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창관의 성모 (2)
자그마한 창 안쪽에서 불꽃이 일렁거렸다. 화장장의 연소로는 뜨거운 불길을 내뿜으며, 내부의 유기물들을 차근차근 재로 허물고 있었다.
해무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언제나와 같은 검은 양복 차림이었다.
어쩌면 이 옷은 지금같은 순간에 더 어울리는 복장일지도 몰랐다.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의식에.
연소로가 유해를 완전히 태우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 시간 정도의 작업끝에 인간의 몸을 이루던 형체는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잔해만이남았다.
내부에 남아있는 열기를 한 차례 식히고 나서야 장의사는 연소로의 문을 열었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매캐한 냄새가 푸른 조명 아래 차가운 방 안을 잠시 감돌다가 이내 환풍구를 통해빠져나갔다. 완전히 식지 않은 희미한 열기도 함께.
장의사가 갈퀴를 꺼내들어 연소로 안의 잔해를 긁어냈다. 유해는 대부분이 재가 되었지만, 아직 덩어리가 되어 뭉쳐있는 뼛조각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갈퀴의 끝에 닿자 그나마 희미하게 남아있던 뼛조각의 형태도 이내 재로 사그라들어, 한때 사람의 구성이었던 흔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재이의 시체는 다른 고깃덩어리들과 뒤섞인 탓에 결국 찾지 못했다. 고작해야 양 발을 찾은 것이 전부였다. 재이를 태운 연소로에서는 한 줌도 안 되는 재가 남았다.
장의사는 끌려나온 재를 삽으로 그러모은 다음, 각각의 재를 한 개의 도자기 함에 담았다. 굳이 다른 유골함에 담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둘은 파트너였으니까.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것이요, 또한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요한 10:28]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특무국 책임요원 수호]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특무국 5급 특무관 재이]
도자기에는 그런 내용의 글씨가 십자가와 함께 금박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들의 종교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상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이 구룡성채에서 인간을 구원해 주지 못하는 것은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장의사는 유골함의 뚜껑을 닫고 그 틈을 왁스로 밀봉했다. 그리고 운반용 가방에 넣은 다음, 해무에게 고개를 숙이며 함을 건넸다.
해무도 살짝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 가방을 받아들었다.
어두컴컴한 화장장에서 밖으로 나오자 눈이 부셨다. 장례를 치르기에 좋은 날이었다. 오랜만에 하늘이 맑았고, 언제나 그늘져있던 콘크리트 복도에도 조막만한 햇살이 드문드문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해무는 조심스레 가방을 들고 걸었다.
왜 굳이 장례를 치르기로 했을까.
수호와 재이. 자신과는 전혀 관련없는 남한의 요원들이었다. 그저 업을 행하며 마주쳤던 상대일 뿐이었다.
그것도 적으로.
그럼에도 장례를 치른 것은 분명 사소한 변덕 탓이다. 아주 사소한 변덕.
살수는 타인의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살수의 일이다. 목표에게 예를 갖춰 떠나보내는건 살수의 일이 아니다. 그저 숨통을 끊는 것으로 살수는 자신의 업을 다한다.
마찬가지로, 살수의 죽음에 대해서도 장례는 치르지 않는다.
살수는 죽은자다. 죽은 채로 살아 움직이며 다른 누군가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존재다. 그렇기에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 애초에 죽어있던 자는 다시 죽을 수 없으니까. 살수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며, 죽은 채로 움직이던 것을 멈출 뿐이다. 그러니 이미 죽어있던 자에게 장례를 치를 이유도 없다.
요원 또한 살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장례를 치른다는 점에서, 어쩌면 자신은 이번 일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지상 1층의 건물 복도를 따라 길게 이어진 창문. 그 밖으로 쌓인 쓰레기 봉투와 유리병, 페트병을 투과한 햇빛이 바닥에 색색의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건물 위로 커다란 구름이 지나갈 때마다, 붉고 푸른 그림자들은 마치 수면 아래서 바라본 하늘처럼 반짝이며 일렁였다.
그리고 긴 복도를 지나자, 커다란 나무 문이 눈 앞을 가로막았다.
