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4화 〉창관의 성모 (13) (54/82)



〈 54화 〉창관의 성모 (13)

2차 폭발의 가능성을 고려해 잠시 기다리던 해무는,  분이 넘게 지나도 아무런 조짐이 없자 아파트 안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본 몇몇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해무는 물러서지 않았다.

유일하게 셴의 존재 때문에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신경을 껐다. 어차피 지금 밖에 혼자 두는 것 보다는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게 나을 것이다.


폭발의 진원지인 해무의 방은 복도 끝이었고, 덕분에 엘리베이터는 아무 이상없이 작동했다.


낡은 기계식 엘리베이터가 8층에서 멈춰서며 문이 열렸다. 복도는 그을음과 매캐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화재도 마찬가지였다. 꺼져가는 잔불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정도였다. 아파트는 내장재나 외장재가 다 뜯겨져 콘크리트가 드러나 있었고, 때문에 불에 탈 만한 것들은 거의 없었다.


복도를 따라서 안쪽으로 향하자 가장 폭발의 영향이 심한 장소, 폭발의 충격으로 현관문이 뜯겨져나간 방 앞에 도착했다. 해무의 집이었다.


해무는 입구에 서서 자신의 집 안쪽을 살폈다. 벽은 검게 그을려 있었고, 몇 안되는 집기들은 완전히 부서져 흔적 하나 남지 않았다. 폭발로 부서진 파편이 바닥에 잔뜩 흩뿌려져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해무는 셴을 향해 물었다.


"내 집이야. 마음에 들어?"


하지만 셴은 대답하지 않았다. 매캐한 연기에 코가 간지러운 듯, 작은 재채기를 몇  뱉었을 뿐이었다.

"그래, 나도 별로인 것 같아.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그렇게 말하며 해무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파편이 밟히며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집에 남겨둔 물건이 뭐가 있을지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은 물건을 많이 두지 않았다. 덕분에 폭발로 잃어버린 것도 많지 않았다. 살수 일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양복과 구두, 그리고 총은 몸에 지니고 있는 채였다.

낡아서 펌프가 웅웅거리던 냉장고가 박살난 것이 보였다. 한쪽 벽에 쌓아뒀던 술병도 산산조각나 있었다. 그 외의 자질구레한 옷가지나 생활용품도 대부분 다 불에 타거나 혹은 망가져 있었다.


어차피 다 쓸모 없는 것들이었다. 해무는 그것들을 챙기는 대신, 아파트 입구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수상한 사람이 전선이 연결된 포탄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

그게 사실이라면 사용된 폭발물은 포탄을 이용한 급조폭발물일 것이다. 폭발력은 커도 지향성은 약할 수 밖에 없는 타입. 그렇다면 적어도 건물이 무너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죽이려는 의도였다면, 매우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실제로 놈들은 해무가 방을 비운 사이에 폭탄을 설치했다. 그리고 해무의 손끝 하나 다치게 하지 못했다.

만약 정말 자신을 죽이려 했다면, 성채에 널린 일회용 민간 살수들을 고용하는게 훨씬 현실적이었을 것이다. 그마저도 가능성은 낮을 테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짓을 벌인거지?


생각해  수 있는 가능성은 위협과 경고였다. 마피아들은 종종 자신들의 경쟁자에게 경고의 의미로 잘린 손가락이나 총알을 보내곤 했다. 구룡방 또한 자신들의 재정과 수입을 과도하게 위협하는 중국쪽 무역상들에게 같은 짓을 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은 실제로 성공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이번의 경우에도 누군가가 총알 대신 폭탄을 보낸 것이라 한다면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해무는 마피아 조직원도 아니고 무역상도 아니었다. 살수 일을 한 것도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이제와서 이런 경고를 받을 일은 없었다. 만약 있다면ㅡ


해무는 자신의 손을 꽉 쥐고 있는 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깨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셴은 평소보다 약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자신과 동행하게  소녀,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경고. 그 둘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며 해무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와중에 무언가가 밟히며 소리를 냈다.


자그마한 액자였다.


해무는 조심스레 그것을 주워들었다. 유리조각을 털어내고 쌓인 먼지를 불어내자 안에 끼워져있던 사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여자와 두 소년이 찍혀있는 사진이었다.

빛이 바래 있었지만 셋의 머리카락은 모두 새하얀 은발이었다. 꼭 닮은 두 소년의 얼굴은 표정마저도 똑같이 무표정이었다. 오직 둘의 어깨 위에 자연스레 손을 올려둔 여자만이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해무는 잠시동안 말없이 그 사진을 바라보다가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른 무언가가  없는지 확인하려는 순간, 복도쪽에서 소란스러운 발걸음이 들려왔다. 해무는 곧바로 셴을 방 안쪽으로 숨긴 다음, 총을 꺼내들고 문 뒤에 숨었다. 그리고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잠시 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공안들이었다.


