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겜블의 규칙 (26)
그날 이후로 해무는 성채 이곳저곳을 설렁설렁 돌아다녔다. 깨끗한 새 수트 아래의 몸뚱아리에는 붕대를 둘둘 감은 채였다. 근육이 찢어지고 관절은 삐그덕거렸지만 아예 거동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목적이 없는 듯한 해무의 발걸음은 어느 한 곳만을 향하지 않았다. 상점가의 뒷골목을, 폐기물 처리장을, 버려진 공터를 의미없이 돌아다닐 뿐.
하지만 이것은 그저시간을 낭비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성채 안을 거닐며 해무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몸이 여자로 바뀌고 나서 처음으로 완수한 업을 반추하고, 이곳저곳 망가져버린 몸을 점검하고 다시 깨우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서 며칠간을 방황했다.
그리고 어느 날, 발걸음이 가는 대로 우연히 들른 상점가 뒷골목에서 문득 멈춰섰다.
느지막한 오후의 햇살이 빌딩 사이로 내리쬐며 만드는 그림자 아래,
요원이 서 있었다.
구룡성채 안에서도 하늘은 맑았다. 햇빛이 내리쬐는 오후, 한 블록 너머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달음박질을 하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따금 비둘기들이 푸드덕거리며 홰를 쳤다.
살수와 요원이 서 있는 골목만이 마치 일상으로부터 분리된 듯, 살아있는 것들의 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해무는 요원을 응시했다.
요원은 마치 버려진 자루, 혹은 죽은 짐승의 거죽같은 모습이었다. 셔츠와 수트는 얼룩져 있었고, 왼손을 대충 감은 붕대는 피로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임무를 실패한 요원의 모습이었다.
"나를 찾고 있었나."
요원이 쉰 목소리로 물었다.
해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묵으로도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분명 도망쳤다고 생각할줄 알았는데."
"그 사람. 네 파트너였지."
해무의 말에 수호의 얼굴이 굳었다.
"너 같은 놈이 그냥 돌아가지는 않겠지. 파트너가 눈 앞에서 죽는걸 봤으니."
수호가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마치 감정의 일부분이 절제된 듯한 웃음이었다. 간신히 이어지던 웃음소리가 쿨럭이는 기침소리에 묻혀 잦아들었다.수호는 핏방울이 뒤섞인 기침을 손등으로 받아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아직까지 성채에 남아있는거냐."
수호를 바라보던 해무가 물었다.
대체 무얼 위해 남아있는거지? 복수를 원하나? 네 동료를 죽인 살수는 이미 죽었다. 너는 복수의 대상조차 잃었다. 그런데도 왜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거냐.
해무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수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대답하지 못했다.
"네놈 스스로도 모를테니 내가 답해주지."
그런 수호를 향해 해무가 말했다.
"너는 망령이다."
망령. 죽은 자의 영혼을 이르는 말. 그렇게 자신을 칭하는 해무를 향해 요원의 시선이 향했다.
"성채에서 무언가를 잃은 사람은 떠나지 못하고 이 안을 떠돌게 되지.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리고 뭔가에 홀린듯 길거리를 방황하다, 결국 이 도시에 삼켜지듯 소리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구룡성채가 출구없는 미로라고 불리는 것은 단순히 지형적, 정치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채는 범죄자들, 정신이상자들, 피 혹은 탐욕에 취한 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도시가 이들을 마치 들숨처럼 빨아들이고는 - 혹은, 만들어내고는 - 이곳을 다시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탓이었다.
"너 또한 그렇다. 성채를 떠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곳에서 목표가 있는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네가 망령인 것이다."
"......나는 살아있어."
"지금의 네놈이 죽은 것과 뭐가 다르지?"
이번에도 역시, 요원은 살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만약 정녕 네가 살아있다면 성채를 떠나라. 아님 복수라도 할 건가? 누굴 향해? 페이 롱은 죽었어."
"그렇다면 살수회가ㅡ"
"헛소리."
수호의 항변이 해무의 대답에 단칼처럼 가로막혔다.
