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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화 〉창관의 성모 (1) (42/82)



〈 42화 〉창관의 성모 (1)

늦은 밤. 여의도 구룡성채의 불빛은 희미했다. 환락가의 깜빡이는 네온사인도,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의 불빛도, 짙은 어둠을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빌딩이 가득가득 들어찬 거주구역을 지나 여의도 북쪽에 접한 한강 둔치로 향하면 빈 땅이 펼쳐져 있었다.


습지인 탓에 높은건물을 올릴 수 없는 구역. 늦은 밤의 차가운 강바람이 불어오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적막한 곳.

 한가운데, 작은 창고 하나가 쌩뚱맞게 서 있었다. 사실 창고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누군가가 본다면 한 칸짜리 공중화장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그마한 크기였다.

외부에서는 목적조차 가늠하기 힘든 건물. 그 문 앞을 세 남성이 지키고  있었다.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건장한 덩치에 넓은 어깨, 그리고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살수들은 아니었다. 출입구를 지키는 바운서들이었다.

단하는 진흙과 잡초가 뒤엉켜 자란 습지를 가로질러 걸었다. 세 명의 시선이 멀리서부터 자신을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굳이 자신의 접근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잠시 후, 문 앞에 도착한 단하의 앞을 남자가 막아섰다.


단하는 품 안에서 갑종살수 신분증을 꺼내어 내밀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바운서가 턱짓하자, 단하는 양 팔을 들어올렸다.


바운서가 커다란 손으로 단하의 몸을 체크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품 속에서 금속성의 촉감을 찾아냈다. 단하는 물건을 꺼내보였다. 시그-사우어의 자동권총 한 정과 콜트 파이슨 리볼버 한 정. 그것을 확인한 바운서가 굳은 얼굴로 단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단하는 총을 넘기는 대신, 손에 들고있던 신분증을 다시한번 내밀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바운서가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뒤의 남자가 문을 열었다.

그들을 지나친 단하는 망설임 없이 안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고작 사람 세넷이 서 있을만한 건물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만이 눈앞에 있을 뿐이었다.

등 뒤에서 끼이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홀로 남은 단하는 계단을 따라 걸었다. 단단한 구두 밑창이 바닥을 내딛을 때마다 뚜벅 뚜벅 하는 발걸음 소리가 메아리쳤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통해서는 쿵쿵 하는 울림이 전해져왔다.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몸 속을 울리는 비트와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은 점점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아래에 도착한 단하는 또다른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귓가로 수많은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귀를 넘어 피부로 느껴질 정도의 베이스 소리. 시선을 혼란스럽게 만들 정도로 뿌려지는 레이저 조명. 그리고  냄새, 먼지 냄새, 축축한 지하의 공기와 시큼한 토사물 냄새,  냄새가 뒤섞여 모든 감각기관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구룡성채의 클럽 '레이브'

족히 수백은  법한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 공간은, 어쩌면 지금  순간만큼은 구룡성채 안에서도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일지도 몰랐다. 스테이지 위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DJ 부스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며 인간의 파도를 만들고 있었고, 웨이터들은 쟁반 위에 술병을 아슬아슬할 정도로 잔뜩 얹은  손님들에게 서빙했고, 화장실과 복도는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시끄럽게 소리지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 사이의 비좁은 틈을 지난 단하는 스테이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진 계단을 올라갔다. 2층의 난간 안쪽을 따라서는 입구에 커튼이 쳐진 룸이 늘어서 있었다. 커튼 사이로는 하나같이 끈적한 교성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런 방 몇 개를 지나 목적지에 도착한 단하는 망설임 없이 커튼을 열어젖혔다.

커튼 너머, 소파 위에서는 은발의 소녀가 옆의 여자와 뒤엉켜 있었다.


룸 안의 뜨거운 공기에는 진한 땀 냄새가 가득 배어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반쯤 비워진 술병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단하의 방문을 여전히 눈치  챘는지, 아까보다 한층 더 거칠게 몸을 뒤섞고 있었다.


"해무."


단하가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해무는 대답하는 대신 여자들의 몸을 탐닉하는데 열중했다. 마치 발정난 개처럼 여자들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채 숨을 헐떡일 때마다, 끈적한 타액이 혀를 따라 흘러내리고 땀과 뒤섞였다. 어느새 한쪽 손은 여자의 치마를 젖히고 속옷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찌푸린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단하는, 결국 기다리다 못해 해무의 뒷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그제서야 해무의 몸이 여자에게서 떨어졌다. 뜨거운 숨을 헐떡이는 해무의 동공은 완전히 풀려있었다. 술만으로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었다. 단하의 시선이 테이블을 향했다. 술병들 사이로는 약병과 알록달록한 알약 몇 개가 흩어져 있었다.


