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9화 〉창관의 성모 (8) (49/82)



〈 49화 〉창관의 성모 (8)

해무는 복도의 의자에 앉아 샌드위치를 으적으적 씹었다. 옆에는 손도 대지 않은 도시락들이 쌓여있었다. 전부 창관의 여자들이 가져다 준 것들이었다.

이상하게 해무는 창관에서 인기가 많았다. 이유는 몰랐지만 어쨌든 덕분에 끼니 걱정은 덜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먹을 수는 없다. 이래서야 처치 곤란이다.

여자의 몸이 되고 나서 줄어든건 키 뿐만이 아니었다. 식사량도 줄었다. 단골 국수집에서 매번 먹던 완탕면  그릇도 다 못 비울 정도였다.


그런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여자의 몸이 된 것을 실감하는 것은 매우 거슬리는 일이었다.

해무는 손에 쥐고있던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빨대로 콜라를 빨아들였다. 고작해야  정도 먹었을 뿐인데도 벌써 배가 불러왔다.

고개를 들자 창관동의 중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며칠 전, 살인 사건이 벌어졌던 그 장소였다.

창관에서 경호원 생활을 한 것도 벌써 삼일 째. 이제 대낮의 창관도 꽤나 익숙해졌다.


지난번 살인 사건 이후로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자잘한 사건들은 많이 있었다. 손님이 여자를 폭행한다거나, 아니면 여자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난동을 피운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 정도 쯤이야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해무는 그 외에도 다른 종류의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와, 좋겠네 해무. 도시락을 다섯개나 받았어."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메이린이 해무의 도시락을 바라보며 부러워했다.


"야, 고작 다섯개 갖고 놀라지 마. 해무는 그보다 훨씬 대단하다구."


"훨씬 대단하다구? 뭔데뭔데, 무슨일인데?"

대답을 재촉하는 메이린을 향해 잠시 뜸을 들인 끝에 수아가 말했다.

"뭐냐하면ㅡ 여기있는 해무는 고작해야 어제 하루동안, 지명을 열 번이나 받았다니까?굉장하지 않아?"

"진짜? 굉장하네 해무. 부럽네에......."

"닥쳐."

해무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 표정도 목소리 만큼이나 냉랭한 채였다.

창관을 찾아온 남자들에게 지명받았다는 사실은 해무에게 있어서 전혀 자랑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숨기고 싶은 일이었다.

심지어 수아의 말은 틀렸다. 열번이 아니었다. 스무 번은 넘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더 큰 놀림거리가 될 뿐이었으니까.


어젯밤 자신이 지명당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호두는, 보다못해 널빤지에 '비매품'이라고 써서 목에 걸어주었다. 당연히 해무는 반으로 쪼개 내다버렸다.  모습을 보며 호두는 배를 잡고 웃었다.

생각하니까 기분이 더 나빠졌다.

해무는 나쁜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워내려 노력하며, 마지막 남은 샌드위치 한 입을 한 번에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입가에 묻은 빵가루를 털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

"일 하러."

수아의 질문에 짧게 대답한 해무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지난  일 동안 전부 예순 개의 창관을 돌아다녔다. 하루에 스무개 꼴이니 꽤나 빡빡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홍등가의 창관을 전부 탐문하기에는 턱도 없는 숫자였다. 창관은 많았고, 여자들의 숫자는 그보다  많았다. 길어도 한  안에는 탐문을 끝내야 한다는 사실에 막막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넋놓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창관동 2층을 전부 끝냈으니 이제 야화가 있는 3층을  차례다. 야화는 이미 오전에 제일 먼저 탐문을 끝냈다. 그리고 창관이 늘어서있는 순서로 보았을 때, 야화 다음으로 방문할 곳은 바로 이곳이었다.


창관 홍련. 며칠 전에 처음으로 만난 호두라는 여자가 일하는 곳이었다.

해무는 입구에 드리운 주렴을 걷어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당연히 해무를 맞아주는 점원은 없었다. 계산대도 비워져 있었고, 안에는 적막함만이 감돌았다.

창관 홍련의 안쪽은 여느 다른 창관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나무로 되어있는 마루가 가게 한가운데를 따라 길게 뻗어있었고,  옆으로 방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방은 밤에는 손님을 받고, 낮에는 여자들이 생활하는 생활하는 공간이었다. 창관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거리 밖의 방을 구할만한 여유가 없었기에 만들어진 구조였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삐걱 하고 마루가 울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누구?"


방금 머리를 감은 듯, 머리에 수건을 두른 여자가 욕실에서 나오며 해무를 발견하고 물었다. 해무는 여자의 모습을 잠시 관찰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만나고 싶어서 왔는데."

"여자들을 만난다고......?"


그렇게 되묻는 여자의 얼굴에 미심쩍다는 시선과 경계심이 서렸다. 하지만 금세 무언가를 떠올린  표정을 바꿨다.

"아, 맞다. 기억났어. 저번에 점주가 누가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말했었는데, 그게 당신인가보네?"