"페이 롱이 죽었으니 살수회에 책임을 묻겠다고? 페이 롱은 미친놈이었어. 사람들을 도살하며 자신의 욕정을 채운 것은 그의 독단이지, 살수회의 명령 때문이 아니다. 네놈도 그걸 짐작하고 있을텐데?"
죽음은 결국 죽음이다. 죽음에는 고귀함도 없고 천함도 없다. 그 사실을 해무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죽음의 방식에 따른 차이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재이의 죽음은 피와 폭력이 일상적인 구룡성채 안에서도 명백히 처절하고 잔혹한 종류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살수회의 의지는 아니었다. 설령 살수회가 페이 롱에게 남한의 요원을 제거하란 지시를 내렸다 하더라도, 그렇게 페이 롱 개인의 식욕과 성욕을 채우기 위한 형태의죽음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수호도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재이의 죽음은 살수회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대상이 불분명한 분노만을 품은 자신 혼자서 살수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차라리 네놈이 혼자서 도망치려 했다면 그렇게 뒀겠지. 하지만 이렇게 망령이 된 이상, 내가 직접 처분해 주겠다."
망령은 오직 성불을 통해서만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떠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제령 의식을 만들었다.
승려는 염불을 왼다.
신부는 엑소시즘을 행한다.
그리고 살수는 칼과 총으로 제령을 행한다.
이번 의식의 주관자인 해무는 망령인 수호를 응시하며 주먹을 쥐었다.
"당신의 이야기는 재미있군."
해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수호가 말했다.
"망령이 되어 성채를 떠돈다ㅡ 하지만 그게오직 나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 당신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수호가 얼굴에 히죽 하고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나야말로 당신에게 묻고싶군. 당신은 어째서 성채에 있는 거지? 이 빌어먹을 섬에 당신이 원하는게 있나? 아니면 빠져나갈 능력이 부족한가? 만약 둘 다 아니라면ㅡ 당신이 아직까지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는 대체 뭐지?"
"나는 태생부터 이곳에 속한 몸. 네놈과는 다르다."
"하지만 원한다면 떠날 수는 있겠지."
설령 성채를 고향으로 두고 있더라도, 고향은 얼마든지 떠날 수 있다. 태생부터 이곳에 속했기에 떠나지 않는다는 해무의 말은 변명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은 망령이 된다고? 나는그런거 몰라. 어쩌면 당신 말이 맞을 수도. 하지만 만약, 무언가를 잃은만큼 또다른 무언가를 얻는다면...... 이곳을 나갈 수 있을지 않을까."
해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또다른 무언가를 얻는다ㅡ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질문을 가장한 그 요구에 응하고 싶지는 않았다. 해무의 대답을 기다리던 수호는, 그가 대답할 기색이 없자 다시 한번 물었다.
"아직도 내 제안은 유효하다. 말했었지. 함께 월남하자고."
월남. 함께 남한으로 도망치자는 제안. 분명히 그는 저번에도 말했었다. 함께 도망치자고. 하지만 해무는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제안이라며 일축했고, 그럼에도 수호는 여전히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제안하지. 나는 당신과 이곳을 떠나고 싶다. 당신은 결정만 내리면 돼. 그러면 나머지는 전부 내가 도와주겠어."
해무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월남이라.
정말 그럴까? 다 때려치고?
계집의 몸으로 행한 첫 업이다. 그런데도 벌써 이 짓거리에 넌더리가 났다. 정신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호의 제안은 너무나 매력적으로 들려왔다.
그래, 알고 있었다. 저 남자가 자신을 원한다는 사실을.
물론 자신은 남성이다. 육체는 여성일지언정, 그 안에 담긴 정신은 온전히 남성인 해무 그대로였다. 때문에 남자에게 안기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함께 남한으로 넘어가면 새로운 삶을 전부 책임져 주겠다는 저 요원의 진중한 제안을 떠올리자, 이곳에서 살수로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 보다는 훨씬 몇 배는 더 가치있는 삶처럼 생각됐다.
이 또한, 정신이 여성화되는 과정일까.
