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회색의 단하 (4)
단하는 면회 대기실의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생각의 대부분은 성당에서의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살수회와 공안청은 성당 사건을 종결하고, 논공행상을 위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살수회는 자신들이 작전을 주도했으며, 공안청은 거기에 한 발 걸쳐서 잡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공안청은 반대로, 이 작전을 주도한 것은 자신들이고 살수회가 끼어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조직의 입장은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었고, 때문에 논공행상의 진행은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단하는 그 다툼에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단하에게 있어서 성당 사건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해명되지 않은 의문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단하에게는 그러한 의문의 해결이 성과의 분배보다 더더욱 중요했다.
그 의문들 중 첫 번째. 이리나에게 찾아가 해무에게 미끼를 던지라고 지시했던 남자. 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살수회의 인물인가? 공안청의 인물인가? 아니면 제 3의 인물인가. 해무를 함정에 빠뜨려서 그가 얻는 이득은 대체 무엇일까.
다음으로, 공안청의 안전 가옥에서 생활하던 남자. 그는 성당의 밀고자였다. 공안청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금전적인 보상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그가 성당에서 보호를 받고 있었을 때, 처음으로 그를 끌어들였던자는 정체가 무엇일까. 그 또한 공안청 소속일까?
만약 그를 끌어들인게 공안청의 사람이라면, 이 사건을 가장 처음부터 기획했던 것 또한 공안청이라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지금의 살수회는 그 가능성을 알지 못했다. 결국 살수회가 공안청의 손에 놀아난 꼴이다. 심지어 그로 인해 해무를 함정에 빠뜨리며, 오히려 스스로의 세력을 깎아먹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살수회를 입맛에 맞게 조종하는 것은 공안청의 계획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살수회 내부에서도 공안청과 손발을 맞춰 일을 진행한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했다. 즉, 스파이가 있다는 뜻이었다.
마지막 의문. 만약 스파이가 있다는게 사실이라면, 과연 그는 누구일까.
누군가가 만들어낸 함정에서 해무를 체포한 것은 네르귀였다.
네르귀 다난. 살수회의 참모장이자, 회주 다음가는 위치에 있는 넘버 2. 그가 스파이라면 지금과 같은 일을 꾸며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네르귀는 관리자이면서, 동시에 실무에도어느정도 발을 걸치고 있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여의나루 역에 있었던 것은 네르귀 뿐만이 아니었다. 해무의 담당관리인 타오 슌. 만약 그가 스파이라면 해무를 함정에 빠뜨리는 것은 쉬운일이리라. 해무의 업을 관리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으니.
물론 스파이가 관리일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누쿠로 또한 이 사건의 관계자였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그 전까지 스파이로서 활동했을 거라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다른 갑종도 있었다. 안드레이. 그는 살수회에서 가장 베일 속의 존재였다.
성당 사건 전까지, 안드레이는 중국에서 업을 수행했다. 그 업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단하도알지 못했다. 또한 그의 담당관리가 다른 자가 아닌, 살수회주 본인이라는 점에서도 그의 특별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채에 복귀했다. 때문에 성당 사건에서 그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의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가장 생각하기 싫은 가능성이었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회주 본인이 스파이일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스파이를 색출하겠다는 생각은 전부 무용(無用)한 일이었다. 그는 명실상부 살수회의 최고 책임자였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단하는 머릿속을 비워냈다. 수많은 가능성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으로서는 갖고있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근거 없는 의심을 이어갈 뿐, 진실을 가려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추리를 중단한 단하는 고개를 들었다. 간수가 자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단하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공안청도, 살수회도 아닌 구룡방 직할 경호대의 감옥. 이곳에 해무가 수감되어 있는 것은 살수회와 공안청 사이의 알력 때문이었다.
살수회는 반역죄를 범한 해무가 갑종살수니 자신들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안청은 살수회 소속의 반역자를 살수회가 관리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공안청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논쟁 또한 결론을 내지 못했고, 그것은 해무가 살수회도 공안청도 아닌 구룡방에 수감되는 결과를 낳았다.
