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란국연가-7화 (7/16)

七章. 추적

“최근 자호가에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집안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은 분명합니다.”

환관장 장재의 말에 가륜 왕은 한껏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왕실의 그림자 무사들을 동원해 자현이 놈을 살피라 닦달한 지 근 두어 달이 지났다. 그동안에 들은 보고라고는 자현이 놈이나 그 심복이나 하나같이 보통 실력이 아닌지라 도무지 그 집 안에 숨어들어 살필 수가 없다 하는 가당찮은 변명이 전부. 기껏 뭔가를 알아냈다고 잔뜩 분위기를 잡기에 한껏 기대를 품었건만, 환관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장안을 나다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아낼 수 있을 법한 시시껄렁한 말들뿐이다. 가륜 왕은 주먹으로 쾅, 하고 탁상을 내려쳤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 무슨 일이 대체 무어냐 하는 것이다! 어찌 이리 무능하단 말이냐!”

불같은 역정에 장재는 산만 한 덩치를 벌벌 떨었다. 화가 나면 뭐든 집어 던지는 왕의 성정을 알고 있는지라, 그는 한껏 몸을 사리고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소, 송구하옵니다. 그 집안의 입단속이 매우 철저하여 아직 자세한 내막은 알아내지 못하였사옵니다. 허, 허나! 좋지 못한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자현이 방문자들을 더는 받지 않겠다 공언하여 귀족 관료들 중에서는 불만을 품은 자들이 속출하고 있사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집 안에 발을 들이지 못해 그리 안달을 하는지는 알아낸 것이냐?”

왕께서 도끼눈을 뜨고 잇새로 살벌하게 물으신다. 다행스럽게도 그에 대한 조사는 마친 참이었다. 장재는 진땀을 닦아내며 답했다.

“예에, 듣기로는 그 집 안에 다 죽어가는 이도 단번에 고치는 신묘한 영약이 있다고 하옵니다. 그래서 본인이나 가족 친지들이 병에 걸린 이들이 앞다투어 그 집을 찾는 모양입니다.”

“…영약?”

가륜이 부리부리한 한쪽 눈썹을 높이 치켜세웠다. 굳은 입꼬리까지 씰룩쌜룩거리며 시커먼 수염을 부들부들 떠는 꼴이 꼭 활화산 같아 장재는 숨을 죽였다.

“그런 걸 내게 꽁꽁 감추었다는 말이지…!”

제까짓 놈이 그리 귀한 것을 어디서 얻었겠는가. 틀림없이 전쟁 중에 입수한 것을 고하지 않고 제가 꿀꺽한 것이다. 가륜 왕은 빠득빠득 이를 갈았다.

전리품은 모두 왕의 앞에 바치는 것이 법도였다. 제가 하사하기 전까지는 어느 대장군이라고 해도 전리품에 손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을 빼돌려 제가 떵떵거리고 있었나, 당장 이놈을 불러들여 경을 치겠다 으르렁거리던 가륜 왕은 다음 순간, 입매를 일자로 굳혔다.

제가 불러들여 추궁한다고 해도 놈이 잡아떼면 그만이다. 예전 같으면 얼마든지 모욕주고 벌 줄 수 있었을 테지만 자현이 꼬드겨 제 편으로 만든 이가 어디 한둘이던가. 일전에 좌천 이야기를 꺼냈을 때처럼 제 체면만 상하고 끝날 게 불 보듯 뻔하였다.

“이 괘씸한 놈을 대체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폐하, 자현이 더는 방문자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영약도 다 떨어진 게 아니겠습니까. 더는 그것을 이용해 다른 이들을 꾀어낼 수 없을 테니 심려치 마옵소서.”

“하! 이미 고삐가 놈에게 넘어갈 대로 넘어간 마당에 무슨 헛소리냐! 지난번 회합장에 모여 앉은 것들이 하나같이 자현 놈을 싸고돌았던 것을 잊었느냐!”

“그, 그렇기는 하오나….”

탁상을 아주 무너뜨릴 작정인지 주먹으로 연이어 탕탕 내려치는 것에 장재는 어깨를 움찔거렸다.

가륜이 씨근덕거리며 연이어 욕설을 토해 냈다.

“이 불측한 놈들이 뒤에서 무슨 작당을 하고 있을지 내 안 봐도 훤하다. 분명 지난번 역적놈들이 난리를 부린 일도 자현의 소행일 거야. 이놈을 당장이라도 손쓰지 않으면 또 무슨 음모를 꾸밀지…!”

“폐,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자현을 편드는 이들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그 못지않게 눈에 불을 켜는 이들도 늘고 있지 않습니까. 뒤에서 좀 더 부채질하면 능히 자현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장재의 말에 가륜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자세히 말해 보아라, 어찌 부채질을 한단 말이냐.”

“예에, 자현이 그 누구의 방문도 받지 않겠다고 공언한 이후, 병든 노모를 모시는 이들이나 딸자식, 형제가 아픈 이들이 하나같이 자현을 찾아가 애걸하고 있습니다만, 자현은 내 알 바 아니다, 하고 매정하게 뿌리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원망을 품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 이를 이용하자는 것입니다.”

“하! 나더러 자현을 미워하는 이들을 모아다가 공모라도 하라는 말이냐.”

“왕께서 친히 나서실 필요가 어디 있사옵니까. 제가 하수인들을 시켜 자호가에 신묘한 영약이 있는데 자현이 혼자서 그것을 독차지하고 있다, 제 친지들에게만 나누어주고 다른 이들은 나 몰라라 하더라, 그런 소문을 퍼트리겠습니다. 그리하면 영웅 자현의 명성도 한풀 꺾일 것입니다.”

가륜은 말처럼 잘될까 하는 미심쩍음이 반, 그리만 된다면 오죽 좋을까 하는 반색이 반 뒤섞인 표정으로 장재를 노려보았다.

“자현을 칭송하는 말들이 그리 요란한데 과연 네 뜻대로 되겠느냐.”

“안 그래도 민심이 사납지 않습니까. 본디 백성들이란 이리저리 휩쓸리기를 잘하는 족속들인지라 명분만 주어지면 하늘님을 향해서도 욕설을 퍼붓습니다. 조금만 바람을 불어넣으면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꾸어 자현을 비난할 겁니다. 그리 되면 자현도 전처럼 기를 펴지는 못할 테지요.”

