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창관의 성모 (31)
카밀라와 아이들을 태운 배가 원효대교 아래를 따라 조용히 움직였다. 뱃사공은 천천히 노를 저었다. 검은 강 위를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배는 이따금 찰박이는 소리만을 낼 뿐, 그 외에는 일말의 기척도 내지 않고 있었다.
카밀라는 고개를 들어 대교의 하판을 올려다보았다. 다리 위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공안들 몇 명이 남단 끄트머리에서 순찰을 돌고 있을 뿐, 다리 한가운데까지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배는 이제 원효대교의 3분의 1 정도 되는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이제 몇 분 후면 배는 반대편에 닿을 것이다. 그곳은 중국의 영토였다. 경비들이 있을 테지만 구룡성채 만큼 삼엄하지는않았다. 그곳에 도착하면 아이들을 내려주고 배는 철수한다. 그리고 자신은 원효대교를 통해 성채로 돌아가면 된다.
원효대교는 한 가운데가 끊어진 채였지만, 자신 혼자라면 건너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성당으로 돌아가 테레사 수녀님과 몸을 숨기면 그것으로 모든 작전이 무사히 끝나는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계획을 되내이던 카밀라의 품 속에서 무언가가 진동했다. 카밀라는 손을 넣어 그것을 꺼내들었다.
전화였다.
그 사실에 카밀라는 순간 멈칫했다. 이 전화는 테레사 수녀님만 알고 있는 전화. 지금 순간에 울려서는 안 될 전화였다.
전화의 사용은 도청될 수 있으니까 금지. 그렇게 이야기하던 테레사 수녀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른 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초조함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카밀라는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켜 문자의 내용을 확인했다.
[탄로났다.]
[돌아오지 말 것.]
테레사 수녀님으로부터의 문자였다.
그 내용에 카밀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탄로났다고? 무엇이? 계획이.
전화를 들고있는 카밀라의 손이 한층 더 떨리기 시작했다.
문제가 생겼다. 얼마나 심각한 정도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테레사 수녀님이 도청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에게 메시지를 남길 리가 없었다.
어떡하지?
현재 배는 원효대교의 가운데 지점을 지나기 직전. 반대편에 닿으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뒤이어 벌어진 상황으로 카밀라의 자제심은 한계에 달했다.
폭발.
거대한 폭발이 구룡성채의 어둠을 불살랐다. 위치는 성당. 거의 1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충격파로 인해 피부의 솜털이 곤두설 정도의 폭발이었다.
카밀라는 곧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두 시 삼십 오분. 그것으로 깨달았다.
빠르다.
예상보다 진행이 빠르다.
테레사수녀님이 부비트랩을 작동시켰다는건, 성당에 적들이 침입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적들은 아직 성당이 아이들의 탈출을 도모했다는 증거를 잡지 못했다. 지금까지 마주친 공안이 없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런데도 놈들은 성당에 돌입한 것이다.
"돌아가야 해."
카밀라는 뱃사공을 향해 말했다.
"배가 저쪽에 닿으면 아이들을 내려줘. 그 다음은 중국 측의 조력자들이 알아서 처리할거야."
그렇게 말한 카밀라는 뱃사공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배에서 뛰어올라 다리의 기둥에 매달렸다.
배가 점점 멀어져갔다. 아이들의 얼굴이 불안감에 물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카밀라는 그 시선을 외면하며 이를 악물었다. 아이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그녀로서도 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테레사 수녀님에게 돌아가야 한다. 지금 당장.
초조함을 가라앉히며 카밀라는 기둥의 사다리를 잡고 원효대교 위를 향해 올라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어째서 놈들이 증거도 없이 바티칸의 비호를 받는 성당을 습격했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목적지까지의 이동 과정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카밀라의 머릿속에서는 한층 더 의문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아내는 것은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이 아니었다. 우선은 테레사 수녀님을 구출해야 한다. 놈들이 안에 들이닥쳐 수녀님을 끌고가기 전에, 한발 먼저 성당에 도착해야 한다.
오직 그 일념만을 머릿속에 품은 채, 카밀라는 원효대교의 난간을 따라 질주했다.
ㅇ ㅇ ㅇ
폭발의 충격으로 잠시 의식을 잃었던 테레사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수녀복 소매를 치우자마자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연기가 폐 속을 찔러댔다.
고개를 들자예배당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본디 신성함이 가득해야할 성당은, 이제 전쟁터 같은 모습으로 변모해 있었다.
성화가 그려진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는 전부 부서져서 잔해만이 남아있었다. 예배당을 받치고 있던 기둥도 부러져서, 지금 당장 성당 전체가 무너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아까 전, 문을 부수고 들어와 예배당을 한가득 채우고 있던 공안의 무리들. 그들의 모습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대신 산산이 부서진 몸뚱아리가 육편이 되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테레사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빽빽하게 설치한 부비트랩은 계획대로 공안들을 몰살시켰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구룡방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반역자의 존재를 좌시하지도 않는다.
급파한 병력이 전멸했다는 사실은 곧바로 상층부에 전해질테고, 곧 그들은 더 많은 숫자가 되어 이곳을 습격할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있는 테레사는 고아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어젖혔다. 폭발에 겁에 질린 아이들이 몸을 웅크린 채 침대 뒤에 숨어 있었다.
"얘들아, 생각보다 조금 먼저 빠져나가야 할 것 같구나."
