“너 임마, 지금 뭐라고 했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시선을 애써 회피하며 표정이 일그러지는 유리아라고 불린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다.
“하아… 통성명도 안 한 사람한테 훌훌 다 털어버릴 정도로 나는 사람이 좋지는 않거든.”
“하하하! 역시 비정의 마녀 답네요.”
“…아까부터 나를 얕보는 것 같은데….”
그녀에게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도의 친분을 쌓아야 할 것 같아서 농담을 해보았는데, 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눈매가 매섭게 변한 그녀는 나를 향해 팔을 뻗었다.
뻗어진 손끝으로 푸르른 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발언을 통해서 알 수 있었던 점은, 내가 보는 것보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냉기로 가득찬 얼음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에게는 ‘경험’이 쌓여 바로 대응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 적의에 의해서 나에게 겨눠지는 것들은 산산조각 나서 분해되어 버렸다.
일순간 일어난 그 상황에서도 나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왜냐하면, 눈에 다 보이는 일이었고, 잭이 나서지 않았어도 충분히 내 선에서 회피하고 반격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에 대한 대책을 세워두었기 때문이다.
“내 ‘공간’에서의 폭력은 용서치 않겠네, 유리아.”
“헹, 무슨 권리로?”
자신의 행동이 시작되기도 전, 타개 되어버린 자신의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채로 입꼬리를 움찔거리며 말하는 그녀는 내가 봐도 가여워 보였다.
“으음….”
“아.”
나의 등 뒤로 페퍼의 목소리가 들렀다.
나는 모든 신경을 그곳으로 쏟아내며 몸을 틀었다.
“뭐야? 명백하게 저 애를 …하고 있으면서….”
나는 그녀의 말에 유의하지 않았다.
“페퍼, 괜찮아?”
“여, 여긴….”
“괜찮아 안심해, 여기는 안전한 곳이야.”
나는 페퍼를 안심시키며, 손을 뻗었다
탁-!
나의 모든 감정을 날려버릴 정도로 차가운 그녀의 행동에 나는 얼어붙어버렸다.
“…아! 미, 미안….”
그녀는 자신이 한 행동의 의미를 이해했는지, 황급히 사과를 하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순간적으로 그녀에게서 받지 않을 것만 같았던 반응에 당황했지만, 애써 웃으며 그 ‘나쁜 감정’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아니야~ 괜찮아.”
나는 웃으며 손을 뻗는 것을 그만두고 옆에 앉았다.
“안전… 한거 맞지?”
“그럼, 여기는 저기 앉아있는 잭이라는 사람이 주인이라 아무나 못 들어와.”
“…!”
나의 설명을 들으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페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경계태세를 했다.
“이거 왜 이래~? 섭섭하게. 우리 한두번 본 사이는 아니잖아?”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가소롭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유리아라 불린 사람이 보였다.
“…페퍼?”
“당신이 왜 여기있어!”
페퍼의 외침은 시퍼런 날이 선 경계의 칼날로 가득했다.
“…그건 나야 모르지~”
페퍼의 다그침에 그녀는 한껏 여유를 부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나라도 딱히 대답을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아…. 페퍼…라고 했는가? 나는 자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네, 하지만 지금 유리아는 우리와 같은 편이네.”
“뭔 소리래? 노망이야? 내가 언제 그렇게 한다고 했어?”
“그럼 자네 왜 페퍼를 구했나?”
“윽… 그, 그건….”
역시 이번 질문에도 회피했다.
이것은 누구나 그녀의 상황이라면 대답이 힘들 것이다.
“…네?”
페퍼는 그녀를 전혀 자신을 구해줄 만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것인지, 당황하는 기색이 보였다.
“뭔가 이 상황에서 말하기 좀 그렇지만… 우리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참 빨리도 알아채네?”
“…일단 제 이름은 알고 있겠지만, 페스틴입니다. 이쪽은 페퍼고요.”
나는 그녀의 비아냥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잭이라네.”
