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창관의 성모 (23) (64/82)



〈 64화 〉창관의 성모 (23)

마리아의 얼굴을 기억한다. 상냥한 미소도,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그 손길도.


성당의 초상화로 남아있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하던 시절의 생생한 모습들이었다.


그녀는 성당의 수녀였고, 동시에 어머니였다. 때문에 수녀로 일하면서도 아버지 없는두 아이를 돌보아야만 했다.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서 행복이었을까, 아니면 시련이었을까.

알 수 없었다. 마리아는 이미 죽었으니.


하지만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믿는 것이, 홀로 남은 지금의 자신을 위한 마지막 위안거리였다.




      ㅇ






해무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성당의 안뜰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카밀라가 다가왔다. 그녀의 모습을 힐끔 확인한 해무는 담배를 비벼 껐다.


"그 아이, 너랑 비슷하네."

카밀라가 해무를 향해 말했다. 드문 일이었다. 카밀라가 먼저 해무에게 말을 거는 것은.

"누구 얘기지."


"셴."


당연한걸 물어본다는 투로 카밀라가 답했다.

"셴의 아버지는 구룡방 관리였지. 하지만 얼굴조차 제대로 본 적 없을 거야. 그러다가 버림받게 되었고. 그리고 어머니는ㅡ"


그렇게 말하던 카밀라는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뒤에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해무는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를 잃었다는 뜻이리라. 셴도, 그리고 자신도.

하지만 해무는 분노하지 않았다. 카밀라가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 이야기한게 아니라는건 알고 있었다. 대신에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완전히 같은건 아니지.  아버지는 살아있잖아?"

구룡방주는 살아있다. 물론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낸지는 오래됐다. 어찌보면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는...... 확실히 죽었다. 그것도 자신의눈 앞에서.

자세한 이유는 모른다. 사람이 죽을 이유는 수백 수천 가지가 있다. 아마 구룡방을 배신했다거나,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딱히 슬픔을 느끼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쓰레기같은 인간이었다.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음은 당연하고, 자신과 마리아를 학대하기까지 했다. 덕분에 그의 죽음은 오히려 기쁜 일이었다.

그러니 셴과 자신이 닮았다는 이야기는 반쯤은 맞을 수도, 반쯤은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해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나를 배신자라고 부르는 이유...... 이제 알겠어. 성당을 돕지 않고 대신에 구룡방의 살수가 되어서였군."


카밀라가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 처음에는 그것을 살인 탓이라고 생각했다. 살인을 죄악시하는, 성채의 현실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성당의 흔한 고집이라고 생각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구룡방은 피로 이루어진 도시다. 사람을 죽이는게 설령 나쁜 일이라 하더라도, 살수가 사람을 죽이는걸 비난할 수는 없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는걸 비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 카밀라가 자신을 비난하는 진짜 이유를. 마리아 수녀 때부터 이어져온 계획을 등지고 구룡방의 밑으로 들어간 탓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나는 아무런 잘못 없어. 전부 다 너희들이 숨긴 탓이잖아?"

"그래, 그랬지."


카밀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때 우리는 너무 어렸고,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너는 진실을 밝힐 틈도 없이 성당을 떠났지. 너도, 그리고 해연도."


성당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해무와 해연, 그리고 카밀라는 가까운 관계였다. 친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가까웠다는 뜻이었다.


돌이켜보면, 고아원의 아이들은 오랫동안 머물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새 아이들이 들어오고, 이전까지 있던 아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것이 전부 바깥으로 내보내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제는 알았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 사이에서도 해무와 해연, 그리고 카밀라는 고아원을 떠나지 않았다. 해무와 해연은 마리아의 아이였다. 그리고 카밀라는 어릴 때부터 수녀가 되기를 원했다. 때문에 셋은 성당을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고, 친하다고 하기는 어려울지언정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었다.

마리아가 죽기 전 까지는.

마리아의 죽음 이후, 안그래도 삐걱이던 자신과 해연의 사이는 급격히 냉랭해졌다.태생적으로 심약했던 해연은 해무와는 달리 주변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때문에 마리아의보살핌이 사라지고 나서는 더욱 주변과 겉돌게 되었다. 어머니가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은 둘에게 그런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닮은 점도 있었다. 언제까지나 이 성당에서 머물다가는 구룡성채의 사다리 위로 올라갈 수 없다. 고작해야 신부 직함이나 단 채, 천천히 썩어가는 이 성당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게 전부일 것이다.

어느새 그 사실을 깨달은 둘은 약속한 것도 아닌데 비슷한 시기에 성당을 빠져나가 각자의 삶을 찾았다.  과정에서 서로 다른 조직, 공안청과 살수회에 발을 들였고, 애초부터 반목하던 조직에 속하게 된  사이의 마찰은 조금씩 심해져, 이제는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관계에 있었다.


돌이켜보면, 자신과 해연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뿌리는 어머니였을지도 모른다. 같은 어머니를 두었으면서도 아버지는 다르다는, 복잡하게 꼬인 가족관계는 단순한 성격 차이를 넘어서 사소한 부분에서도 둘을 싸우게 만들었다.

서로 자신이 어머니를 차지하고 싶다는, 오이디푸스적인 소유욕은 형제 사이에서는 흔하게 나타나는 일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흔한 이유로 시작된 갈등은, 이제는 더이상 그 이유를 확실하게 깨닫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게 뒤얽혀 있었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을 반추하는 해무를 향해 카밀라는 조용한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우리가 함께할  있을 거라고 믿었어. 설령 마리아 수녀님이  계시더라도. 하지만 너희들은 떠나고 나 혼자 남겨졌지.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는지, 상상할 수 있어?"


