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화
감자튀김
내가 목격하게 된 것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야영지를 지키려 애를 쓰는 금발의 엘프 여성과 그 여성에게 화염을 내 뿜는 사람 머리만 한 크기의 꽃이었다.
금발의 여성과 불을 내뿜는 꽃이라니 어디 근처에 먹으면 키가 커지는 버섯이라도 있을 것 같은 그림이군.
그 식물은 좌우의 꽃봉오리에서 마치 화염 방사기를 연상케 하는 격렬한 화염을 내뿜고 있었다.
그 식물의 이름은 끓는 기름 의태화.
끓는 기름 의태화는 다른 이름으로는 미믹 플라워라고도 불리는데 그 이름 그대로 평소에는 일반적인 식물과 같은 모습으로 의태를 하여서 다른 생물들을 속인다.
그 외견 자체는 사람의 허리까지 오는 정도의 크기를 가진 여러 송이의 꽃봉오리가 하나에 뿌리에서 자란 것과 같아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얼핏 보기에는 여러 송이의 꽃이 피어있는 것과 같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중에서 진짜 꽃봉오리는 한 송이뿐, 나머지 꽃봉오리는 가짜로 오히려 먹잇감을 잡아먹기 위한 사냥 기관에 불과하다.
그 이외의 다른 꽃봉오리들의 역할은 그저 꽃봉오리 안에 기름을 넣어두고 향기를 퍼트려서 주변에 접근하는 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들을 고온으로 달군 기름 안에 빠트려서 포식하는 것이었다.
이 근처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식물이라 알아보는 것이 조금 늦었다.
“꺄아악! 살려주세요!”
음. 좀처럼 보기 힘든 희귀한 식물이다 보니 제법 생각이 길어졌다.
슬슬 진심으로 곤란한 것 같기도 하니 이제 진짜 도와야지.
우지끈
나는 그대로 의태화의 뒤로 돌아가서 줄기를 손으로 잡고 그대로 움켜쥐었다.
의태화의 기름은 가짜 꽃봉오리 부분이 아니라 뿌리 안에 숨어있는 기름 주머니 속에 모여있으며 필요할 때마다 줄기를 타고 기름을 내보내는 구조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줄기를 세게 잡고 손으로 기름관을 막아버리면 기름이 더이상 꽃봉오리 부분까지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금세 불이 그치게 된다.
그 전에 그냥 줄기를 꺾어버리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줄기가 중간에 꺾여진 의태화는 줄기가 꺾이고도 바닥을 꿈틀거리며 불을 토해냈지만, 곧 더 이상 기름을 공급받지 못하자 더이상 불을 내뿜지 못하고 추욱 늘어졌다.
나는 수통을 꺼내서 주변에 불이 붙은 장소에 물을 뿌리며 말했다.
“애초에 밀림에서 불장난이라니 위험하잖아.”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 히익! 괴물이다! 잡아먹지 말아 주세요!”
기껏 구해줬더니 사람보고 괴물이라니.
완전 종 차별적인 발언이잖아. 사과해라.
이래 보여도 리저드맨 기준으로는 나름 미남인 편인데 가슴 아프게.
그녀가 그대로 나를 계속해서 괴물이라고 불렀다면 조금 귀찮아질 수도 있었으나, 다행히도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내게 사과를 하였다.
“...죄송합니다.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공황 상태에 빠져서…….”
“신경 쓰지 마라. 리저드맨이 희귀한 종족이기는 하니까.”
“목숨을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저는 마리시아라고 해요. 마리라고 불러주세요.”
그렇게 마치 갓 튀긴 것 같은 감자튀김과도 같이 아름다운 금발을 가진 엘프는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였다.
“나는 쿠르트다. 그보다 끓는 기름 의태화는 그렇게 공격적인 생물이 아닐 텐데 어째서 습격을 받은 것이지?”
의태화는 주로 섭취하는 먹잇감이 벌레나 쥐 같은 작은 동물들인 만큼 사람과 같이 자신보다 덩치가 큰 동물들에게 먼저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의태화가 그런 생물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반격이라고는 자신이 저장해두고 있던 기름을 발화시켜서 내뿜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의 유일한 사냥 수단인 기름을 일회성인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이 불타 없어져 버리면 자신 또한 사냥할 장소도 잃어버리고 굶어 죽을 수 있으니 불을 내뿜는 것은 그야말로 자신이 죽을 위기가 아니라면 좀처럼 하지 않는 행동이다.
내 말에 마리는 ‘에헤헤’하고 웃으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노숙을 끝마치고 아침에 일어나니까 배가 고팠거든요.”
“그래서?”