"아마도."

"뭐, 좋아. 필요한게 있으면 알아서 찾아가도록 해. 내 가게는 아니지만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해무를 지나쳐 걸었다.


"잠깐. 당신에게도 묻고싶은게 있는데."


자신에게 등을 돌린 여자를 불러세운 해무는 입 속으로 말을 골랐다.


이미 몇 차례 해봤지만, 이 질문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혹시 여기에 온지 얼마 안되는 여자가 있느냐,  중에 마치 남자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느냐...... 그렇게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상한걸 보는듯한 시선으로 해무를 바라보거나, 혹은 무시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개중에는 게이 클럽은 이곳이 아니라 다른 구역이라고 답하는 여자도 있었다.

해무도 그녀들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수상한 여자, 출신이나 과거가 불확실한 여자가 있느냐' 라는 질문도 쓸모없는건 매한가지였다. 창관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출신과 과거가 불분명했다.

결국 자신이 질문하는의도를 설명하다 보면 생각보다 긴 시간을 뺏기게 되었다.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다른 경우들과 마찬가지로, 질문에 되돌아온 대답도 비슷비슷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여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같이 일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서로에 대해 모든걸 알지는못하잖아? 내가 다른애들 과거를 캐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뭔가 이상한 낌새라도 없어?"


"몰라.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아. 그런데 혹시...... 내 과거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다닐꺼야? 나는 죄지은거 없어. 해코지 하려는거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어."


"딱히 그런거 아니야."

뭔가 오해한 듯한 여자를 향해 해무가 말했다. 자신은 범죄를 수사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찾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얘기였다. 그 설명을 들은 여자는 어느정도 납득했지만, 여전히 미심쩍다는 기색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 듯 눈을 가늘게 뜨고 해무의 기색을 살피고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걸 물어보고 다니는거야? 혹시 너, 공안?"

"됐어. 신경쓰지 마."

해무는 질문을 그만두고 손을 내저었다. 이 여자를 계속해서 붙잡고 있어봤자 얻을만한건 없을 것이다. 애초에 그녀가 보여주는 태도는 에이시스 환자랑은 거리가 멀었다. 낮선 방문자를 경계하는, 영락없이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뭐...... 공안이 아니라면 됐어. 다른 여자들은 방에 있을거야. 내가 일일이 안내해  수는 없고, 알아서  해봐."


그렇게 말한 여자의 자신의 방으로 쏘옥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해무는 창관 홍련 안의 방을 차례차례 방문했다. 문을 두드리고, 고개를 내미는 여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질문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돌아온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뭔가를 숨기는 여자? 알잖아. 원래 여자들은 다 비밀이 많은 법이라구."

"수상한 여자라ㅡ 예를 들면  같은?"


"미안,  모르겠어. 혹시 찾으면 알려줄께......"

여전히 여자들은 대부분 비슷한반응을 보였고, 그 중에 해무가 원하는 답은 없었다. 지난 삼일간 들었던 내용과 다를  없는 모습이었다.

그럴 때마다 해무의 마음 속에도 짜증과 초조함이 조금씩 쌓여갔다. 하지만 딱히 내색하지는 않았다.대신 답변해준 여자들에게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해무는 기계적으로 다음 방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해무는 잠시 기다렸다. 분명 안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려도 여전히 응답은 없었다. 결국 해무가 다시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어, 무슨 일?"


조심스레 열린 문 틈으로 호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에는 쇠사슬 자물쇠가 걸려있는 채였다.


해무는 고작해야 반 뼘 정도의 틈을 통해 호두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잠시 이야기좀 하고 싶은데."


"아...... 미안. 지금은 좀 급한 일이 있어서."

호두가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오래 안 걸려."

"정말 지금은 안돼. 나중에 얘기하자."

그 말을 남기고 문이 다시 닫혔다. 철컥 하고 문고리의 자물쇠를 잠그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해무는 의아함을 느꼈다. 지금은 오후 두시. 바쁠 때가 아니다. 다른 여자들은 몸을 씻거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방을 청소하거나, 아침 식사를 할 때였다. 설령 바쁘다 하더라도 고작해야  분 정도 이야기할 틈도 없다는건 뭔가 이상했다.


"거긴 호두 방이야."

해무가 문 앞에서 떠나지 않고 서 있자, 지나가던 여자가 말했다.


"혼자 쓰나?"

"응. 둘이 쓰는 경우도 있는데, 호두는 혼자 써."

 대답을 듣자 한층  의심스러워졌다.

혼자 쓰는 것이라기에, 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혼자가 아니었다. 물론 친구나 다른 사람을 방 안에 들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호두의 얼굴에서 보이는 기색은 그저 바쁜 것이 아니라,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눈치였다.

들어갈까?


문을 잠갔어도 부수면 그만이다. 하지만 만약 헛다리를 짚은 거라면?  번 소란을 피운 것으로 앞으로의 탐문이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일단 지금은 물러서자. 하지만 오늘이건 내일이건 다시 찾아와야 할 것이다.


