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창관의 성모 (25) (66/82)



〈 66화 〉창관의 성모 (25)

공안청 내 접견실.리주철 경감은 초조한 기분으로 기다렸다. 자신의 상관인 류샨 경무관도 함께였다. 그 또한 초조한 것은 자신과 마찬가지인듯,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붙은채였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  보고가 사실이라면, 우리 공안청에게 매우 중요한 사안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답하며 리주철 경감은 생각했다. 류샨 경무관의 말대로 지금 이 보고는 중요했다. 단순한 실적 올리기 용도가 아닌, 조직 전체에 영향을 끼칠만한 내용이었다. 말단인 자신조차 그렇게 짐작할  있을 정도였으니, 간부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이라는건 틀림없는 사실이리라.


그 무게감에 긴장한 채로 얼마나 기다렸을까. 잠시 후 비서가 둘에게 다가와 들어가도 좋다는 말을 전했다.

문을 열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 리주철 경감은 밝은 햇빛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광활한 집무실 한 가운데는 데스크 하나가 놓여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구룡성채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은발의 소년은 둘을 등진 채,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총장님."

류샨 경무관이 부르는 소리에 그제서야 해연은 고개를 돌리고 자리에 앉았다.


맞은 편에 앉은 리주철 경감은 해연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 상사를 모시는 입장이었지만, 경감은 그것을 불합리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만큼 공안의 관리자로서 해연의 능력은 뛰어났다.

선이 가느다란 얼굴과는 달리, 공안으로서의 해연은 무자비하고 망설임이 없었다. 최근 십 년간 구룡방에 항명하는 자들은 모두 그의 손에 무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소문으로는 지금까지 즉결 처형한 성채민이 수백 명도 넘는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소문까지 들여다 볼 필요도 없었다. 어린 나이에 구룡방 2급 관리에 해당하는 부총장 자리까지 올랐다는 것이 그의 능력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했다. 경감은 그 사실에 경외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자네가 직접 보고 드리게."

경무관의 말에 리주철 경감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품 안에서 서류철을 꺼냈다.

"얼마 전, 창관에서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흔한 치정살인으로 생각했습니다만은...... 좀 더 들여다보니 살수회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살수회?"

무표정을 유지하던 해연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묘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게, 얼마 전에 저희 조에서 확보한 첩보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경감은 서류철에 끼워져있던 사진을 꺼내 해연에게 내밀었다.

사진 안에는 한 여자가 찍혀있었다. 검은 양복 차림을  은발의 여자. 멀리서 찍힌 사진인 듯, 카메라를 눈치채지 못한 채였다.

그리고 경감은 보고를 이어갔다. 창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수사하게 되었다는 것.  과정에서 이 여자를 마주쳤고, 얼마 전 있었던 주거지역의 폭발 사건에서도 마주치게 되었다는 것. 이러한 움직임이 구룡방주 사생아의 동선과 겹친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동향을 보았을 때ㅡ 우리 공안청에서 오랫동안 추적해왔던 반동세력과 관계가 있는것이 아닌지...... 하여 보고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경감은 보고를 마치고 입을 다물었다.


반동세력. 그것은 여자들을 성채 밖으로 내보내온 정체불명의 조직을 공안청이 부르는 말이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동안 존재해왔다. 그리고 그들이 행한,여자들을 성채밖으로 내보내는 일은 명백히 구룡방의 의지에 적대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묵인했다. 규모가 크지 않았기에.


그러나 구룡방주의 사생아를 내보내려 한다는 첩보가 들어온 이상, 계속해서 방치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공안청은 최근 들어 놈들을 한층 더 깊숙이 추적해왔다. 그리고 이번 건을 통해 성당이 그 정체가 아닐까 하는 심증을 굳힌 상태였다.


하지만 보고에서 중요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부총장님께 건넨 사진속에 찍혀있는 여자.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갑종살수 해무. 그가 에이시스에 감염된 이후의 모습이었다.

갑종살수가 반동세력과 연관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심각한 정보였는데, 심지어 그는 자신의 눈앞에 앉아있는 공안청 부총장, 해연의 형제였다. 이 소식이 구룡방에 전해진다면 큰 파문이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기회이자 동시에 커다란 위험이었다. 분명 살수회도  첩보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 살수회에게 선수를 빼앗기기 전에.

