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창관의 성모 (16)
유안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창관의 복도를 걸었다.
자신의 기분이 더러운 이유는 알고 있었다. 전부 그 빌어먹을 해무라는 년 탓이었다.
그 날, 호두를 불러낸 창고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 년은 자신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굴욕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 여파는 당일 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창관은 좁았고, 자신이 그 년에게 얻어터져 질질 짰다는 얘기는 금세 소문이 되어 퍼졌다. 지금도 부러진 팔에 기브스를 감은 꼴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는 채였다.
그리고 자신보다 강한 폭력을 지닌 존재가 곁에 있는 상황에서, 유안의 영향력은 여자들에게 이전만큼 강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엿 같은 것은, 더이상 여자들에게 몸을 요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호두를 포함한 여자들은 이전처럼 유안에게 겁먹지 않았다.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도 길을 피하거나 시선을 돌리는 대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유안의 옆을 지나쳤다.
물론 어느 정도는 유안의 착각도 있었다.
여자들도 해무가 언제까지나 창관에 있을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해무가 떠나면 언젠가는 유안이 다시 폭군으로 군림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는 것은, 전부 유안의 자격지심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하지만 유안은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고, 때문에 더이상 마음대로 여자들을 학대하고 착취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불쾌하고 우울한 기분으로 창관을 나선 유안은 구룡성채의 어두컴컴한 뒷골목, 그 중에서도 한참 깊은 곳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낡은 정육점이었다. 입구에붙어있는 간판은 깨져서 불도 들어오지 않았다. 뒤틀린 미닫이 문을 양 손으로 당기자, 몇 차례 끼익끼익 거린 후에야 간신히 열렸다. 유안은 손에 묻은 녹물을 보고 으으, 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안쪽의 모습은 폐가와 다름없었다. 붉은 등 아래에는 고기와 뼈가 아무렇게나 대충 널부러져 있었다. 상태를 보건대 며칠은 저렇게 방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유안은 지독한 악취에 코를 틀어막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 남자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 무슨 일이야? 연락도 없이 갑자기 불러내고."
유안이 짐짓 껄렁한 태도로 친한 척을 하며 물었다. 하지만 아저씨라 불린 남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무감정한 시선으로 유안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유안은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렸다. 어차피 하루이틀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이 불만을 내뱉을 입장도 아니다. 자신이 창관에서 일할 수 있게 된건 다 이 남자 덕분이었으니.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나의 주인께서 계신다."
"......뭐? 잠깐, 그런 얘기는 없었잖아!"
자신도 모르게 소리친 유안은 입을 황급히 다물었다. 저 안쪽에 남자의 주인이 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이 곳에서 함부로 떠들어대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주인' 이라 불리는 자. 유안이 그를 만난 것은 고작해야 두세번 정도였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가 이들 무리의 주인이라는 것. 그리고 성채 안의 누구라도 암살할 만한 힘이 있다는 것. 그 두 가지 만으로도 두려움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꼴사나운짓일 뿐더러, 그랬다가는 나중에 큰 뒷감당을 해야될 테니까.
남자를 향해 소리치던 유안은 이제 완전히 주눅이 들어 겁먹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원치 않게 강제로 끌려가는 도살장의 소처럼, 남자의 뒤를 따라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어선 냉동고 안에 냉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미지근하고 쿰쿰한 냄새를 품은 공기가가득 차 있었다. 안쪽에서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놓인 작은 탁자 뒤에서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쿠로였다.
"바쁜 모양이로군."
누쿠로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유안은 목덜미를 따라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자의 목소리, 크고 검은 눈동자의 시선, 그리고 전염병의 흉터로 가득 찬 얼굴을 포함한 모든 것이 자신을 소름돋게 했다.
"내가 자네에게 부탁한 것이 있었지. 뭔지 기억하고 있나?"
"창관에서...... 수상한 동향을 감시하는 것......."
"제대로 기억하고 있군."
그렇게 누쿠로가 말하자 마자, 갑작스레 뒤에서 다가온 우악스런 손길이 유안의 머리통을 테이블 위에 처박았다. 유안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하지만 단단한 손은 계속해서 머리통을 찍어누르고 있었고, 유안은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누쿠로가 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밑에서 일하는 부하들은 많아. 그런데도 어째서 내 부하도 아닌 자네에게 굳이 그 역할을 맡겼는지 알고 있나? 너무 하찮은 일이었기 때문이야."
