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변신 (4)
"두통은?"
"없어."
"콧물이나 기침, 가래는 어떄?"
"없어."
"몸살은?"
"약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열 때문인지는 모르겠어."
몽롱한 기분으로 해무가 대답했다.
금발의 여의사는 안경 속의 눈을 찌푸리며 차트에 해무의 증상을 작성했다.
이리나 헤첸코프는 말하자면 무허가 의사였다. 모스크바 의대에서 공부할 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나름 촉망받는 인재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더이상 그렇지 않았다.그저 수많은 무허가 의사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녀가 정확히 어떤 사연으로 성채에 들어온 것인지 해무는 묻지 않았다. 굳이 궁금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곳까지 기어들어오는 사람들의 사정이야 대부분 고만고만한 것이었다. 분명 수술을 하다가 실수로 환자를 죽였거나 뭐 그런 이유일 것이다.
물론 성채에도 정식 허가받은 의사들은 있었다. 하지만 해무가 진료를 받으러 찾아오는 병원은 이 곳이 유일했다.
이 병원의 하나뿐인 의사이자 직원인 이리나 헤첸코프가 자신과 나름의 인연이 있다는 점. 그와 더불어, 구룡방에서 정식 허가받은 병원의 시설이 이곳과 별다를 바 없을 정도로 후진건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의사의 수준이 이리나에 미치지 못하는건 말할 필요도 없었고.
이리나가 온도계로 자신의 체온을 재는 동안, 해무는 흰 의사 가운 위로 길게 늘어져 곱슬거리는 그녀의 크림색 머리카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이 코끝을 기분좋게 간지럽혔다. 그리고 해무는 생각했다.
이 여자를 처음 만난게 언제였더라?
아마 오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그때 자신은 갓 살수 일을 시작한 열다섯살짜리 풋내기였다. 그리고 이리나는 여자는 모스크바 의대에서 구룡성채로 도망쳐온 스물 다섯살짜리 학생이었고.
그 때 이리나는 쫒기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째서 쫒기고 있었는지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리라. 그녀는 의사였고, 여자였다. 둘 모두 구룡성채에서는 매우 유용한 특성이었다. 그녀 자신에게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말이다.
병을 치료받을 수도 있고, 창녀로도 쓸 수 있다. 그러니 어느 누구라도 탐내는 존재였으리라.
그리고 살수로서 의사가 필요했던 해무와, 처음 성채에 들어와 스스로의 몸 하나 지킬 수 없었던 처지의 이리나. 둘은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고, 자연스레 협력했다. 해무는 이리나를 추격자들로부터 구출했고, 이리나는 해무를 치료했다.
다 옛날 일이다.
이제는 이리나도 성채에 자리잡기 위한 도움이 필요 없었고, 해무도 굳이 주치의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 이리나에게 진료를 계속 받아왔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찾아오는 것일 뿐이다.
"열이 좀 있어."
"얼마나?"
"삼십 칠점 오 도."
"별로 높지도 않네."
해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실, 말하는 것처럼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확실히 열이 오르고 있었고, 현기증도 멈추지 않았다. 아까전 해연을 만났을 때부터 이미 증상이 심해지고 있었다.
그저 그 자식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필사적으로 참아낸 것 뿐이었다.
"고개 들어봐."
이리나의 지시에 해무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녀의 하얀 손가락이 움직이며 해무의 셔츠 단추를 목덜미부터 하나하나 풀었다. 그리고 앞섶이 완전히 벌어지자, 셔츠 한쪽을 뒤로 젖혀 해무의 어깨를 드러냈다.
"여기 맞아?"
"응."
이리나는 동그란 실테 안경너머로 해무의 어깨에 남아있는 주사자국을 살폈다. 붉게 부어오른 피부의 얼룩 한가운데 작은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해무도 자신의 상처를 다시한번 확인하며 물었다.
"뭐일 것 같아?"
"천연두. 흑사병. 코로나 바이러스."
