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창관의 성모 (10)
어두운 창고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유안은 얼굴을 찌푸렸다. 입구에는 검은 인영(人影)이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빛에 익숙해진 눈에 상대의 모습이 비춰졌다.
"뭐야 씨발."
갑작스럽게 등장한 방해꾼의 정체에 유안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문 앞에서는 아까전 마주쳤던 여자가 서 있었다. 이름이 해무라고 했었나.
유안은 호두를 밀쳐내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방해꾼 앞에 마주섰다. 그 때까지도 이 여자는 미동도 않은 채 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안은 바닥에 침을 퉤 하고 뱉었다.
이 년은 처음 봤을 때부터 거슬렸다. 경호원? 여자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심지어 살수라는 소문도 있었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여자는 살수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창관의 여자들은 저 녀석이 뭐라도 되는 것마냥 대했다.
유안은 그 사실이 불쾌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이 홍등가에서 폭력으로 군림하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어야 했다.
"너 뭐냐고, 씨발년아."
유안이 재차 물었다. 섹스 도중에 방해받은 유안의 기분은 짜증을 넘어 살의까지 차올라 있었다. 바지 지퍼 사이로 튀어나온 자지는 여전히 한껏 발기된 채로 젖어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해무의 시선이 유안의 어깨 너머 뒤쪽으로 향했다. 매트리스 위에서는 호두가 이를 악문 채 흐느낌을 삼키며 찢어진 옷으로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었다. 난폭한 섹스와 손찌검으로 엉망이 된 몸이었다.
해무의 시선이 다시 유안을 향해 되돌아왔다.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시선을 마주 바라보며 유안은 콧웃음을 쳤다. 여자 경호원이라니, 그저 같잖아 보일 뿐이었다. 창관에 있을 여자는 창녀 뿐이었다. 그리고 창녀들이 하는 일은 그저 남자 밑에 깔려 교성을 흘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사실을 상대에게 각인시키듯, 유안은 자신의 커다란 자지를 해무에게 뽐내듯이 보이며 섰다. 그리고 자신의 즐거움을 방해한 건방진 계집의 머리채를 휘어잡기 위해 손을 뻗으려던 찰나,
우득, 하고 메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느새 유안의 손가락은 해무에게 잡혀있었다. 마디 한 가운데가 부러져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있는 채였다.
유안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이어서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퍼졌다. 털썩 쓰러져 바닥을 뒹구는 유안의 자지는 어느새 바람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해무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까 전 자신에게 건방지게 굴었던 그 양아치 놈이다. 안그래도 이 새끼를 손봐줘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생각보다도 한참 더 별거 없는 놈이었다.
이럴거면 시비를 걸지나 말지.
"이..... 이 씨발년이......"
분노로 핏발선 눈이 해무를 향했다. 하지만 해무는 손을 쓰지 않았다. 대신 구둣발로 녀석의 다리 사이에 매달린 불알을 가볍게 찼다.
톡, 하는 가벼운 터치. 하지만 유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채재차 바닥을 뒹굴었다. 마치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린 채 꺼억거리며 숨을 토해냈다.
"왜, 내가 만져주는건 싫어? 다리 벌려 봐. 더 해줄께."
건조한 목소리로 해무가 말했다. 하지만 유안의 귀에 그런 말은 들어오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늠름하게 정액을 뿜어내던 자신의 불알에서는 이제 고통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부드럽게 만져주는 거라고. 빨리 다리 안 벌려?"
해무가 그렇게 말하며 구두 끝으로 엉덩이 사이를 쿡쿡 찌르자 유안의 입에서 꼴사납게 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엉덩이와 불알이 욱씬거리는 고통에 유안은 이를 악물었다. 해무의 태도는 자신이 창관의 여자들에게 했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저 빌어먹을 년은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 사실에 유안은 굴욕감에 휩싸였다.
그 때, 열린 창고 문 밖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창관에서는 들을 수 없는, 어린아이의 날카로운 비명소리.
"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호두가 소리쳤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들려온 비명은 분명 셴이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호두는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호두보다 빨리 행동한 사람이 있었다.
해무였다.