"이제와선의미없는 소리야. 한번 엉클어져버린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 게다가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어."


어쩌면, 이 관계를 되돌릴 시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과 해연 사이의 뒤틀린 관계를. 하지만 확실히, 이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고통스러웠던건 너 뿐만이 아니야. 나도 이 빌어먹을 성채를 떠나고 싶었어! 그런데 나는 왜!"

해무의 메마른 고함이 성당의 안뜰에 메아리쳤다.

"왜 어머니는 나를 내보내지 않은거지? 함께 나갈 수 있었잖아?"

"마리아 수녀님의 생각도 테레사 수녀님과 같았어. 성채 안의 아이들을 뒤로한 채 자신들만 나갈 수 없다는 거지."


꽉 움켜쥔 해무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쩌면 자신은 행복해질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어머니와 계속해서 함께였다면. 그리고 이 성채를 빠져나갈 수 있었더라면.


하지만 자신의 말마따나,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이제  수 있는 것은 그저 나아가는  뿐이다.  끝에 설령 끔찍한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래서, 어떻게 거야?"

카밀라가 물었다.


"성당의 실체를 구룡방에게 보고할 셈이야? 그렇다면 너는 꽤나 큰 실적을 올릴  있겠지.  놈들은 오랫동안 우리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으니까."

"난 놈들을 위해 일하는게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네를 도울 생각은 없어."

어설픈 변명이나 마찬가지인 소리였지만, 해무는 딱 잘라 말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셴을 여기까지 데리고 왔지. 그리고 호두의 유언도 전했고. 그것으로 내 역할은 충분히 했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이게 마리아의 유지를 잇는 일인데도?"


해무는 잠시 생각했다. 고아원의 아이들을 돕는 것. 그리고 마리아의 유지를 잇는 것. 둘  자신에게 있어서는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울 수는 없다. 자신은 살수회의 갑종살수다. 감정적인 이유만으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이다.


무엇보다,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 셴이 에이시스와 관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에이시스 치료제를 찾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에이시스에 완전히 몸이잠식당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고작해야 한달 반 정도. 허투루 낭비할 시간은 없다. 이제 다시 창관을 헤매고 다니며 다른 환자들을 찾으러 다녀야 할 것이다.

"그래, 사실 이정도만  준 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예상 외의 대답에 해무는 고개를 들어 카밀라를 바라보았다.


"진심인가?"


"지금의 너는 살수회의 사람이지, 성당의 사람은 아니잖아? 설령 네가 마리아의 자식이고, 여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더라도."


카밀라의 말은 사실이었다. 최근 십 년간 그가 몸을 담고 있는 조직은 살수회였고, 가장 가까운 연이라고 할만한 상대는 단하일 것이다. 그만큼 해무와 성당 사이의 관계는 약해져 있었다. 가끔 고해성사를 위해 찾아오는 것이 전부였으니.

"지금까지 네가 해 준  만으로도 이미 충분해.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

그렇게 이야기하는 카밀라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해무를 대하며 보여왔던 적대감이 어느정도 누그러져 있었다.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해무는 입을 열었다.


"계획은 언제 시작할 예정이지?"

"정확한 시간은 나중에 정해지겠지만, 3일 뒤야."

"어째서 지금 당장 하지 않고?"

"그 날이 대형 무역 날이거든."

성채에서 사용할 물품 수입을 위한 대규모 무역 일자는 정해져 있었다. 그 날이 되면, 늦은 밤 마포대교를 가로막은 바리케이드가 열리며, 중국에서부터 생필품을 가득 실은 트레일러들이 들어오곤 했다. 이는 국경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구룡방이 택한 방식이다.


하지만 그렇게 국경이 열리게 되면, 반대로 다른 곳의 보안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테레사와 카밀라가 아이들을 내보내는 날로 때를 고른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리라.

"꽤나치밀하게 계획을 세웠군."

"안 그랬으면 지금까지 계속하지 못했을 거야."


카밀라의  대답으로, 해무는 그들이 그저 목회자로서의 신념만 갖고 생각없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십 년 동안이나 계속하는 것은.


"말했듯이, 지금 너의 결정을 비난하지는 않아."


카밀라가말했다.

"하지만 명심해. 마리아 수녀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구룡방에 의해 죽은 것은 아버지 뿐만이 아니었다. 마리아도 구룡방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심지어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구룡방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만  뿐.

한참 전의 일이었지만 그 일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무력감에 휩싸였다.  사실에 해무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 해무로부터 고개를 돌린 카밀라는 뜰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성모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구룡성채는 거대한 창관이나 다름이 없어. 폭력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사람들을 발 밑에 두고 착취하고 있지. 그런 곳 한 가운데서 목숨을 걸고 약자들을 구원한 마리아 수녀님이야말로, 어쩌면 진정한 창관의 성모나 마찬가지였지 않을까?"

석고로 만들어진 성모상은 낡아서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 얼굴에서는 마치 어머니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 했다.


"아이들을 내보내는 계획은 변하지 않아. 셴도 내보낼 거야. 그러고 나면 더이상 볼 수 없겠지. 마지막 시간을 보내 둬."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떠나는 카밀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해무는, 그제서야 주머니 속에서 전화가 진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면에 표시되어있는 것은 이리나의 번호였다.

[왜 이렇게 늦게 받아?]

전화를 받자마자 이리나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볼일이 있었어. 왜."

수화기 너머에서 이리나가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이어서 말했다.

[치료제를 찾았어.]


예상치 못하게 들려온 그 소식에, 해무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치료제를...... 찾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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