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변신 (5) (6/82)



〈 6화 〉변신 (5)

해무는 옷걸이에 걸려있던 셔츠를 몸에 걸쳤다. 시간은 아직 이른 저녁이었다.

창 밖으로는 노을이 젖어들고 있었다.잠들어 있던건 고작해야  시간 정도인 모양이었다.

"가?"


진료용으로 사용하는 싸구려 파이프 침대 위에서, 이리나가 얇은 린넨 이불로 나신을 가린 채 물었다.

"할 일이 있어."


"그것도 구룡방 일?"


"응."

이리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무는 셔츠 단추를잠그고, 넥타이를 다시 매고, 십자가 목걸이를 건 다음, 자켓과 총을 챙겼다. 뒤에서  모습을 지켜보던 이리나가 문득 입을 열었다.


"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정말 지긋지긋해."

해무는 대꾸하지 않았다. 딱히 대꾸할 말이 있는것도 아니었다.


떠나려는 해무의 등을 향해 이리나가 다시 말했다.

"내가  아기 낳아줬으면 좋겠어?"


"......."


"그런거면 빨리 얘기해. 시간 얼마 없으니까. 나 서른 살이야."


문 앞에서 잠시 멈춰서있던 해무는 인사 대신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리나의 진료실을 나섰다.






ㅇ   ㅇ 



푸르스름한 불빛. 스테인리스 스틸 부검대. 그리고 시체.

방 안에 놓여있는 세 오브제들은 기묘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분위기 연출을 위해 섬세하게 선정하고 배치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직 검시(檢屍)는 못 했소. 일거리가 많아서...... 어제랑 그저께만 해도 합쳐서 열  넘게 들어왔소."
검시의가 변명하듯 말했다. 해무는 손을 내저으며 신경 끄라는 뜻을 전달했다.

바빴다는 검시의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임시로 시체를 보관하기 위한 서랍식 냉동고는 가득 차 있었다. 꺼내져 있는 한 구 외에도, 캐비넷에는 안에 시체가 들어있음을 알리는 붉은 라이트 표시로 가득했다.

성채 안의 범죄가 빈번하다는 점을 고려해도 어제 하루동안 들어온 사망자 수는 이례적으로 많은 편이리라.


"그래서...... 저것들 전부가 당신들 작품이오?"


해무의 눈치를 살피던 검시의가 물었다. 검시의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동시에 흥미에 대한 욕구가 짙게 배어 있었다. 이  안에서 죽음을 이끌고 다니는 자들에 대한 흥미가.


"죽기 싫으면 쓸데없는 호기심은 접어 둬."


해무의 건조한 대답. 그 말에, 푸르스름한 조명 아래서도 한층 더 창백하게 질린 검시의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뚱뒤뚱 걸어 안치실을 떠났다.

그제서야  안은 조용해졌다. 남은 것은 해무, 그리고 시체들 뿐이었다.

해무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피어오른 연기가 환풍기를 따라 회오리치며 빠져나갔다. 그리고 담배를 반쯤 태울 때까지 눈 앞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해무가 이곳을 찾아온 목적. 바로, 오조의 시체였다.

그의 살아있을 적 얼굴을기억한다. 친한 사이는 아니다. 사석에서 만난 적도 없다. 살수회가 전부 모이는 자리에서 얼굴을 몇번 봤을 뿐이었다.

살아있던 시절 그의 얼굴은 언제나 지쳐 보였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기억하기로는 자신보다 이삼년 정도 먼저 살수 일을 시작했다고 들은 것 같다.

해무는 눈으로 그의 몸에 난 구멍을 셌다.

어깨에 한발. 가슴팍에 두발.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해무가 지금까지 보아온 여느 시체들과 차이가 없는 것이다.


새하얀 담뱃재가 부검대 위로 떨어졌다. 해무는 반쯤 남은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 오조의 시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정장 상의를 들추자 안주머니에 장지갑이 꽂혀 있었다. 들어있는 것은 현금 얼마와 살수면허 정도. 역시 특별한건 없었다.

지폐를 주머니에 쑤셔넣은 해무는 다른 곳도 조사를 계속했다. 반대쪽 주머니에서는 총알이  개 나왔다. 오조가 애용하는 총 ㅡ 아마 발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거기에 맞는 구경일 것이다. 총은 어디에 떨어뜨린모양인지 나오지 않았다.

모든 주머니를 체크한 해무는 자켓 한쪽에서 이상한 촉감을 느꼈다. 안주머니보다  깊은 곳. 보통은 주머니가 없는 곳이었다.


사후 경직으로 완전히 굳어버린 시체에서 자켓을 벗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해무는 어깨의 바느질 부분을 찢어냈다. 그러자 펜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작은 주머니가 보였다.

