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겜블의 규칙 (10)
화장실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열자 물이 세차게 흘러나왔다. 해무는 양 손으로 물을 떠 얼굴을 닦았다.
20분에 걸친 게임이 끝나고, 딜러는 인터미션을 선언했다. 그리고 세브린은 블랙잭의 마지막 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큰 승리였다. 고작 한 번으로 백억 원에 달하는 돈을 따냈으니.
해무는 페이퍼 타월을 뽑아 물기를 닦았다. 고개를 들자 피로에 젖은 자신의 얼굴이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새하얀 은발은 마구헝클어져 있는 채였다.
해무는 그 모습을 응시했다. 문 밖에서는 시끌시끌한 카지노의 소리 ㅡ 슬롯머신이 돌아가며 칩을 쏟아내는 소리와, 구슬이 덜그럭거리며 룰렛 위를 구르는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과 비명이 뒤섞인 채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뒤쪽에서 덜컹 하고 문이 열렸다.
서양식 드레스 차림의 여자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숨죽인 목소리로 재잘거리는 소리가 적막한 공간에 메아리가 되어 퍼졌다.
해무는 곁눈질로 그녀들의 모습을 슬쩍 확인했다. 옷차림은 화려하게 꾸몄지만 귀부인은 아니다. 콜걸이 틀림 없었다. 싸구려 향수 냄새와,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만드는 새된 목소리와, 기품없이 손을 내젓고 발을 구르는 몸짓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해무의 생각을 확인해 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여자들은 자신을 부른 남자가 룰렛에서 두 배를 벌었다느니, 어쩌면 오늘 밤 돈을 더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보며 품 안에서 꺼낸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두드렸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해무는 멈춰선 채 거울 안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젖어있는 머리카락 끝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하나 둘씩 방울져 떨어졌다. 연신 수다를 떨며 화장을 고치던 두 콜걸은 그런 해무를 힐끗 곁눈질하고는 다시 나갔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왜지? 감기라도 걸렸나.
사실, 세브린에게 판돈을 거는 것은 큰 도박이었다. 처음으로 그녀를 섭외했을 때 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큰 승리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말하자면, 구룡성채에 있어서 반동분자와 같은 존재였으니.
하지만 그녀는 결국 증명해 보인 것이다. 드래곤 레이디라는 이름이 허명(虛名)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문이 열리며 와글거리는 카지노의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가, 잠시 후 끼이익 하고 문이 닫히며 소리가 끊겼다.
어쨌든 중요한건 이거다. 그래, 세브린의 승리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임무를 완전히 달성하려면 아직 멀었다. 남한 놈들의 수중에는 아직 오백억에 달하는 돈이 남아있었다. 그 잔돈을 마저 전부 뜯어내야 임무를 백 퍼센트 완수했다고 할 수 있다.
해무는 다시 거울을 바라보았다. 퀭한 눈. 지친 얼굴. 그런 자신의 모습 뒤, 화장실 문이 있는 통로 쪽에 어느새 수호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수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더 들어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나가지도 않았다. 그저 멈춰서서, 날카로운 눈으로 해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긴 여자 화장실인데."
감정을 억누른 모노톤의 목소리로 해무가 말했다.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입술을 여는 것 조차도 힘들 정도로.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해무는 신경질적으로 페이퍼타월을 뽑아 뺨과 이마가장자리를 마저 닦기 시작했다.
"새로 데려온 친구, 실력이 꽤나 뛰어나더군."
수호가 말했다. 해무의 말과는 전혀 동떨어진 대답.
그의 태도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수호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해무를 향해 말을 걸고 아는 척을 했다. 임무와 관계 없이 개인적인 흥미를 표현할 정도로.
하지만 지금의 수호에게 그런 모습은 없었다. 귀찮게 찝적거리는 모습도 아니었고, 실없는 농담을 지껄이는 가벼운 모습도 아니었다.
무감정한 눈빛. 동시에 상대방을 꿰뚤어보기라도 하려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
그 눈빛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해무 자신도 같은 눈을 갖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살수의 눈빛. 상대방의 숨통을 끊기 위해 사냥감과의 거리를 탐색하는 자들이 갖고 있는 눈빛이었다.
