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창관의 성모 (17) (58/82)



〈 58화 〉창관의 성모 (17)

해무는 초조한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조금  호두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의문투성이였다. 셴이 방주의 사생아라는 말은 의심스러울 뿐더러, 섣불리 받아들여서도 안 될 내용이었다. 게다가 증거라고는 호두의 이야기 하나 뿐. 그것 하나만 갖고 셴이 방주의 사생아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황을 고려한다면 호두의 말을 허투루 넘길 수도 없었다. 최근들어 주변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창관에서의 살인 사건과 누쿠로의 경고는 호두의 증언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충분히 있었다.


초조한 기색을 최대한 죽이며 해무는 늦은 밤의 창관동을 나섰다. 밤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을비였다.


목적지는 성당이었다. 길은 매일매일 달라졌다. 전부 혹시모를 미행을 떨쳐내기 위함이었다.


이번에 선택한 길은 상점가의 아케이드를 통과하는 루트. 낮에는 시장이 열리는 거리였다. 천장을 따라서는 플라스틱 캐노피가 길게 이어져 있었고,  위로는 굵은 빗줄기가 투둑, 투둑 떨어지고 있었다.


그 아래를 걸으며 해무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과연 성당이 계속해서 셴을 보호할 수 있을까.


알 수 없었다. 구룡방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 외부 세력은 중국과 남한 뿐만이 아니다. 미국과 바티칸 또한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때문에 구룡방은 성당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다.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은.

하지만 이번 일이 구룡방의 안위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는 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방주의 핏줄인 셴이 구룡방에 위협이 되는 존재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방은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조직이었다. 만약 위협이 될만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충분히 제거할 이유가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 셴 뿐만 아니라 성당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생각에 빠진 채로 발걸음을 옮기던 해무는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발걸음 소리가 사라진 텅 빈 거리에는 굵은 빗줄기가 천장을 때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가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자켓 아래의몸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해무의 손이 천천히 움직여 자켓 안주머니에서 총을 꺼냈다. 그리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천장을향해 겨누었다.

그리고 잠시 후, 총구가 불을 뿜었다. 복도를울리는 폭음과 함께 캐노피에 엄지손가락 만한 구멍이 퍽 하고 뚫렸다. 곧이어  위로 무언가가 털썩 쓰러지며, 검붉은 피가 빗방울에 섞여 주르륵 흘러내렸다.

다급한 발걸음이 일제히 천장을 울리기 시작했다. 해무도 지체없이 달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이어질 때마다 천장에 뚫린 구멍이 하나씩 늘어갔다.

잠시 후, 위쪽에서도 반격이 이어졌다. 마치 원숭이처럼 잽싸게 캐노피에서 뛰어내린 적들은 해무의 뒤를 쫓으며 응사를 시작했다. 빗나간 총알이 발치에 빗발칠 때마다 빗물이 튀어올랐다.

어느새 뒤를 잡혀 쫓기는 모양새가  해무는 한층 더 빠르게 거리를 질주했다. 일직선으로 길게 뚫린 아케이드에서 총으로 무장한 적들에게 추격당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사실을 알고 있는 해무는 곧바로 시장가의 건물들 중 한 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한밤중의 상점가는 괴괴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도 잠시후 이어진 총성에 자취를 감췄다. 연신 계단을 뛰어오른 해무는 모퉁이 너머로 몸을 날려 숨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빗물에 젖은 자켓 소매를 따라 검붉은 피가 섞여서 배어나오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치명적인 총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놔뒀다가는 과다출혈로 쓰러지거나, 아니면 놈들에게 당하게 될 것이다.


찢어낸 셔츠 소매를 팔뚝에 감아 임시로 지혈한 해무는 헐떡이는 숨을 억누르며 생각했다.


미행이 붙었다는 것은 이미 아까 전부터눈치채고 있었다. 빗소리에 섞여드는 억누른 발소리는 희미했지만, 해무가 지닌 살수로서의 예민한 감각은 그 기척을 놓치지 않았다.

단지 오늘 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며칠간 자신을 미행하는 놈들이 있다는 사실은알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의 만남을 통해, 놈들이 누쿠로가 자신에게 붙인 부하들이라는 사실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미행은 특히 심했다. 최근 며칠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접근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쿠로가 자신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가.