ㅇ ㅇ ㅇ
해무는 소녀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따라 달렸다.
그러자 곧 후드를 눌러쓴 남자가 소녀를 옆구리에 낀 채 복도를 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있었던 살인사건. 그 과정에서 추적했던 범인의 뒷모습과 똑같았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범인은 여전히 잽쌌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비록 자그마한 소녀였지만 그 무게가 더해진 채라, 지난번 보다는 민첩함이 떨어지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해무와의 거리는 금세 좁혀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이번에도 난간을 뛰어넘어 도망치려 했지만, 이번에는 동선을 예측한 해무의 총알에 막혀 그럴 수 없었다. 놈을뒤쫓는 해무의 머릿속에서는 창관의 지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단순히 뒤만 쫓는게 아니라 상대의 방향을 유도하며 도주 루트를 하나씩 차단하는 중이었다. 이번에도 도망치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해무의 계산대로 상대는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눈 앞을 가로막은 벽을 바라보며 더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범인도 더이상 도망치지 않고 해무를 향해 돌아섰다.
그 뒤를 끈질기게 뒤따라오던 해무도 멈춰선 채 숨을 헐떡이며 남자를 마주했다.
남자가 옆구리에 끼고있던 소녀를 털썩 내려놓았다. 소녀는 패닉에 빠져 도망갈 생각도 못 한채, 몸을 부들부들 떨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짧은 대치가 이어졌다. 후드 아래, 그림자가 드리워진 얼굴에서는 눈만이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건 남자 쪽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은빛으로 번쩍이는 칼날이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코앞을 스쳐지나갔다.
해무는 반 발자국 물러나는 것 만으로 상대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남자의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연신 번쩍이며 날아오는 칼질. 그 모습을 보며 해무는 확신했다.
상대는 훈련받은 전투원이다. 살수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훈련받았다는 것은 확실했다.
해무의 회피에 공격은 계속해서빗나갔지만, 남자의 움직임은 짧고 군더더기없이 효율적이었다. 상대가 해무같은 갑종살수가 아니었다면 살아남는 것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해무에게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상대는 몸놀림은 잽쌀지언정, 전투 실력은 해무에 비해서는 한참 부족했다. 연이은 공격에도 해무에게 상처 하나 내지 못하자, 남자는 곁눈질로 소녀의 모습을 슬쩍 확인했다. 초조감이 더해가는게 느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해무의 반격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남자의 품 안으로 파고든 해무가 칼을 쥐고 있는 손목을 잡고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러자 남자는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상대가 균형을 잃은 틈을 타서 손목을 꺾자, 쥐고있던 칼이 간단히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싸움의 결과는 결정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해무가 재차 정강이를 걷어차자 남자가 무릎을 꿇었다. 그 머리통을 양손으로 쥐고 해무는 그대로 벽에 내리찍었다. 한번, 두번, 세번.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벽에 머리를 찧은 남자는 해무가 손을 떼자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결정난 싸움이었다.
해무는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범인과, 구석에서 패닉에 빠져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소녀, 그리고 어느새 달려와 뒤에서 숨을 헐떡이는 호두 사이에서, 해무는 다음으로 할 일을 곧바로 결정했다.
ㅇ ㅇ ㅇ
해무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후 창관 복도에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셴을 자신의 방에 데려다놓고 돌아온 호두가 해무에게 말했다.
"내가 저 아이를 데리고 있는건 비밀로 해줘."
"너, 내가 수상한 사람을 찾아다니는걸 알고 있었지."
해무의 질문에 호두는 대답하지 못했다. 모를리가 없었다. 지난 며칠간 해무는 호두와 꽤 자주 만났다. 해무가 창관을 돌아다니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건 불가능한 소리였다.
"어쩔 수 없었어. 나는ㅡ"
"나중에 얘기하지. 너보다 먼저 얘기할 상대가 있으니까."
해무는 호두를 쏘아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창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팔다리가 케이블 타이로 의자에 묶인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전 해무에게 얻어터진 탓에 코는 비뚤어지고 얼굴 여기저기가 부어오른 채였다.