자신만만하게 그리 말하니 가륜 왕의 낯빛이 조금은 밝아진다. 그가 턱밑에 무성한 수염을 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짐짓 진중한 음성으로 내뱉었다.

“좋다. 그리 자신 있다면 한 번 손을 써보아라.”

“예에, 폐하. 제가 폐하의 근심을 반드시 덜어 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허리를 푹 조아린 뒤 방에서 물러난다. 너른 방에 홀로 남은 가륜은 장재의 말을 곱씹었다.

근심. 자현이 놈이 제게 근심이 되었나.

선이 굵은 부리부리한 얼굴이 옴팡지게 일그러졌다. 불손하게 올려다보던 놈의 범 같은 두 눈이 떠오르자 알 수 없는 초조함이 등을 타고 기어올라 목 언저리를 조여온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리 될 줄 알았던 게야. 그래서 그리도 놈의 얼굴만 보면 짜증이 났던 게지. 그래, 고분고분 있을 놈이 아니라는 것을 내 단번에 알아보았다.

‘안 그래도 눈엣가시 같던 놈, 분수도 모르고 내 딸을 탐내니 그런 꼴을 당한 게 아니냐. 다 제가 판 무덤인 줄도 모르고 나를 원망하여 몹쓸 흉계나 꾸미다니… 괘씸하기가 이를 데 없다.’

탁탁. 두툼한 손가락 끝으로 탁상을 두드리기를 두어 번, 손바닥으로 탁, 하고 상을 한 번 내려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게 거역하는 놈은 모조리 싹을 다 잘라 버려야 한다.”

그리 음산하게 중얼거리며 방을 나서는 왕의 그림자가 길고 시커멓게 궁성 바닥 위로 늘어졌다.

***

며칠 사이에 자호가 하인들의 수는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곤죽이 되도록 매를 맞고 쫓겨난 이들도 있었고, 지레 겁을 먹고 야반도주한 이들도 있었다. 매일매일 끊이질 않던 방문자들의 발걸음도 뚝 그쳐 복작복작하던 집 안은 온통 조용했다.

그 휑한 마당을 지나며 자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아직도 제집에 방문을 요청하는 이들은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청을 완곡히 거절하였다. 소루는 이제야 간신히 몸을 추스른 상태였다. 거기다 대고 또다시 칼을 대라 할 수는 없다.

‘겨우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는데….’

그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 눌렀다. 최근 들어 시작된 원인 불명의 두통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욱신거리는 눈두덩을 누르며 자현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짜증에 입술을 깨물었다.

‘남의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게 하면서….’

소루는 보통 사람보다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더뎠다. 의원의 말에 의하면 몸의 회복력이 많이 떨어져 그렇다 한다. 확실히 최근 들어서는 식사량도 늘고 잠도 잘 자, 안색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건강해졌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설령 다 낫는다고 해도 이전처럼 방문자들을 줄 세워 받을 생각은 없었다.

‘…이만하면 된 게 아니냔 말이다.’

그는 초조함에 휩싸여 탁탁 발을 거칠게 놀렸다. 한비를 주축으로 남구파 관료들을 다수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고, 그동안 한편으로 만든 이들도 셀 수 없었다. 대장군이 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 이전처럼 소루를 내세워 세를 키우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령은 다시 방문자를 받으라 은근히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몸 고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이 한둘이 아닐세. 왜 나는 도와주지 않는 것이냐며 꽤 집요하게 요구해 오는 이들도 있어.”

내 알 바 아니다. 세력을 키우겠다고 이놈 저놈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더니 제가 꼬리 흔드는 개로 보이는 건가. 저들이 자현을 소 닭 보듯 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는 뻔뻔스레 도움을 요구해 오는데, 기가 찰 뿐이다. 그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비령은 꽤나 집요했다.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계속 그들의 청을 거절하다가는 불필요한 적의를 살 수도 있네.”

“하! 내가 도와주는 게 당연한 일인가. 내 집이 의원이라도 되느냔 말이다.”

“그런 말이 통하겠는가! 목숨이 걸린 일이다. 어디 이성적으로 굴겠느냔 말이다. 한번 잘 생각해 보게. 이전처럼만 하지 않으면 될 게 아닌가. 하루 한 명 정도는… 아니, 공주의 몸이 그리 걱정된다면 사나흘에 한 명 정도는 괜찮지 않나.”

자현은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그 제안을 묵살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꽤나 심상치 않다는 것은 그도 느끼고 있었다. 날마다 집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전보가 멋대로 날아들고 있었다. 심지어는 소문을 들은 양민 놈들까지 대문을 두드리며 병을 치료해 달라 떼를 쓰기 시작했다.

거절하였더니 권세 있는 사람 목숨만 귀하더냐, 하고 한동안 집 앞에서 소란을 부리기까지 하였다. 그런 놈들이 하나둘 늘어 보통 골치가 아픈 것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비령이 기껏 쌓은 신망을 잃는 것이 아니냐며 안달복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자현은 단호히 입매를 굳혔다. 한 명을 허락하게 되면 너도나도 줄줄이 밀려들 게 뻔하였다. 그걸 다 받아 주었다가는 소루의 몸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코웃음을 쳤다. 누가 뭐라 욕을 하든, 제게 등을 돌리든 상관없었다. 애초에 그의 목적은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지위를 높여 다신 왕에게 그런 모욕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로 올라가는 것뿐이었다. 신망을 얻는 것도, 영웅이라 추앙받는 것도, 모든 권세가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아니다.

‘대장군 칭호를 받으면… 더 이상은 이런 시답잖은 일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겠지.’

그는 애써 낙관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만한 지위에 오른다면 감히 누가 저를 들볶아댈 수 있으랴. 그때까지만 성가신 것을 참자고 결론을 내리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오늘 한비를 만나 한시 빨리 내 안건을 올려 달라 재촉해야겠군.’

자현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한비를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아슬아슬하다. 비령과 실랑이를 하느라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말을 끌고 나오기 위해 마구간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다 문득 제 거처 앞에 마련된 조그만 정원에 소루가 나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해 냈다. 그 무방비한 모습에 다시 울컥증이 일었다.

지난밤 잔기침을 하는 것을 내 똑똑히 들었는데 왜 밖에 나와 있는 것인가.