해무가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모퉁이 너머에서 억누른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만 손을 떼라. 나의 주인께서는 이미  차례 경고했다."


남자의 목소리에는 중국어의 억양이 섞여있었다. 귀에 익은 사투리였다. 그리고 그 억양에서 해무는 얼마 전 창관에서 마주쳤던 납치범을 떠올렸다. 생포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의문의 저격을 당해 죽은 그 남자.

그 놈도 누쿠로의 부하였군.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해무는 적의 숫자를 헤아렸다.


 명? 스무 명? 정확히는 알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갖고있는 총알 숫자보다는 많았다.

"지금 포기한다면 주인께서는 용서를 약조하셨다."

건방진 새끼, 뭐? 용서?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해무는 숨을 죽인  기다렸다. 투항 제안에도 반응이 없자 놈들이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벽에 몸을 밀착한 해무는, 적이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마자 잽싸게 목을 잡아챘다.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실이 끊긴 인형처럼  늘어졌다.

곧이어 일제히 총알이 날아왔다. 해무는 시체 뒤에 몸을 숨긴  총알을 받아냈다. 몸뚱아리에 총알이 박히는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적들을 향해 시체를 내던지고는, 움켜쥔 리볼버를 휘둘러 턱을 후려쳤다.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난전. 그 속에서 적들 중  명이 또다시 쓰러졌다. 하지만 적의 숫자는 많았다. 놈들은 누쿠로의 사설 조직원에 불과했지만, 하나하나의 실력은 을종 수준에 필적했다. 어둠 속에서의 싸움은 해무에게도 익숙했지만, 을종 수준의 살수 수십명과 뒤엉켜 싸우는 것은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선 상황이었다.

 명을 쓰러뜨릴 때마다 해무의 몸에도 한 번의 공격이 꽂혔다. 데미지는 차곡차곡 몸에 쌓여갔고, 그럴 때마다 몸의 반응도 조금씩 둔해졌다.

결국 막아내지 못한 치명타가 해무의 가슴팍에 꽂혔다. 무거운 주먹이 가슴팍에 직격하자, 가벼운 해무의 몸이 벽에 처박혔다. 악문 이빨 사이로 왈칵 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일격을 꽂아넣기 위한 단검이 비틀거리는 해무의 가슴팍을 향해 쇄도하는 순간, 적의 머리통이 아무런 전조없이 터져나갔다.

그 모습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짧은 간격마다 적들의 머리통이 터져나가거나 가슴팍에 구멍이 뚫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온 공격에 놈들이 멈칫하는 틈을 타 해무는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놈들을 떨쳐내기 위해 달렸다.


먼 거리에서 날아온 총알은 말할 것도 없이 저격이었다. 그 덕에 해무는 자신을 둘러싼 추격자들 사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물론 해무에게 숨겨둔 조력자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 정체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지금은 놈들을 뿌리치는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저격에도 불구하고 누쿠로의 부하들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해무의 뒤를 쫓았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날아오는 총알이 추격자들의 것인지, 아니면 저격수의 것인지도 분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해무는 몸을 낮춘 채 복도를 달렸다.


다행히 어느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총격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부린다면 누쿠로의 부하들은 금세 다시 따라붙을 것이다.


 탓에 턱끝까지 차오른 숨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달린 해무가 복도의 모퉁이를 돌았을 때, 예상치 못한 사람과 마주쳤다.


단하였다.


비가 내리는 한밤중의 상점가. 그 곳에서 마주친 둘은 굳어선 채 서로를 마주했다. 해무와 마찬가지로 단하도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양 손으로는 길다란 총을 들고 있었고, 얼굴은 당혹감으로 물들어있는 채였다.


해무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여기서 뭐해?"

단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새 총이야? 멋지네."


해무가 턱짓으로 단하의 손에 들린 총을 가리키며 말했다. 드라구노프. 해무가 보관중인 7.62mm 탄을 사용하는 저격총이었다.

"......별 거 아냐."

단하가 뒤늦게 대답했다. 하지만 한가롭게 대화를 나눌 틈은 없었다. 어느새 누쿠로의 부하들이 코앞까지 쫓아와 있었다.

총알의 파공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해무와 단하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리고 둘은 망설일 틈도 없이, 창문 밖을 향해 몸을 날렸다.