그렇게 말하며 아이들을 챙기는 테레사의 손길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여준, 네가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가 있으렴."
"수녀님......"
여준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리 여준이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다지만, 그래도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괜찮단다. 나도 곧 따라갈 테니까. 약속해 둔 장소는 알고 있지? 그곳에서 만나도록 하자꾸나."
탈출 계획에 대해서는 이미 아이들과 공유해 둔 후였다. 성채 거주구역의 아파트 한 칸. 그곳은 구룡방 몰래 성당을 돕는 신자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피신하기로 약속을 해 두었으니, 며칠간 몸을 숨겼다가 머물 장소를 구하면 된다.
"나가는 곳은 알지? 납골당의 지하통로. 그 안쪽의 비밀통로로 가면 돼."
"하지만 수녀님은ㅡ"
"난 괜찮으니까 가렴."
하지만 아이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어서!"
테레사가 소리쳤다. 성난 얼굴로 재촉하는 그녀의 모습에 얼어붙었던 아이들은 이내 불에 데인듯 황급하게 달려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테레사는 무거운 마음을 가다듬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여유는 많지 않았다.
이제 자신이 저 아이들이 탈출하기까지 시간을 벌어야 할 차례다.
ㅇ ㅇ ㅇ
불티와 잔해가 바닥을 뒤덮은 성당에 저벅, 하는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공안청 관복 차림의 소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타고 있는 예배당 안에 살아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타닥, 타닥 하며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만이 이따금 들려올 뿐이었다.
"하나도 빼놓지 말고 수색해. 단 한 명도 놓치지 말도록."
해연의 명령에 부복한 공안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 남은 해연은 예배당 한가운데에 걸린 십자가를 올려다보았다.
한때 자신의 집이었던 곳. 그곳은 과거의 기억 속 모습과는 달리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그 사실에 철 지난 감상을 느끼지는 않았다. 자신에게 있어서 이곳은 그저 순간 잠시 머물던 장소에 불과했으니까.
지금 이순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구룡방에 반기를 든 무도한 반역자들을 처단하는 것. 오직 그 하나 뿐이다.
그렇게 해연은 안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예배당을 지나 고아원의 숙소 쪽으로 향하자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잔당들이 숨어있을 만한 곳은 뻔했다. 전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이어가려 할 때,
딸랑,
하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해연은 자신도 모르게 멈춰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오랜만이로구나."
뒤쪽에서 테레사가 낡은 종을 든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테레사."
해연이 나지막이 답했다. 눈 앞에 있는 것은 늙은 수녀 하나. 그녀의 손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사용했던 종이 들려있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 치고는 방법이 좀 거칠지 않니? 조금 더 상냥하게 찾아왔더라면 환영해 주었을 것을."
"딱히 놀러온게 아니다. 왜 온건지는 당신이 더 잘 알겠지."
그렇게 말하는 해연의 목소리는 무감정했다.
테레사는 침착하게 입 안에서 말을 골랐다. 등을 따라 식은땀이 축축하게 배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들이 성당을 탈출하기까지는 몇 분이면 될 것이다. 그 동안만 시간을 끌 수 있으면 된다. 설령 자신이 돌아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성채에 숨어있는 조력자들이 아이들을 도와줄 것이다.
"마리아에게 참배하러 온거니? 지금이라도 그렇게 생각했다니 다행이로구나. 해무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찾아왔단다."
마리아.
자신의 어머니를 부르는 그 말에 해연은 입을 다물었다. 어린시절 추억속에 담겨있던 성당의 모습도,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한 십자가의 성상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그였지만, 어머니의 이름을 들은 그의 눈빛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해연은 다시 무표정을 되찾은 얼굴을 한 채로 입을 열었다.
"내게서 시간을 끌고 싶은가? 하찮기 짝이 없는 방법이로군."
그것으로 시간이 순간 멈춘 듯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지하 납골당의 깊은 곳에서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비명은 납골당을 너머 예배당까지 들려올 정도로 날카롭고 높았다. 그 소리에 테레사의 얼굴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이미 성당은 포위되었다.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어. 낡아버린 종소리도, 애들 장난 같은 비밀 통로도, 전부 쓸모없는 짓."
이어지던 비명 소리가 뚝 하고 끊겼다. 이제 성당에는 괴괴한 침묵만이 다시 자리하고 있었다.
해연을 응시하는 테레사의 뺨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이들은ㅡ"
"반역자."
해연이 테레사의 말을 정정했다.
"이곳에 아이들은 없다. 오직 반역자들 뿐."
해연의 손이테레사의 주름진 뺨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붉게 충혈된 테레사의 눈에서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나의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나?"
해연의 질문에 테레사는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해연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전혀 그렇지 않아. 나는 그저, 신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금 일찍 깨달았을 뿐이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새카만 눈으로 테레사를 바라보던 해연은 고개를 돌렸다.
"즉결 심판을 마무리하도록 하지. 너희들은 구룡성채의 소중한 재산인 여성과 아이들을 외부로 반출한 죄가 있다."
옆에 서 있던 공안으로부터 리볼버를 건네받은 해연은 테레사의 이마를 겨누며 말했다.
"이에 성당을 폐하고 관계자 전원을 즉결 처분한다."
신이시여, 이 아이들을 구원하소서. 그들은 아무 죄가 없나이다.
그렇게 기도하며 테레사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성당의 회랑에 메마른 총성 한 발이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