해무는 창문 밖을 확인했다. 해가 뉘엿뉘엿 가라앉고 있었다. 이제 곧 거리가 열리고 손님들이 들이닥칠 시간이었다. 그 전까지 일을 끝마쳐야 한다.
해무는 남자 앞에 섰다. 원래는 자신보다 큰 상대였지만, 의자에 묶인 지금 그의 머리는 해무의 턱 아래에 있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해무는 담배연기를 깊숙히 빨아들였다.
후드를 벗은 남자의 얼굴은 특별할 게 없었다. 한국계는 아닌 것 같고, 중국계인가? 뭐, 아무래도 좋다. 지금 중요한건놈의 출신이 아니라 목적이었으니까.
하지만 해무는 질문하지 않았다. 대신 놈의 목덜미에 담배를 비벼 껐다.
찢어지는 비명이 뒤를 이었다. 남자가 마구 몸을 비틀며 악을 썼지만 해무는 담배를 떼지 않았다. 오히려 꾸욱 하고 눌러 마지막 불티까지 남자의 몸을 써서 껐다.
남자의 동공이 고통으로 바늘구멍처럼 수축했다.
"#$%@, #$^$%%!"
"한국말로 해, 한국말로."
당연히 해무도 중국어를 할 수 있었다. 성채 안에는 한국계, 중국계와 조선족이 뒤섞여 있었으니까. 하지만 남자의 말은 사투리가 심하게 섞여서 이해할 수 없었다. 상관 없는 일이다. 어차피 해무가 남자의 말을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자신이 놈에게 맞춰줄 때가 아니다. 놈이 자신에게 맞춰야 할 때다.
해무는 의자에 묶인 남자의 허리춤에서 버클을 풀었다. 그리고 뽑아낸 허리띠를 내던지고 품 안에서 주머니칼을꺼냈다. 짧고 날카로운 칼날이 노을을 받아 반짝였다.
해무는 그걸로 남자의 바지를 찢었다. 길게 찢어진 바지가 의자에 묶인 발목에 걸렸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팬티도 칼로 찢어 벗겨냈다. 그러자 남자의 고간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났다.
남자는 숨을 헐떡이며 핏발 선 눈으로 해무를 노려보았다. 악문 이빨 사이로 흘러나오는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런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던 해무는 아무런 예고없이 휙 하고 발을 휘둘렀다.
뿌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단한 구두의 발뒤꿈치가 남자의 성기를 찍어누르고 있었다.
찢어지는 비명이 또다시 방 안에 울려퍼졌다.
잠시 후 해무가 발을 들자, 짓이겨진 성기가 그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피는 흐르지 않았다. 대신 한가운데가 뚝 꺾인 채로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음경 골절이었다.
남자가 죽일듯한 눈으로 해무를 노려보며 마구 악을 썼다. 그 몸짓에 의자가 들썩일 정도였다. 하지만 여전히 의자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손목과 발목을 묶고 있는 케이블 타이는 단단하게 조여져 있었다.
"@$%^! #&*@%!"
남자는 연신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중국어를 모르더라도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해무는 이번에는 한국말로 하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질문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이번에는 발을 들어 남자의 한쪽 불알 위에 올려두었다.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렸다. 그 얼굴을 무표정으로 마주 바라보며, 해무는 불알을 지긋이 눌렀다. 구둣발 밑에서 남자의 불알이 천천히 납작하게 일그러졌다.
"@#$^@#%[email protected]"
남자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입술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해무는 입을 열었다.
"얘기해. 전부."
해무의 말에 남자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더듬더듬 한 음절씩 말하는 모습.
하지만 남자의 눈빛에 망설임과 계산이 섞이는걸 눈치챈 해무는 다시 발에 힘을 넣어 꾸욱, 하고 불알을 짓눌렀다.
"그만, 그만!"
남자가 처음으로 서툰 한국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해무는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하지만 조금씩. 남자의 불알이 아까보다 눈에 띄게 납작해졌다. 남자가 이성을 발광하며 소리질렀다.
하지만 쓸모없는 행동이었다.
툭,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해무의 구두가 남자의 불알을 완전히 짓뭉갰다. 작은 소리였지만 방 안을 전부 채울 정도로 들려왔다.