서둘러 잭도 자신을 소개했다.
“흐흠, 뭐…. 나는 유리아라고 해.”
그녀는 눈치를 살피고는 자신을 소개했다.
눈치가 없어서 비정의 마녀인 줄 알았지만, 의외로 분위기 파악은 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잭의 목적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인식을 점진적으로 바꾸어나가려고 하는 것이고, 저는 원인을 없앨 생각입니다.”
“…그래?”
나의 설명에 그녀는 나를 불쌍히 보는 듯한 눈빛을 보였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현재, 저는 잭의 도움으로 상당수의 마녀를 찾아냈습니다. 실제로… 무력화 시켰기도 했죠.”
나는 페퍼를 의식하며 단어 선택을 했다.
자극적이지 않고, 나를 비인간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네가 한 짓이 맞구나?”
마치, 내가 잘한 것 처럼 말하는 그녀의 뉘앙스는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유리아의 대답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채로 나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 마녀의 수를 많이 줄여놓아야, 나중이 분명 편해질 겁니다.”
나는 말을 마치며 유리아를 힐끗 보았다.
그녀는 나의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한숨을 쉬며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나 보고 정보를 흘리라고?”
“그렇죠.”
“하아… 일단, 조금 알려주지 네가 과연 ‘그분’에게 대항할 힘이 있는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네.”
아까와는 사뭇 다른 그녀의 진지한 분위기에 그녀가 진심을 말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좋네요, 일단 그렇게 하는 걸로 하죠. 그리고 이 일은 당신이 정말로 그들과 한패가 아님을 증명하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칫, 건방진 녀석.”
그녀는 그렇게 혀를 차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한가지를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 * *
한차례 소동이 있고 나서, 자리를 피신해 있다가 돌아온 공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마치, 시간이 되돌아간 것처럼 아까의 전투의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과장된 표현을 해보자면, 전투를 하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 간 것 같았다.
“…페퍼, 너도 이거 받아둬.”
나는 유리아에게 건네준 것을 페퍼에게도 건넸다.
“…알겠어.”
나의 의도와, 현재 상황의 흐름을 읽은 것인지, 그녀는 흔쾌히 받아들었다.
“위험하면 언제든 그 버튼을 누르면 돼.”
“…그럴게.”
“나는 지금부터, 모든 신경을 쏟을거야.”
“…”
나의 확신에 찬 말에 그녀는 아무말 없이 나를 응시했다.
“…미안해, 나는 아직 너를 지킬만큼 성장하지 못했나봐.”
나는 고개를 떨구며 사과를 했다.
“으응, 아니야 고마워, 먼저 달려와주어서… 그것보다! 나는 네가 무사하기를 바라기도 한다구?”
그녀는 어색한 기류를 흩어지게 만드려는 의도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나를 지나쳐서 숙소로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그녀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전부 알 수 없다.
그녀가 어느정도로 자신을 갈고 닦았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실전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 뿐이었다.
하지만, 멀어져가는 그녀의 등을 바라보는 나는, 그녀가 마냥 지켜져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작고 왜소해 보이는 어깨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하네.”
나도 돌아섰다.
처음 만났던 그대로, 페퍼는 대단했다.
어리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나는 걸어가며, 다시 한번 더 뒤돌아 보았다.
왠지 마음이 통했던 것인지, 그녀도 나를 바라보고 밝게 웃고 있었다.
나도 미소를 지었다.
가식적이지도 않고, 다른 의도를 품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순수한 ‘기쁨’이었다.
일상에 얼마안되는 기쁨이란 말이다.
오늘따라 페퍼의 미소가 이리도 ‘아름답다’고 느껴진 것은 내가 느낀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 *
아침의 식당 분위기는 묘하게 이상하고, 어색했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토니에게 속삭였다.
“토니, 어제 왕궁에 없었어?”
“아니, …왜?”
“… 어제 내가 공터에서 큰 소리를 냈었거든….”
