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회색의 단하 (3)
단하는 거리를 걸었다.
여의도 구룡성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이 곳에서 생활한지 십 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이곳을 거닐 때면 단하는 여전히 자신이 외지인인 것처럼 느껴졌다. 도시 전체는 마치 회색의 모노톤처럼 보였고, 생동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성채민들 또한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곁으로 공안들 몇몇이 지나쳤다. 노점상에서 물건과 음식을 파는 사람들이 호객을 했다. 망치질을 하며 건물을 수리하는 사람도 있었고, 대야에 담긴 시커먼 물에 빨래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가 단하에게는 전부 스쳐지나가는 영화속의 등장인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를 지나 가게로 들어간 단하는 메뉴판을 보며 주문했다.
"샌드위치 하나ㅡ 아니, 두 개랑 커피 하나 포장."
잠시 후, 갈색 종이봉투에 담긴 샌드위치와 커피가 나왔다. 그것을 받아든 단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사람들 속으로 섞여들었다.
ㅇ ㅇ ㅇ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가는 성채의 골목길에 단하는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한쪽 손에 들고있던 종이봉투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꺼내들었다.
포장지를 벗겨내고 식사를 전부 마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가에 묻은 빵가루를 대충 털어낸 단하는 담배를 꺼내물고 라이터로 붙을 붙였다. 잠시 후, 담배 연기가 뒷골목을 따라 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해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골목길에도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그동안 단하는 미동도 않은 채로 자리를 지켰다. 발치에는 짓이겨진 꽁초 몇 개비가 뒹굴고 있었다.
단하의 시선은 계속해서 한 곳을 향해 못박혀 있었다. 외관부터 허름한 티가 나는 5층짜리 콘크리트 건물. 3층 한쪽의 구석의 창문에서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곳을 계속해서 주시하던 단하는 무언가를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이동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던 단하는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은 그림자는 단하가지금까지 지켜보던 건물로 들어갔다. 단하도 그 뒤를 따라 안으로 향했다.
건물은 폐가나 마찬가지였다. 벽의 타일은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고, 뜯겨진 천장 너머로는 앙상한 골조와 파이프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인기척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앞서 걷는 남자와,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가는 단하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단을 올라 삼 층에 도착한 남자는 복도 끝의 쇠창살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고는 품 안에서 열쇠를 꺼냈다.
녹슨 자물쇠에 키를 넣고 돌리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쇠가 풀렸다. 잠시 후,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쇠창살이 레일을 따라 접혔다. 그럴 때마다 바닥으로 녹이 부슬부슬 떨어졌다. 그리고 남자는쇠창살 뒤에서 드러난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문은 닫히지 못했다. 어느새 끼어든 손이 문을 잡고 있었다.
단하의 손이었다.
그것을 발견한 남자는 황급히 총을 꺼내 단하의 얼굴을 겨누었다.
하지만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단하의 얼굴 한 가운데를 겨눈 채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단하는 자신을 향한 총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총 끝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계속 이대로 있을건가? 아님 들여보내 줄 건가."
단하의 질문에 남자의 시선이 평정심을 잃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 망설임 끝에 한걸음 물러서며 길을 비켰다.
안으로 들어선 단하는 방을 둘러보았다. 안쪽은 지린내와 쿰쿰한 냄새로 가득했다. 일시적인 냄새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벽과 바닥에 깊게 배인 악취였다. 부서진 화장실 문 틈으로 깨진 거울과 세면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타일은 누렇게 찌든 때와 녹이 가득했다.
"네놈, 뭐야."
남자가 단하를 향해 물었다. 단하를 안으로 들였지만 아직 일말의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남자를 향해 답하는 대신, 단하는 탁자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탁자 위에서는 반쯤 먹은 사과가 과도에 박힌 채 썩어가고 있었다.
"뭐냐고 물었어!"
"전임자가 바빠서 대신 왔어."