해무는 주머니에 다시 총을 집어넣고는,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빨리도 오는군. 공안도 폭탄은 무서운가?"

예상치 못하게 들려온 목소리에 공안들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검은 정장을 입은 은발의 소녀를 발견하고 말했다.


"민간인은 꺼져라. 현장은 공안이 접수한다."


"여긴내 집이야. 네 놈들이나 꺼져."


그 말투와 뻣뻣한 태도에 공안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해무를 둘러쌌다. 순식간에 험악한 분위기가 방 안을 채웠다.

구룡성채에서 감히 공안을 무시하는 일은 있을  없다. 공안을 무시했다가 돌려받을 것은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 뿐이다.


그 때, 뒤이어 또다시  무리의 공안들이 도착했다. 마치 중국식 도복같은 관복 차림의 공안들. 그들은 회색 관복을 입고 있었다. 경사 계급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진녹색의 관복을 걸친 공안이 등장하자, 다른 공안들이 일제히 몸을 비키며 길을 열었다.

해무는 진녹색 관복 차림의 남자를 유심히 관찰했다. 급수는 몰랐지만 공안경감이라는 계급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경감은 현장을 살피다, 민간인이 있는 것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당장이라도 쫓아내거나 혹은 억류하라는 말을 내뱉을 것 같았던 경감은 이내 무언가를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너는......?"

해무도 곧 그가 누군지 눈치챘다. 창관의 살인사건이 있었을 때 몰려왔던 공안들. 그중 한 사람이었다.

한참동안 해무를 응시하던 경감이 입을 열었다.


"계집, 계속 눈에 띄는군."


"내 은발이 좀 특이하긴 하지."


경감이 자신의 은발에 시비를 거는게 아니라는건 알고 있었다. 분명 지난번 창관에서 마주쳤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리라.

경감의 날카로운 시선은 계속해서 해무를 향해 못박혀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전 있었던 창관의 살인사건. 그리고 이 폭발사건. 그리고 그 두 곳에 모두 모습을 드러낸 은발의 여자.  사이를 연결하는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충분한 조사가 필요하겠어."

생각을 마친 경감이 내뱉었다.

"누굴. 나를?"

해무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시시각각 무거워져갔다. 경감의 말에 공안들은 당장이라도 해무를 연행할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해무의 태도는 여유로웠다.


"못 할껄."

"구룡방의 공안에게 불가능한건 없다."


경감의 말대로였다. 구룡성채 안에서 공안에게 불가능한건 없다.

공안은 어디에나 있다. 공안은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모든 자백을 받아낸다. 범인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하지만 그런 공안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남아있었다.


"정 나를 연행하고 싶으면 윗선에서 협의하고 와. 니네들 총장이랑, 그리고 살수회주랑."


해무의 말에 경감의 눈썹이 움찔했다. 살수회주. 그 누구도 함부로  이름을 들먹일 수 없다. 공안이 눈과 귀라면 살수회는 소리없이 다가오는 죽음이었다. 그 누구도 소리없는 죽음의 수장을 입에 담고 싶어하지 않았다. 오직 살수회의 살수들만이 그 이름을 앞세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다.

그리고 덕분에, 경감은 눈 앞의 여자가 누구인지 눈치챌  있었다


"그랬군."

그렇게 말하는 경감의 목소리는 이제야 상황을 이해했다는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갑종 살수들 중 하나가 계집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던데, 그게 네년이었군."


"머리통에 총알 박히기 싫으면 거기까지만 떠들어."

해무가 말했다. 당장이라도 경감을 향해 총구를 겨눌 듯한 모습이었다. 그 광경에 공안들도 한층 더 위협적으로 주변을 조여왔다. 하지만 섯불리 달려들진 못했다. 해무가 살수회소속의 갑종살수라는걸 알게 되었으니.


그리고 해무를 노려보던 경감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살수회 놈들...... 주제를 모르고 날뛰다가는 언젠가 피를 볼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해무는 순순히 동의했다. 해무의 입장에선 살수회가 큰 코 다치던 나자빠지던 알 바 아니었다. 딱히 소속감도 뭣도 느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그리고 네놈들에 의해서도 아니겠지."


그렇게 말하며 해무는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까지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해무의 모습에 공안들은 분노했지만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그리고 살수회에서 가장 소속감없는 살수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하여 수많은 공안들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품 안에는 유일하게 현장에서 챙긴 사진을 넣고, 그리고 한쪽 손으로는 셴을 붙잡은 채.








