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창관의 성모 (11)
[범인이 사망한 다음 날, 창관 야화]
"그래서, 기껏 잡은 범인이 죽었다ㅡ 이 말인가?"
마담이 담뱃대의 연기를 빨아들이며 물었다. 해무는 맞은 편의 소파에 앉은 채, 접대부가 내놓는 찻잔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내가 죽인게 아니야. 어딘가에서 날아온 총알을 맞고 죽었지."
"흥미롭군."
마담의 말대로 흥미로운 일이었다. 동시에 엿 같은 일이기도 했다. 범인을 더이상 심문하지 못하게 됐음은 물론이고, 그를 입막음 하고자 하는 누군가가 뒤에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었으니까.
"좋아.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 산 자에게 물어야겠군. 놈의 정체는 뭐였지?"
"몰라."
해무도 놈의 정체를 캐려 했지만 실패했다.그 역시 저격 탓이었다.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지독한 사투리를 쓰는 중국계 전투원이라는 것 뿐이었다.
"그렇다면 목적은?"
"그것도 몰라."
이번에도 대답은 같았다.
물론 일차적인 목적은 알고 있었다. 셴이라는 소녀를 납치하는 것. 무엇을 위해 그녀를 납치하려 했던 것인지, 또 위층 창관의 여자는 왜 죽였는지는 아직 몰랐지만 적어도 눈 앞에서 벌어졌던 상황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무는 셴이라는 소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아직 밝힐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다행히 납치미수가 일어난 당일에도 셴을 목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자신과 호두 뿐이었다. 창관 안의 다른 사람들도 비명소리는 들었을 테지만 직접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유안이라는 놈이었다. 그 자식이 셴에 대해 눈치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설령 알고있다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놈은 자신에게 얻어터져서 정신이 없을 테니까.
때문에 지금 마담에게 늘어놓는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근시일 내에는.
그리고 그런 상황을 전달받은 마담의 얼굴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기색이었다.
"살인범의 정체도, 목적도 모른다. 남은 것은 시체 한 구 뿐이다...... 요약하자면 그런 얘기로군?"
"정확해."
해무도 그녀의 기분을 이해했다. 자신이라도 이런 얘기는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범인이 죽었으니 사건도 끝났다는 주장은 무책임하며, 동시에 근거없는 말이리라. 놈의 정체와 목적을 확인하고 그 뿌리를 말살하지 않는 이상, 창관의 여자들은 계속해서 겁에 떨어야 할 테니.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어. 뭐...... 더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좋아."
일부 납득한 마담이 담뱃재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래도 너는 여기에 계속 남아있겠지? 네가 창관 안에서 찾던 사람을 아직 찾지 못했으니까."
해무와 창관주들 사이의 계약은 그런 조건이었다. 돈은 오가지 않는다. 대신 해무는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창관을 보호한다. 그 동안만큼은 창관주들의 협조를 받아, 자신이 원하는대로 창관을 탐문하고 다닐 수 있다는 계약.
하지만 해무는 이번엔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반쯤은."
"반쯤......?"
"계획이 조금 수정됐어. 다른 일도 해야 해."
해무의 말에 마담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얼굴에는 명백한 의심의 기색이 서렸다.
마담도 그냥 창관주 자리에 오른건 아니었다. 구룡성채에서 여자로 살아가면서 자그마한 창관의 주인 노릇을 하려면 뛰어난 감과 눈치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다. 배짱과 결단력은 덤이다.
하지만 해무는 갑종살수다. 고작해야 일개 창관주의 시선에 압도당할 상대는 아니었다.
자신의 시선에도 미동조차 없이 심드렁한 얼굴로 찻잔을 홀짝이는 해무의 모습에, 마담은 한숨을 내쉬며 담뱃대를 내려놓고 말했다.
"해무, 내가 너에게 아무것도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계약상으로 그렇지."
"계약서만 갖고 얘기하는게 아니야."
마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설령 계약서에 쓰여있다 하더라도, 네가 총구를 들이대며 협박하면 이 홍등가 안에널 막아설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해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여자들도, 창관주들도, 그리고 허접한 경호원들도. 자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창관과 이 거리를 위해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야. 거리가 한산해지고 장사가 안되면 이들도 돈을 못 벌지. 여길 나간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그저 몸을 파는 것만이 그들이아는 전부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마담의 입술은 보기드물게 감정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창관주라는 역할을 맡고 있는거야."
"결국 민심 때문이라는 얘기잖아?"
건조한 해무의 대꾸에 마담의 얼굴이 굳었다.
"어차피 너희들도 안전이나 사람들의 보호에 신경쓰지 않는거 알아. 누구나 알지. 자칭 경호원이라는 놈들 몇을 만나봤어. 다들 있으나마나한 쓰레기더군."
