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7화 〉창관의 성모 (26) (67/82)



〈 67화 〉창관의 성모 (26)

"그래서, 의뢰 수행을 중단하겠다는 건가?"

"정확히 말하면, 중단이 아니라 잠정 종료지."

해무가 마담을 향해 말했다.


방 안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해무의 맞은편에는 창관 야화의 마담과 창관 홍련의 포주가 앉아있었다. 해무를 바라보는 마담의 얼굴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옆의 포주는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갑작스런 해무의 통보 때문이었다.

"의아하군. 서로가 협의한내용은 그게 아니었을 텐데."

마담이 담뱃대에 쌓인 재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정확한 의뢰의 내용은 창관을 경호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 대신에 창관 안을 탐문하고 다닐 권리를 제공하는 것. 그 내용은 해무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사건의 해결과는 거리가 멀었다. 창관주들은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알지 못했고, 창관의 여자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해무에게도  말은 있었다.

"적어도 살인범은 확보했어. 의도치 않게 죽어버렸지만."

창관의 여자들을 살해한 범인, 그는 이미 죽은지 오래였다. 해무가 죽인 것은 아니었다. 단하의 저격에 죽은 것이었다.


물론 범인이 죽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건이 끝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놈의 뒤에 있는 세력을 뿌리뽑고 나서야 비로소 사건이 마무리되었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살인범의 뒤에 있던 세력, 그 정체는 갑종 살수인 누쿠로였으니까.

구룡방주의 사생아를 처분하는 업을 맡게 된 누쿠로는 셴의 발자취를 추적해왔다. 그리고 그녀가 창관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자신의 부하를 잠입시켰다.  과정에서 일어난 마찰로 인해 여자들이 죽은 것이 살인사건의 진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상대가 누쿠로로 밝혀진 이상, 해무가 취할 수 있는 조치에는 한계가 있었다. 휴식 기간 중 사적인 의뢰를 받아 움직이는 자신이, 공식적으로 살수회의 업을 행하는 누쿠로를 제지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물론 그런 세세한 내용까지 창관주들에게 밝히지는 않았다.  사안은 엄연히 살수회의 업에 관한 것이었고, 그런 내부 기밀을 창관에 공개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당연하게도 마담은 납득하지 못했다.그리고 그것은 창관 홍련의 포주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범인들을 완전히뿌리뽑지는 못했다는 얘기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 많은 피해를 봤어. 실적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여자까지 잃었다고."

여자를 잃었다. 그게 누구를 말하는지는 해무도 알고 있었다.

호두.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자 해무의 얼굴에 잠시 그림자가 스쳤다.


호두는 누쿠로의 아지트에 납치되어 목숨을 잃었다. 창관을 경호하기로 했던 자신이 자리를 비운 짧은 틈 사이에.


어쩌면 호두의 죽음은 필연적인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창관에서 일하는 창녀이며, 비밀리에 성당의 계획을 돕던 협력자이며, 동시에 에이시스 환자였던 그녀의 삶은 팽팽하게 당겨진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조금만 더 일찍 움직였더라면? 어쩌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잠시  사실에 책임감을 느끼던 해무는 입을 열었다.

"창관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지금 사건이 완전히 끝난게 아니라는 것도. 하지만 더이상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근거가 뭐지?"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내뱉은 마담이 물었다.

"앞으로 더이상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이유라도 알고싶군."

"놈들이 원하는건 더이상 창관에 없으니까."

"놈들이 원하는 것이라......"

마담은 놈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살수가 엮인 일에 호기심을 갖고 끼어들어 봐야 좋을것이 없다는 사실을.

설령 마담이 물었더라도 해무는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인 사건이 종식된 이유 자체는 명확했다. 누쿠로의 목표인 셴은 더이상 창관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성당으로 몸을 옮긴 이상, 놈들에게 더이상 창관을 노릴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누쿠로와 마찬가지로 셴의 존재 또한 기밀이었고, 결국 해무가 밝힐 수 있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침묵을 지키는 해무의 모습에 마담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모르겠어. 물론 너에게도 나름의 입장이 있겠지. 너는 살수니까. 그래도 우리 입장이 당혹스러운건 이해하겠지?"