"엿 같은 소리는 집어치워."
이리나의 말에 해무가 짜증을 냈다. 저 여자의 실없는 농담은 언제나 재미가 없었다. 그 와중에 얼굴 표정은 진지해서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주사당한게 언제라고 했었지?"
"어제 저녁 전 쯤."
"그럼 아니겠네. 만약 저것들 중 하나였으면 벌써 죽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이리나의 목소리에는 못내 아쉽다는 기색이 배어 있었다.
이것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되는군.
해무가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리나 태연한 얼굴로 약이 가득 차 있는 찬장을 열어 안쪽을 뒤졌다.
"일단 지금 증상으로 보면 심각해 보이지는 않아. 감기 같으니까 해열제나 처방해 줄께."
"이걸로 죽지는 않겠지?"
"모르지. 주사된 약물이 뭔지도 모르는 지금 상황에서는 속단할 수 없어."
"안그래도 어떤 약물인지찾으러 갔었어."
다시 셔츠의 단추를 잠그며 해무가 말했다.
"뭐였는데?"
"못 찾았어. 고작 하루 사이에 구룡방 놈들이 전부 청소해 뒀더군."
그 대답에 이리나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이내 얼굴에서 표정을 지워냈다. 그리고 최대한 무감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구룡방 일, 아직도 계속 하고 있나보네."
"그야 당연히 계속 하고 있지. 내가 언제 그만두겠다고 말한 적이라도 있어?"
당연하다는 듯한 그의 대답에, 이리나는 결국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일그러뜨린 채 쏘아붙였다.
"자신이 치료하는 보람이 없는 환자라는 자각은 있어? 대체 내가 왜 죽고싶어 안달이 난 환자를 계속 치료해야 하는지 모르겠는걸."
명백히 가시가 담긴 말에 순간 말문이 막힌 해무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해무는 단 한번도 자신이 죽고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리나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리 폭력이 판치는 구룡성채라도, 그 안에서 살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또 한 차원 다른 얘기였다.
그야말로 타인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 두 가지 종류의 죽음에 가장 가까운 직업이었으니 말이다.
"그게 어때서? 너랑은 상관 없잖아. 내가 일찍 죽는다고 너한테무슨 문제라도 생겨?"
"그냥 찝찝할 뿐이야. 자기가 챙기던 환자가 죽는건 언제나 그렇지."
별 상관 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말투를 보면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말에는 잔뜩 가시가돋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이리나의 얼굴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감정을 눈치챈 해무는 헛웃음을 흘렸다.
"너, 내가 살수 일을 하는게 맘에 안 드는군."
"신경 안 쓴다니까."
"거짓말 하지 마. 설마 나를 걱정하는 거야?"
"그다지."
이리나는 테이블을 노려보며 트레이 위의 알약을 셌다. 소염제와 진통제, 그리고 해열제.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해무는 가슴 속에 울컥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자신의 가치는 오직 살인을 통해서 증명된다. 살수란 그런 법이다. 이 구룡성채에서 자신이 쌓아올린 권위 밑에는, 지금까지 완수했던 업과 그 희생자들의 피가 고여 있었다.
그리고 한낱 여자가 그 법칙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주치의라 하더라도.
"내가 뭘 할지는 니가 아니라 내가 결정해. 서른 살이 되니까 갈곳없는 모성애가 차오르기라도 해? 괜히 어설픈 엄마 흉내 집어 치워."
해무의 날선 표현에 이리나의 뺨이 씰룩였다.
"착각이야. 대체 내가 왜 니 엄마 노릇을 하고싶어 한다고생각해?"
"나야 모르지. 주변에 아무도 없는 나머지 외로워서 내 엄마라도 되고싶은거 아니겠어?"
"말도 안되는 소리. 오히려 네가 엄마를 원하는거 같은데? 잘 생각해 봐. 나를 죽은 네 엄마의 대용품으로 쓰고싶어 하는게 아닌지 말이야."