그렇게 답하며 단하는 들고있던 종이봉투를 건넸다. 남자는 조심스레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포장지에 싸인 샌드위치 한 개가 담겨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남자는 잠시 후, 단하를 향해 세게 내던졌다. 단하는 고개를 틀어 봉투를피했다. 벽에 맞고 봉투가 터지며, 눅눅해진 빵과 시든 야채, 햄 따위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빌어먹을, 누가 이딴걸 달라고 했나? 약속했던 돈이나 빨리 줘."
단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차분한 시선으로 남자의 모습을 관찰했다.
남자의 얼굴은 초췌했다. 퀭한 눈, 벌어진 이빨, 그리고 갈라진 피부에서는 피와 진물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하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얘기 했잖나. 우리쪽에서도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해. 어차피 지금 당장은 식사와 장소도 제공하는데, 왜 돈이 그렇게 급하지?"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남자가 버럭 소리쳤다.
단하는 차가운 시선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잠시 그 시선을 받아내던 남자는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애초에 사람을 이렇게 가둬둔다는게 말이 돼? 나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어. 갇혀있을 이유가 없다고."
"가둬두다니. 혼자 잘도 돌아다니던데."
그렇게 말하며 단하는 남자의 손가락을 힐끗 확인했다. 남자의 손톱에는 말라붙은 피딱지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초조한 듯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가늘게 떨리는 손을 움직여 목덜미를 긁어대기 시작했다. 손톱이 살갗을 벅벅 쓸어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동안 피가 날 정도로 몸을 긁어댄 남자가 말했다.
"약이 필요해...... 약이 떨어졌어. 나를 여기 가둬둘 거라면, 당신들이 그것도 준비해 줬어야지."
"그래서 밖을 싸돌아다녔나? 얌전히 안에 있으라고 얘기 했을텐데. 여길 떠나면 당신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어."
"또 그 개 같은 소리로군. 안전 가옥? 이딴 개집이 무슨 안전 가옥이야. 길거리의 애새끼들이라도 얼마든지 뚫고 들어올만한 곳을."
잠시동안 애원조로 말하던 남자는 이제 급작스레 태도를 바꾸어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당신들, 당신들이 잘못한 거잖아. 약을 달라고! 약을 줘야 내가 얌전히 있을거 아냐, 이 병신같은 새끼들아!"
이성을 잃은 남자가 악을 썼다. 하지만 단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대신 남자의 행동을 방치한 채, 조용히 관찰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동안 악을 쓰고 소리지르던 남자는 이윽고 제 풀에 지쳐 숨을 헐떡였다. 깡마른 남자의 가슴팍이 위아래로 들썩였다.
그제서야 단하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이 심하군. 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게 아닐텐데."
그 말에 남자가 흠칫 하며 뒷걸음질쳤다. 퀭한 눈 아래에서 두려움의 기색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말해봐. 내가 어디서 왔지?"
"고, 공안청......."
남자가 머뭇거림 끝에 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단하는 지체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 공안청이지. 그리고 나는 공안에서 일한 이후로, 이렇게 무례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어. 이러고도 무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당신들은 나랑 약속을 했어. 그걸 지켜야지......."
"걱정 마. 공안청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당신이 협조한 사항에 대해서는 충분한 보상이 주어질 거야. 준비가 끝나면 말이지."
단하가 남자를 안심시키듯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당신이 우리에게 협조한 내용을 다시한번 확인해 봤으면 좋겠군."
단하의 요구에, 남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걸 또 해야 하냐고 항의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남자에게 단하는 달래는 어투로 말했다.
"이건 전부 당신을 위해서야. 이걸 확실하게 해 둬야 당신도 더 큰 보상을 받게 될 거라고."
"보상......"
"그래, 보상. 어쩌면 당신은 그걸로 더 많은 약을 살 수도있겠지. 어때, 마음에 드나?"
단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한풀 꺾인 태도로 단하의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나, 나는 성당에 있었어."
"왜지?"