단하가 옷깃을 놓자, 해무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술병이 쓰러져 구르며 안에 남아있던 술이 바닥에 쏟아졌다. 갑작스런 단하의 난입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경하던 여자들도, 이내 약에 취한 채로 깔깔 웃으며 해무를 따라 바닥에 흐물흐물 쓰러져 뒹굴었다.

그제서야 단하의 존재를 눈치챈 해무가 히죽 하고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단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대로 된 대화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찾아온 목적 - 진지한 대화를 포기한 단하는 품에서 총을 꺼내 해무에게 내밀었다. 해무가 카지노 입구에 맡겼던 콜트 파이슨 리볼버였다.


"와아ㅡ 진짜 총이네?"


"그냥 허풍인줄 알았는데, 진짜 살수인가봐."

여자들이 감탄하며 단하의 손에서 총을 뺏어들었다.


여전히 헤벌어진 입을 한 채 고개를 흐느적거리는 해무를 내려다보며 단하가 입을 열었다.

"요즘 많이 한가해?"

"사는건, 절대 한가할 수 없어. 언제나 촉박하지. 목숨도."


혀가 풀린 목소리로 해무가 답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불을 붙이지는 못했다. 떨리는 해무의 손은 라이터 하나도 제대로 쥐지 못했다.  차례 부싯돌을 긁어대고도 불을 붙이는데 실패한 해무를 보다못한 단하가 라이터를 뺏아들었다.

찰칵, 하고 부싯돌을 돌리자 단번에 불이 붙었다.


"후우ㅡ"


해무는 고개를 젖힌 채 담배연기를 가득 빨아들였다가 다시 내뱉었다. 그리고 여전히 몽롱한 표정으로, 하지만 한결 정신을 차린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는 형이야말로 한가해? 여기서 뭐 하는거야?"

"니 시체를 가져가려고 왔지. 총도 없이 돌아다니는 살수라니, 분명 죽었을 테니까. 근데 살아있군."

"안타깝겠네."

그렇게 말한 해무는다시한번 폐 깊숙히 담배를 빨아들였다.

"해무, 나는 걱정이 돼서 말하는거야. 니가  하고 놀던 상관 없지만ㅡ"


이어지던 단하의 말은 쾅, 하는 폭음에 묻혀 사라졌다. .357 매그넘이 천장에 만든 탄흔에서 콘크리트 조각이 부슬부슬 떨어졌다. 옆에서는 해무의 총을 갖고놀던 여자들이 헤에 하고 놀란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총성을 들은 바운서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현장에 도착한 그들이 목격한 것은 세 여자-해무를 포함한-가 뒤엉켜 있고, 단하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광경이었다.

총성과 레즈비언들, 그리고 그것을 구경하는 남자라는 예상치 못한 이상한 조합에 바운서들이 멈칫했다. 단하는 주머니에서 대충 지폐  장을 꺼내 바운서들에게 쥐어주고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바운서는 미심쩍은 시선으로 룸 안을 훑었지만, 단하의 꺼지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났다.

단하는 여자가 놀라 떨어뜨린 총을 다시 주워 해무의 품 안에 꽂아넣었다.


"이렇게 노는게 니가 원하는 거야? 이게 재밌어?"

"응, 조금. 아니다. 꽤."

해무의 말에 단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술과 약에 절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셈이야?"

대답 대신 해무는 손가락 두 개를 폈다. 겨우 이틀째라는 뜻이었다. 업을 끝낸 살수가 즐기는 휴식이라고 하기에 그리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해무는 상황이 달랐다.

"너 무슨 치료약 찾는다고 하지 않았냐?"


단하가 말하는 치료약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명확했다. 해무를 다시 원래의 남자로 되돌릴, 에이시스의 치료제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해무는 적어도 지금 만큼은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은  했다.

바닥에 담배를 비벼끈 해무는 다시 여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바닥을 기다시피 움직여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해무는 여자의 살 냄새를 한껏 빨아들였다. 그러자 마치 엑스터시 알약을 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해무의 눈이 풀리며 금세 다시 숨소리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여자의 속옷을 벗겨낸 해무는 버둥거리며 자신의 바지도 벗어던졋다. 그리고 이어서 브리프도 마저 벗어던지고는 몸을 섞기 시작했다.