“나오지 말라고 한 말 못 들었나?”

그는 시간이 없다는 사실도 잊고 한달음에 달려가 싸늘하게 읊조렸다.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서 붉은 비단옷을 정갈히 차려입은 소루는 꼭 자그만 인형 같았다. 병색이 걷힌 그 하얀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던 자현은 퉁명스레 덧붙였다.

“바람이 차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라.”

그 냉랭한 음성에도 개의치 않고 그녀가 다정스레 웃어보였다.

“볕이 따듯하니 괜찮아.”

그 태평한 대답에 머리에 열이 오른다. 그런 일을 당해 놓고도 경계심이 이리 없을 수가 있단 말이냐.

“호위도 없이 나와 있다가 또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잠깐 있다가 들어가려고….”

호통소리에 놀란 듯 여자가 어깨를 움츠린다. 무어라 더 한마디 하려던 자현은 그 주눅 든 얼굴에 입을 꾹 다물었다. 원래도 입이 험한 그이지만 이 여자 앞에만 서면 유난히 폭언이 잦아졌다. 그는 성질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한결 차분해진 어투로 말했다.

“멋대로 나와 있지 마라. 하인들을 단단히 단속하였지만… 그래도 눈이 뒤집혀 허튼짓하려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

“아니면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 즐거운 거냐.”

무신경하게 내뱉은 말에 여자의 낯빛이 창백해진다. 그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런 게 아니라면 방에서 가급적 나오지 마. 정 답답하면 그 염이라는 여종이라도 거느리고 나와라.”

“…알겠다. 주의하마.”

“…나는 나가 봐야 한다. 나중에… 들를 테니 얌전히 방 안에 있어라.”

머뭇거리며 덧붙이자 여자의 얼굴이 다소간 밝아졌다. 강아지였다면 꼬리라도 흔들었을 듯한 표정으로 응, 하고 답한 소루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것도 잠시, 조금 긴 치맛자락을 질질 끌며 울퉁불퉁한 돌담길을 걷는 모습에 그는 다시 인상을 썼다.

눈도 성치 않으면서 지팡이라도 들고 다녀야 하는 게 아닌가. 몸도 허약한 주제에 넘어져 다치려면 어쩌려고 그러나.

원인 불명의 초조함에 못마땅한 얼굴을 하는데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여자가 어깨너머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고는 마치 제가 거기 서있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을 살짝 흔들었다.

무심코 따라 손을 들던 자현은 그런 스스로의 행동이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흘렸다. 그런다고 저 여자가 볼 수나 있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문득, 여자가 웃는다. 만지면 쨍, 하는 소리가 날 듯 맑디맑은 미소였다. 조금은 슬퍼 보이고, 조금은 기뻐 보이는 그 표정에 일순 폐부에서 모든 공기가 쑥 빠져 나갔다. 불가사의한 감각에 그는 목 언저리를 쓰다듬었다.

누군가가 혹시나 뒤에서 조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숨이 차오를 리가 없지 않나.

여자가 두어 번 더 손을 흔들더니 곧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제야 그는 긴 숨을 토해 냈다.

생각날 때 들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루 한 번씩 그녀의 거처로 고개를 디밀고 있었지만 소루가 주는 그 거북스러운 기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그녀를 대하는 제 태도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엉망진창이다.

곁에 있으면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이 들어 필요 이상으로 퉁명스럽게 굴게 되고, 그리 싸늘하게 대하고 나면 기분은 더욱 나빠지고, 기분이 나빠지면 또다시 냉랭한 태도를 취하게 되고… 그것이 무한 반복.

자현 기분 좋은 날이 오기는 하는가 하던 비령의 빈정거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 여자를 아내로 두고 있는 한 나는 평생 불쾌한 상태겠지. 눈가에 주름을 잡던 자현은 이내 몸을 돌렸다.

***

컴컴한 방 한가운데 앉은 사내는 가만히 앉아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 놓은 인간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척하게 들러붙는다.

그들의 자줏빛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사내가 문득 미간을 접었다. 바닥에 고인 시커먼 피 웅덩이가 점점 커져 제 발가락을 적신 것이다.

의자에 앉아 뜨끈뜨끈한 고기를 물어뜯던 사내의 무감정한 눈동자에, 언뜻 불쾌감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사내는 그 감정이 불쾌감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허기 이외의 감각을 느껴 본 적이 거의 없어 설령 그 이외의 무언가를 느낀다고 해도 제가 느끼는 게 무엇인지조차 알아차릴 수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사내는 자신이 왜 그들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동물의 것 같은 황금색 눈동자로 고통과 공포에 휩싸여 떠는 인간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배를 채우는 일만을 계속한다. 그런 그의 앞에 산 인간을 질질 끌고 와 패대기친 요괴가 말하였다.

“별나군.”

바닥에 내팽개쳐진 인간이 묶이지 않은 양팔로 엉금엉금 기어와 발치에 매달려왔다. 그가 울며불며 제발 살려달라 애걸하는 소리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사내는 요괴를 돌아보았다.

“뭐가… 별나다는 거지?”

“네가 화를 내다니. 별나잖아. 수백 년을 알고 지냈지만 처음으로 보는 것 같군.”

사내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은 것처럼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질겅, 먹던 것을 마저 입 안에 밀어 넣으며 한참 동안 요괴의 말을 곱씹던 사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게, 화가 났다는 건가?”

그는 바닥에 늘어져 있는 시체들을 내려다보았다.

모르겠다. 그리고 잘 모르는 것은 생각해 보았자 무의미하다.

제 옷자락을 쥐어뜯으며 살려달라, 살려달라 앵무새처럼 시끄럽게 떠드는 인간의 가슴팍에 손을 밀어 넣었다. 팔딱팔딱 뛰는 뜨끈한 심장을 끄집어낸 뒤에 성가시게도 발 위로 굴러떨어지는 고깃덩어리를 걷어차 피 웅덩이 속에 처박는다. 그러고 나니 묘한 기분이 든다. 가슴에 불쾌하게 뭉쳐있던 게 조금은 풀린 듯한….

“그렇군. 이게 ‘화’로군….”

사내는 새로운 사실을 배운 아이처럼 중얼거리고는 손에 쥔 것을 베어 물었다. 뜨거운 피가 얼굴을 온통 더럽힌다. 뚝뚝 떨어지는 비릿한 것을 핥으며 그가 반복해서 말했다.