해무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페이퍼 타월을 몇장 더 뽑았다. 이미 얼굴과 머리카락의 물기는 전부 닦아낸 후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에 관계없이 계속해서 뺨을 닦아내면서, 해무는 곁눈질로 거울 안에 비치는 수호의 모습을 주시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렇게 사적인 대화를 나눌 사이던가?"
"내 다음 질문에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좋겠어."
또다시 이어지지 않는 일방적인 대화.
"저 여자를 데려온 이유가 뭐지? 단순히 어제 당한 빚을 갚아주고 싶어서인가?"
어제 당한 빚. 당연히 겜블을 뜻하는 것이리라.
어제 해무는 직접 블랙잭에 참가했다. 그 자리에서 재이와 부딛혔고, 단 한 번의 게임으로 삼십억을 잃었다. 그 복수를 위해 세브린을 데려온 것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갑작스레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해무는 페이퍼 타월을 양 손으로 구겨 쓰레기통을 향해 내던졌다. 그리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누굴 데려오든 네가 신경 쓸 바 아니지. 어제까지는 이겨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더니, 막상 본인들이 돈을 뜯기니까 기분이 별로인가봐?"
"이건 단순히 돈을 따서 기분이 좋고, 잃어서 나쁜 것과는 차원이 달라. 너는 모르겠지만 우린 장난으로 게임하는게 아니야."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수호가 단어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넣어 말했다. 입을 열 때마다 흘러나오는 열기 띈 숨이 해무의 이마에 닿을 정도였다.
"방해했다가는 네 목숨이 위험해지는 수가 있어."
"지금 나를 협박하는건가?"
"경고다."
차가운 얼굴로 내뱉는, 차가운 한 마디. 하지만 이내 수호도 지친듯 얼굴에 피로한 감정을 내보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정정하지. 부탁이다."
"대체 왜?"
해무가 물었다.
"여긴 그저 카지노일 뿐이야. 돈에 미쳐 목숨을 걸고 겜블을 하는 놈들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여흥을 위한 곳이지. 그런데 왜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졌다면 패배를 받아들여. 관계없는 사람들을 협박하는 짓거리는 집어 치우고."
"...... 이건 단순한 패배가 아니야."
"그 뜻은?"
"이건 그저ㅡ"
잠시 입을 떼었던 수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물론 해무는 그 말 뒤에 숨겨진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건 그저 겜블에서 졌다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은 작전을 수행 중이며, 겜블에서 따는 돈은 전부 남한의 손에 넘어갈 돈이다. 이들이 겜블에 진다는건 작전이 실패하는 것을 뜻하고, 작전의 실패는 곧 남한 정부와 구룡방 사이의 긴장과 마찰이 지금과는 또다른 형태로 일어나게 될 거라는 사실을 포함했다.
하지만 해무가 놈들의 사정을 이해해줄 필요 따위는 없었다. 대신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대로 설명도 못하는 놈의 요청을 따르고 싶지는 않군. 할 얘기 끝났으면 나가. 다시 말하지만, 여자 화장실이다."
"대답해. 다시 우리와 겜블을 하지 않겠다고. 이미 백억을 따갔지. 그정도면 충분하잖나."
수호가 말했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실려있었다.
내 말을 따라라. 괜히 이유없이 거절하지 말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여라. 그렇지 않다면ㅡ 자신은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있다는 사실이, 떨리는 수호의 뺨을 통해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두고 보면 알겠지."
"그 대답으로는 부족해."
"비켜."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밀치고 화장실을 나가려는 해무의 어깨를 수호가 잡아챘다.
그리고 이어진 상황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순식간에 돌변한 해무가 반사적으로 팔을 휘둘러 수호의 가슴팍에 주먹을 날렸다. 수호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하지만 늦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반사적으로 움직인 팔이 해무의 주먹을 쳐냈다. 하지만 어깨로 자신의 몸을 들이받는 것 까지는 막지 못했다.
해무의 작은 몸. 그 몸에서 어떻게 그정도의 충격을 일으키는지 알지 못했다. 어느새둘은 뒤엉킨 채로, 쾅 하고 한쪽 화장실 칸막이안에 쑤셔박혔다.