유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른 손이 유안의 팔을 쥐고 테이블 위에 쾅 올려놓았다. 기브스가 산산조각나며 깨지고 부러졌던 팔이 드러났다. 유안은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며 마구 발악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커다란 중식도가 턱, 하고박혔다. 그 모습에 버둥거리던 유안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섰다.
"하지만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큰문젯거리가 될 수 있는 법. 만약 내가 정말 자네만을 믿었다면 어찌 될 뻔했나? 창관에서 벌어진 사건을 놓치고, 결과적으로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겠지."
"잘못...... 잘못 했습니다. 잘 할테니까ㅡ"
그렇게 말하면서도 유안의 마음 속은 두려움과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체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것인가? 자신이 아는 바, 창관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여자 한 명이 떨어져서 죽고, 해무라는 년이 기어들어 왔다는 것 정도?
누쿠로가 자신을 책망하는 이유는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유안은 똑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커다란 중식도가 유안의 약지 위에 놓였다. 칼날에 비춰지는 유안의 모습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미 상황은 시작되어 버렸어. 그런데 이제와서 뭘 하겠다는 건가?"
"앞으로...... 앞으로도 있으니까......"
유안의 어설픈 대답에 누쿠로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동시에, 중식도가 쑥 하고 작두처럼 유안의 손가락 위로 내리꽂혔다.
자지러지는 비명이 냉동고 안에 울려퍼졌다.
자신을 억류하던 손에서 풀려난 유안이 바닥에 철푸덕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만 돌아가게. 어차피 이번 일은 내가 직접 움직일테니, 자네는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게나."
손을 움켜쥔 채 흐느끼던 유안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냉랭한 축객령. 유안이 바라마지않던 일이었다. 곧바로 유안은 창백한 얼굴로 정육점을 달려나왔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을 달렸다. 저 소름끼치는 무리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멀리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거의 몇 블럭을 도망쳐 떨어진 후에야 숨을 헐떡이며 멈춰섰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것이 앞뒤 가리지 않고 정신없이 도망친 탓인지, 아니면 누쿠로의 경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가쁜 숨이 잦아들고 나자, 고통이 찾아왔다.
붙어가던 뼈가 다시 부러진 것 같았다. 손가락의 고통도 심했다. 다행히 손가락이 통째로 잘려나가지는 않았다. 분명 마디 한두개는 잘렸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확인하니 손가락 끝이 손톱과 함께 살짝 썰린 정도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유안에게는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유안은 손가락을 움켜쥔 채 굴욕감으로 이를 갈았다. 그리고 굴욕감이 조금이나마 가시자 찾아온건 분노였다. 누쿠로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괴물이다.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유안의 분노는 해무를 향해 있었다.
그 빌어먹을 년이 찾아온 이후로 모든게 삐걱이기 시작했다. 창관에서의 자신의 위치가 위협받고 있었으며, 누쿠로에게도 천대받는 처지가 되었다. 전부 그 년 탓이다.
그리고 유안은 이 기분을 갚아주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은 언제나 그래왔다. 누쿠로 같은 강자들은 어찌할 수 없지만, 자신과 비슷한 자리에 있는 놈들에게는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앙갚음을 해왔다.
하지만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었다. 그 빌어먹을 년은 계집 주제에 자신보다도 강한 힘과 기술을 갖고 있었다. 다시 싸우게 된다 하더라도 이길거란 자신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 년의 거만한 얼굴을 짓밟아줄 수 있지?
그리고 짧은 고민 끝에 유안은 전화를 꺼내들었다.
"야. 지금 볼 수 있어?"
유안은 자신의 몇 안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너머에서는 약에 취해 혀 풀린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씨발놈아, 개소리 말고 남는 물건 있으면 좀 내놔봐. 있어?"
그리고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혀가 꼬부라진 대답 속에서도, 유안은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실에 만족한 유안은 곧바로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씨발년,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아주 개처럼 굴려 주겠어.
조금이나마 찾아온 복수의 가능성에, 유안의 입가에 히죽거리는 웃음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ㅇ ㅇ ㅇ
"얘기 좀 하지."
해무가 호두의 손목을 잡아세우며 말했다. 창관에 다시 돌아오고 나서 며칠간 이야기할 틈을 엿보았지만, 호두는 계속해서 해무를 피했다. 하지만 더이상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돌아가는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누쿠로의 경고를 생각하면 더더욱.
"나는 할 얘기 없어."
"셴에 대해서다."
그녀가 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해무도 이미 알고 있었다. 분명 셴의 행방에 대해서 궁금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호두는 해무의 손목을 뿌리치려던 것을 멈추고 그제서야 시선을 마주했다.