“나는 화가 난 거였어. 그것도 몹시….”

요괴가 저만치에 매달아 놓은 인간 중 하나를 골라 다시 발치로 질질 끌고 왔다. 사내는 질질 끌려온 것이 애벌레처럼 버둥거리는 꼴을 가느다란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왜인지….”

그러고는 손을 뻗어 인간의 가슴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러면,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서 사내는 두 눈을 아득히 빛냈다.

***

이것으로 벌써 마흔 구였다.

강 위에 버려진 세 구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아시타는 신중히 눈을 빛냈다. 발견된 시체만 헤아린 것이었다. 행방불명된 사람 숫자까지 포함하면… 예상컨대 백은 족히 되리라. 그 요괴는 대체 언제부터 이런 사냥을 시작했으며, 여태까지 몇 명이나 잡아먹은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는 몇 명을 더 잡아먹을 셈인가.

‘적어도… 수백 개의 심장은 더 구해야 하겠지.’

그는 다리를 내려가 졸졸졸 흐르는 물줄기에 흐느적거리는 시신을 하나하나 신중히 살폈다. 서른은 되어 보이는 허름한 옷차림의 여인 하나,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내 둘. 역시나 셋 다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죽은 자를 그리 살핀다고 뭘 더 알아낼 수 있겠어?”

혹시 다른 상처는 없는지 살피는데 옆에 다가선 여란이 신랄하게 말했다. 그 요괴를 잡기는커녕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채 며칠 내내 시체만 목도해 온 탓에 그녀는 신경이 잔뜩 곤두선 상태였다.

“다 죽은 다음에 시체를 뒤적거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냔 말이야.”

“조금이라도 그 요괴와 관련된 단서를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니냐.”

여란이 가슴에 팔짱을 낀 채 코웃음을 쳤다.

“이해가 안 된다. 이렇게까지 설쳐대는데도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니… 요괴를 추적하는 것은 네놈 주특기가 아니었느냔 말이야.”

“내 추적술이 어디 만능인 줄 아느냐?”

아시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초조한 심정은 이해하나 화풀이는 자중해 주었으면 했다.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정말 거짓말처럼 놈의 요력을 찾을 수가 없어. 몸을 숨기는 데 보통 능한 놈이 아니야. 지금으로서는 놈이 남긴 흔적을 면밀히 조사하는 수밖에는 없다.”

“흥, 그렇게 해서 여태 뭐라도 하나 알아낸 게 있어?”

“몇 가지는.”

집요한 빈정거림에 간결하게 답하자 여란이 의심스레 눈을 치뜬다. 어지간히도 저를 못 미덥게 여기는 모양이다. 그는 조금 울컥하여 언성을 높였다.

“내가 정말 할 일이 없어 시체를 뒤적거리고 다닌 줄 알았느냐? 이리 열심히 조사하고 있는데….”

“그래서 뭘 알아냈다는 건데?”

여자가 잡설 집어치우라는 듯 성급히 묻는다. 아시타는 또다시 한숨을 폭 내쉬었다.

“우선 심장을 취하고 있는 요괴가 한 마리라는 거다.”

“그쯤이야 나도….”

“하지만 놈에게 협조하는 요괴들은 다수 있다. 어림잡아도 백 이상.”

“…백 이상?”

여란이 무슨 헛소리냐는 듯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린다. 요괴들 사이에도 힘의 차이에 따른 서열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서로 협력하는 법이 없었다. 애초에 복종을 모르는 존재. 작은 요괴는 큰 요괴가 나타나면 재빨리 숨거나 도망치거나 속임수를 쓴다. 큰 요괴도 작은 요괴를 만나면 먹거나 가지고 놀거나 죽인다.

그들이 한데 마구 뒤엉켜 분쟁하는 것은 보았어도,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간혹 가다가 약한 요괴를 제 수족으로 다루는 요괴도 있었지만 끽해야 서너 명. 열만 모여도 통제 불능인 것이 요괴다. 어느 요괴가 그리 많은 요괴를 통솔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아시타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한 마리가 주동하고 있고 나머지… 무수히 많은 수의 요괴가 그를 따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일전의 요괴들이 소란을 일으킨 것을 잊었느냐.”

여란의 낯이 대번 심각하여졌다.

“그때의 소동도 이 요괴가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뭘 근거로 그리 생각하는 거지?”

단순히 추측일 뿐인지라 아시타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가 머뭇거리자 여란이 성마르게 재촉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어디 충분히 설명해 봐라.”

아시타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생각하는 바를 말하였다.

“그 당시에도 요괴들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에 기이하다고 여겼었다. 그리고 이 요괴 놈의 행적을 조사하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심장을 갈취해 가는 놈은 필요 이상 인간의 몸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표적에게 접근한 뒤 가슴을 열어 원하는 것을 취하고는 가버리지. 놈이 인간을 살해하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고 간결하다. 하지만… 그래, 예를 들어 저 여인.”

그가 축 늘어져 있는 여자의 시체를 가리켰다.

“어깨와 팔에 꼭 갈고리 같은 것으로 낚아챈 것 같은 흉터가 남아있다. 피부가 찢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거칠게 움켜쥐고 짓누른 것이 틀림없어. 저 사내들은 발목이 뭔가로 죄여놓았던 흔적이 있다. 발이 시퍼렇게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장시간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것이겠지. 모두 심장을 갈취해가는 ‘그놈’이 아닌 다른 귀물들이 남긴 흔적이다.”

“일전에도 처참한 꼴이 된 시체를 봤었잖아.”

“그것도 분명 다른 귀물들이 한 짓일 거야. 놈이 인간에게서 취해가는 것은 심장뿐이야. 그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드러내지 않아. 그 요괴에게서는 묘한 자제심이 느껴진다.”

그렇게 말해놓고 아시타는 스스로의 말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요괴에게 자제력이라니… 이상한 말이지만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놈이 하는 행동은 일관되어 있어. 그리고 다른 요괴들은 그런 놈의 일관된 명령을 따르고 있는 것 같다. 그 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각기 다른 흔적들로 보아 최소 열 이상이다. 이리 많은 요괴를 부리는 것으로 보아….”