이리나는말했다. 자신의 성변화가 끝난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점점 진행될 거라고. 호르몬의 작용은 의지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기간 내에 치료제를 찾지 못하면, 자신은 영락없는 여자가 되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만약 어차피 여자가 될 것이라면ㅡ 그렇다면 저 요원과 함께 남쪽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남한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에 대해 모를 것이다. 자신이 원래 남자였다는 사실도,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업에 대해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도 몰랐다.
생각에 빠져있던 해무는 감겨있던 눈을 떴다.
작은 한숨이 허공을 맴돌았다.
그리고 해무는 수호의 제안에 답했다.
"구룡방 살수회, 갑종살수 해무."
긴장감을 띈 채 해무의 답을 기다리던 수호는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해무의 답변에 화답했다.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특무국 책임요원 수호."
지치고 상처입은 살수와 요원이, 한 줌의 흐트러짐 없이 서로를 향해 대치했다.
ㅇ ㅇ ㅇ
벽에 등을 기댄 수호가 천천히 주저앉았다. 뒤의 벽을 따라 붉은 자국이 남았다.
"당신, 역시 강해......."
수호가 가는 숨을 이어가며 말했다.
해무는 소매를 훔쳐 입가의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 말없이 요원을 내려다 보았다.
요원의 사지는 긴장감을 잃은 채 이완되어 있었고, 눈은 초점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해무가 수없이 지켜봐왔던, 인간이 죽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해무는 요원의 임종을 지키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목표물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는 살수로서의 의무 때문이었다ㅡ 혹은, 그런 의무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그 돈은, 사라진 자금을 메꾸기 위한 돈이었어."
천천히 숨을 고르던 수호가 문득 생각난듯 입을 열었다.
"빈 껍데기 같은 작전이었지만, 거기서 얻을 돈은 쓸데가 있었지. 감사로 드러난 횡령을 메꾸기 위해서 말이야."
남한의 정보기관. 그들이 부패하여 정치조직으로 전락했다는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뒷처리를 위해 요원들을 활용한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횡령에 대해 알고 있는 나는, 어차피 남한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죽었겠지."
흔한 이야기다. 조직의 치부를 메꾸기 위해 일회용품으로 쓰이고 버려지는 요원의 이야기는.
하지만 조직의 부정이나 정치적 이권같은 피곤한 이야기들은 그에게 더이상 필요 없을 것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휴식 뿐이었으니.
머릿속에 들어있는 기밀 정보들. 훈련받은 기술들.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프로토콜들. 그런 것들이 점점 먼지가 되어 사라져가는 것을 수호는 느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원하는 것은 남아있었다. 그 내용이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워서, 수호는 비실비실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야...... 나 키스 한번만 해주면 안되냐......"
말도 안되는 소리다. 남자와 키스 따위 할 생각은 없다.
해무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뒷골목을 떠나려던 그의 발걸음이 다시 멈췄다.
짧은 망설임. 그 끝에 해무는 다시 수호의 앞에 섰다.
수호의 눈은 조금 전 보다도 한층 더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해무는 그 앞에 무릎을 굽혔다. 죽어가는 요원의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그리고, 해무는 짧게 입술을 겹쳤다.
수호의 손은 해무를 떠나게 두지 않았다. 요원의 손이 해무의 어깨를 끌어안았고, 입 속에서 혀가 얽혀들었다. 해무의 몸이 움찔하며 물러서려 했지만, 수호의 손은 한층 더 강하게 해무의 몸을 안았다.
그리고 입을 떼자, 살수와 요원의 입술 사이로 피와 침이 섞인 액체가 실처럼 길게 늘어졌다.
수호가 히죽 하고 웃었다.
"좋네."
그리고 눈에서 빛이 천천히 꺼져들어갔다. 이윽고 요원의 목이 힘없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 모습을 마지막까지 확인한 해무는 그제서야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났다. 입 안에서는 피 맛이 났다.
한 명의 요원이 죽고, 한 명의 살수가 살아남았다.
그렇게 겨우,
하나의 업이 완전히 끝을 맞이했다.
겜블의 규칙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