"셴은 어디에 있어?"
"내 질문에 답하는게 먼저다. 그 아이의 정체는 뭐지?"
해무의 말에 호두가 머뭇거렸다. 그녀로서도 해무의 질문에 대답하는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호두는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한 채 주변을 힐끔거렸다. 듣는 귀가 있는 곳에서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듯 했다. 그것을 눈치챈 해무는 호두를 데리고 창관의 골목 안쪽으로 향했다. 얼마 전 유안이 호두를 불러냈던 그 창고였다.
"셴은...... 구룡방 관리의 사생아라는 소문이 있어."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자 그제서야 호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누구지? 간부들 중 하나인가?"
"그보다 더 높은......."
"살수회주? 공안총장? 부방주?"
셋 모두가 구룡방의 1급 관리들이며, 가장 큰 실세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쟁쟁한 인물들인데, 여전히 호두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만약 호두가 말하고자 하는 대상이 그들보다 더 높다면, 남은 것은 한 명 뿐이다.
구룡방주. 성채의 권력 구조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자.
수십년 전 여의도가 중국과 남한 사이의 완충지대로 격리된 이후로 구룡성채의 체제를 쌓아올렸으며, 아직까지도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물론 구룡방주는 대중에게 그 모습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은 간부들 조차도 만나지 않았다. 오직 부방주만이 그를 접견하고 목소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성채를 통치하고 있었다.
그만큼 여전히 구룡방주는 비밀스러운 존재였다.
그리고 만약 셴이 방주의 사생아라면,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호두와 해무가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증거는 있나?"
"십년 전, 셴의 어머니는 방주의 정부였어."
"허풍이겠지."
그런 소문은 왕왕 있는 일이었다. 한때 창부였던 여자들이 할만한 자랑거리로는 자신이 고위 관료의 첩이었다느니 하는 종류의 것들 뿐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대부분은 허풍이었다. 셴을 방주의 핏줄로 받아들일 만한 증거로는 전혀 쓸모가 없는 소리였다.
"셴의 어머니는 방주의 아이를 임신하고 도망쳤어. 계속해서 숨어 살았지. 그리고 육개월 전에 죽었어. 공안들의 추격 때문에."
"확실한가?"
"셴의 어머니가 공안들에게죽은건 사실이야. 그래서 셴을 내가 맡게 된거고."
"젠장."
해무는 욕설을 내뱉었다. 공안들이 추격했다면 적어도 완전한 허풍은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미 그 시점에서 셴이 실제로 방주의 핏줄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공안을 포함한 구룡방이 주시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이미 셴은 움직이는 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너는 그런 애를 왜 맡은 거야? 대체 어쩔 셈이었지?"
"내 탓 하지마. 셴은 내가 책임져야 할 아이였어!"
호두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분명히 네게 경고했어. 셴은 네가 함부로 데리고 갈 수 있을만한 아이가 아니라고."
"하지만 방주의 사생아라고는 얘기하지 않았지."
해무의 말에 호두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이건 소꿉장난이 아니야. 창관 구석에서 숨겨가면서 애 하나 키우는 수준의 일이 아니라고. 너는 절대 감당 못해. 그리고 나도 물론이고!"
해무의 고함이 창고 안에 왕왕 메아리쳤다. 그리고 그 소리가 잦아들자, 호두가 꺼질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알려줘. 셴은 어디에 있지?"
"성당에."
그 대답을 들은 호두의 얼굴에 안도하는 기색이 스쳤다.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성당이 이 성채 안에서 몇 안되는 안전지대라는 사실을.
하지만 해무는 더이상 안심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성당이 안전지대라 하더라도 언제나 안에서만 숨어있을 수는 없다.
심지어 정황을 보건데 지금 셴을 쫒고있는건 공안이 아니라 갑종살수인 누쿠로임이 분명했다. 아무리 꼭꼭 숨어있다 하더라도, 누쿠로라면 얼마든지 틈을 노려서 셴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전부인가?"
해무가 물었다.
"그게 네가 숨기고 있는 비밀의 전부냐고."
호두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해무는 시간을 확인했다. 밤 열한 시. 창관은 한창 손님이 몰릴 시간이었다.
"너랑은 나중에 한번 더 얘기하지. 그때까지 우리들 중 누군가가 죽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렇게 말을 남기고 해무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호두를 등 뒤에 남겨둔 채, 초조한 발걸음을 옮겨 창고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