손을 넣어 안에 들어있는 것을 꺼내려던 해무는  되지 않자 그마저도 찢어냈다. 그러자 짤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해무는 그것을 주워들었다.


'열쇠......?'

황동색의 열쇠에는 아무런 고리도 달려있지 않았고, 손으로 쥐는 부분에는 번호가 쓰여있었다.


[B - 3 - 120]

무슨 뜻일까.

구룡성채내의 일반적인 주소 배정 규칙에 따르면 3은 동, 120은 호수 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3동 1층 120호 방의 열쇠라는 뜻.

하지만 해무의 시선은 나열된 주소 중 가장 첫 글자를 향해 있었다.

알파벳 B.

주소라고 생각하기에는 이질적인 표시.


과연 무슨 뜻일까. 무언가의 약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열쇠라는 특성상, 그리고  알파벳과 숫자의 나열이어떤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결론은 하나였다.

"B지구.....?"


머릿속에서 떠오른 하나의 가능성에 해무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B지구.

여의도라는 작은  위에 건설된 구룡성채.  대부분은 동남쪽에 몰려 있었다. 섬을 반으로 가르는 여의대로를 기준으로 동남쪽 방향. 그곳을 주민들은 A지구라 불렀다.


그리고 B지구는 여의대로의 북서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B지구라면 명백히 치외법권이다. 피와 폭력이 난무하는 구룡방 체제 하의 여의도에서 치외법권이 있다는 것은 우습기 짝이 없는 소리였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했다. 구룡방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구룡성채의 주민들은 B지구를 출입할 수 없었다. 물론 구룡방의 살수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 살수들은 구룡성채가 있는 A지구의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쁘다.

그런데 어째서 오조는 B지구의 열쇠를 갖고 있는 걸까.

해무는 한참동안을 푸른 조명 아래서 고민했다. 그리고 전화를 꺼내들었다.

"형."

[응, 해무.]


잠이 덜  목소리의 단하가 답했다.

"나 일좀 도와줘야겠어."







ㅇ   ㅇ    ㅇ





"그래서, 구룡방에서 너보고 오조의 업을 승계하라고 했단 말야?"


"개같은 짓거리지."

그렇게 말하며 해무는 이리나가 처방해준 해열제를 커피와 함께 삼켰다.

시체 안치소에서 오조의 시체를 조사한 다음날 아침.
시장 근처의 식당 '치앙마이' 에서 해무와 단하는 만났다. 단하는 족발덮밥을 주문해 먹었다. 하지만 어젯밤을 고민속에 보낸 해무는 식욕이 없었고, 대신 진한 커피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하지만 이상한걸? 구룡방이 개잡놈들 집합소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억지를 부리지는 않을텐데."

부스러진 돼지고기를 밥알과 함께 후루룩 삼킨 단하가 물었다.


여의도에서 구룡방은 사실상의 정부 취급을 받았지만, 당연히 그 근본은 폭력 조직이다. 차이니즈 마피아다. 때문에 개잡놈들 집합소라는 단하의 말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구룡방이 단순한 폭력 조직이었다면 어설픈정부 비슷한 취급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구룡방이 구룡성채를 통치할 수 있는 것은, 여의도를 기점으로 남과북이 한국과 중국으로 대치하고 있는 지형, 또한 그로인해 치안 및 정부 부재상태인 여의도의 상황 뿐만 아니라, 구룡방이 정부의 역할을  수 있는 역량도 어느정도 갖췄기 때문이었다.

단하의 말대로 구룡방은 개잡놈들의 집합소이지만, 동시에 사람들을 통제하고 도시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머리는 갖추었다는 얘기였다.


"그래. 구룡방 놈들이 이 정도의 억지를 부리는게 흔하지는 않지. 하지만 사실이야. 그 관리놈이 내게 직접 그렇게 전하더군."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럴수도 있고, 아니면  빌어먹을 담당 관리놈이 미쳐가지고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 걸수도 있고."

하지만 담당 관리의 화풀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무리한 지시, 부당한 지시라도 살수인 해무가 독단적으로 거부할 수는 없었다. 살수회에 정식으로 재검토를 요청한다면 모를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할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지시를 따르는 것 뿐이었다.


"위험한 짓이야."


식사중이던 단하가 테이블에 젓가락을  하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해무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다른 살수가 수행하던 정체 모를 임무를 넘겨받는다는 것은 위험하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오조가 갖고있던 열쇠 하나만 보고 B지구에 가겠다는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는 알고 있어?"


"알고 있지."

해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지만 우리가 말도 안되는 짓을 해온게 한두번이 아니잖아?"


"그 '우리' 에서 나는 제발 좀 빼줘. 나는 평온하게 살고싶다고. 애초에 넌 오조가어떤 임무를 받았던건지 알고 있기나 해?"


"대충은."