해무는 문고리를 세 번 두드렸다.
잠시 후, 안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천천히 문이 열리며 주름진 얼굴의 수녀- 마더 테레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 앞에서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자그마한 은발의 소녀. 그 모습에 테레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와는 반대로 소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지워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테레사는 소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소녀의 얼굴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는 것을 깨닫고는 숨을 삼키며 물었다.
"해무.......?"
ㅇ ㅇ ㅇ
성당은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고요했다. 단상의 제대(祭臺)는 낡아서 기울었고, 예배당의 의자는 반 정도가 삭아서 부서졌으며, 마루바닥은 군데군데 끊어져 있었다.
벽돌이 벌어진 천장 틈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차분한 공기는 비록 그곳이 낡고 헤졌더라도 여전히 신의 거처라는 사실을 느끼게 했다. 머릿속으로는 들릴 리 없는 천사의 합창 소리가 들리는 것같았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구나."
해무를 예배당 안쪽으로 들인 테레사 수녀가 말했다. 하지만 얼마나 빨리 찾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 꼴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은거야?"
"네가 이야기하고 싶다면 하려무나."
테레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언제나와 같은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도 성사를 하러 온 거겠지?"
"성사도 필요하지만, 오늘은 그것보다 먼저 이걸."
그렇게 말하며 해무는 가방에서 물건을 꺼냈다.
"이건......"
테레사는 해무가 꺼내든 것이 예상 외라는 듯 천천히 그것을 살폈다. 해무가 가방에서 꺼내든 것은 유골함이었다.
"너의 동료들이니?"
"그건 아니고."
해무는 담담히 부정했다.
"아는 사람들이지."
하긴, 네게 동료라니..... 그것도 이상하구나, 하고 말하며 테레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사람.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완전히 죽어버린 지금, 이 구룡성채 안에서 그들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자신 뿐일 테니까.
"네가 장례를 치르는건 이걸로 두 번째로구나."
그렇게 말하며 테레사는 납골당을 향해 앞서 걸었다.
해무는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머릿속으로는 첫 번째 장례를 기억하면서. 그때도 지금과 똑같았다. 테레사는 앞서 걸었고, 자신은 유골함을 든 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예배당의 뒤쪽 문을 통해 안뜰을 가로질러 건물의 서관에 있는 지하실로 향했다.
납골당으로 향하는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축축하고 서늘한 공기가 주변을 감돌았다.
선반에는 이미 먼저 납골된 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중에서 비어있는 칸을 찾은 테레사는 해무에게 함을 받아 조심스레 안에 밀어넣었다. 그리고 테레사는 눈을 감고 손을 모아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고인의 죄를 사하시고 그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소서."
짧은 기도였다. 그것으로 간소한 장례미사가 끝났다. 원래대로의 장례미사 절차를 따른다면 종부성사부터 위령예식까지 며칠이 걸릴 테지만, 그들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될 것이다.
"이곳에 너희들의 유해를 받는 것은 참 드문 일이란다."
"살인자들은 받지 않는다는 건가."
너희라는 말이 자신같은 살수들을 뜻한다는걸 눈치챈 해무가 물었다.
"그렇지 않아. 신께서는 그 누구도 거부하지 않으시거든. 다만 너희들이 오는 경우가 드물 뿐이지. 그들에게는 유해를 수습해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이 놈들도 마찬가지야. 그냥 어쩌다보니 내가 그들의 유족 역할을 맡았을 뿐."
그렇게 아무래도 좋다는 투로 대답한 해무는 유골함이 진열된 선반을 따라 걸었다. 그러던 중, 눈에 익은 글씨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천주교 여의도 구룡성채교구 마리아 수녀]
그렇게 쓰여진 유골함 뒤에는, 시든 국화와 함께 빛바랜 사진 하나가 놓여 있었다.
갈색의 눈. 반짝이는 은발. 그리고 갸름한 얼굴.
지금의 해무와 꼭 닮은 얼굴을 한 여자의 사진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렴."
"없어. 딱히."