       ㅇ




등 뒤에 꽂히는 공안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해무는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폭발이 일어나기 전까지 앞에서 모여있던 주민들은 지금은 사라져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폭발이 끝난거 아니냐며 집으로 돌아갔고, 그 외 사람들은 어딘가 다른 곳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텅  아파트 앞의 길가에서, 한순간에 길바닥에 나앉게 된 해무는 고민했다.


폭발로 인한 금전적 피해는 크지 않았다. 살수 일로  돈은 어차피 구룡금고에 안전하게 보관해 두었다. 그저 싸구려 아파트 하나만 잃었을 뿐이었다. 집이야 새로 구하면 된다. 다만 지금 당장 갈 곳이 없다는게 문제였다.

"어디로 갈래?"

해무가 셴을 향해 물었다. 물론 대답은 없었다. 해무의 옆에 몸을 붙인 채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해무는 갈만한 곳을 떠올렸다.

우선은 창관. 하지만 아까전 그곳에서  빠져나온 참이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그 다음으로 떠올린 선택지는 단하였다. 자신과 달리 단하는 꽤나 넓은 집에 살았다.  명 정도 더 재울 공간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한번 단하에게 부탁해 볼까?


고민끝에 해무는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걸리는 신호음이 수화기 속에서 울렸다. 하지만  소리가 몇 번 반복될 때 까지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기다림 끝에 해무가 혀를 차며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아슬아슬한 차이로 연결되었다.

[어. 왜.]

"나 집이 터졌어."


수화기 너머의 단하를 향해 해무가 말했다.


[......뭐? 뜬금없이 무슨 개소리야.]


"말 그대로야. 집이 터졌어. 그래서 갈 곳이 없어."

[잠깐, 집이 터졌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그래서 말인데, 나좀 재워줘. 내가 데리고 있는 애 한 명도."


[뭐? 잠깐만, 뭐?]

수화기 너머에서는 당황한 듯한 단하의 목소리가 연신 이어졌다.


[야, 일단 상황부터 설명을 해 봐.]


"그러니까, 창관에서 납치당하던 여자애를 구했고, 누가납치범을 저격했어. 그리고 누가 내 집을 터뜨렸어."

[아.......]

여전히 해무의 설명은 군데군데 비어있었고 불친절하기 짝이 없었지만, 단하는 대충 상황을 이해한 듯 말했다.


[그래서? 뭐가 필요해?]

"재워줘."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곤란해.]

"응, 나도."


[아니, 내가 곤란하다고.]

"알았어. 지금 거기로 갈ㅡ뭐라고? 혹시 방금 나한테 곤란하다고 말한거야?"


[응.]

단호한 단하의 대답에 해무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입을 뻐끔거렸다.


"곤란하다고? 대체 뭐가 문젠데?"


[문제가  있지.]

"뭔데?"


[지금은 말 못해.]

해무는 이를 갈았다. 자신한테 뭔가를 말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해무는 그 말이 진저리가 났다.

"개소리 말고 얘기해 봐. 이유가 뭔데? 설마 내가 지금 여자 몸이라 불편해서 그래? 형이랑 나 사이에 뭘 그런거까지 신경써. 나는 형이 원한다면 한번 정도는 빨아줄 수도ㅡ"


[그런거 아니니까 제발 좀 닥쳐.]

짜증스런 목소리로 대꾸하는단하의 대답을 들으며 해무는 낄낄 웃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이를 드러낸 채 으르렁대는 단하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아니 근데, 그런게 아니면 뭔데? 내가 형한테 뭐 섭섭하게  거 있어?"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해무는 셴의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댔다. 셴은 항의하듯 우...... 하는 신음을 흘렸지만 그 이상으로 저항하지는 않았다.

[섭섭한건 모르겠고 잘못한건 꽤 되지.]

"내가 형한테 잘못한건ㅡ 그래, 꽤 되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 핑계로 나를  도와주겠다는 거야?"


[안 도와주려고 핑계대는게 아니야. 지금 진짜 좀 바빠.]

"아니 대체 무슨 일이길래ㅡ"


[나중에 얘기하자.]

그 말을 남기고 전화가  끊겼다.

"여보세요?"


끊어진 전화에서 응답은 없었다. 삐삐거리는 신호음만이 울릴 뿐이었다. 잠시 자신의 전화를 노려보던 해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안에 넣었다.

창관으로는 돌아갈 수도 없고, 단하에게도 거절당했다.

이리나의 집은ㅡ 너무 좁다. 어차피 셴의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한번 만나야 하지만 함께 살 수는 없다. 진료실도 좁은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온갖 수상한 환자들이 드나드는 탓에 생각보다 안전한 곳도 아니었다.


그렇게 소거법으로 하나씩 지워나가자, 해무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선택지만이 남았다.


자신의 어린시절 기억이 있는 곳, 그리고 어머니가 묻혀있는 곳.


성당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