“그래서 아침으로 뭘 먹을까 하다가 마침 처음 보는 꽃이 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이 꽃은 샐러드로 만들어 먹으면 무슨 맛이 날까 해서 뽑으려 했는데 냅다 불을 뿜지 뭐에요.”
뭐지? 혹시 바보인가?
숲속에서 처음 보는 식물을 냅다 입에 넣을 생각을 하다니.
전생에서도 충분히 바보 소리를 들을만한 무모한 짓이었지만, 이 세계에서는 처음 보는 생물은 마수일 수도 있다는 위험까지 생각한다면 방금 마리가 한 행동은 그 이상으로 멍청한 짓을 한 것이었다.
“엘프를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다만, 혹시 엘프는 원래 지능이 낮은 편인가?”
“아앗! 그거 종 차별적인 발언이에요! 사과하세요!”
“...아. 그래. 미안하다.”
“에헴! 용서해드리도록 할게요. 그리고 저라고 무턱대고 그 꽃을 먹으려 한 것은 아니에요.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요.”
하기는,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꽃을 바로 입에 넣을 생각을 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런 짓은 탈피도 제대로 못하는 리저드맨도 안 할 짓이니까.
“그래? 무슨 이유지?”
“저는 모험가가 될 몸. 그러니까 예비 모험가로서 처음 보는 것이 있으면 모험가답게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한 것뿐이라고요!”
그냥 모험가 하지 말까?
한순간 모험가의 평균이 눈앞에 이 얼빠진 엘프의 수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모험가를 하고 싶었던 욕구가 상온에 내다 둔 아이스크림이 녹듯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뭔가 저를 한심한 눈으로 보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 리저드맨을 보는 게 처음이라 표정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거겠지.”
“흐음……. 그런가?”
“그렇겠지. 그보다 이제 문제는 해결된 것 같으니 나는 이만 떠나겠다.”
“아앗! 잠시만요!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뭔가 보답을…!”
“보답 같은 건 필요 없다.”
솔직히 그다지 부유해 보이지도 않고 뭔가를 준다고 해도 왠지 나사 빠진 무언가를 줄 것 같으니까.
그 이전에 환생하고 나서는 리저드맨의 생활양식에 물들어서 그다지 물욕이 없는 편이기도 하고.
“그럴 수는 없어요!”
그러나 마리는 나의 거절을 거절하며 자신의 가방을 뒤적였다.
하지만 아무리 가방을 뒤적여도 나오는 것은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뿐,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고는 나오지 않았다.
아니, 설령 제대로 된 가치가 있는 물건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관심이 없었지만.
“히잉……. 뭔가 보답이 될 만한게…….”
“...딱히 보답을 바라고 구한 것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사실 왠지 이 멍청이랑 계속해서 엮이면 피곤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하고.
그러나 마리는 끝까지 울상을 하며 자신의 배낭을 뒤적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뒤져봐야 내가 원하는 게 나올 리는 없다니까.
“가진 거라고는 감자 몇 개뿐인데…….”
“바로 그거다!”
“꺄아악!”
감자라는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고, 내 갑작스러운 외침에 마리는 깜짝 놀라서 배낭을 뒤지던 자세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하지만 바보 엘프 하나가 뒤로 나자빠진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감자를 보게 될 줄이야.
리저드맨의 마을에서는 감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이 세계에 환생하고 나서는 한 번도 먹지 못했던 식재료가 아닌가.
풍문으로 들어서 이 세계서도 감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설마 마을을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바로 감자를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감자라고 해서 모두 같은 감자가 아니다.
전생에서도 그랬지만,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야채라 하더라도 그 세부적인 품종의 차이에 따라서 가지고 있는 특성은 천차만별이었으니.
혹시 이 감자의 특성이 내가 생각한 그것이 아니라면 실망만 하게 될 뿐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 뒤 마리가 꺼낸 감자의 끝을 살짝 잘라낸 뒤 천천히 살펴보았다.
“아야야. 놀랐잖아요.”
흐으음. 과연 수분이 적고, 이 정도면 전분도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아니, 오히려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이 세계의 농작물들은 딱히 품종개량이라는 개념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신기하게도 전생에서 품종 개량된 농작물들에 비해서 그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면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야생동물이 불을 뿜고 사람도 수련에 따라서 맨손으로 바위도 부술 수 있으니 농작물들의 수준이 높은 것 정도는 별 특이한 것도 아니지.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마리시아가 내게 선물해 준 감자의 품종과 품질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마침 끓는 기름 의태화도 근처에 있었으니.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꿀꺽
“마리시아.”
“마리라고 부르라니까요.”
“아직 밥은 안 먹었겠지?”
“아직 안 먹기는 했는데……. 왜요?”
“그래. 일단 식사를 하지. 내가 요리해 주겠다.”
오늘 아침 메뉴는 감자튀김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는) 공모전 이틀째!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