낡은 진료실에 짝,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리나의 안경이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뺨에는 붉은 손자국이 남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해무에게 거침없이 빈정거리던 그녀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해무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한 음절 한 음절을 내뱉었다.
"내 엄마를 들먹이지 마."
"딱히 네 엄마를 갖고 뭐라 하려던건ㅡ"
"정말로 궁금해? 내가 너를 뭐로 생각하는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해무가 이리나를 향해 한 발짝 움직였다.
"정답은 이거야. 나는 널 내 엄마, 혹은 그 대용품으로 생각하지 않아."
"알겠으니까 더이상 다가오지 마."
이리나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무가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면서. 하지만 진료실은 좁았다. 금세 등이 벽에 닿았다.
"못 믿겠어? 그럼 증거를 보여주지. 내가 널 엄마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말야."
해무의 거친 손길이 그녀의 어깨로 향했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이리나는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들자, 해무의 허리가 자신의 시야 정면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리나가 숨을 헐떡였다. 평정을 가장한 얼굴에 조금씩 두려움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러지 마."
하지만 그녀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해무는 바지 지퍼를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열린 틈 사이로 손을 넣었다.
잠시 후, 이리나의 눈 앞에 해무의 성기가 꺼내어졌다. 터질 듯이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채였다.
"물어 뜯을 거야."
"그러던가."
이리나의 협박은 해무를 막지 못했다. 해무는 손으로 그녀의 턱을 쥐었다.
이리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저항했지만, 스무 살 짜리남자의 완력, 그것도 살수의 완력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해무가 손에 약간의 힘을 넣어 비틀자 그녀의 입이 강제로 벌어졌다.
"잠깐ㅡ"
이리나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그 말은채 끝맺지 못했다. 해무는 그녀의 벌어진 입술 사이로 자신의 성기를 밀어넣었다. 처음은 그 끄트머리만을 입맞추듯이, 뒤이어 턱을 더 벌리며 천천히 삽입했다.
이리나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세워해무의 성기를 찔렀다. 정말로 물어 뜯어버리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위협은 위협으로 그칠 뿐, 이리나는정말로 해무의 성기를 물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한 해무는 한층 더 깊숙히 성기를 밀어넣었다.
이윽고 그 끝이 이리나의 목구멍 가장 안쪽까지 침범하고, 그녀의 입술이 해무의 성기 뿌리까지 삼킬 정도가 되자, 이리나의 입에서 괴로운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듯, 해무는 이리나의 뒷목을 잡고 자신을 향해 끌어당겼다. 스스로의 쾌감을 위해서라기보다 여자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한 목적의 움직임이었다.
이리나는 똑똑한 여자였다. 이리나는 협박이 먹히는 상대와 그렇지 않은 상대를 구분할 줄 알았다.
그리고 협박이 먹히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 뿐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에 호응하듯, 날카로운 이빨대신에 부드러운 혀가 해무의 성기에감겨오기 시작했다.
해무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이리나는 어떨 때는 혀를 단단히 세우고, 어떨 때는 힘을 빼 부드럽게 감싸안으며 성감을 자극했다. 어느새 해무는 허리를 움직이는걸 멈췄고, 이리나는 스스로 입을 움직이며 성실하게 해무의 성기를 빨고 있었다.
그 쾌감을 충분히 즐긴 해무는 천천히 허리를 뒤로 뺐다.
남자를 기쁘게 하는데 열중하던 이리나의 입이 무의식적으로 해무를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이내 해무가 성기를 자신의 입에서 완전히 빼내자, 이리나는 안타까운듯한 얼굴로 멍하니 해무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의 입술은 자신의 끈적한 침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키스해."
해무가명령했다. 이리나는 곧바로 해무의 성기에 한 차례 키스했다. 성기끄트머리의 아래쪽. 남자가 키스받았을 때 가장 기뻐하는 곳에.
"더."