“일전의 그 소동을 주동한 것도 이놈일 확률이 높다, 그리 생각하는 건가.”

만일 아시타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무수히 많은 요괴를 거느린 어마어마한 괴물이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먹고 있다는 뜻이었다. 여란은 가볍게 진저리쳤다.

“하지만… 어떻게 다른 요괴들을 부리고 있는 거지?”

“그 방법까지는 아직 나도 모르겠다.”

아시타는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

“이해가 안 되는 점은 그뿐만이 아니야. 많은 요괴들을 부릴 수 있는 귀물이라면 틀림없이 이무기나 구미호보다도 강력한 요력을 지니고 있을 텐데… 그만한 요력을 가지고서 이처럼 감쪽같이 숨어 있을 수 있다니… 제아무리 인겁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해도 요력만큼은 완전히 숨길 수 없다. 그런데도 도무지 놈의 자취를 찾을 수가 없어.”

“그건 이 나라 전체가 음기에 뒤덮여 있기 때문이 아니냐.”

“음기로 천지가 뒤덮여 있다고 해도 대요괴가 기척을 숨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야. 뭔가 다른 방법으로 몸을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그 방법이 무엇이든지 간에 한시 빨리 놈을 찾아내야 해. 서두르지 않으면 계속해서 사람들이 죽어 나갈 거야.”

누가 그것을 몰라 가만있나. 사제의 닦달에 아시타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기는.

“그러는 그쪽은 어떠냐? 혹 자호가 주변을 얼씬거리는 요괴는 발견 못했나.”

“누누이 말했잖아! 그 근처를 얼씬거릴 요괴는 없다고. 괜히 헛고생만 시키고…!”

격하게 말을 토해 내던 여란이 불현듯 말을 멈춘다. 괜한 걸 물었다. 잔뜩 푸념을 듣겠구나 어깨를 움츠리고 있던 아시타는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란이 자갈밭 위에 누워있는 여자를 향해 몸을 구부려 이리저리 살폈다.

“뭐라도 발견했어?”

“…자호가에서 일하던 여자다.”

뜻밖의 말에 아시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사내들은?”

“내가 그 집안 일꾼들 얼굴을 어찌 다 알겠어! 이 여자는 얼마 전 자호가에서 쫓겨나 내가 머물고 있는 여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기억하고 있을 뿐이야.”

“…쫓겨나?”

“그 집안에서 하인들이 뭔가 문제를 일으킨 모양이야. 며칠 동안 거의 서른 명이 넘게 쫓겨났어.”

“자세한 내막은 모르나?”

“거기까진 알아보지 않았다.”

여란이 눈가를 찡그렸다.

“뭔가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야?”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아시타는 처참한 여인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한숨 쉬듯 말했다.

“어차피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황이다. 조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덜커덩 소리에 창가에 기대 꾸벅꾸벅 졸던 소루는 소스라치며 고개를 들었다. 놀라 몸을 굳히던 것도 잠시, 곧장 안도감에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멋쩍은 듯 조금 뜸을 들이며 말했다.

“놀라게 했나보군.”

“아니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다.”

계속 밤잠을 설친 탓인지 매일 먹는 약기운 때문인지 정오만 지나면 소르르 졸음이 몰려왔다. 점심을 지나면 어느새 잠들어 있는 일이 허다하다. 소루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게 민망하여 어색하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몇 시진이나 되었느냐.”

“유시(酉時)다. 저녁은 먹었나.”

“아니. 아직….”

“곧장 내오라고 이르지.”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문밖에서 여종을 불러다가 식사를 준비해 오라 이른다.

그녀는 입가를 가린 채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앓아누운 뒤로 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이렇게 매일 한 번씩 제 방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하는 말이라고는 약은 먹었느냐, 밥은 먹었느냐, 몸은 좀 괜찮으냐, 하는 의례적인 말이 다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어찌할 바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비록 당찮은 죄악감 때문이라도 신경을 써주는 것이 고마웠다.

“불편한 곳은 없나.”

“괜찮다. 몸도 많이 나아졌고….”

소루는 뒷말을 흐렸다. 괜찮아졌으니 이만 제가 지내던 사당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앓아누운 뒤로 계속 그의 옆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혹시라도 종들이 또 제 방에 숨어들까 그리 조치한 듯싶다.

그의 가까이에 있는 것이 기쁘기는 하지만, 언제까지고 안채에 머무를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집안의 가솔들이 두려워할 게 뻔하고, 손님들도 꺼림칙하게 생각하여 발길을 끊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소루는 무의식중에 붕대에 휘감겨 있는 팔을 쓸어내렸다. 그에게 맨 처음 약조했던 것이 떠올랐다. 안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아도 좋다, 여종 중의 하나로 여기어도 좋으니 곁에만 머무르게 해달라고 매달리며 어떤 폐도 끼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러니 제가 먼저 이제 몸이 다 나았으니 원래 머물던 곳으로 돌아가겠다, 해야 옳을 것이다.

“왜 그러지? 혹 상처가 아픈가?”

아무 말도 않고 입술을 깨무는 것에 착각을 하였는지 사내가 성마르게 묻는다. 소루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문밖을 향해 의원을 불러오라 이르고 있었다.

“괜찮다. 아프지 않아.”

“불편한 데가 있으면 참지 말고 말을 해라.”

화들짝 옷자락을 움켜쥐며 말하자 그가 무뚝뚝하게 내뱉는다. 퉁명스럽지만 우직하고 정직한 목소리. 정말로 무슨 말을 하든 다 들어줄 것 같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급히 다물었다. 제가 여기서 더 바라여도 되는 건가. 아무 쓸모도 없는 계집, 억지로 신경을 써주어야 하는 것이 사실은 번거롭고 성가신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결국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내뱉었다.

“아니, 그냥 잠이 덜 깨어서… 멍했던 것뿐이다”

“…밤잠을 설치는 건가”

그가 머리맡에서 꽉 잠긴 음성으로 내뱉었다. 그제야 그가 지나치게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런 거리감이 평범한 것인지 자현은 무심하게 말을 잇는다.

“자주 가위에 눌리는 것 같던데….”

“어, 어떻게 그걸….”

“이따금 신음소리가 들린다.”

소루는 얼굴을 붉혔다. 혹 그의 잠을 방해한 걸까.