 사실에 리주철의 손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해연은 말없이 사진을 만지작거렸다.그리고 한참 동안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일에 이 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거로군."


"어떻게 할까요? 승인만 해 주시면 지금 당장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옆에서 잠자코 있던 류샨 경무관이말했다. 하지만 해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진 속의 인물을 응시했다.

리주철 경감과 류샨 경무관은 목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기분을 느끼며 부총장의 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침묵 끝에 해연이 입을 열었다.


"아니, 됐어. 앞으로는 내가 직접 맡지. 수고했어."

예상 밖의 말에 둘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굳어섰다. 공안청 부총장이 직접 사건을 담당하겠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아무리 중요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실무는 경감급 공안이 맡는 것이 관례였다. 부총장이나 되는 직급의 사람이 직접 사건을 맡는다는건,  지휘관이 총을 들고 직접 전쟁터로 나가겠다는 것과 다를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아무도 해연의 결정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굳이 부총장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 결국 둘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조용히 집무실을 나섰다.


방 안에 혼자 남은 해연은 담배를 꺼내물었다. 불을 붙이자, 잠시 후 짙은 연기가  안에 소용돌이쳤다.


담배를 빨아들일 때마다 끄트머리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해연은 사진 속 형제의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담배가 완전히 불에 타서 필터만 남을 때까지.

마침내 결정을 내린 해연은 전화를 들었다. 그리고 다이얼을 돌리고 말했다.


"공안청 부총장이다. 회주를."







ㅇ  ㅇ 






살수회주 주원형은 시종이 가져온 전화를 받아들었다.

[당신 밑의 살수가 문제를 일으켰더군.]


수화기 너머에서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공안청 부총장 해연의 것이었다. 대뜸 자신을 지적하는 그 내용에, 회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문제를 일으켰다고?"

[그래. 예상 밖의 보고를 받았지.]

그렇게 운을 띄운 해연은 방금 전 자신이 알게 된 내용을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추적해왔던 살수회주의 사생아를 해무가 보호하고 있다는 것. 성당이 그 아이를 성채 밖으로 내보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해무가 그 계획을 돕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그런 내용이이어질 때마다 이야기를 듣는 회주의 얼굴이 점점 더 험악하게 일그러져갔다.

[살수회주도 고충이 크겠군. 이렇게 제멋대로인 자를 부하로 둬서야.]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은근한 조롱이 배어있었다. 의도적으로 회주의 감정을 긁기 위한 말투였다.  사실을 느낀 회주의 뺨이 분노로 파들파들 떨렸다.


"건방진 놈. 네놈이 감히 살수회의 일에 개입할 수 없다."


[맞는 말이야. 이 사건이 살수회 수준에서 끝날 수 있다면 말이지.]


지금의 사안이 살수회를 넘어 구룡방전체의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였다. 그 사실에 회주는 이를 갈았다. 갑종살수인 해무가 구룡방에 대한 반역 행위를 저지른다면, 단순히 살수회의 위신 문제를 넘어서 구룡방주가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었다.

[한가지 제안을 하지.]

분노한 회주의 모습을 수화기 너머에서 짐작이라도 한 듯, 해연이 조용히 말했다.


[공안청과 살수회는 본디 대립하는 관계다. 하지만 본 사안의 중함을고려하면 협력이 필요할 듯 하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협력. 지금 그 단어가 갖는 무게감은 남달랐다. 그만큼 해연의 제안은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공안청과 살수회가 대립하는 관계라는 해연의 말은 매우 정제된 표현이었다. 실제로는 구룡방 안에서도 가장 정치적 대립이 심한 것이 두 조직이었고,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해 모략과 암투를 아끼지 않는 것이 둘의 관계였다.


그래왔음에도 불구하고 공안청의 부총장은 지금 시점에서 협력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살수회주는 해연의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새겼다. 그리고 짧은 고민 끝에 답했다.


"네놈의 제안, 고려해 보도록 하지."

