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부모들이 내게 집착한다-150화 (150/168)

150화

「제국의 두 영웅, 결혼 임박!」

「페르체 남작과 발렌타인 공작, 만남부터 결혼까지」

「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연인, 부부가 되다!」

카이델과 엘레노어가 공식적으로 결혼 날짜를 발표하고, 제국이 한바탕 끓어올랐다. 모든 신문에서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대서특필했다.

두 사람의 결혼 소식에 사람들은 다 함께 즐거워했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무료하던 일상에 내린 단비 같았다.

엘레노어와 카이델의 약혼반지, 드레스, 결혼식 날짜까지 모든 것이 화제가 되었다. 공작저에서 열릴 예정인 결혼식의 초대장은 엄청나게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

쏟아지는 관심 탓에 요즘 두 사람은 바깥 활동을 되도록 자제했다. 엘레노어가 차창 밖을 살피며 말했다.

“오늘도 기자들이 있겠죠?”

“아마. 이 정도로 뜨거운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오늘은 가야 해요. 버나데트랑 달리아한테만 맡겨 둘 수는 없으니까.”

엘레노어가 카이델을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결혼식을 열 번쯤 올릴까요? 결혼식 초대장만 팔아도 우리 부자 될 것 같은데.”

“농담인 거 알지만, 정말로 그래 줄 수 있어.”

두 사람이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마차는 대로를 미끄러져 엘레노어의 학원 앞에 멈춰 섰다.

카이델이 먼저 내려 엘레노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엘레노어는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붙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앞에 기자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카이델이 엘레노어의 앞을 가로막으며 그녀를 보호했다.

“아주 잠시만 시간을 내어주시면…….”

카이델이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물러나라.”

“괜찮아요, 카이델.”

엘레노어가 카이델의 팔을 붙잡으며 생긋 웃었다. 그녀가 기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요. 질문 딱 세 개까지 받을게요.”

기자가 반색하며 활짝 웃었다.

“저, 정말이십니까?”

엘레노어가 한 손을 들어 보이며 조건을 덧붙였다.

“대신, 다신 학원 근처에는 얼씬거리시면 안 돼요. 아이들이 오가는 곳이잖아요.”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럼 물어보세요.”

잠시 신중하게 고민하던 기자가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다들 두 분의 러브스토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두 분이 서로의 어떤 면에 이끌리셨는지 궁금합니다.”

엘레노어가 먼저 대답했다.

“음, 든든하고 한결같은 면이 좋았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변해도 이 사람은 변하지 않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그러자 카이델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각하께서는……?”

“어디 하나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어서.”

기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카이델의 말을 받아썼다. 엘레노어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참으며 이를 앙다물었다.

“다음으로는, 두 분이 연인 관계를 인정하신 것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빨리 결혼을 진행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혹…….”

기자의 질문에 카이델이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이미 확신이 있는데, 굳이 더디게 진행해야 할 이유가 있나?”

“물론 없습죠. 전혀 없습니다.”

기자가 얼른 꼬리를 내렸다. 그가 엘레노어 쪽을 보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결혼 후 학원 운영은 누가 맡아 하게 됩니까?”

기자의 말에 엘레노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왜 내가 그만둘 거라고 생각해요?”

“그야 이제 발렌타인 공작 부인이 되실 테니까요. 보통은 부군의 내조를…….”

“결혼해도 저는 여전히 엘레노어일 텐데요. 페르체 남작이고요.”

엘레노어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넘어서야 할 편견들이 많아 보였다.

엘레노어가 카이델을 올려다보며 툭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카이델? 내가 일하는 거 그만뒀으면 좋겠어요?”

“아니. 뭐든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해.”

카이델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엘레노어가 예상했던 답 그대로였다.

흔들림 없는 푸른 눈동자가 엘레노어를 담았다.

“그대가 무슨 선택을 하든, 나는 늘 전심전력으로 지지할 테니.”

카이델이 엘레노어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언제나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 주는 그가 있기에 엘레노어는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카이델이 기자를 향해 까칠하게 명령했다.

“받아 적어. 내조는 내 몫이라고.”

***

“선생님!”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선생님 지각이래요.”

엘레노어가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분명 철자 수업 중일 시간인데, 문소리를 듣고 나온 듯했다.

“요 녀석들.”

엘레노어가 아이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수업 중에 뛰어나오면 될까, 안 될까?”

“안 돼요!”

“어서 다시 들어가세요. 안 그러면 이따 간식 없다.”

엘레노어의 말에 아이들은 툴툴거리면서도 순순히 교실로 돌아갔다. 딱 한 명만 빼고.

“로벨? 들어가야지.”

엘레노어가 로벨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이 아저씨예요?”

아저씨.

충격적인 호칭에 카이델의 얼굴에 쩌적 금이 갔다.

“응?”

“이 아저씨랑 선생님이랑 결혼하는 거예요?”

로벨의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로벨은 설움이 그득히 담긴 목소리로 엘레노어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어른 될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잖아요!”

엘레노어가 쩔쩔매며 로벨을 한참이나 안고 토닥여 주었다. 쓰라린 첫사랑의 상처를 사탕 하나로 달랜 로벨이 들어가고, 엘레노어가 한숨을 돌렸다.