“워, 원래 잠을 잘 못 잔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할 거야.”

무뚝뚝하게 내뱉은 자현이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크고 단단한 손을 제 머리 위에 툭 올려놓았다. 그 느닷없는 손길에 소루는 몸을 굳혔다. 그가 어색함을 숨기려는 듯 거칠게 쓱쓱 쓰다듬어온다. 여전히 서툴기 그지없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안심하고 자라.”

“…그, 그래.”

마치 어린 누이동생이라도 달래는 듯한 말에 울적하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동시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듯도 했다. 혹시라도 울먹거릴까 싶어 소루는 입을 꾹 다물고서 눈을 내리깔았다. 때마침 염이가 문밖에서 식사를 준비해왔다 이른다. 그가 손을 거두며 바로 몸을 돌려세웠다.

“그럼, 식사를 해라. 나는 남은 일을 하러 가야 한다.”

그녀는 입술만 옴쭉거려 다녀와라, 하고 중얼거렸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대꾸도 없이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멀어지는 그 빛을 가만히 바라보며 소루는 눈언저리를 만져보았다.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검은 장막에 뒤덮여 있는 것처럼 희미하고 불분명한데, 어째서 그만이 저리도 선명하고 격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것일까. 그 기운을 접할 때면 제 안에서도 불가사의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모든 것을 체념했을 때도 그를 보면 간절히 생을 움켜쥐게 된다.

“마님,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이리로….”

마치 해바라기처럼 그가 떠난 방향을 향하고 있던 소루는 염이의 손길에 겨우 몸을 돌렸다.

***

또, 같은 꿈을 반복한다.

요괴가 어둠 속에서 그 불같은 두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다. 집요하게 들러붙는 그 시선. 요괴의 갈급함이 제 뇌수로 흘러들어 온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너를 먹고 싶다.

요괴는 온몸으로 부르짖는다. 그 비통한 울음소리에 머리가 다 어지러웠다.

온몸을 뒤틀며, 주린 배를 움켜쥐며, 요괴는 계속해서 울부짖었다. 그 시뻘건 두 눈이 격정에 출렁거린다.

그리도 배가 고픈 것인가. 그리도 괴로운 것인가.

괴로움에 굴복해 차라리 죽음을 바라여 온 공주로서는 그 격정을 이해할 수가 없다. 죽은 시체나 다름없는 저보다, 어찌할 수 없는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온몸을 뒤트는 이 요괴야말로 진정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마르지 않는 욕망에 괴로워 바닥을 기는, 그 절박함이야말로 생(生)이 아닌가.

그리하여 소녀는 요괴에게 손을 뻗었다.

요괴가 그것을 붙들었다. 앙상하고 마른 손이 탐욕스레 저를 끌어당겼다. 거대한 몸으로 짓눌러 온다. 그녀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않았다. 나뭇가지 같은 긴 손가락이 무자비하게 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귀신의 눈이 타오른다. 사방을 둘러싼 불꽃이 시리게 느껴질 정도로 탐욕에 절절 끓어오른다. 그 시뻘건 안광을 마지막으로 소루의 세계는 새까맣게 물들었다. 요괴는 무자비하게 제 눈의 빛을 빼앗아 갔다.

어둠.

어둠. 짙은 어둠이 저를 뒤덮어 왔다.

“소루!”

어깨를 흔드는 힘에 그녀는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잠시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버릇처럼 눈꺼풀을 어루만졌다.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 감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하는 것이었다. 차안을 보는 눈은 완전히 닫혔지만, 피안을 보는 눈은 아직 반쯤 열려 있었다. 이런 식으로 구분하지 않으면 어둠 중에 느껴지는 것들이 산 것인지 죽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픈 건가? 또 신음소리가 들려서….”

‘아….’

단단하고 차가운 손가락이 제 이마를 조심스레 매만지고 있었다. 소루는 눈꺼풀을 느릿느릿 위아래로 움직여 보았다. 뒤숭숭한 꿈의 자취가 말끔히 갠다. 그녀는 그의 손을 절박하게 붙들었다.

“자현….”

갈라지는 듯한 음성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 손에 이마를 꾹 눌렀다. 사내의 손이 움찔 경직되었다. 뿌리치려는 줄로 알고 그녀는 애원하듯 말했다.

“잠시만… 이대로 있어다오.”

손을 꽉 쥐었다. 아무 말 없이 굳은 듯 서 있던 사내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아픈 곳이 있는 거라면 바로 말해라. 의원을 불러주마.”

“아니, 그저… 꿈을 꾸었을 뿐이다.”

사내의 온기를 만끽하자 등줄기로 서서히 안도감이 퍼져 나갔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의 손을 놓아 주었다.

자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잠시 뒤 등불에 불을 붙인 것인지 심지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빛이 제게 닿는 일은 없었다. 오로지 그가 내뿜는 빛만이 제 세계를 밝혀주었다.

“…뒤채에서 있었던 일이 악몽으로 나타나는 거냐?”

그가 굳은 음성으로 물었다. 소루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

그녀는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뒷말을 흐렸다. 반복하여 꾸는 그 꿈을, 타인에게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해서는 안 될 일처럼 느껴졌다. 입술을 깨물며 이불자락만 꽉 움켜쥐자 자현이 작은 한숨을 토해 낸다.

“아직 해가 뜨려면 멀었다. 좀 더 자.”

그러고는 서툰 손길로 이불자락을 어깨 위로 끌어 올려준다. 말과 태도는 차가웠지만 그는 은근 세심하게 저를 신경 써 주었다.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너 때문이 아니라는 말을, 그녀는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애초에 나도 쓸모가 있다 이용하라 말한 것은 자신이었다.

너는 거기에 응했을 뿐이다. 내게 있었던 일도… 네 탓은 아니야. 내가 그러한 존재였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너는 그저 내게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내가 어찌 되든, 상관없었을 뿐이야.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너는 나를 원한 적도 없고, 필요로 한 적도 없으며, 나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도, 돌보아야 할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게 있었던 일 때문에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

‘그렇게 말하면, 네 마음은 가벼워지겠지.’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제게도 이런 욕망이 있었던가. 조금만 더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한다. 만나러 와주는 것이 기쁘다. 억지로라도 신경을 써주는 것이 기뻐서… 괜찮다. 네 책임이 아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내버려 두어도 된다. 그리 입 밖에 낼 수가 없다.