그렇게 말하며 해무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담당 관리에게 받은 명령서였다.

"오조는 반란세력으로 추정되는 밀수꾼들을 쫒고 있었어."

주류 세력에 반(反)하는 자들은 어느 곳에나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구룡방이라는 범죄조직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이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범죄자와 범죄자 사이의 세력다툼이라는 얘기일 뿐이다. 다만차이점이 있다면, 구룡방은 해무와 단하에게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점이었고.

"명령서가 처음으로 도착한지 3주째였으니 오조라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었을거야. 그리고 그 단계에서 죽어버린 거고."

"그 3주 동안 오조가 확보한 정보는?"

"없어."


"어째서지? 어차피 일이 끝나면 최종 보고가 올라가야  텐데. 서류건 증거물이건 구룡방에서 받아서 정리한게 있을거야."

"확인했어. 없대."


잘라 말하면서도 해무 또한 이 부분이 의문스럽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오조는 바보가 아니다. 무능력하지도 않다. 3주동안 사건에매달려 있으면서 모은 정보가 하나도 없을리가 없다. 분명 무언가라도 찾아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다.

오조가 자신이 모은 정보를 일부러 파기했거나, 혹은 살수회가 받은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락시켰거나.


어느 쪽이던 해무에게는 엿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자신이 잘만 처리하면 문제 없을 것이다. 해무가 구룡방의 뒤를 닦아주기 위해 뛰어다닌게 하루이틀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보다는 다른 얘깃거리가 있었다. 말을꺼낼지 말지 잠시 고민하던 해무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연을 만났어."


"어땠어."

"별거 없었어. 그냥 평소대로."

"평소대로 서로 못죽여서 안달이 났다ㅡ 그 뜻이군?"

"언제나 그렇지."

해무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단하도 이미 해무와 해연의 복잡한 가정사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해무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이야기를 화제에 올리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자세한 내용을 캐묻거나 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캐물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래서,  녀석은 그렇다 치고. 너도 여전히 그 놈을 죽이고 싶어?"

단하의 질문에 해무는 짧은 고민 후에 답했다.


"그야 죽일  있으면 좋지."

"왜?"


"왜냐고? 이유야 당연하잖아. 이 도시에서 나를 열받게 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줄어드는 거니까. 안 죽일 이유가 뭐야?"

"뭐, 그 쪽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겠지. 지금까지는 둘 다 실패했지만. 하지만ㅡ"

그렇게 운을 뗀 단하는 잠시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해무가 얼굴을 찌푸렸다.


"뭐? 말을 하려면 끝까지 해."


"됐어."

"되긴 뭐가 돼? 무슨 얘긴데?"

해무의 채근에 단하는 결국 입을 열었다.

"별 얘기 아니야. 그저, 녀석이 구룡방 소속의 상급 관리라는걸 잊지 말라고."


"그래서? 지금 나보고 놈한테 굽신거리라 이 얘기야?"


"그런 뜻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면 뭔데. 그 자식한테 숙이고 들어가라는 얘기 말고 뭔 뜻이냐고."


해무가 치켜뜬 눈을   쏘아붙였다. 단하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얘기 안하려고 했던거야."

"그런데 이미 해버렸지. 그러니까 마저 해."


"알았어. 그러니까ㅡ 지금 당장 니가 그 녀석한테 숙일 필요는 없지. 연은 공안청 상급 관리고, 너랑 나는 살수회 소속의 갑종 살수니까. 위아래가 나뉘는 관계는 아니야."

"그런데?"


"하지만 만약 연이 더 높이 올라간다면, 그러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

단하가 기억하기로 해무와 해연은 같은 해에 태어났다. 즉, 해무와 같은 스무살이었다. 그리고 그 나이를 감안했을때, 공안청 상급 관리는 파격적일 정도로 높은 직위였다.


만약 해연이 더 올라간다면, 남은 것은 부청장이나 청장 정도 뿐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가능성 없는 일이 아니었다.

"집어쳐."

해무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 갖고, 맘에 들지도 않는 놈한테 굽신거릴 생각 따위는 없어."


"그렇겠지. 너는 맘에 안드는 놈은 커녕 맘에 드는 사람한테도 안 굽신거리잖아."

"내가 왜 안그래?"

"그런적이 있단 말야?"

"당연히 있지. 내가 형을 얼마나 봐주고 있는지 몰라서 물어? 그게 다 형이 그나마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거야."


"그래. 고맙다 정말."

그리고 마저 남은 족발 덮밥을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비운 단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해무도그를 따라 일어나며 경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지막 식사는 끝냈어?"

"재수없는 소리좀 하지마. 이게 마지막 식사라고 확정된 것도 아닌데."

"그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식사는 끝냈어?"

단하가 넌더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켓을 걸친 해무가 씩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여의대로를 건너러 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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