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창관의 성모 (15)
[검사 결과가 나왔어.]
"어때?"
해무의 질문에 수화기 너머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알 수 없어.]
"무슨 뜻이지?"
[검사 결과에 에이시스의 징후는 없어. 그냥 여자애야.]
그 대답에 해무의 얼굴이 굳었다. 이리나도 그런 기색을 눈치챈 듯 덧붙였다.
[하지만 그게 셴이라는 아이가 환자가 아니라는걸 백 퍼센트 보증하는건 아니야. 성별이 바뀌고 시간이 많이 지났다면 이 수준의 결과에서 검출하지 못할수도있어.]
이리나의 진료 환경은 열악하다. 그 수준의 검사에서는 지금이 한계라는 뜻이었다.
"정밀 검사는?"
[여기선 불가능해. 하지만 나한테 의료품을 납품하는 중국 쪽 담당자에게 부탁하면 받을 수 있을거야. 피검자의 혈액 샘플을 보내면결과를 전달받는 식이지. 시간은 조금 걸릴거야. 2주 정도.]
"알겠어. 정밀 검사도 부탁하지."
그렇게 말하고 해무는 통화를 끊었다.
성당 안뜰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사늘한 공기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어느새 계절은 가을로접어들고 있었다. 그 공기에 한껏 빨아들였던 담배 연기를 내뿜어 더하며 해무는 생각했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삼일 째. 성당의 삶은 평온했다. 살수회나 창관의 삶과 비교한다면 더더욱. 그동안 셴의 검사를 받았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방금 전 이리나와의 통화에서전달받은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여기, 금연."
어느새 다가온 카밀라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테레사가 찾아."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떠나는 카밀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해무는 담배를 비벼껐다.
본당 옆에 딸린 작은 사무실로 들어가자 테레사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릎 위에는 셴을 앉힌 채였다.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에서는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앉으렴."
해무는 입을 굳게 다문 채로 테레사의 맞은 편에 앉았다.
"이곳으로 돌아온 기분은 어떤지 궁금하구나."
"별 생각 없어."
해무의 대답에 테레사는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물론해무의 대답은 거짓말이었다. 열 살이 될 때 까지 살던 곳에 거의 십 년 만에 돌아왔다. 특별한 감상이 들지 않을리가 없었다. 테레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재차 묻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셴은 잘 하고 있단다."
그렇게 말하며 테레사는 셴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이 아이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지."
"왜 불렀는지 말해."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해무는 이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셴의 거취에 관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해무의 예상대로, 테레사는 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너도 알다시피, 셴은 불편한 곳이 있단다. 말과 소리를 잃었지. 대신에 신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셴을 축복할 테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을 거야."
"원래 사는건 누구한테나 좆같은거야."
"그래,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만약 네가 일과 관련해서 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거라면...... 이 아이의 삶은 더더욱 순탄치 않겠지."
그렇게 말하는 테레사의 눈은 셴을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묻고 있었다. 그 시선을 마주하며 해무는 말했다.
"아직 알려줄 수는 없어. 하지만 걔는 여기에 며칠 더 있어야 해."
"얼마나?"
"적어도 이 주."
이리나가 정밀검진 결과를 알려주기까지 셴은 이곳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셴이 해무의 목적에 필요하지 않다면, 그때는 호두에게 돌려줄 것이다. 그 이후는 그들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다.
"나는 앞으로 창관에 갈 거야. 점심부터 늦은밤까지. 잠은 여기에서 잘 거고."
"우린 너를 쫒아내지 않을 거란다.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전부 너의 뜻이야."
"알아. 그냥 알고 있으라고."
그렇게 말하며 해무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점심 식사는?"
"알아서 할 거야. 카밀라가무서워서 같이 밥 못 먹겠더군."
물론 카밀라는 핑계에 불과했다. 더이상 성당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셴의 정밀검사 결과가나올 때까지 더더욱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해무."
사무실을 떠나려는 해무를 테레사가 불러세웠다.