‘있는 듯 없는 듯 살겠다고… 여종으로 여기어도 좋다고… 해놓고는….’

잠시 후 그가 방을 나갔다. 얇은 장지문 한 장을 두고 그가 옆방 침상에 몸을 누인다.

소루는 잠시 그의 인기척에 귀를 기울이다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욕심은 자꾸만 커져간다. 생소하기 그지없는 갈망에 가슴을 움켜쥐며, 소루는 몸을 웅크렸다.

***

아시타는 최근에 발견된 시체의 대부분이 자호가에서 쫓겨난 하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하필 자호가의 하인들인가. 소루 공주에게 남은 미련을 그런 식으로 표출하는 건가.

혹시나 실마리를 잡을까, 하여 여란에게 그들이 쫓겨난 이유를 조사하게 하였지만 아직까지 알아낸 것은 없었다.

‘깊이 파고들 생각은 없는데….’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자호가에 권력자들이 드나들고 있다는 것은 그도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영웅 자현과 가륜 왕의 대립에 관해서도 몇 가지 주워들은 것은 있다. 하지만 그는 이 나라에 요괴를 퇴치하기 위해 왔을 뿐이다. 내정에까지 발을 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근데… 아무래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단 말이야.’

그의 야생적인 감이 자호가를 뒤져보라 외치고 있었다. 아시타는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요괴들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에 그리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 요괴를 잡아 죽이면 그만이다. 아무래도 놈은 자호가에서 일하던 이들을 특별히 표적으로 삼는 모양이니… 이제부터 그가 할 일은 겨우 찾아낸 이 꼬랑지를 있는 힘껏 잡아채 몸통을 끌어내는 것뿐이었다.

‘아직 살아있는 이가 남아 있으니, 다행인가.’

자호가를 나온 하인들 중에 숨이 붙어 있는 자는 겨우 둘. 그중 한 명은 여란이, 나머지 한 명은 그가 지켜보기로 했다.

아시타는 그 일꾼이 머무는 여관 근처에 두 명의 호법을 거느리고 잠복했다. 이윽고 해가 저물고 사방에 깜깜한 밤이 내려앉았다. 그는 사방에 결계를 치고서 요괴가 접근해 오기를 기다렸다. 그 일꾼은 시장에서 짐 심부름을 하며 먹고살고 있었다. 그는 늘 모든 가게가 다 문을 닫고 난 다음에서야 삯을 챙겨 들고 미적미적 외각지에 있는 허름한 집으로 향한다. 요괴들이 노리기 딱 좋은 대상이었다.

‘그 흉악한 놈의 얼굴을 드디어 보게 되려나.’

여란이 지키고 있는 이를 먼저 노릴 수도 있지만, 아시타는 이 사내가 유력하다고 여겼다. 특히나 오늘은 그믐. 음의 기운이 가장 강해지는 날이었다. 요괴가 행동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의 예상대로 사내가 외각지에 다다르자 음습한 기척이 느껴졌다. 아시타는 바로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뭣도 모르고 촐랑거리며 걷는 사내의 등 뒤로 스멀스멀 검은 그림자가 다가선다.

놈이 미리 쳐두었던 결계 안으로 발을 들이밀자마자 아시타는 결계를 발동시켰다. 사방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며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요괴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까마귀 요괴인가.’

앙상하게 깡마른 몸. 뾰족한 얼굴. 인겁을 쓰고 있었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그 본질을 통찰해낼 수가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법령사들이 법문을 읊자 놈이 고음의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뒤튼다. 얇은 인겁이 찢어지고 검은 날개가 어깻죽지 위로 삐죽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일꾼이 그것을 보고 비명을 내지르며 오줌을 질질 지렸다.

아시타는 그를 잡아채 뒤로 밀쳐내며 술법을 펼쳤다. 소매에서 쏟아져 나온 수백 장의 부적이 결계를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는 요괴를 사슬처럼 옭아매었다.

주술에 걸린 요괴는 순식간에 본래의 형태로 돌아갔다. 네 장의 거대한 날개와 다섯 개의 붉은 눈, 시커먼 부리, 그 안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가시 같은 이빨….

“이암이었군.”

제법 상위에 속하는 요괴지만 수백 마리의 귀물들을 부릴 만한 요력을 가진 놈은 아니다. 그는 쯧, 하고 혀를 찼다.

‘놈의 하수인인가.’

“이 빌어먹을 인간 놈이!”

요괴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온몸을 옭아맨 부적이 놈의 요력에 반응해 시뻘건 불꽃을 일으켰다. 그에 놀라 까마귀가 날개를 퍼덕거렸다.

“얌전히 있지 않으면 온몸이 다 불타 버린다.”

요괴가 시뻘건 안광을 반항적으로 빛냈다. 아시타는 씩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새 구이가 되고 싶다면야 말리지는 않지만.”

“하, 하지 마라!”

아시타는 법문을 외웠다. 불꽃이 격렬하게 타올라 요괴의 시커먼 몸통을 온통 휘감는다. 끽끽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이암이 온몸을 뒤틀었다.

“얌전히 있겠다! 얌전하게 있겠다!”

아시타는 손을 휘저었다. 불꽃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든다.

온몸이 홀라당 다 타버릴 줄 알았던 요괴는 황망히 다섯 개의 눈을 끔뻑였다. 어지간히 간이 쪼그라들었는지 요괴의 몸은 그새 반 정도 크기로 오그라들어 있었다.

그 볼품없는 몸을 아시타가 손끝으로 덜렁 집어 들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아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줄 알아라.”

그리 말하는 얼굴이 어찌나 음산하고 음흉해 뵈던지, 요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시타는 능글능글 웃으며 요괴를 날개째 집어 질질 끌며 다른 법령사들에게 눈짓했다.

“포획했으니 돌아가자.”

거의 실신하기 직전인 자호가의 하인에게 싱긋 한 번 웃어준 뒤, 아시타는 유유자적 몸을 돌렸다.

***

“배후에 있는 요괴가 누구냐.”

요괴를 데리고 도성 한편에 마련된 작은 사원으로 간 아시타는, 도술로 사방에 불을 밝히며 요괴에게 질문을 던졌다. 부적에 휘감긴 채 바닥에 던져진 요괴가 붉은 눈을 깜빡인다. 보통 인간에게 붙잡힌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팔뚝만 한 크기로 쪼그라든 몸이 잔뜩 경직되어 있었다. 아시타는 다시 물었다.