"거기 있던 수녀가...... 도와준댔어. 마약을 끊게 해 주겠다고. 그래서 새롭게 살아갈 수 있겠다고....... 빌어먹을, 그때는 왜 그런 멍청한 소리에 이끌려 따라갔는지 모르겠어. 약을 끊는다니,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할 리가ㅡ"
"그래, 당신은 성당에 있었어. 그 다음은?"
남자의 대답이 관계 없는 곳으로 향하자, 단하는 대화에 끼어들어 방향을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남자는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홀린 듯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찾아왔어. 그 남자가. 그는 성당에 대해서 내게 물었지. 하지만 나는 거절했어. 정말이야. 처음에는 말이야..... 그랬더니 남자가 그걸 줬어. 약을. 진짜 좋은 거였어. 푸르스름한 색깔의...... 이전까지는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거였어. 세상에, 그렇게 좋은게 있을 줄은ㅡ"
"그게 언제였지?"
"한달ㅡ 아니, 두 달 전인가? 잘 모르겠어."
"좋아, 잘 얘기하고 있어. 그래서?"
"그래, 약을 받고 바로 맛봤지. 아주 훌륭했고, 그래서 말했어. 전부 다. 나는 잘 몰랐지만, 하여튼 뭐든지 말했다고. 성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수녀들이 뭘 하고 다니는지 말야. 그랬더니 그는 자신의 요청을 들어달라고 했어. 뭐, 앞으로도 성당의 동향을 알려달라는, 그런 부탁이었어. 수녀들이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다거나, 그런게 있으면 알려달라고. 그러면 약을 더 주겠다고...... 그래서 했어. 하지만 약은 안 줬지. 쓰레기 같은 놈. 그 놈을 찾아야 해. 그 약을, 파란색이야. 그걸 받아야 해!"
이야기하던 남자의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까뒤집힌 눈이 핏발 선 흰자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피가 말라붙은 손톱이 자신의 목덜미를 쉼 없이 긁어댔고, 그 탓에 빠진 손톱 몇 개가 덜렁거렸다.
"이봐, 정신 차려."
단하가 남자의 뺨을 때리며 말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남자의 초점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게 다인가?"
"그래. 그게 다야."
"좋아. 잘 얘기해줬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지. 당신이 만났다던 그 남자. 그 남자는 누구지?
"자ㅡ 잘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
남자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그짧은 순간에도 눈동자는 이곳저곳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불안정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번 잘 떠올려봐. 아주 중요한 거야. 당신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조용히 이어지는 단하의 질문을 듣는 남자의 초점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남자의 눈을 바라보며 단하는 물었다.
"그의 모습은 어땠지? 키가 컸나? 작았나? 뚱뚱했나? 혹은 수염을 길렀나?"
남자는 두통이 이는듯, 머리를 움켜쥐고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단하는 그러한 남자를 향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옷차림은 어땠지? 말투는? 목소리는? 그가 정말...... 공안청의 사람이었나?"
순간, 흐릿해지던 남자의 초점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반쯤 뒤집혀있던 눈을 원래대로 한 남자는, 단하의 얼굴로 시선을 향하며 물었다.
"당신도 공안청 사람 아닌가? 왜 그걸 나한테 묻지......?"
침묵이 이어졌다. 적막함 속에서 단하와 남자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렇게 단하를 바라보던 남자의시선이 천천히 움직여, 사과에 박혀있는 과도에 고정됐다.
그리고 동시에, 남자는 잽싸게 과도를 뽑아들고 휘둘렀다. 그것을 피한 단하는 그대로 남자의 몸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과도가 떨어졌다. 그리고 둘은 뒤엉킨 채 바닥을 굴렀다.남자는 버둥거리며저항했지만 단하를 떨쳐낼 수는 없었다.
단하는 팔뚝으로 남자의 목을 졸랐다. 남자가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몸을 팔다리를 마구 휘저었다.