"너는...... 만약 네가 남자로 돌아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한다면, 그래도 계속할 거라고 생각하니?"
예상치 못한 질문에 해무는 멈칫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답하려고 몇 번 입술을 달싹인 해무는, 결국 대답을 남기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ㅇ ㅇ ㅇ
성당에서 나온 해무는 청홍으로 향했다. 단하와 점심식사를 하려 했지만 연락은 되지 않았다. 요즘 들어 그랬다. 드문 일은 아니다. 살수회의 업을 맡고 있을 때는 바쁜 경우가 많았으니.
점심 시간의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부분의 자리는 이미 가득 차 있었다. 한쪽 구석의 자리에 앉은 해무는 소 내장 국수를 주문했다.
오래지 않아 식사가 나왔다. 해무는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해무가 반쯤 그릇을 비웠을 때 쯤, 한 남자가 가게로 들어왔다. 사람들로 가득 찬 식당을 한 차례 둘러본 남자가 점원에게 물었다.
"자리는?"
남자를 맞은 점원은 얼굴을 흠칫 놀라 굳어섰다. 그리고는 당황한 얼굴로 해무의 맞은편 자리에 합석을 권했다.
안내대로 해무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해무가 먹고 있는 것을 보더니, 나도 같은 걸로, 하고 주문했다.
해무는 상대를 힐끗 확인했다. 남자의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얼굴에 가득 찬 얽은 흉터 탓이었다. 천연두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말투와 행동거지를 통해 장년층이라는건 알 수 있었다.
남자의 앞에도 해무가 먹는 것과 같은 국수가 놓였다. 그리고 둘은 말없이 식사를 계속했다.
국수 위에 올린 내장 구이는 남자의얼굴에 얽은 흉터와 흡사했다. 해무는 묵묵히 식사에 집중했다.
"맛있군."
어느새 먼저 식사를 마친 남자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자네가 왜 이곳을 좋아하는지 알겠어."
해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불쾌함을 내보이지 않았다. 대신 이어서 입을 열었다.
"우연히 만난 김에 한 가지 얘기를 하고 싶네. 같은 소속으로서 조언을 하고자 하네만."
"어디, 한번 떠들어 봐."
해무가 국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식사를 계속하며 말했다.
"지금 일에서 손을 떼게."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아니, 가득 찬 흉터로 인해 표정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는 말이 더정확할 것이다.
"지금 자네가 관계되어 있는 일은 단순히 자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야. 살수회 전체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는 일이지. 이미 자네도 알고 있겠지? 자네에게 많은 눈이 붙어 있다는걸."
남자가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도 해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저 남은 국수를 후루룩 삼켰다. 그리고 앞에 빈 접시를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을 닦아낸 후에야 말했다.
"다 했으면 꺼져."
해무의 말에 남자는 훗, 하고 웃었다.
"그럼 이만."
그렇게 인사를 남긴 남자는해무를 뒤로한 채 먼저 청홍을 떠났다.
ㅇ ㅇ ㅇ
누쿠로. 그것이 청홍에서 마주친 남자의 이름이었다. 7인의 갑종살수 중 한명. 오조와 페이 롱이 죽었으니 지금은 다섯 명 중 하나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는 자신을 우연히 만났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는 갑종살수였지만 동시에 부하들이 많았다.일종의 사조직을 운영하는 셈이었다. 때문에 얼마든지 자신을 감시하고 추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누쿠로는 경고했다. 지금 일에서 손을 떼라고.
그리고 자신을 주시하는 눈이 많다고도말했다.
해무도 그 사실은 눈치채고 있었다. 두명, 세명?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붙어있는 눈들 중 몇은 누쿠로의 부하들일 것이다.
하지만 대체 무엇에 대한 경고일까.
누쿠로는 지금 해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살수회의 업에 뜻하는건 아닐 것이다. 짧은 휴식기에 있는 해무에게 지금 당장주어진 업은 없다.그렇다면 분명 사적으로 진행중인 일에 관한 것이리라.