남자는 이번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대신 눈을 까뒤집고 경련하며 입에서 새하얀 거품을 쏟아냈다. 각목처럼 꼿꼿하게 일자로 펴진 몸이 부들부들 경련했다.
꺽인 성기 끝에서 피와 정액이 섞인 걸쭉한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해무는 방 구석에 놓여있던 물병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남자의 머리 위로 기울였다. 쏟아져나온 물이 남자의 얼굴을 적셨다.
정신을 차린 남자는 커흑, 하고 신음을 흘리며 의자에 묶인 몸을 비비 꼬았다. 얼굴에 서려있던 독기는 사라져 있었다. 대신 공포와 쇼크가 자리해 있었다.
"불알이 몇개 남았지?"
해무가 물었다. 하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가랑이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연신 끄윽거리는 신음을 흘렸다. 해무는 손바닥으로 남자의 얼굴을 철썩 때렸다. 가볍게 뺨을 때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손을 휘두를 때마다 목이 홱홱 꺾일 정도의 손찌검이었다.
"몇개 남았냐고."
"한개!"
남자가 콧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그게 하나 남은 불알을 간수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도 되는 것 마냥.
"산수를 잘 하네. 뺄셈 한번 더 할까?"
남자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 그럼 다른 대답도 잘 하겠지? 네놈 정체. 목적. 그리고 모든 것."
남자는 이번에는 곧바로 이야기를 쏟아냈다. 두서없이 이어지는 말에 해무는 얼굴을 찌푸렸다. 정리하면 자신은 명령을 따랐을 뿐이고, 저 여자를 왜 납치 하는지는 모른다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누구 명령을 받아서 움직였냐고. 똑바로 대답 안해?"
그렇게 소리치며 해무가 마저 남은 불알에 다시 발을 올리려는 순간,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깨졌다. 동시에 남자의 가슴팍에 퍽 하고 피가 튀며의자와 함께 뒤로 쓰러졌다.
해무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창문 옆의 벽 뒤로 숨었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공격에 순간적으로 뿜어져나온 아드레날린이 머릿속을 물들였다.
해무는 흥분을 억누르고 생각했다. 습격인가? 하지만 적의 그림자는 비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격?
방 한가운데에서는 여전히 남자가 의자에 결박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해무는 손을 뻗어 보았지만 닿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저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놈은 소중한 정보원이다.
해무는 아까전 바닥에 던져둔 허리띠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남자를 향해가볍게 휘둘렀다.
처음은 빗나갔다. 그리고 뒤이은 몇 차례의 시도 끝에 버클이 의자 등받이에 걸렸다. 그것을 잡아당기자 남자가 의자와 함께 딸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확보한 몸뚱아리를 벽 뒤로 숨겼다. 하지만 상태는 좋지 않았다. 총알이 박힌 곳은 가슴 오른쪽. 심장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가까운 곳이었다. 몸이 움찔거릴 때마다 가슴팍에 뚤린구멍에서 피가 벌컥벌컥 솟아나왔다.
해무는 자신의 셔츠 어깨죽지를 찢었다. 그리고 뭉쳐서 남자의 총상에 대고 눌렀다. 상처를 압박하자 남자의 팔다리가 쇼크로 부들부들 떨려왔다. 하지만 지혈은 쉽지 않았다. 흰 셔츠 뭉치가 금세 붉게 물들었다.
숨을 껄덕이던 남자는 잠시 후 움직임을 멈추고 축 늘어졌다.
해무는 기다렸다. 깨진 창문 밖. 그곳에서 다음 공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저격수가 자리를 떴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해무는 남자의 머리를 발로 조심스레 밀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노을빛 안쪽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십 분이 지나도 공격은 다시 이어지지 않았다.
그제서야 해무는 몸을 일으켰다.
창고 안에 남은 것은 자신과 시체 한구. 피 냄새. 노을빛 속을 떠다니는 먼지. 깨진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 뿐이었다. 밖에서는 개점을 준비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싸늘하게 식은 시체를 바라보며 해무는 욕설을 내뱉었다.
개같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