해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받아들이는  밖에."

"자네 제정신인가? 아직 사건은 끝나지 않았어!"


예상 밖으로 쉽게 해무의 말을 받아들이는 마담을 향해 포주가 소리쳤다. 하지만 마담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안 받아들이면 어쩌게? 당신은 갑종살수를 협박할 있어?"

"그건ㅡ"


격분하던 포주는 뒷말을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탁자를 내려치기 위해 한껏 치켜들었던 주먹도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뒤로한 채 마담은 해무에게 말했다.


"이거  가지는 물어보도록 하지. 내가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해? 너를 믿어도 되겠냐고."

물론 기억한다. 셴을 납치하려던 누쿠로의 부하가 단하의 저격으로 죽은 일을 마담에게 이야기했을 때였다. 그  자신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건은 미궁  한가운데 있었고, 확답을 내릴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적의 정체도, 앞으로의 계획도 명확했다. 그리고 에이시스를 해결할 방법까지도 목전에 두고 있다. 이 빌어먹을 병만 치료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설령 누쿠로의 방해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걸로 확실하게 끝난 거야?"

"아직은."

재차 묻는 마담을 향해 해무가 답했다.

"하지만 곧 끝날 거야."


그렇게 답하고 해무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해무가 떠난 방 안에서, 마담은 허공을 떠다니는 담배연기를 한참 동안 응시했다. 사그러들지 않는 불안감을 마음 속 한켠에 욱여넣으며.




  ㅇ  ㅇ







성당의 지하 납골당. 그곳에서 해무는 시간을 보냈다. 평소에 입던 양복 대신 수녀복을 몸에 걸친 채였다.


그것은 테레사의 요청 때문이었다.

작전 실행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 그동안 해무는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지워야만 했다. 성당을 감시하는 자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살수 차림으로 완전히 숨는 것은 불가능했다.여자가 정장을 입는 것만 해도 눈에 띄는일이었는데, 하물며 그런 모습으로 성당에서 머무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때문에 테레사는 수녀복을 건넸고, 해무는 내키지 않았지만 받아들였다.

그렇게 수녀복을 입은 채로 성당에서 머물고있자니, 마치 오랫동안 이곳에서 일해왔던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히 지금처럼 납골당에 있을 때면 더더욱.


그것은 어쩌면 이곳이 특별히  고요하고 경건한 장소인 탓도 있을 것이다. 해무가 느끼기에 성당의 납골당은 십자가가 걸려있는 예배당 보다도 더욱 신성한 장소였다.

피와 칼, 총성이 난무하는 바깥에 비한다면, 이곳은 평온한 휴식처나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묻혀있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괴로움에 신음을 흘리지 않았다. 한때는 모두 저 위의 구룡성채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있었을 것이다. 시시각각 숨통을 조여오는 구룡방의 손길에 몸을 떨면서.


하지만 죽어서 이곳에 묻히게  지금, 그들은 진정한 평온을 얻었을 것이다.


자신 또한 언젠가는 이들과 같은 평온을 누릴 수 있을까. 이 도시의 감시와 통제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던 해무는, 예배당의 육중한 정문이 천천히 열리는 소리를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구룡방의 감시망이 조여오는 와중에도 성당에는 이따금 신자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보통 예배를 드리거나, 가끔은 적게나마 헌금을 내기도 했다. 성당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손님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성당에 남아있는 것은 자신 하나 뿐이었다. 테레사와 카밀라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러 나가 있었다.어쩔 수 없이 해무는 몸을 일으켜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친 뜻밖의 모습에 그대로 굳어섰다.

