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4화 〉회색의 단하 (1) (74/82)



〈 74화 〉회색의 단하 (1)

이른 아침. 창문에 걸린 블라인드의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개의 느릿한 숨소리가 침실 안을 조용히 채우고 있었다.


자신의 커다란 침대 위에서 잠에 빠져있던 단하는 잠결에 몸을 뒤척였다. 그러자 따뜻한 살갗이 팔에 닿았다. 무의식중에 그곳을 향해 손을 뻗자, 부드러운 유방이 잡혔다. 그것을 천천히 움켜쥐자 옆에서 으응,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하는 손을 떼지 않고 계속해서 유방을 주물렀다. 탄력있는 감촉이 손을 사로잡았다. 여자는 달뜬 숨을 흘리며 몸을 비틀었지만 뿌리치지는 않았다.


이제 완전히 잠에서 깬 단하는 여자의 몸을 끌어당겼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입을 맞추자 여자가 쿡쿡, 하는 웃음을 흘렸다. 입맞춤은 목덜미를 시작으로 쇄골과 가슴을 지나 허리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입술이 닿을 때마다 간지러운듯, 여자의 몸이 이따금 움찔거렸다.

그렇게 여자의 전신에 입맞춤을 끝낸 단하는 여자의 다리 사이를 향해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 끝이 허벅지 안쪽을 간지럽히자, 여자의 입술 사이로 달콤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허벅지를 타고오르던 손가락은 이윽고 다리 사이의 균열에 닿았다. 천천히 그곳을 어루만지기 시작하자, 잠시 후 끈적한 물소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그것은 단하도 마찬가지였다. 여자의 손도 단하의 다리 사이를 향했다. 지난밤 몇 차례의 정사를 치르고 난 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단하의 성기는 커다랗게 부풀어 있었다.

여자는 한  가득 잡히는 단하의 성기를 모아쥐고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끝에서도 맑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 쌍의 남녀는 입을 맞추며,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의 성기를 애무했다.

충분한 시간 동안 애무를 만끽한 여자는, 단하의 성기를 쥔 손을 자신을 향해 끌어당겼다. 여자의 요구를 따라 몸을 일으킨 단하는, 여자의 다리 사이 균열로 자신의 성기를 가져갔다. 성기가 여자의 균열을 열어젖히며, 천천히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여자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남성기가 천천히 자신의 몸 안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오는 감각을 음미했다.


마치 영원과도 같은 기나긴 삽입 끝에, 남녀의 치골이 맞닿았다.

단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남성기를 끝까지 받아들인 여자도 단하의 등을 쓰다듬으며, 긴장된 몸을 천천히 이완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 여자의 몸이 완전히 긴장이 풀린 것을 느낀 단하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슴을 움켜쥐고 목덜미에 키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천천히 움직임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여자의 입에서도 작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얼마 뒤, 가쁜 숨소리가 이어지던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신음 소리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단하의 움직임도 점점 격렬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절정에 다다른 남녀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차례 몸을 움찔거리며 여체 안에 정액을 사정한 단하의 몸이 여체 위로 축 늘어졌다. 눈을 감은  고개를 떨군 단하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여자의 살 냄새와 아침의 햇살 냄새가 콧속을 간지럽혔다.

다시 조용해진 방 안에서는, 한 쌍의 남녀가 헐떡이는 숨소리만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ㅇ  ㅇ  ㅇ





단하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어느새 옷을 입은 여자는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여기."

알몸 위에 가운을 걸친 단하는 서랍에서 새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 여자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여자는 기대보다 두꺼운 감촉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다음에  불러달라는 말을 잊지 않고 남기고는, 단하의 집을 떠났다.

그제서야 혼자가 된 단하는 소파에 털썩 하고앉았다. 그리고 쿠션 틈에서 리모콘을 찾아 꺼냈다. 버튼을 누르자 창문에 걸린 블라인드가 자동으로 접히며 아침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좁은 여의도를 가득 채운 건물들과 그 사이로 이어진 골목길, 그리고 텅 빈 여의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아래의 사람들은 지금쯤 아침을 시작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40층의 아파트에서 비춰지는 풍경에 그런 모습까지는 담기지 않았다.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던 와중에, 단하의 시선 가장자리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탁자 위의 파란색 약병. 지병인 발작 증상을 억제하기 위한 약, SNRI가 담긴 병이었다.


단하는 탁자 위로 손을 뻗어 약병을 집어들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단하는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병이 생겼는지 단하는 알지 못했다. 심지어 병명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강박 장애. 불안 장애. 공황 장애.


모두 어느 정도의 공통점은 있었지만, 자신의 증상과는 조금씩 달랐다. 과호흡과 심장 박동 증가, 동공 확장과 같은 증상은 비슷했지만, 상기한 병이 주의력을 떨어뜨리고 불안 증세를 유발하는 반면, 자신의 경우에는 오히려 정신이 더 날카롭게 가다듬어지며 집중력이 상승하고는 했다.


주치의는 나름의 설명을 시도했지만, 그 어느것도 확실하게 단하를 납득시키지는 못했다. 다만, 어릴 적에는 그저 고통스러울 뿐이었던 이 병이, 살수가 된 지금의 자신에게는 어느정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단하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였다.

남한에서 사업가였던 부모의 범죄로 인하여 성채에 밀입국한 덕에, 고통스러운 지병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니.


얄궂은 일이다.