고작 일 미터가 조금 넘는 조그만 칸막이 안. 둘 사이의 거리는 일 미터 조차도 채 되지 못했다. 훈련된 살수라면 순식간에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거리.
그 좁은 공간에서 둘의 사투는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거의 밀착에 가까운 상태로 교차하는 주먹과 무릎. 해무의 손끝이 수호의 목줄기를 노리고, 그 손을 막아낸 수호의 주먹이 해무의 옆구리를 노렸지만, 그걸 피한 해무의 발차기가 수호의 고간을 향했다.
하지만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빠르게 오가는 공방 중에도 상대방을 쓰러뜨릴만한 타격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최상급의 전투력을 지닌 두 존재가 이 거리에서 아직까지도 서로를 쓰러뜨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균형은 오래가지 못했다. 실력의 차이는 아니었다. 순전히 운이었다. 해무가 수호의 공격을 예측하고 고개를 젖힌 순간, 오히려 반응이 살짝 느렸던 수호가 한 박자 느리게 해무의 머리를 잡아챘다.
상상 이상의 완력. 그리고 그 팔은그대로 해무의 머리를 양변기 위로 내려찍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눈 앞이 점멸했다. 순간 온몸에 힘이 빠졌다.
해무는 비틀거리며 벽을 등지고 쓰러졌다.
양변기는 덜그럭 하고 반으로 뚝 갈라진 채였다. 탱크가 깨지며 흘러나온 물이 마치 바닥을 기어오는 어둠처럼 천천히 화장실 타일 위로 퍼져나갔다.
수호의 우악스런 손이 해무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목을 쥔 양팔을 들어 벽을 향해 밀어붙였다. 손이 점점 조여들며 해무의 기도를 막았다.
마치 교수대에 매달린소녀처럼 해무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발끝만이 간신히 바닥에 닿은 채로 흔들거렸고, 이따금 컥 하는 신음 소리가 좁은 기도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하지만 의식이 점점 멀어져가고 얼굴은 점점 창백하게 질려가는 와중에도 해무의 눈은 명확하게 상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수호를 날카롭게 파고드는건 그 시선 뿐만이 아니었다. 깨진 변기에서 떨어져나온세라믹 파편. 어느새 그 한 조각이 해무의 손에 들려있었고,마치 쐐기처럼 날카로운 끝히 수호의 팔뚝을 깊숙히 찔러들어오고 있었다.
수호는 그 파편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흘러나온 피가 양복 자켓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상완의 근육은 얼마든지 찢어져도 상관없다. 하지만 상완동맥이나 근피신경은 곤란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산소를 뺏으면 실신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오지 않았다.
움찔 하며 수호의 팔이 수축했다. 신경자극반응. 그리고 찰나의 순간만에 수호는 해무의 목을 쥔 손을 풀고 대신에 팔뚝에 박힌 쐐기를 뽑아냈다.
그리고 곧바로 싸움을 이어가려는 찰나,
덜컹.
문이 열렸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여자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오늘도 장사를 말아먹었다, 남자가 돈을 다 잃어서 화대의 잔금도 못 받겠다느니 하는 소리를 떠들어댔다.
수호와 해무는 숨을 죽인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전투 자세를 유지한 채였다.
여자들이 떠드는 소리, 하이힐이 타일 바닥에 긁히는 소리, 거세게 세면대를 때리는 물 소리가 이어지는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한참 동안을 기다린 후에야 물소리가 잦아들고, 하이힐 소리가 멀어지고, 마지막으로 다시 문이 열렸다 닫히며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다시 화장실 안에는 수호와 해무 둘만이 남았다. 하지만 싸움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둘의 억누른 헐떡임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너...... 대체 뭐냐."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것은 수호였다.
수호는 느낄 수 있었다.
상대방이 단순히 겜블이나 즐기는 아가씨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에게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겜블을 통해 자신들을 제지하겠다는 목적이.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그런 목적을 갖고 자신들의 앞을 막아설 수 있는 존재는 하나 뿐이었다.
구룡방의 살수.
틀림없었다. 구룡방의 살수가 아닌 이상, 이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이는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확신할 정도로, 수호가 마주한 해무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상대방의 실력에 놀란 것은 수호 뿐만이 아니었다.