뒤에서 지켜보던 테레사의 말에 해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몸을돌려 축축한 지하 납골당을 떠났다.
예배당으로 돌아온 마더 테레사와 해무는 성사를 위해 자리에 앉았다. 품에서 꺼낸 수첩을 펼친 해무는 그곳에 적힌 이름들을 하나씩 읽어내려갔다. 마약상들, 남한의 요원과 몇몇 공안들까지. 전부 해무가 죽인 사람들이었다.
메모에는 하잘것 없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이 사람을 죽였을 때는 무엇을 먹었는지. 저 사람을 죽였을 때는 칼로 심장을 찔렀는지, 아니면 목을 부러뜨렸는지.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최대한 세세하게 기록한 내용들이었다.
죽은 자를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앞으로도 죽일 것이 많기에.
이름을 외고, 살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는 것이 과연 그들에게 위로가 될 지도 알 수 없었다. 어차피 내일이 되면 자신은 또 사람을 죽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의 죄에 대해 고백하고 속죄하는 것이 가느다란 동앗줄같은 구원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
그렇게 희생자들의 이름을 전부 읊고, 메모된 종이를 찢어내 불태워 성사를 마치고 나서도 해무는 쉽게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했다.
"이제 다 끝났니?"
테레사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해무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쩌다 보니 병에 걸렸어. 그래서 이렇게 됐고."
간결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는지, 테레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힘든게 많겠구나."
"그냥 저냥."
여자의 몸이 된다는게 그냥저냥이라는 말로 넘어갈 사안은 아니다. 그 일을 직접 경험한 해무도, 그리고 이 구룡성채 안에서 반평생을 보낸 테레사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둘 중 누구도 내색하지 않겠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 이 병. 당신은 말이 된다고 봐?"
"나는 의사가 아니란다."
"의학에 대해서 묻는게 아니야. 당신들은 언제나 얘기하잖아? 모든 일은 '그 분'의 설계라고. 그 분께선 모든 것에 계획이 있으시다, 한낱 풀잎과 이슬에도."
"신께선 그러하시지."
"그렇다면 나는 어때. 뭔지모를 주사를 맞아 여자가 된 이 몸뚱아리는?"
해무의 질문에 테레사는 답하지못했다. 그런테레사를 향해 해무는 한층 더 강하게 빈정거렸다.
"이것도 당신들이 말하는 신성한 개입인가? 그분께서 뜻이 있어서 나를 이런 몸으로 만든 건가?"
"너의 어머니라면ㅡ"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테레사는 말을 고쳐 다시 입을 열었다.
"시스터 마리아라면 그렇다고 말했을 테지."
"집어치워. 엄마 얘긴 듣고 싶지 않아."
해무가 넌더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볼일은 끝났다. 납골도 했고 성사도 끝났으니 더이상 늙은 수녀를 붙잡고 푸념할 이유도 없었다. 품에서 꺼낸 돈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해무는 몸을 돌렸다.
"나는 아는게 많지 않아서 모르겠구나. 어째서 네가 그런 몸이 되어야만 했는지. 과연 이것도 신께서 안배해두신 결과일지."
떠나려는 해무의 등에 대고 테레사가 말했다.
"하지만 네가 그로인해 힘들어지고, 언젠가 정말로 갈 곳이 없게 된다면...... 그때는 고민하지 말고 돌아오렴. 이곳은 너의 집이란다."
"그럼 카밀라가 날 죽일 텐데."
"아, 그렇지. 어서 가렴. 카밀라가 오기 전에. 나는 이제 너희 둘이 싸운다면 말릴 수가 없구나."
카밀라라는 이름에 갑자기 태도를 바꾼 테레사는 해무의 등을 밀어 재촉했다. 거의 쫓겨나다시피 문 밖으로 밀려난 해무는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걔는 날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테레사는 대답 대신 언제나와 같은 애매한 미소로 답했다. 화낼 수도, 짜증낼 수도 없는 그 미소에 한숨을 내쉬며 해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 앞에서 끼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닫히는 문 사이로, 테레사의 모습과 예배당을 비추는 햇빛을 마지막까지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