해무의 요구에 이리나의 키스가 끝없이 어어졌다. 두번, 세번, 네번. 마치 새가 모이를 쪼는 듯한 키스는 해무의 성기 끄트머리부터 가장 안쪽 뿌리까지, 모든 곳에 닿고 있었다.
그 후에서야 이리나는 성적표를 받기를 기다리는 소녀처럼 해무를 올려다 보았다.
해무는 들뜬 숨을 고르며 떨리는 손으로 이리나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그리고 다시 입 안으로 성기를 밀어넣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정을 목적으로 하는 거친 움직임에, 이리나의 목구멍에서도 울컥거리는음란한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이리나의 헌신 덕분에 해무의 성기는 한껏 민감해져 있었고, 절정을 느끼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척추를 타고 올라온 쾌감이 머릿속에서 폭죽을 터뜨렸다. 자신도 모르게 발뒤꿈치가 들릴 정도의 강렬한 쾌감.
해무의 성기가 크게 움찔거리며 이리나의 혀 위에 짙은 정액을 토해냈다. 사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 차례, 두 차례, 성기가 움찔거릴 때마다 진득한 정액이 이리나의 입 안에 뿌려졌다.
그리고 허리에 힘을 주어, 요도에 남아있는 마지막 정액까지 짜낸 후에야 해무는 이리나의 입에서 자신의 성기를 꺼냈다. 아직 발기가 풀리지 않은 성기는 정액과 타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해무는 그것을 이리나의 뺨에, 코에 문질렀다. 이리나는 눈을 꾹 감은채 고개를 돌렸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금새 정액과 타액으로 더럽혀졌다.
만족스러운 사정, 그리고 마킹까지 끝내고 나서야 해무는 깊은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이리나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아까 전 까지만 해도 시종일관 차가운 표정이었으나, 지금은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고개를 살짝 돌려 해무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채였다. 얼굴에는 경멸과 분노, 그리고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해무는 이리나의 뺨을 잡아 자신을 향해 돌렸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게 뭔지 알고 있다는 듯, 이리나는 입을 벌려 안쪽을 보여주었다. 진득한 정액이 혀에 뒤엉켜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해무가 작게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자, 그제서야 이리나는 그것을 삼켰다. 너무 진한 탓에 몇 번을 시도한 후에야 간신히 목구멍 안으로 넘길 수있었다.
해무는 그녀의 금빛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진료실에서는 둘의 들뜬 숨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닦아줘."
해무의 말에 이리나는 티슈로 손을 뻗었다.
"그거 말고. 머리카락으로."
지금까지 참아왔던 이리나가 순간 울컥 하고 흐느꼈다.
"싫으면 안 해도 돼."
해무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미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것까지 꼭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리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해무는 성기를 바지 안으로 넣으려 했으나, 이리나는 그의 손을 잡아세웠다. 그리고 잠시 눈물 젖은 시선으로 해무를 쏘아보고는, 곱슬거리는 자신의 금발을 그러모아 해무의 성기에 감쌌다.
그리고 천천히, 꼼꼼하게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해무의성기에 묻어있는 정액을 닦아냈다.
그제서야 해무는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그리고 힘이 빠진 채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몸을 일으킨 이리나는 거즈로 입가에 남아있는 정액을 닦아냈다.
"해열제야."
잠긴 목소리로이리나가 말했다. 그녀가 내미는 약 봉투에는 해열제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해무는 그녀의 손을 말없이 밀어냈다. 그리고 그녀의 품 안에 얼굴을 묻었다.
"하지 마."
자신을 향해 매달리는 해무를 밀어내며 이리나가 말했다.
"어리광 부리지 말라니까."
하지만 해무는 이리나의 허리를 끌어않은 채 한층 더 깊숙히 얼굴을 묻었다.
이리나는 피로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이곳 구룡성채에 남아있는 자들은 모두 하나같이결핍되고 뒤틀린 자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해무도, 그리고 자기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