"......모든 창관주들이 나처럼사명감을 갖고 있는건 아니야."
"그렇겠지."
물론 그렇게 돌아가는 상황이 마담 혼자의 탓은 아니었다. 그녀와 생각이 다른 창관주들도 많았으니까.
어찌됐건 창관주들에게 있어서 민심이란 것은 중요했다. 그저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 뿐이라면 괜찮다. 여자들이 남 일이라 생각하며 평소와 같이 행동한다면.
하지만그녀들이 겁을 먹고 집단으로 패닉에 빠진다면 문제가 된다. 장사를 못 하고, 가게의 매출이 떨어진다. 이건 창관주들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해무의 말대로, '민심'을 다스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약속대로, 아직 완전히 떠나진 않겠어. 하지만 앞으로 창관을 자주 비우게 될거야."
해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여자들에게는 범인을 찾으러나갔다고 말해둬. 그럼 괜찮겠지."
"해무."
마담이 떠나려는 해무를 불러세웠다.
"정말 내가 너를 믿어도 되겠어?"
해무는 그렇게 묻는 마담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런 대답을 남기지 않은 채, 그대로 마담의 방을 떠났다.
홀로 남은 마담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려두었던 담뱃대를 다시 쥐어들고 입에 문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ㅇ ㅇ ㅇ
창관 야화를 나오고 마주한 거리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살인 사건의 범인이 죽었다는 소문은 금세 퍼졌다. 하지만 기뻐하거나 안도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건 창관 안에서 누군가가 또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누가 됐건 간에 죽음이라는 소식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법이었다.
언제나 스스럼없이 말을 걸던 메이린과 수아도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해무는 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지나쳤다. 저들에게까지 상황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럴 의무도 없을 뿐더러, 굳이 피비린내 나는 얘기를 들려줄 이유도 없었으니까.
해무는 곧장 창관 홍련으로 향했다. 홍련의 여자들은 이번에는 해무를 몰라보지 않았다. 대신 말도 걸지 않았다. 덕분에 귀찮은 질문을 받지 않고도 방 앞에 선 해무는 문을 두드렸다.
"열어."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주먹으로 쾅쾅 두드려도 여전히 문이 열리지 않자 해무가 말했다.
"나 총 있다. 문 부서져도 상관 없으면 계속 그렇게 있어라."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그제서야 문이 열렸다. 하지만 이제 문 대신 호두가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해무는 물끄러미 호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문을 사이에 두고 서서 얘기할건가? 그건 너한테도 좋은 일이 아닐텐데."
해무의 말대로, 창관 홍련의 여자들이 복도를 지나가며 둘의 모습을 힐끗힐끗 곁눈질하고 있었다. 호두는 짧은 고민 끝에 해무를 방 안으로 들이고 잽싸게 문을 닫았다.
"셴은 못 내줘."
해무가 입을 떼기도 전에 호두가 말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은 절대로 소녀를 해무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일단 설명부터 해줬으면 좋겠군."
해무가 말했다. 그럼에도 호두는 아무런 대꾸도, 행동도 보여주지 않았다. 묵묵부답으로 선 채 해무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장난스럽고 쾌활한 기색은 섞여있지 않았다.
"말 해. 저 아이는 언제부터 데리고 있었지?"
재차 이어진 요구에 호두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난 주."
"그동안 어디에 숨겼는데."
"일할때는 옷장에 숨겼어. 셴은 조용하니까 괜찮았지.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좁고 어두운 곳에 두고 싶지는 않았어. 그래서 적어도 낮에는 가능하면 방에 두었는데ㅡ"
낮이라 잠시 방에 내놓은 와중에 유안이라는 놈이 불러내서 뒹굴어댔고, 그 사이에 납치 시도가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저 아이는 어떻게 알게됐지?"
"......."
"너한테 넘겨준 사람이 있을거 아냐."
"윤."
"윤?"
이상하게 귀에 익은 이름에 해무는 머릿속 기억을 헤집었다. 아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해무는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떠올렸다.
"지난 주에 벌어진 살인사건. 그 때 죽은 위층의 여자. 맞지?"
호두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해무가 말을 이었다.
"어제 죽은 그 놈이 지난번 살인사건의 범인이었지. 당시에는 윤이라는 여자가 셴을 데리고 있었나? 그럼 그녀가 죽은 것도 저 아이 때문이겠군."
".......나 때문에 죽은 거야."
호두가 꺼져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래로 내리깐 눈은 눈물로 붉게 얼룩져 있었다.
"윤은 알고 있었어.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걸...... 그래서 내가 셴을 넘겨달라고 했는데,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셴을 데려왔다면 윤이 그렇게 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딱히 너의 잘못은 아닌 것 같군."