“네게 인간을 잡아 오라고 시킨 요괴의 정체가 무엇이냔 말이다.”

“…말할 수 없다.”

“그 요괴가 숨어 있는 곳은 어디지?”

“…그 역시 말할 수 없다.”

“그놈은 어떤 방법을 써서 요력을 감추고 있나.”

“…말할 수… 하, 하지 마라!”

불꽃을 일으키려 하자 요괴가 납작 몸을 숙이며 온몸을 벌벌 떤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아시타는 인상을 썼다. 사람을 납치해 죽이려고 한 흉악한 요괴 놈 주제에 그리 불쌍한 척을 하다니. 꼭 제가 작은 동물을 괴롭히는 나쁜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나.

“너를 살려둔 이유는 단 하나,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살려둘 이유가 없지.”

“자, 잠깐! 나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말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눈을 가늘게 뜨며 묻자 요괴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뗀다.

“이, 이름을 빼앗겼다. 나는 ‘그’가 금지한 사항은 무엇 하나 입 밖에 낼 수가 없다.”

“이름을 빼앗겨?”

아시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설마… ‘진명’을 들켰다는 건가?”

“그래! 그는 요괴들의 이름을 닥치는 대로 빼앗아 지배하에 두었다. 우리는 그를 거역할 수가 없어!”

요괴의 외침에 아시타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요괴는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이름이나 별명을 멋대로 붙여 사용하지만, 사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이름이 따로 있다. 절대로 입 밖에 내지는 않지만 그 혼에 간직하고 있는 이름. 그것이 진명이다.

진명을 누군가에게 빼앗기면 요괴는 그의 권속이 된다. 하지만 사실상 진명을 알아낼 방법은 전무했다. 요괴들은 애초에 제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할 수가 없고, 심지어는 다른 이에게 빼앗길 것을 우려해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는 요괴도 있었다.

‘그런 것을 대체 어떻게…?’

아시타는 그 의문을 바로 입 밖에 내어 물었다.

“…놈은 어떤 방법을 써서 그 많은 요괴들의 이름을 알아낸 거냐.”

“그 역시 말할 수 없다.”

“어떤 요괴인지도 말할 수 없고, 그 숨은 곳도 밝힐 수 없으며, 그 요괴가 너희들을 지배하고 있는 수법도 알려줄 수 없다면… 대체 무엇을 입 밖에 낼 수가 있나.”

“…….”

“아무 쓸모가 없다면 죽이는 수밖에 없다.”

짐짓 음산하게 말하자 요괴가 겁을 먹은 듯 검은 날개를 파르르 떨었다.

“내가 그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인간이 되려 한다는 사실뿐이다.”

“…어째서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지?”

요괴가 인간이 되려 하는 이유에는 집착할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한 게 바로 전이건만, 그는 어느새 묻고 있었다. 요괴가 그처럼 괴상한 질문은 처음이라는 듯 붉은 눈을 끔뻑였다.

“요괴가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우리는 차안의 세계를 갈망한다. 우리는 온전한 육신을 갈망한다. 우리는 그러한 존재들이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와 같은 기이한 집념은 어느 요괴에게서도 느껴 본 적이 없다.”

수많은 요괴들을 지배하에 두고, 인간을 닥치는 대로 잡아 먹어가면서까지 사람의 육신을 손에 넣고자 하는 요괴. 막연히 차안에 이끌리어 설쳐대는 여느 요괴들과는 다르다.

“그처럼 그가 인간이 되고자 갈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거기까지는, 나도 모른다.”

아시타는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 기껏 붙잡은 요괴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자 절로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러면… 너희는 그 요괴를 무어라 부르나. 가명이라도 좋으니 말해 보아라.”

그 정도는 답할 수 있겠지, 하며 빤히 노려보자 요괴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야토(夜土)”

“야… 토…?”

“그래. 우리는 그를 야토라고 부른다.”

야토.

그 이름을 입 안에 되뇌며 아시타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힐끔 까마귀 요괴를 돌아본다. 이 요괴에게서 더는 캐낼 것이 없어 보였다.

이제부터 어찌할까.

역시 죽여야 하나 고심하고 있는데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아시타는 고개를 돌렸다. 여란과 여란을 따르는 법령사 셋이 사원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 심상치 않은 모습에 아시타는 얼굴을 굳혔다.

“무슨 일이냐?”

“이리 와 봐라.”

“무슨….”

“빨리!”

다짜고짜 잡아끄는 손길에 아시타는 영문도 모른 채 질질 끌려갔다. 여란이 사원 계단을 내달려가 거리를 질주한다. 아시타는 치렁치렁한 법의를 한 손에 모아 치켜들고서 그 뒤를 따랐다.

어느새 하늘은 새벽빛으로 밝아지고 있었다. 벌써부터 일할 준비를 시작하는 것인지 거리에는 하나둘씩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여란이 그들을 헤치고 상가가 즐비한 대로로 나아갔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러느냐, 버럭 외치려던 아시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잃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차고 습한 공기 속에 진득하게 섞여 있다.

피.

바닥에 졸졸 흐르는 피의 강. 마차 서너 대가 지나도 너끈한 너비의 도로를 붉은 피가 융단처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길목마다 시체가 매달려 있었다. 어림잡아도 백 구가 넘는 시신이 푸줏간에 걸린 고기처럼 보란 듯이 지붕 위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 처참한 꼴을 보고, 일을 하기 위해 나온 상인 하나가 바닥 위에 마구 토악질을 해대었다.

아시타는 바닥에 고인 끈적한 피를 첨벙첨벙 밟으며 그 지옥 같은 도로를 망연히 거닐었다. 가슴이 뚫린 시체들. 온몸의 피를 바닥에 뿌리며 죽어간 이들의 허연 얼굴이 비수처럼 망막을 파고들었다.

아시타는 주먹을 그러쥐었다.

‘야토….’

어느 요괴를 이처럼 결연하게 죽이기로 결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턱이 나가도록 이를 악물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서 이 흉악한 짓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리라. 그리 굳은 다짐을 하는 아시타의 두 눈이 결연한 빛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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