하지만 단하는 놓치지 않았다. 버둥거리던 남자는 품 안에 손을 넣어 총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단하는 곧바로 그것을 발로 쳐냈고, 남자의 손에서 떨어진 총은 바닥을 미끄러지다 벽에 부딪히며 멈췄다.
남자의 얼굴이터질 듯 붉게 물들었다. 컥컥대는 신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총을 놓친 남자의 손은 이제 책상 아래, 붉은색 버튼을 향하고 있었다. 비상 호출 버튼이었다. 한참 동안의 사투 끝에 메마른 손가락이간신히 버튼에 닿았다.
하지만 버튼은 눌리지 못했다. 단하는 남자의 목을 옭아맨 채 몸을 굴렸고, 다시 거리가 크게 벌어졌다. 남자의 동공이 크게 벌어지며, 실핏줄이 터져 붉게 물들었다. 단하는 한층 더 힘을 넣어 목을 졸랐다. 버둥거림이 천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뒤, 마침내 남자의 몸이 축 늘어졌다.
ㅇ ㅇ ㅇ
남자의 숨이 끊어지고 나서도 단하는 한참동안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가 죽었다는 것을 확신하고 나서야 팔을 풀었다.
남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까뒤집힌 눈에는 흰자만이 드러나 있었다. 입가를 따라 흘러나온 새하얀 거품이 부글부글거리는 소리를 냈다.
몸을 일으킨 단하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축 늘어진 시체의 품을 뒤졌다.
나온 것은 많지 않았다. 현금 몇 만원과, 자그마한 비닐 팩에 담긴 약 봉투 하나가 전부였다. 팩을 뜯은 단하는 가루를 살짝 집어 맛을 보았다. 그리고 퉤, 하고 뱉어냈다. 코카인이었다.
더이상 찾아낼 것이 없다고 생각한 단하는 남자의 시체를 질질 끌어 옮겼다. 그리고 주방의 벽에 뚫린 쓰레기 배출 통로로 남자의 시체를 밀어넣었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파이프 안쪽에서 시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시체를 처리한 단하는 안전가옥 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서랍장을 열자 안에서는 사용한 주사기와 빈 약봉지가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옷장과 창고, 가구 틈과 같은 곳을 뒤지며 단하는 생각했다.
살수회와공안청이 연합한 성당 습격 작전. 그 과정은 너무 깔끔했다. 오랫동안 살수회의 업을 수행한 단하의 시각에서 봐도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때문에 분명 누군가가 사전에 개입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추측은 어느정도 정답이었다.
이리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해무를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 - 에이시스 치료제를 통해 해무를 끌어들인 그 함정은 누군가가 계획한 것이었다. 비록 이리나는 그가 관리인지, 혹은 공안인지 모른다고 답했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그 자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서, 단하는 성당과 관계가 있던 사람들을 전부 확인했다. 성당은 고아들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아 외에도 성당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많았다. 대부분이 창관의 여자들이거나, 혹은 병자, 노인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에 관한 정보를 확보한 단하는 리스트에서 성당을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추려냈다. 그리고 관련자들을 직접 방문한 끝에, 밀고자를 특정해낼 수 있었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성당으로부터 보호를 받던 남자. 동시에 마약 중독자이며, 골목 안의 허름한 건물에 숨어 지내던 남자. 그가 밀고자일 것이라고 추측한 단하는 며칠간 그의 뒤를 쫓았고, 방금 전의 대화를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짧은 대화에서, 그는 자신을 공안청의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를 이곳에 집어넣은 자가 공안이라는 사실을 뜻했다. 이 안전가옥도분명 공안청의 소유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단하는 구석구석을 수색했지만, 마땅한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 안전가옥 안은 지저분할지언정, 공안청의 흔적이 있는 물건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 사실에 고민하던 단하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 고개를 돌렸다.
몸싸움을 하던 와중에 남자가 떨어뜨린 총. 그 총이 방 한쪽에서 뒹굴고 있었다. 베레타 92. 공안청의 제식 권총이었다.
단하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총열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새카맣게 칠해진 총열에는 공안청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