수호와 달리, 해무는 상대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 그들이 남한 정보부의 요원이며, 수호가 이 멤버의 최고 전력이라는건 프로필을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접 공격을 받아낸 감상은 그 이상이었다.
이 자식, 최소 갑종 급이다.
살수회 소속 중 최고 등급인 갑종 살수. 그 이름을 입에 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수호의 실력은 강했다. 여자의 몸인 탓에 약간의 열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자신이 남자의 몸을 갖고 있었을 때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정체가 뭐냐고 물었다."
수호가 재차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에 해무는 바닥에 피 섞인 가래침을 뱉고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으면 네놈부터 진짜 자기 소개를 하는게 먼저 아닌가? 어제 뭐랬지? 이름이 주환이라고? 거짓말을 태연하게도 지껄이더군."
해무의 빈정거림에 수호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동안의 침묵 끝에 대답했다.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특무국 책임요원 수호."
중앙정보부 특무국.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해무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중국과의 전쟁에서 패퇴하고 한강 이남으로 밀려난 붕괴 직전의 남한을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쥐고 흔드는, 정보기관이라기 보다는 권력집단에 가까운 조직. 해무가 속해있는 곳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네 차례야."
".......구룡방 살수회 갑종살수 해무."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의 요원. 그리고 구룡방 살수회의 갑종살수.
각자의 신분을 밝힌 둘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살수와 요원,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오갔다.
죽일 수 있을까.
둘 모두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각자의 실력은 상대방을 절명(絶命)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니.
그리고 둘의 결론은 같았다.
포기.
카지노 한가운데라는 상황. 그리고 한창 사람으로 혼잡한 시간대. 그곳에서 상대를 죽일 수는 있을지언정, 이 정도로 강한 상대를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를 죽이고 소란을 일으켜봤자 각자에게 득될 것은 없었다.
수호의 목표는 카지노에서 천억원을 따서 남한으로 반출하는 것. 해무의 목표는 현재 수호가 확보한 오백억을 다시 되찾는 것.
그런 둘에게 있어서 가드들에게 발각되어 쫒기는 것은 곧 임무의 실패를 의미했으니까.
"갑종살수라...... 타이틀이 화려하시군?"
"그쪽이야말로."
한결 긴장이 느슨해진 상황에서 둘 사이에 대화가 오갔다.
"그래, 그런거였군. 하긴, 그냥 보통의 겜블러일리가 없지. 네가 우리 앞에 나타난건 우연이 아니었어."
"당연한 소리. 설마 네놈들의 멍청한 계획을 구룡방이 모른척 넘어갈 줄 알았나? 자칭 요원이라는 놈들이 요행을 바랄 줄은 몰랐군."
"과장이 심하네. 이제서야 따라붙은걸 보니 우리들이 잠입한걸 제대로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거 같은데?
"상관 없어. 결국 이렇게 찾아내서 네놈들의 콧대를 뭉개놨으니까 말이지. 안그래?"
그렇게 서로를 향해 날선 말을 주고받던 둘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지금 여기서 입으로 떠들어봤자 아무런 의미는 없다. 역시 둘의 싸움은 겜블로 결정이 날 수밖에는 없었다. 각자 자신들의 대리인인 세브린과 재이를 통해서.
"승부는 나중으로 미루지. 한낱 계집애한테 얻어터졌다는 놀림을 받을 생각은 없거든."
"이쪽이야말로. 너처럼 한심한 놈에게 당했다는 소문이 퍼졌다간 곧바로 갑종에서 강등이야."
그렇게 서로를 향해 빈정거리며 둘은 좁은 칸막이에서 빠져나왔다.
여자화장실을 나서자, 한 쌍의 남녀가 땀에 젖은 채 흐트러진 복장으로 화장실을 나오는 모습을 본 늙은 마담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놀란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찼다.
그리고 각자의 대리인을 향해 뚜벅뚜벅향하는 해무와 수호의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는 생각은 정확히 같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 놈들을 쓰러뜨린다.
겜블로도, 그리고 완력으로도.
완전무결한 승리의 달성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