그것은 창관과 관련된 것일 수도, 성당과 관계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최근 들어 몇번 마주친 공안청과의 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누쿠로는 자신에게붙인 부하들에게 계속해서 정보를 전달받고 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행적을 전부 추적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누쿠로 본인이 직접 움직이지 않는 이상, 놈의 부하들 수준으로는기척 없이 자신을 따라잡을 수 없다. 당장 셴과 함께 성당으로 향할 때도 따라붙은 기척을 느꼈지만,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복잡한 길을 택했고 문제없이 떨쳐냈다. 적어도 셴의 소재에 대해서는 모를 것이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누쿠로가 이야기한 경고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확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조용히 때를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만약 누쿠로가 자신을 방해한다면, 그 또한 박살내면 그만이다.
고개를 들자 어느새 창관에는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거리는 입장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인파 사이에서 해무는 눈에 띄는 얼굴을 발견했다. 호두였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호두는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살가운 모습과는 달리, 차가운 얼굴과 태도로 해무를 무시하고 있었다.
해무도 딱히 말을 걸지는 않았다. 셴과 호두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아둘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 접근하는 것은역효과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면서 요즘따라 유난히 여자들에게 척을 지는 일이 많다고 느꼈다.
호두도 그렇고, 카밀라도 그러했다.
물론 그런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자신의 목표는 에이시스 치료제를 찾는 것이지 여자들과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다. 치료제를 찾아 남자로 돌아온다는 목표와 비교하면 전부 사소한 일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메이린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해무를 찾았다.
"해무! 수아가......"
메이린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차오르는 호흡에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 하지만 해무는 사정을 묻지 않았다. 대신 곧바로 몸을 일으켜 달렸다.
야화 안으로 들어가자 복도까지 퍼질 정도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 움직이자 방 앞에 도착했다. 수아의 방이었다. 문 틈으로는 들뜬 교성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쾌감과 고통으로 가득 찬 교성은 보통 때보다 배는 더 높았다.
곧바로 문을 발로 차서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방, 침대 위에서는 전라의 남자가 란제리 차림의 수아를 깔아 뭉갠 채 원숭이처럼 허리를 연신 흔들어대고 있었다.
뒤에서 일어난 소란에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당황스런 얼굴로 해무를 바라보면서도 허리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높은 신음 소리가 수아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해무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바닥에는 비어있는 주사기 하나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해무는 남자의 머리채를 쥐고 끌어당겼다.
하지만 남자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고 있는 수아가 오히려 남자의 허리에 다리를 감은 채 매달려 있었다. 해무가 재차 남자의 머리채를 잡고 힘껏 당기자, 그제서야 다리가 풀리며 남자가 수아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나...... 나는 돈을 냈어!"
남자가 겁먹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해무는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배를 걷어차자 남자는 개구리처럼 꾸엑,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남자에게서 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수아는 계속해서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었다. 매끈한 피부는 땀으로 푹 젖어있는 채였다. 그곳에 쿨하고 시니컬하던 평소의 모습은 없었다.
해무는 바닥에 떨어진 주사기를 집어들고 바늘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얼굴을 찌푸리며 퉤, 하고 침을 뱉었다.
미약(媚藥)이었다. 성채에서 가장 흔한, 엑스터시를 베이스로 칵테일한 종류였다.
곧바로 수아의 란제리를 찢어서 벗긴 해무는 그녀를 안아들고 달렸다. 체온은 유난히 뜨거웠다. 그리고 공동 욕실에 도착한 해무는 수아를 부스 안에 던져넣고 샤워기의 꼭지를 돌려 물을 뿌렸다.
차가운 물줄기를 몸에 맞으면서도 여전히 수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괴로운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떨었다. 욕실 밖에서는 겁먹은 여자들이 불안한 얼굴로 안쪽을 살피고 있었다.
삼일 만에 돌아온 창관은
여전히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