예배당과 별관을 연결하는 회랑.  곳에서  소년이 벽에 붙어있는 그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해무와 같은 은발의 지닌, 공안청 관복 차림의 소년.


해연이었다.

그림을 보고있던 해연이 해무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그의 얼굴도 해무와 마찬가지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마침내 해연이 창백한 입술이 열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ㅇ  ㅇ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거지?


순간 해무는 혼란스러운 기분에 휩싸였다.


예상치 못하게 마주친 해연의 말.

엄마.


고작해야 단어 하나였지만, 그것만으로도 해무의 평정을 깨뜨리기에는 충분했다. 겉으로는 미동조차 없이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살수로서의 훈련 덕에 껍데기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해연의 말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물론 해연의 말은 착각이었다. 자신은 마리아가 아니다. 동시에, 충분히 일어날 법한 착각이기도 했다. 스스로가 봐도 수녀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은 마리아와 똑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느끼고 있는 당혹감이 쉽사리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해연의 얼굴에도 드물게 동요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해무는 뒤늦게 치마 아래에서 총을 꺼내들어 해연을 향해 겨누었다. 해머를 젖히자 철컥 하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하지만 이내 거두었다. 해연은 혼자였고, 싸우려는 기색도 없었다.

잠시 후, 침착하게 표정을 가다듬은 해연이 물었다.

"수녀라도 될 생각인가?"

"아니. 어떤 놈이 내 집을 박살냈거든."

짧은 대답. 뒤이어 어색한 침묵이 다시 찾아왔다.

사늘한 공기가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회랑으로 들어온 가을 햇살이 바닥을 비추었다. 부유하는 먼지 하나하나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해연은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며 회랑을 따라 걸었다. 뚜벅뚜벅 하는 구둣발 소리가 높은 천장에 메아리쳤다.

"나도 한때는 이곳에서 살았지. 모든 것이 무너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무너지기 전.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해무는 알고 있었다.


마리아의 죽음.


형제에게 있어서 마리아는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동시에 그녀의 죽음은 모든 것의 상실이기도 했다.


어린 소년들에게 있어서 험한 구룡성채의 방패막이 되어주었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형제는 구룡방의 거친 풍파를 맨몸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비록 테레사와 성당이 있었음에도 그 물결이 몸에 스며드는 것은 막아내지 못했다. 때문에 형제는 각자의 결정으로 성당을 떠났다.


하지만 소년들이 생각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죽음.  진상을 파헤치겠다는 결심 또한 함께였다.


마리아는 형제가 보는 눈 앞에서 이름모를 살수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상세한 진상은 알지 못했다. 성채 안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칼부림이 그러하듯, 구룡방이 관련되어 있을 거라 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나 형제가 구룡방의 요직을 차지하고  진상을 파헤치고자 했을 때는 이미 긴 시간이 흘러 있었고, 마리아의 죽음에 대한 경위를 파악할 방법은 전부 사라진 후였다.

결국 마리아의 죽음은 그렇게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히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우리 사이의 가느다란 연은 완전히 끊어져 버렸지. 어쩌면 그건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군. 우리의관계는 태어났을 때부터 비틀려 있었을지 모르니까."


 말에 해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설마 그걸 따지러 여기까지 찾아온 건가?"

"딱히 네게 말하는건 아니다. 그저 추악한 아버지들의 업이 그 자식들에게 이어지게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할 뿐."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비틀린 관계. 그 말은 둘의 복잡한 가정사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까지 해무와 해연은 자신의 아버지들에 대해 언급을 피해왔다.둘에게 있어서 그것은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년 만에, 해연은 금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한 형제가 있었다. 형제는 구룡방의 관리들이었다. 그리고 어느날 우연히, 둘은 한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둘은 상대방 몰래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둘의 마음을 빼앗은 상대는 수녀. 통정(通情)이 금지되어 있는 몸이었다. 하지만 형제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동생이 한 발 먼저 강제로 그녀를 취했다.