그때 엘레노어의 뺨이 따끔했다. 누군가의 불만 가득한 시선이 그녀에게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카이델이 무표정한 얼굴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 약속을 했어?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는데……!”

“흐음. 그래?”

평소와 달리 약간 딱딱한 목소리가 엘레노어를 긴장시켰다.

카이델의 손이 엘레노어의 뺨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까슬하고 단단한 손바닥이 지나간 자리에 묘한 열기가 남았다.

그가 엄지로 엘레노어의 말랑한 입술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마음을 놓을 수가 없군. 결혼식이 코앞인데 내 신부를 욕심내는 자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그대는 내 불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엘레노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유감입니다?”

카이델의 입꼬리가 움찔했다. 괜히 한 번 투정이나 부려 보려 했는데, 엘레노어 앞에서는 표정 관리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카이델이 엘레노어의 코끝을 가볍게 잡았다가 놓았다.

“하여튼 예뻐가지고.”

“으윽.”

그때 옆에서 진심으로 질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나데트였다.

엘레노어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아직 한참 멀었어.”

“그런데 그게 다 뭐야?”

버나데트는 커다란 종이봉투 두 개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가 엘레노어와 카이델에게 봉투 하나씩을 턱턱 안겨 주며 말했다.

“너한테 온 편지야. 정확하게는 두 사람한테 온 거겠지.”

“편지?”

“너 없는 동안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 이것 말고 선물도 있으니까 나중에 창고에서 다 가지고 가.”

엘레노어와 카이델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 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엘레노어가 소파에 앉아 편지 하나를 펼쳐 들었다. 카이델도 편지 몇 통을 꺼내 그녀의 옆에 자리했다.

「결혼 추카드림니다. 선생님.

요즘 열시미 글공부 하고 잇습니다.

행복하새요.

항상 감사합니다.

-케인」

케인은 학원에서 공부하는 아이 중 하나였다.

펜을 쓰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지, 종이 여기저기에 잉크가 찍혀 있었다.

하지만 엘레노어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정성껏 써 내려간 이 편지가 그 어떤 선물보다 귀하게 느껴졌다.

“그대에게 고맙다는 말이 많아, 선생님.”

“당신에게 고맙다는 사람들도 많은걸요, 각하.”

두 사람은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잔뜩 쌓인 편지들을 읽어 나갔다. 수많은 사람이 둘의 행복을 빌어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엘레노어의 손끝이 움찔했다.

「엘레노어 아가씨.

클로에입니다.」

‘클로에……. 정말 오랜만이네.’

클로에에게서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엘레노어가 편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저는 공작가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어요.

아가씨가 챙겨 주신 퇴직금으로 작은 밭을 하나 샀어요.

앞으로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 산골 마을에도 아가씨가 만드신 제국어 교재가 있어요.

아가씨 덕분에 저도 이제는 제법 글을 잘 씁니다. 철자는 아직도 좀 헷갈리지만요.

항상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

염치없지만……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어요.

아가씨,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누구보다 많이……. 건강하시고요.

클로에 올림.」

카이델이 툭 물었다.

“괜찮아?”

“네?”

“아니, 표정이 좀 다르길래.”

엘레노어가 카이델을 보며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엘레노어의 입매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괜찮아요. 다 좋아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의 축복을 가만히 읽어 보던 엘레노어가 문득 입을 열었다.

“카이델.”

“응?”

“우리 결혼식 준비, 얼마나 진행됐어요?”

엘레노어의 말에 카이델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제법 많이?”

“그렇구나……. 알았어요.”

엘레노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델이 편지를 내려놓고 엘레노어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나?”

“아니에요. 아무 문제도 없어요.”

“그러면?”

카이델이 애타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 줘, 엘레노어.”

카이델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엘레노어가 화들짝 놀라며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결혼을 물리고 싶다거나 그런 게 절대 아니에요! 그냥…….”

“그냥?”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우리를 축복해 주고 싶어 하는데, 결혼식에는 정말 몇 사람만 초대할 수 있으니까요.”

엘레노어가 카이델의 손등을 살살 쓸며 말을 이었다.

“좀 더 공개되어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서 그랬어요. 이 많은 편지에 대한 답신으로.”

“공개라…….”

“그냥 잠깐 생각해 본 거예요. 준비도 다 되어 가는데,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카이델이 불쑥 대답했다.

“나는 좋아.”

“네?”

“나야 더 많은 사람이 확인해 주면 좋지. 그대가 내 사람이고, 나는 그대의 사람이라고.”

카이델이 싱긋 웃으며 엘레노어와 눈을 맞췄다.

“엘레노어, 우리 인생에 딱 한 번 있을 일이야. 다른 고민은 접어두고 딱 하나만 생각해.”

카이델이 물었다.

“그게 그대가 원하는 결혼식이야?”

잠시 머뭇대던 엘레노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더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럼 그렇게 해야지.”

“당신이 원하는 결혼식은 뭔데요?”

“그야 자명하지 않나?”

카이델이 엘레노어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내 곁에 그대가 있는 결혼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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