그는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그래? 왜 안 들렸지?”
“…역시, 그렇구나. 그건 나중에 더 이야기 하고, 너는 피해 없었어?”
“피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렇지?”
뭔가 이상했다.
조금 직설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이 잠깐의 대화에서 무언가 빠진 느낌이다.
“토니, 어제 내가 식당에서 말한거 말이야….”
“식당?”
“그러니까… 유… 유? 어…?”
“…왜 그래?”
그도 심상치 않음을 직감적으로 느낀 것인지, 주위에게 들키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어 가며, 물었다.
이상하다.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을 터인 그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말 내가 발견한 비옥한 땅을 빗대어 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표현이었는데 말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혹시, 내가 발견했다는거 기억하고 있어?”
나는 주위를 살피며 토니에게 물었다.
식당 내부를 둘러보다, 테리스의 미소가 보였다.
거리가 있었지만, 무표정한 가면 너머로 그런 미소가 보여졌다.
끈적하고, 칙칙한 미소를.
…뭐지?
“발견? 너 어제 딱히 아무런 말도 안 했잖아. 너 정말… 무슨 일 있었어…?”
돌아오는 것은 토니의 걱정스러운 표정 뿐이었다.
이상하고 이상하고 이상했다.
나는 분명, 어제 식당에서 공개적으로 무언가를 말했다.
하지만, 그는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어제도, 왕을 뵙고 나서 무언가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제 무관심의 마녀가 그분이 개입했다고 말했다.
기억을 잃은 것은 나뿐이 아니었단 말인가?
설마 이게 ‘그분’의 힘이란 말인가?
터무니없이 강한 힘이다.
그렇다.
어제의 내가 느낀 감은 무언가 경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가설을 뒷받침 해주기 위해서 정보를 모았다.
맞은편에 앉은 페퍼에게 물었다.
“어제, 식당에서의 나 말이야…. 이상하지 않았어?”
“응? 아니? 전혀?”
그녀는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흐음….”
어제 나와 부딪혔던 브란도 조차도, 나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아보였다.
평소의 그라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내이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그라면 틀림없이 나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아까 테리스의 미소,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 일까?
‘그분’의 힘에 무력해진 나를 비웃는 것 일까?
승리의 미소인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내가 말한 것들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조차도, 내가 무슨 단어를 내 뱉었는지 조차,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 * *
나는 식사를 마치고, 벽 밖으로 나가기 전에 장비들을 점검했다.
점검을 하면서 생각 또한 정리했다.
‘그분’은 특정 내용에 관한 기억을 잊게 만드는 힘을 가진 것 같았다.
전쟁은 정보전이라고 할 정도로, 정보는 승리에 필요한 정말 중요한 요소이다.
그는 그것을 잊어버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이러나 저러나 나는 그에 반해 정보가 한참 뒤쳐진다는 것이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특정한 내용’ 만 가능한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어제 모두에게 말한 내용과 단어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내가 무엇에 대해 이야기 했는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비옥한 땅이 아니라 그… 단어로 바꾸어 말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는 특정 단어를 기준으로 그것에 관한 것들을 전부 말소시키는 것도 가능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두가 새하얀 백지처럼 내가 했던 말을 잊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 라는 비옥한 땅을 대체한 단어에 관한 정보들을 모조리 지웠다.
더는, 내가 같은 편을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더는, 자신에게 대항할 힘을 기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비옥한 땅에 대한 것과 위치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게 대항해 볼만한 힘과 지혜와 그럴만한 역량이 있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아직, 나에게로 실패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유리아가,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감히? 네가? 진짜로? 가능하겠어?’ 와 같은 반응에 대한 이유를 깨닿고 나자, 충분히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가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모두와 하나로 연결된 자그마한 기계를 내려다 보았다.
어찌되었든 이제, 시작이다.
머지않아 상황은 급변할 것이다.
심호흡을 하고, 진실을 마주할 준비를 했다.
가설.
그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