이후 수녀는 동생의 아이를 낳게 되지만, 그럼에도 형은 포기하지 못했다. 형 또한 마침내 그녀를 취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수녀는 형제의 아이를 갖게 되었고, 형제는 서로를 죽이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자신이 지닌 구룡방 관리로서의 권한과 권력까지 이용하면서.


그리고  암투 끝에 결국 형은 동생을 죽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형 또한 무사하지 못했다. 자신이 지닌 정치적 역량을 형제간의 싸움에 전부 쏟아부은 형은, 다른 관리들과의 권력 싸움에서패배하여 그 또한 죽음을 맞이했다.


해연의 아버지와 해무의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말하자면, 해무와 해연의  닮은 모습은 마리아 뿐만 아니라 형제였던 아버지들로부터도 물려받은 셈이었다.

"눈물나는 가정사로군."


잠시 과거를 회상한 해무의 감상은 건조했다.


"하지만 그게 어쨌길래? 나는 죽어버린 아버지 따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유일한 가족은 어머니 뿐이야."

"마찬가지다."

해연이 담담한 목소리로 동의했다.

"하지만 우리는 증오하는 아버지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지. 그것도 똑같은 한 여자 때문에. 형제라는건 그렇게 되는 법인가보군."


똑같은  여자 때문에 서로를 증오하고 있다. 그 말은 사실일지도 몰랐다. 형제는 자신이 마리아의 진짜 아들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둘 사이의 반목을 심화시켰다.


그렇다면 둘은 마리아가 죽은지 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었다.

해연은 앞서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지하 납골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때와 비교하면 우리는 많이 바뀌었지. 너는 살수회의 갑종 살수고, 나는 공안청의 부총장이 되었어. 하지만 여긴 옛날과 똑같군."


해연이 돌벽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손끝을 따라 흙먼지가 부슬부슬 흘러내렸다. 그리고 납골당을 둘러보던 시선을 안쪽 깊숙한 곳의 좁은 통로로 옮겼다.


"어머니는 우리가 성당 밖으로 나갈 때마다 걱정스러워 하셨지. 자식들을 위험한 곳에 내놓는게 불안한 탓이었어. 하지만 그래도 우린 계속해서 고아원의 아이들과 몰래 밖으로 빠져나가곤 했지. 이곳의 비밀 통로를 통해서 말이야."

"......그랬었지."

해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당 밖으로 나가는 것은 어린 둘에게 있어서 모험을떠나는 기분을 느끼게 주었다. 당시에 고아원에 있던 카밀라도 함께였다. 셋은 마리아와 테레사의 시선을 피해, 때로는 여의도의 동쪽 끝까지, 때로는 북쪽 끝까지 성채 안을 탐험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결국은 마리아의 품으로 돌아왔다. 둘에게 있어서는 그곳이 유일한 안식처였으니까.

"그렇게나 옛날 일을 잘도 기억하고 있군. 네놈이 이 정도로 감정적인 사람이 됐는줄은 몰랐는걸?"


해무가 빈정거렸다. 하지만 해연은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찾아온 본래의 목적을 꺼냈다.

"너의 최근 행적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제멋대로더군."


그렇게 말하는 해연의 목소리는옛날 이야기를 하며 조금이나마 풀려있었던 이전까지와는 달리 차가워져 있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 같아서 알려주지. 구룡방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경거망동 하지 않는게 좋을 거다. 설령 갑종살수라 하더라도."


내 앞가림은 내가 알아서 한다. 이제와서 가족 흉내를 낼 셈이라면 집어 치워라.

그렇게 말하려던 해무의 입술이 몇  움찔거렸으나, 끝내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대신 죽일듯한 눈으로 자신의 이부 형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해연은 그 시선을 마주하는 대신 몸을 돌렸다.

"섣불리 움직이지 마라. 그게 형제로서   있는 마지막 조언이다."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해연은 성당을 떠났다.

이곳에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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