ㅇ   ㅇ  






거의 5층 높이에서 떨어진 해무와 단하는 바닥에 깔린 쓰레기 더미에 그대로 처박혔다. 풀썩 하는 소리와 함께 낙하의 충격이 둘의 몸뚱이를 흔들었다. 입술 사이로 억누른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대로 쓰러져 있을 수는 없었다. 건물 위에서는 여전히 누쿠로의 부하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해무와 단하는 쓰레기의 바다를 가로질러 반대쪽 건물 쪽으로 빠져나왔다. 거의 기어가듯이 창문을 넘어 들어온 곳은 상점가 건너편의 제 2동이었다.


그곳에 조금 전까지 벌어지던 소란은 없었다. 문을 닫은 음식점들이 어두컴컴한 복도를 따라 늘어서 있을 뿐이었다. 누쿠로의 부하들은 무사히 따돌린 듯 싶었다.

해무는 벽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단시간에 혹사당한 육체는 피로감으로 가득 차서,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심지어 피도 많이 흘린 채였다.

하지만 싸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무는 곧바로 단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어깨로 배를 들이받힌 단하의 입에서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고, 둘은 뒤엉킨 채로 한참을 굴렀다. 그리고 다시 멈췄을 때는 해무가 단하 위에 올라타 있었다.

해무의 주먹이 단하의 머리를 향해 내려꽂혔다. 하지만 단하가 고개를 돌려 피하자, 주먹은 콘크리트 애꿎은 바닥을 부쉈다. 이어서 단하가 해무의 가슴팍을 발로 찼고, 그제서야 엉켜있던 둘은 떨어질 수 있었다.


소강 상태에 빠진 해무와 단하는 거리를 벌린 채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해무는 날카로운 눈으로 단하를 노려보며 물었다.

"형이었어? 저번에도?"

얼마 전 창관에서 있었던 저격. 그 사건 또한 단하의 짓이라는 사실은 이제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해무는 확답을 원했다.

"대답해!"


해무의 목소리가 텅 빈 콘크리트 건물에 메아리쳤다. 그리고 그 잔향이 완전히 잦아들고 나서야 단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해무, 이럴 때가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단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명령서를 받았어."


"방주의 사생아를 쫓는 것?"

"아니, 그건 누쿠로의 업이야."

그렇게 대답한 단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군가가 성채의 여자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있어.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 하지만 그들은 옛날부터 그 일을 벌여왔어. 여자들을 여의도 밖으로 탈출시켰지."

해무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구룡방의 관리들이나 살수들은 대부분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일반 성채민들에게도 어느정도 퍼져있는 소문이기도 했다. 구룡방의 감시를 피해 성채를 탈출할 방법이 있다는 소문 말이다.


"구룡방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래서 옛날부터 놈들을 소탕하고 싶어했지."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였다. 여자들은 구룡방의 재산이며 소유물이다. 구룡방이 자신의 소유물이 줄어드는 것을 좋아할리가 없었다.


"하지만 성채를 탈출하는 여자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고, 때문에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았어. 적어도 지금까지는."

성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온갖 사건이 일어난다. 아무리 공안청과 살수회를 보유한 구룡방이라 하더라도, 일년에 고작 여자 몇 명이 탈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규모의 인력을 투입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어. 고위 관리의 사생아가 성채를 탈출할지도 모른다는 첩보가 들어왔거든."


셴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처럼 보였던 이야기에 접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맡은 업은 여자들을 탈출시킨 주동자를 찾아내서 처분하는 것이었어. 그리고 나도 누쿠로와 마찬가지로 방주의 사생아를 주시해왔지. 덕분에 그 사생아가 호두라는 여자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는걸 알아냈고."

"그렇다면 호두가ㅡ"

그제서야 해무는 깨달았다. 호두가 아직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호두는 여성들을 구룡성채 밖으로 탈출시키는 세력의 일원이었으며, 이번에는 셴을 내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것을.

"해무, 당장 그 일에서 손을 떼. 그 호두라는 여자는 위험해. 혼자서 구룡방에 반기를 들고있는 셈이야. 자칫하단 너도 반역자로 몰려서 처분당할 거라고."

하지만 단하의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해무는 달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그만둬 해무!"

단하가 해무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단하의 경고는 해무의 귓가에 닿지 못했다.

창관을 향해 멀어지는 해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단하는 이를 악문 채 욕설을 내뱉었다.


상황이 곤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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