홍련 8호실의 호두. 그녀를 요주의 인물로 머릿속에 메모한 해무는 다음 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때, 복도 끝에서 소란스런 발걸음 소리와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니년들 전부 윗층 여자처럼 뒈지고 싶어?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말고방에 쳐 박혀 있으라고!"

그렇게 소리치며 여자들을 난폭하게 밀어젖히는 남자의 모습이 해무의 시야에 들어왔다.

금색으로 물들인 삐죽삐죽한 머리카락. 싸구려 티를 풍기는 검은색 양복. 그리고 건들거리는 발걸음과 사냥개같은 눈빛. 성난 표정에는 아직 앳됀 티가 남아있었다.

이미 지난 며칠간 멀리서 시선을 몇 차례 교환했던 상대였다. 기억하기로는, 이전부터 창관에서 일하던 경호원이라는 것 같았다. 이름이 유안이라고 했던가.

계속해서 여자들을 마치 가축처럼 밀쳐내며 방 안으로 쑤셔넣던 유안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듯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해무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대로 굳어섰다.

냉랭한 분위기가 둘 사이를 채웠다. 여자들이 그 틈을 타고 황급히 방 안으로 몸을 숨겼다.

해무를 바라보는 유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입으로 조용히 욕설을 중얼거리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는 해무를 향해 곧장 다가왔다.


해무는 미동도 하지 않은  다가오는 유안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해무에게 용무가 있는 것처럼 다가온 유안은, 멈춰서는 대신 어깨로 해무를 밀치고 그대로 지나갔다. 표정에는 한껏 불쾌감을 담은 채.

저게 미쳤나.

해무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물론 가끔 있는 일이었다. 과거 남자의 몸이었을 때에도, 겉으로 보기에 해무는 특별히 위협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특별히 덩치가 큰 것도 아니었고, 몸이 탄탄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우습게 보고 시비를 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그 결말은 전부 같았다. 상대방의 팔이 부러지거나, 다리가 부러지거나. 혹은 해무가 조금 기분이 나쁜 날에는 둘 다 부러지거나.


때문에 유안의 저런 모습이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우스울 뿐이었다.

설령 화가 났더라도, 저런 놈에게 쓸데없이 감정을 소모할 필요는 없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할 일이 태산이었으니까. 한낱 경호원 따위에 주먹질을 하는  보다는 창관 한 곳이라도 더 탐문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줄 생각은 없었다. 만약 다음에도 저 새끼가 계속해서 저런식으로 자신을 대했다가는, 최소한 뼈 두개 정도는 부러뜨려 줘야 할 것이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해무는 다음 창관을 향해 발걸음을 이었다.





ㅇ  ㅇ 



호두는 굳게 잠긴 문에 등을 기대고 한숨을 토했다. 가슴 아래에서는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안 들켰을까?


갑작스레 자신의 방에 찾아와 문을 두드린 것은 해무였다. 뭔가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했나? 하지만 호두에게 그럴여유는 없었다.


다행히 대충 핑계를 대자 해무는   말걸지 않고 곧바로 떠났다. 조금 짜증은 난 같지만 특별히 의심하는 듯한 기색은 없었다. 그 사실에 호두는 안도했다.

갑작스런 방문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있었다. 절대로 들켜서는 안되는 것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호두는 고개를 들었다.


좁은 방 한 가운데에는 자그마한 소녀가 앉아있었다.

초점 없는 눈과 굳게 다문 입. 얼굴은 마치 도자기 인형처럼 하얬다. 나이는 고작해야 십대 초반쯤 되었을까. 창관에서 일하기에는 한참 어린 아이였다.

"셴?"


호두는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소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라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반사적으로 반응하기 마련이건만 소녀는 미동조차 없었다.

아니, 그 뿐만이 아니었다. 호두의 부름은 커녕 다른 시각적, 촉각적 자극에도 소녀는 반응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자폐 증상이었다.

지난 주, 처음으로 이 아이를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그 모습에 호두는 마음 속이 아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소녀에게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속으로 부탁하는  밖에는.


"셴, 언니는 잠깐 나가봐야 해."


호두가 양 손으로 소녀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언니가 오기 전까지는 누가 와도 절대로 열어주면 안된다? 알겠지?"

호두는 그렇게 소녀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하나마나한 소리였다. 어차피 셴에게 소리를 내지 말라는 얘기는 필요 없었다. 언제나초점없이 퀭한 눈으로 입을 꾹 다문 채 앉아있는 것이 셴이 보이는 모습의 전부였으니까.


그 모습을 뒤로하고, 호두는조심스레 자신의 방을 빠져나왔다.


복도는 조용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좋은 일이었다. 자신이 지금 움직이는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창관 홍련을 빠져나온 호두는 발걸음을죽인 채 조심스레 걸었다.


홍등가 거리 안쪽의, 으슥한 골목을 향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