그렇게 약병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있던 단하는, 무언가를 문득 떠올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방으로 가, 찬장에서 개밥이 담긴 봉투를 꺼냈다. 그 소리를 듣고 강아지  마리가 복도 끝에서 꼬리를 흔들며 달려나왔다.

강아지는 밥그릇 앞에 앉아 기대감 섞인 눈빛으로 단하를 올려다 보았다. 잠시 후, 단하가 밥그릇에 개밥을 쏟았다. 그러자 강아지는 와삭와삭 하는 소리를 내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착하지."

단하는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아침 아홉 시. 이제 슬슬 자신도 움직여야 할 때였다.


단하는 테이블에 놓여있는 빈 와인병과 술잔을 대충 치우고,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걸어놓고, 회색의 스리피스 정장으로 갈아입은 다음,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단하는 마지막으로  안에 권총을 챙겨넣고, 구두를 신은 다음에야 집을 나섰다.

오늘도 바쁜 하루가  것 같았다.






ㅇ  ㅇ   ㅇ


길거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단하는 다방의 창가에 몸을 기댄 채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을에 접어든 날씨는 눈에 띄게 쌀쌀해져 있었다. 옷깃을 여미며 단하는 기다렸다.


잠시 후, 창문으로 나온 손이 종이컵 하나를 건넸다. 그것을 받아든 단하는 지폐 몇 장을 지불했다. 그리고 컵에 담긴 것을 후루룩 하고 마셨다. 따뜻하고 달콤한 밀크티가 입술을 적셨다. 그러다 무언가를 느끼고 품 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 안의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응, 응. 지금 갈거야. 그래,  이따 보도록 하지."


짧은 통화를 마친 단하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따가운 햇살에 눈을 가늘게 떴다. 오랜만에 구름  점 없는 날이었다. 그렇게 잠시 하늘을 바라보던 단하는, 얼마 뒤 발걸음을 옮겨 거리의 인파 속으로 섞여들었다.


ㅇ      




철판을 이어붙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쇳가루가 타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작업복을 걸친 남자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라인더로 파이프를 자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단하는 작업장을 지나 안쪽으로 향했다. 뜰 안에는 수염을 기른 뚱뚱한 남자가 연신 소리지르며 직원들을 향해 명령하고 있었다.


"야, 자재 여기다 쌓아두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냐? 당장 저 쪽으로 전부 옮겨! 그 빌어먹을 발전기 안 쓸때는 좀 꺼 두고."


그렇게 소리치던 남자는 입구 쪽에서 단하의 모습을 발견하고 반갑게 맞이했다.

"아, 단하. 왔군."


단하를 이끌고 테이블로 향하며 남자가 말했다.

"요즘 일거리가 워낙 많아서 고생이야. 이거 한다고 몇 푼 벌지도 않는데 말이지. 게다가 몇 안되는 직원들은 전부 굼뜨고 멍청해서 내 속을 터지게 만들어."

그렇게 묻지도 않은 얘기를 늘어놓으며, 남자는 단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나마 당신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나는 분명ㅡ"

남자는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단하는 남자의 머리를 움켜쥐고 테이블에 내려찍었다. 한번, 두번, 세번. 그리고 바닥에 내던졌다. 주변에서 일을 하던 직원들은 갑작스런 사태에 손을 멈추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철푸덕 하고 바닥에 쓰러진 남자가 몸을 움찔거리며 경련했다. 단하는 테이블 옆의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일이 너무 오래 걸려."


남자가 끄윽거리는 신음을 흘리며 테이블을 짚고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찢어진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가 정보를 요청한게 지난 주야. 그런데 당신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지. 이건 내가 원하는 상황이 아니야."

"단하, 나는ㅡ"

"나는 이미 돈을 냈어. 당신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그런데 결과가 이 모양이로군. 그동안 대체 뭘 했지? 지금 나를 엿 먹이려는 건가?"

남자는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직원들은 전부 주변을 힐끔거릴 뿐,도우러  기색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어쩔  없었어, 단하. 자네를 무시한게 아니야."


 차례 숨을 고른 남자가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청한 정보가 까다로운 내용이라느니,  밖에도 밀린 의뢰가 많다느니 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단하의 귀에 그런 이야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구구절절한 사정 따위는 자신이 신경쓸 바 아니었다. 돈을 냈으면 그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곳에서 그런 기본적인 규칙을 지키지 못한다면, 몸뚱이에 납탄이 박힌 채 뒷골목에 뒹굴게 될 뿐이다.

"마지막 경고야. 이틀의 시간을 더 주지. 그때까지 갑종살수 해무의 재판에 증언할 사람들의 리스트를 확보해와."

그렇게 말하며 단하는 몸을 일으켰다.


"또 늦으면 그때는 이렇게 친절한 방식으로 찾아오지 않을 거야."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단하는 자리를 떠났다.


단하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서야 남자는 턱까지 차오른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직원들은 여전히 손을 멈춘  남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뭐해, 이 새끼들아! 일 안하고."

그 말에 남자들이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라인더와 용접기의 소음이 다시 작업장 안을 채웠다.


씩씩거리던 남자는 수건으로 이마의 피를 닦아냈다. 끄응, 하는 신음이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피가 묻은 수건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머니 이곳저곳을 확인하던 남자는 씨발...... 하고 욕설을 중얼거리고는 다시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야!  전화 어따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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