그렇게 답한 회주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뒤이어 내던진 수화기가 벽에 부딪히며 산산조각으로 박살났다.

"빌어먹을 놈. 위태위태하다 싶었더니 이런 사고를 쳐!"

회주가 노호성을 터뜨렸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살수회의 참모 네르귀 다난은 생각했다. 회주가 가리키는 상대가 누구인지는 분명했다.

갑종살수 해무. 그는 뛰어난 살수였다. 기대 이상의 자질을 보여,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살수회는 그에게 갑종이라는 지위를 부여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에 부족하지 않은 성과를보여주었다. 가끔은 제멋대로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어린 나이 탓이라고 생각하며 묵인해왔다.

하지만 에이시스에 감염된 이후로는 이전보다 눈에 띄게 부족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것은 이미 살수회에서도 충분히 예측하고 있던 일이었다.

비록 사례는 많지 않았지만, 에이시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모두 심각한 능력 저하를 일으켰다. 그것이 감염자의 육체적인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정신적인 혼란 때문인지는 알  없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확인한 현상이었기에, 해무 또한 그럴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정을 봐줄 수는 없었다. 여자의 몸이건, 남자의 몸이건, 갑종 살수는 그 이름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해무는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이번 사건은 무마해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갑종살수 해무는 모르고 있겠지만, 지금 그는 구룡방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이러한 시기'에.

지금 살수회는 중요한 계획을 앞두고 있다. 향후 조직의 존망을 결정할 수도 있는 계획. 그 내용을 아는 것은 살수회주와 자신을 포함하여 극소수의 사람들 뿐이었다. 민감성을 고려한다면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레 움직여야  때였고, 특히 구룡방 내 다른 조직과의 마찰은 최대한 피해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살수회의 오랜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공안청에게 트집 잡힐만한 거리를 제공한 것은 사고를 쳐도 제대로 친 셈이었다.


"사람을 더 붙여야겠군."

한참 동안 눈을 감은 채 고민하던 회주가 입을 열었다.

"확실하게 이번 일을 처리할  있는, 믿을만한 전력이 필요해."


"을종들 중 가능한 인력을 최대한 확보 하겠습니다."

"그걸로는 부족하다. 갑종을 섭외하도록."


"이미 두 명이나 붙어있는데도 말씀이십니까?"

네르귀의 말대로, 현재 사안과 관련된 업을 맡고 있는 갑종은 두 명이었다. 단하와 누쿠로. 그런데 여기에 한 명을 더 붙인다는건, 총  명의 갑종살수를 투입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게다가 지금 살수회가 보유한 갑종살수의숫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오조와 페이 롱이 죽었고, 그들의 후임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세 명이나 되는 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회주는 자신의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안드레이를 호출하라."


 말에 네르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맹렬하게 계산을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중국에 있을 터이지만...... 살수회의 중요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던게 아니었는지요?"

"어차피 지금 일도 그 계획의 일부나 마찬가지다. 놈을 움직일 때가 되었어."

그렇게 말하며 회주는 생각했다.


공안청과의 협력.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피할  없다. 사건의 책임 소재가 살수회로 넘어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공안청과 어느정도 손발을 맞춰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놈들을 진정한 협력 상대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기회가 된다면 공안청은 언제라도 뒤통수를 칠 것이다. 살수회가 그러고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점을 고려한다면, 보유한 전력을 아낌없이 투입해야 할 것이다. 설령 과도하다 할 지라도.

그러한 회주의 생각을 느낀 듯, 네르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명을 따릅니다."


그렇게 부복하고 뒷걸음질쳐 나온 네르귀는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회주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는 시간이 촉박했다.

살수회의 계획. 원래대로라면 그것은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진행했어야 했다. 하지만 해무라는 존재로 인해 예상치 못하게 빨리 움직이게 되었다.


그것이 과연 살수회에게 있어서 득인지 실인지 판단하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굴러가기 시작한 톱니바퀴는 멈출 수 없었다. 부디 모든 상황이 끝났을 때, 그 결말이 살수회를 성채의 더 높은 곳까지 데려다 줄 수 있기를 바라며,네르귀 다난은 긴장된 얼굴로 전화를 꺼내들고 병력을 소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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