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창관의 성모 (28) (69/82)



〈 69화 〉창관의 성모 (28)

불은 꺼져있었다. 단하는 어두운 방의 소파에 몸을 기대고 쓰러져 있었다. 눈은 반쯤 풀려있는 채였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열린 창문으로 싸늘한 밤바람이 들어오며 커튼을 흔들었다. 테이블 위에는빈 약통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느릿한 호흡을 이어가던 단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힘없이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바늘이 가리키는 시각은 두 시 정각. 움직여야  때였다.

단하가 몸을 일으키자 방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강아지가 일어나 한 차례 몸을 흔들고는 다가왔다. 단하는 목을 몇 차례 긁어주었다. 그리고 컵에 수돗물을 따라 마시고, 자신의 회색 자켓을 걸치고, 저격 총을 어깨에 걸어맨 다음, 집을 떠났다.


적막한 방 안에는 혼자 남은 강아지가 끼잉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ㅇ  ㅇ 





아이들은 잠에 취해 칭얼댔지만, 테레사가 달래자 비틀비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테레사와 카밀라는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혔다. 해무도 그들을 도와 셴에게 옷을 입혀주었다. 며칠 전에 자신이 사주었던 검은색원피스였다. 검은색 에나멜 구두도 함께였다.

그리고 목에는 호두의 유품인 십자가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셴은 잠기운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지, 눈을 비비며 하품했다.

잠시 후, 성당을 떠날 준비가 끝났다.

"모두 몸조심하렴."


테레사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아주었다. 몇몇 아이들이 테레사에게서 떨어지기 싫다는 듯, 끌어안은 팔을 놓지 않고 매달렸다. 테레사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시간을 주고 기다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지금까지 고생이 많았구나. 앞으로는 전부 괜찮을 거란다."

"오......"


셴은 여전히 잠에 취해서 눈을 끔뻑였다. 모습을 바라보며 테레사는 미소를 지었다.


"자, 너희들도 친구들에게 인사해야지?"


테레사가 등 뒤의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성채를 떠나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아니, 오늘 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계획이 끝나면, 남은 아이들이 나가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상 기약없는 기다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선뜻 인사를 하지 못했다. 침통한 얼굴을  채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들은 나가지 못한다는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것이 기나긴, 어쩌면 영원할 가능성이 큰 이별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여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잘 가."

"오!"


여준의 인사에 셴이 화답했다. 그리고 작은 팔을 벌려 여준을 끌어안았다. 잠시 놀란 얼굴을 하던 여준은 울컥 하고 솟아오르는 감정을 안쪽으로 삼켜넘겼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아이들도 인사를 나누었다. 개중에는 훌쩍이며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이별의 인사가 끝나자 테레사는 해무와 카밀라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조심하렴. 도청당할 수 있으니까 핸드폰은 사용 금지인  명심하고."


해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카밀라와 여덟 명의 아이들과 함께 성당을 나섰다.


늦은 밤. 짧고도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ㅇ ㅇ  ㅇ





한밤중의 성채는 칠흑같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저 멀리서 디젤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짐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마포대교를 오가는 소리였다.

밤 공기가 사늘했다. 해무는 좁은 골목을 따라 움직였다. 길은 고작해야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있을 정도로 좁았다. 앞서 걷는 해무의 뒤로는 아이들이 줄지어 따라왔고, 대열의 끝에서는 카밀라가 주변을 경계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동 속도는 느렸다. 아이들을 여덟 명이나 데리고 가면서, 동시에 주변 경계까지 해야하니 어쩔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해무와 카밀라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는, 시간에 맞출 수 있도록 최대한 일찍 출발하는 것이었다. 약속한 접선 시간은 2시 30분. 그때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배는 그대로 떠난다. 아무리 늦어도  전까지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야 하는 것이다.

그 사실에 초조한 발걸음을 옮기던 해무는, 무언가를 느끼고 골목 끝에서 우뚝 멈춰섰다.


야간순찰조였다.

해무는 카밀라에게 손짓했다. 고개를 끄덕인 카밀라는 곧바로 대열의 앞쪽으로 움직였다.

2인 1조로 순찰하는 공안들의 발걸음이 점점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해무는 모퉁이 안쪽에서 숨죽인  기다렸다. 그리고 놈들이 충분히 가까이 다가온 순간, 사냥감을 덮치듯이 튀어나와 한 명의 목을 잡고 비틀었다. 한 차례 우둑, 하는 소리. 그것으로 끝이었다. 공안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실이 끊긴 인형처럼 그대로 쓰러졌다.

나머지 한명이 황급히 총을 꺼내 해무를 향해 겨누었다. 하지만 어느새 뒤에서 튀어나온 카밀라가 공안의 손을 걷어찼다. 총이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린 해무의 공격에,  번째 공안도 그대로 절명했다.

쓰러진 두 구의 시체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가자."


해무와 카밀라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일행은 계속해서 좁은 골목과 쓰레기 더미들 사이를 움직였다. 다행히 이후로 마주치는 공안들은 많지 않았다.무역 날을 택한 것은 확실히 좋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트인 눈앞의 시야에 원효대교 남단과 한강공원이 들어왔다.


벽에 몸을 숨긴  좌우를 확인한 해무는, 여의동로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짓했다. 카밀라와 아이들은 재빨리 도로를 건넜다.


한강공원에 접한 보도를 따라서는 철조망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카밀라는 손에서 펜치를 꺼내 철조망을 하나하나 잘라냈다. 잠시 후, 사람 하나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만들어졌다. 해무는 카밀라를 먼저 들여보냈다.그리고 아이들을 차례차례 밀어넣은 후, 마지막에서야 안쪽으로 들어왔다.


"왔네."

해무의 말에 카밀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효대교 남단. 그것이 둘이 갈라지기로 계획한 장소였다. 여기까지 무사히 왔다는 것은 고비를 한 차례 넘겼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이제 남은 것은 각자의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었다. 해무는 여의나루 역으로, 그리고카밀라는 원효대교 아래의 나루터로.


해무는 여의나루 역에서 치료제를 확보한다. 카밀라는 아이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마포로 간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내려주고, 끊어진 원효대교를 통해 성채로 돌아온다. 그리고 해무와 다시 만나, 성당에 남아있는 테레사와 아이들을 데리고 탈출한다.

그러면 오늘의 일이 전부 끝난다. 성당이 오랫동안 진행해온 계획에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그 사실에 카밀라는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그럼, 삼십분 뒤. 이곳에서."


카밀라의 말에 해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떠나려던 해무는 뒤쪽에서 시선을 느끼고 멈칫했다. 고개를 돌리자 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짧은 망설임 끝에 해무는 셴을 끌어안았다.

"오......"


"잘 가라."


소녀의 따뜻한 체온이 몸으로 전해졌다. 가슴팍 아래의 작은 심장 박동도 함께.

과연 셴이 자신의 인사를 제대로 이해했을까.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 순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설령 모른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해무에게 더이상 지체할 여유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셴을 뒤로하고 대열을 빠져나온 해무는 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밀라는 아이들과 함께 나루터를 향해서.


해무는 치료제를 얻기 위해 여의나루 역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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