호두가 빨리 행동했다 하더라도 윤은 죽었을 것이다. 혹은 호두가 대신 죽거나, 최악의 경우라면 둘 다 죽었을 것이다. 어쨌든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저 애의 정체는 뭐지?"
해무가 턱짓으로 소녀를 가리키며 물었다. 셴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앉아서 인형처럼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뭐길래너와 윤은 목숨까지 걸어가며 저 애를 보호하는거고, 정체도 모를 놈들이 꼬이는 거냐고."
"대답 못 해."
호두의 태도는 완강했다.
"원한다면 고문해 보던가. 그럼 나도 말하게 될지 모르지."
해무는 잠시 생각했다. 그녀의 말대로, 자신이 고문한다면 어렵지 않게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무는 호두를 고문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해무는 소녀의 앞에 다가섰다. 호두가 황급히 막아서려 했지만, 해무는 소녀의 몸을 잡아끄는 대신 무릎을 굽혀 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셴은 해무와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자신의 바로 앞에 해무의 얼굴이 있었건만, 셴의 시선은 마치 그 너머의 먼 곳을 바라보는 듯 했다.
"그건 뭐야?"
호두가 빈정대는 목소리로 물었다.
"감정 교류? 눈 좀 마주치는걸로 뭐라도 느꼈어? 그걸로 저 아이와 뭔가 통하기라도 한 것 같아?"
"아니."
해무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생긴걸 자세히 봤을 뿐이야. 나도 고작 시선교환 정도로 뭔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해무에게는 감정보다 소녀의모습이 중요했다. 정확히는 그녀가 에이시스 환자인지의 여부가.
해무가 고려하고 있는 한 가지 가능성은, 셴이 자신과 같은 에이시스 환자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누군가 노리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간다. 적어도 아무 특별할 것 없는 자폐증 소녀보다는 에이시스 환자라는 것이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동시에, 해무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실마리가 되어줄 터였다.
"저 아이는 내가 데려가겠어."
"개소리!"
호두가 벌컥 소리질렀다.
"너 맘대로 다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 이 아이는 내가 보호할 거야. 죽어도 너한테 넘기지 않을 거라고!"
"나는 어제 당장이라도 이 애를 데려갈 수 있었어."
흥분해서 마구 소리지르는 호두를 향해 해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어제 데려가지 않고 오늘까지 기다린건 전부 너와 저 애를 위해서야. 쇼크로 일어난 발작을 가라앉히고 진정할 수 있게."
"그게 자비라고 생각해?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너는 몰라."
"뭘 모른다는 거지?"
"아무것도!"
호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에 맞서는 해무의 목소리도 따라서 점점 커졌다. 고성이 오가던 와중, 해무는 문득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셴이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조금 전 까지 미동도 없던 소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호두는 황급히 달려가 셴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옷소매로 소녀의 입가를 따라 흘러내리는 침을 닦아내고는, 붉어진 눈으로 해무를 쏘아보며 물었다.
"지금 이런 애를 정말 데려가겠다는 거야?"
"안됐군. 하지만, 응. 맞아."
호두는 완강했지만 해무도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나는 범인을 잡고 창관을 보호한다. 그리고 창관주들은 내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협조한다.이게 창관주들이 나와 협의한 내용이야."
해무가 품 안에서 계약서를 꺼내들고 말했다. 그곳에는 창관주 모임의 대표인야화 마담의 서명이 확실하게 찍혀있었다.
"만약 네가 계속해서 내게 넘기기를 거부한다면, 창관주들에게 정식으로 요청하겠어."
그 말에 호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만약 셴의 존재가 창관주들에게 발각된다면, 더이상 지금처럼 함께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호두도 지금까지 허락없이 창관에 외부인을 머물게한 책임을 물어쫓겨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사실에, 호두는 더이상 계속해서 해무를 막아서지 못했다.
호두는 머뭇거림 끝에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쫓겨나는건 무섭지 않아. 하지만......."
셴이 발각되어 누군가에게 끌려가는건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게 넘겨. 차라리 그게 나을거야. 이런 창관에서 있는 것보다는 나와 함께 있는게 더 안전하겠지. 그리고 내 문제가 해결되면, 셴은 네게 돌려주겠어."
"넌 몰라. 나는 그냥 이 아이를 보호하는게 아니야."
"그럼 뭔데?"
해무가 짜증을 억누르며 물었다.
"아까부터 너는 내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지. 그렇다면 말해봐. 네가 이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뭔지. 만약 도와줄게 있다면 나도 협조하겠어."
하지만 호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잠시동안 바라보던 해무는 소녀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이번에는 호두도 제지하지 못했다. 셴은 실이 끊어진 목각인형처럼 해무의 손길에 이끌려 몸을 일으켰다.
결국, 호두는 눈앞에서 해무가 셴을 데리고 창관을 떠나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