얼마나 복도를 따라 걸었을까, 간수가 문 앞에 멈춰섰다. 단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방 한가운데에는 탁자 하나와 의자 두 개가 놓여있었다. 머리 위에는 새하얀 백열 전구 하나가 매달려 있는 채였다.
단하는 앙상한 파이프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잠시 후, 다른 간수가 수감자를 대동한 채 면회실로 들어왔다.
해무였다.
수감복 차림의 해무는 눈에 띄게 초췌했다.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있었고,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비치고 있었다. 손목에는 쇠사슬로 연결된 수갑을 찬 채였다.
해무는 간수들에게 이끌려, 단하의 맞은편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단하가 간수들에게 말했다.
"잠시 자리를 좀 비켜줬으면 좋겠는데."
그 말에 간수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무기도 없고, 몸수색도 받았어. 보안도 철저한데, 잠시 둘만 있게 해 주는 것도 안 되나?"
간수들은 고압적인 시선으로 단하를 내려다 보았다. 단하는 눈을 돌리지 않고 그 시선을 마주했다.
잠시 후, 간수들은 10분, 이라는 말을 건조하게 내뱉고는 떠났다. 면회실에는 단하와 해무, 둘만이 남았다.
그제서야 단하는 해무를 향해 말했다.
"도청기가 있나?"
"아마도."
해무의 대답에 단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리없이 입술만을 움직여 말하기 시작했다.
[이리나를 만났어.]
그 말에해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속으로 배신감과 굴욕감을 느끼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단하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화제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 사건의 첫 단추는 이리나.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꼭 전해야 한다.
[이리나가 말하기를,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왔다더군. 그리고 너를 낚을 함정을 파라고 시켰대. 그 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
해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새하얀 이에 붉은 핏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돌아가는 상황도 이상해. 이 작전,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 알 수 없어. 살수회도, 공안청도 자신이 책임자라고 주장하고 있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후에야 단하는 본론을 꺼냈다.
[살수회에 스파이가 있어.]
해무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살수회 내의 스파이. 그것은 충분히 있을 법한 상황이었다.
살수회와 공안청은 서로 견제하는 관계.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스파이를 심는 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상대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함일 뿐,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여 상대를 함정에 빠트리는 것은 원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각자에게도 리스크가 큰 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스파이가 공안청 소속인지도 확실치 않아. 어쩌면 제 3의 인물일지도 모르고. 그래서, 다시 한번 설명해 줬으면 해. 뭔가 이상한 점이 없었는지.]
단하의 요청에, 해무는 눈을 감은 채 잠시 머릿속으로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치료제를 받기 위해 여의나루 역으로 향한 것. 그 과정에서 누쿠로가 자신을 막아섰던 것. 그 점을 고려하면, 살수회도 자신이 약을 찾기 위해 움직이는걸 눈치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의 함정에 대한 것이었다. 그 부분이 단하가 가장 의문을 느끼는 내용이었으니까.
하지만 해무에게 있어서도 치료제 자체가 함정이었던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막아섰던 것이 네르귀와 타오 슌, 그리고 을종들이었다는 사실도.
결국 해무와의 대화로 새롭게 알게 된 정보는 없는 셈이었다.
[혹시 생각해보고 이상한 점이 더 있으면 나중에라도 알려줘. 나는 놈을 쫒을 생각이니까.]
그렇게 사건에 관한 대화를 마무리하고, 단하는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안은 어때."
해무는 단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도 단하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당연히 좋지 않을 것이다. 구룡방의 감옥에 인권은 없다. 아무리 갑종살수라 하더라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거라 기대할 수는 없었다. 환경 또한 최악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만 참아. 곧 나올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위로한 단하는 해무에게 물었다.
"필요한건 없어?"