여자들의 벌어진 다리 사이로 허리를 움직이는 해무의 하반신에 남성기는 달려있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비부를 맞댄 채로 움직일 뿐이었다. 맞닿은 점막이 끈적이는 소리를 냈다. 돌출된 남성기도 없으면서 격하게 허리를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우스꽝스러운 시정마 같았다.

뒤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단하는 말했다.


"차료제를 찾는게 얼마나 쉬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너를 기다려 주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남긴 단하가 커튼을 걷고 떠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해무는 단하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여자들과 몸을 섞은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들뜬 교성과 달큰한 숨소리가 다시방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ㅇ  ㅇ




해무는 휘청이는 손으로 자물쇠를 풀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유난히 커다란 네 번째 구식 자물쇠까지 열어젖히고 나자 그제서야 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온 해무는 양 옆의 여자와 함께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여자들은 뭐가 재밌는지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셋의 입술과 혀가 끈적하게 섞여들기 시작하자, 조용한 방 안에 헐떡이는 신음소리만이 들려왔다.


두 명의 여자, 그리고 여성의 육체를 지닌 한 명의 남자.


셋의 정사가 계속됐다. 전희가 끝나자 옷을 벗어던진 셋은 전부 완전한 나신이 되어 뒤엉켰다. 해무의 손길이 허리와 허벅지 안쪽을 쓸어내릴 때마다 여자들은 허리를 젖히며 교성을 흘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컷의 냄새가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한참 동안의 정사 끝에 해무의 손길만으로 절정에 달한 여자들은 침대 위에 축 늘어졌다. 그리고 만족감에 취해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적막하고 고요한 방.  여자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번갈아 이어졌다. 유일하게 잠에 들지 못한 해무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유난히 천장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졌다.


머릿속으로는 아까전 단하의 말이 떠오르고 있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몸이 남성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을 잃고, 완전히 여성으로 굳어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두 달 남짓.

해무도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 관한 것이니 누구보다도 더 확실했다.


하지만 시간 제한이 있다는 사실은 초조함을 불러일으켰고, 초조함은 판단력을 흐리고 정신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불안정한 정신은 치료제를 찾을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늘리고 있었다.

 끝없는 반복 속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남성의 육체를 되찾아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여자의 육체로는 살수 일을 계속할 수 없다.

여자는 약하다. 이번 업을 행하며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남자의 육체였더라면 앞을 가로막은 장해물들을 훨씬 쉽게 처리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몸이었기에 쉬운 길도 더 돌아가고, 더 어려운 길을 갈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니 남자의 몸을 되찾아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살수로서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며 해무는 심호흡을 했다.

입술 사이를 드나드는 숨에는 아직 해소되지 못한 욕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남성기를 잃은 것은 해무에게 있어서 가장  변화였다. 더이상 자신의 단단한 성기로 여자들의 몸을 헤집는 즐거움도, 그 끝에 힘차게 사정하는 쾌감도 없었다. 성적으로 흥분할 때마다 단단해지는 클리토리스와 젖어드는 여성기가 있을 뿐이었다.

여자를 만족시키는건 자신이 있었지만, 여자가 된 자신을 몸을 스스로 만족시키는건 다른 또다른 종류의 얘기였다. 남성일 때와는 방법도 달랐을 뿐더러, 지금 이 몸으로 자위하는 것이 마치 여성이 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더욱 꺼려왔다.

하지만 지난 한달 동안 쌓여온 성욕은 더이상 해소하지 않고서는 버틸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 있었다.

해무는 심호흡 끝에 천천히 손을 자신의 다리 사이로 가져갔다. 입가는 긴장으로 굳어선 채였다.

지금까지는 다른 여성에게서만 발견해왔던,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몸에 남성기 대신 자리한 균열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넣으며 해무는 숨을 삼켰다.

다리 사이가 금세 끈적하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손끝으로 성기를 문지를 때마다 짜릿한 쾌감이 허리를 떨게 만들었다. 고양감이 점점 차오르며 심장이 터질듯이 두근거렸다. 좁은 방 안을 헐떡이는 해무의 숨소리가 가득 채웠다.


그리고 얼마 뒤, 해무는 침대 위로  늘어졌다. 몸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있었다. 쾌감은 강했다. 하지만 절정하지는 못했다. 불연소된 쾌감에 오히려 짜증과 분노가 치밀었다.

결국 해무는 처참한 기분으로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그리고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수마(睡魔)는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수마보다도 지독한, 해결되지 못한 욕구의 잔향이 밤새도록 소녀의 몸을 괴롭혀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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