고민 끝에 해무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생리대가 필요해."
잠시 멈칫한 단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무가여자의 몸을 갖게 된지 두달 째가 되어간다. 이제 슬슬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해무는뒤이어 꺼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피임약도."
그 말에 단하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무거운 침묵이 면회실 안을 짓눌렀다. 지금까지 침착함을 유지하던 단하는,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단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잠시 후, 시간이다 되었는지 간수들이 면회실 안으로 들어왔다. 간수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곧바로 해무를 연행했다.
"조금만 참아. 조금만......"
단하가 해무의 뒷모습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해무는 대답조차 남기지 못하고 간수들에게 끌려 면회실을 떠났다. 간수들의 등을 분노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던 단하는, 그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몸을 일으켜 면회실을 나섰다.
ㅇ ㅇ ㅇ
간수들은 해무를 앞세운 채 복도를 걸었다. 하지만 수감실로 향하지는 않았다. 이동하는 방향이 아까 전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 해무는 이를 악물었다.
도착한 곳은 수감자들이 사용하는 공동 욕실이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먼저 안으로 들어선 해무의 등 뒤에서 문이 쿵 하고 닫혔다. 뒤이어 철컥, 하고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무는 죽일 듯한 시선으로 정면을 노려보았다. 악문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간수가 해무의 어깨를 밀쳤다. 하지만 해무는 움직이지 않았다. 간수에게 밀려나는 대신, 제자리에 꿋꿋이 선 채 버티고 있었다. 그러자 간수들은 거친 손길로 해무의 수감복을 벗겨냈다.
강제로 발가벗겨진 해무는 욕실 안쪽으로 끌려들어갔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선이 가는 얼굴, 그리고 부푼 가슴과 잘록한 허리. 완연한 여자의 몸이었다. 떨리는 시선으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해무는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간수가 해무의 뒷목을 움켜쥐고 짓눌렀다. 그 힘에 맞서 버티던 해무는, 결국 아랫배를 맞고 풀썩 무릎을 꿇었다.
뒤에서 간수가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벽을 짚고 선 해무의 입에서 흐윽,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곳에 수감된 이후로 벌써 몇 차례 겪은 일이었다. 하지만 뱃속 깊숙한 곳까지 남성기가 비집고 들어오는 감각은 익숙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간수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벽을 짚고 선 해무의 작은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입에서는 윽, 윽, 하는 억누른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뱃속 깊은 곳을 쿡 쿡 찔리는 감각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이윽고 간수의 움직임이 점점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간수가 해무의 잘록한 허리를 움켜쥔 손을 한껏 당기며, 자신의 성기를 뿌리 끝까지 밀어넣었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온 남성기로 인해 내장을 헤집는 듯한 격통이 몰려왔다. 조금이라도 고통을 피하기 위해 해무는 다급히 발뒷꿈치를 들었다. 체중을 지탱하는 가느다란 발목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동시에, 남자의 성기가 자신의 몸 안에서 움찔거리며 정액을 토해내는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남자는 한참 동안 신음을 흘리며, 정액 마지막 한방울까지 해무의 몸 안에 쏟아냈다. 그리고 잠시 후, 성기가 해무의 몸에서 쑤욱 하고 빠져나갔다.
해무는 숨을 헐떡였다. 이마를 따라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간수가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또한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한참 동안 해무의 몸을 유린한 끝에 사정했다. 그제서야 남자들로부터 해방된 해무는 털썩 주저앉았다. 무릎이 후들거렸고, 온 몸이 욱신거렸다. 특히 아랫배의 격통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일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기가 몸 안을 계속해서 찔러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의를 챙겨입은 간수가 샤워기를 들어 벌거벗은 해무의 몸뚱아리에 물을 뿌렸다. 차가운 물줄기가 몸에 맞은 해무의 턱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 동안 고개를 떨군 채로 추위에 몸을 떨며, 해무는 기도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지옥같은 곳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