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리저드맨은 햄버거가 먹고 싶다-11화 (12/78)

제 11화

달맞이꽃 샌드위치

쏴아아아아

“음. 역시 기껏 여행을 나서는데 시골 마을은 좀 아닌 것 같아.”

요리에 필요한 조미료도 거의 팔지 않고, 특산품 같은 것도 없고, 덤으로 모험가 길드도 없어서 모험가 등록도 하지 못한다.

마을 전체를 도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는 특별히 할 일도 없다.

사실 원래 계획으로는 첫 번째 마을에서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화폐를 어느 정도 모은 뒤 이동하려 했는데, 무지개 꿀벌의 벌집이라는 예상치도 못한 수입을 얻게 된 것이 컸다.

그 때문에 나와 마리는 시골 마을에서는 여독을 푸는 정도로만 머무른 뒤 다시 길을 나선 것이다.

“여행 중에는 감자튀김을 먹을 수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요.”

“뭐? 또다시 감자튀김 타령이냐?”

“헤헤. 그래도 아직 감자튀김이 제일 맛있는 걸 어떻게 해요.”

하기는 원래 단순한 게 가장 강한 법이기는 하지.

쏴아아아아

“...할 게 없네요.”

“그러게 말이다.”

“그러면 저랑 끝말잇기라도 하실래요?”

“안 한다.”

“히잉…….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마을에 며칠 더 머무를 걸 그랬나 봐요.”

“말하지 마! 나도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말하지 않고 있었던 부분인데!”

쏴아아아아

콰르릉

번쩍

설마 기운차게 마을에서 출발하고 며칠도 되지 않아서 이런 폭우가 쏟아질 줄이야.

날씨를 읽는 것은 사냥꾼으로서 요구되는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사냥꾼 직에서 퇴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날씨가 심상치 않았을 때는 이미 마을을 떠난 지 며칠인가가 지난 뒤였기에 되돌아가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구름의 모양으로 봐서는 오늘 하루는 꼼짝없이 이동도 하지 못하고 묶여 있어야 할 판이었다.

솔직히 나 혼자라면 이렇게 미친 듯이 쏟아지는 장맛비라 해도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 여행은 나 혼자 맨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

나의 가방 안에는 리저드맨의 마을에서부터 챙겨온 습기에 취약한 향신료들이 몇 종류나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덤으로 나보다 체력이 약한 마리도 있었고.

그 소중한 향신료들을 빗속을 헤치고 나가는 위험에 노출되게 할 수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밀봉은 단단히 해두었지만, 절대라는 것은 없다고 전생에서 카드 게임을 좋아하던 친구도 입버릇처럼 말했었지.

그런 이유로 나와 마리는 비가 쏟아지는 것을 보자마자 더이상 이동하는 것을 멈추고는 근처의 비가 들지 않는 동굴을 찾아서 대피한 것이었다.

“후우. 이대로 꼼짝없이 발이 묶이게 생겼군.”

“쿠르트 씨! 이것 보세요!”

“끝말잇기는 안 한다니까.”

“그게 아니라 동굴 안에 길이 있어요!”

“뭐가 있다고?”

내가 눈을 돌려 마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자 확실히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틈이 있었다.

그 틈새는 다른 지형에 둘러싸여서 멀리서 보기에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벽으로 보였던 것이었다.

“모험의 예감이 들지 않나요!”

“으음…….”

확실히 쓸데없는 이야기라면 대충 한 귀로 듣고 넘겼지만, 이번만큼은 마리의 제안이 제법 구미에 당겼다.

어차피 이런 빗속에서는 더이상 전진할 수도 없고, 아직 잠들기에는 이른 시간이니까 시간 죽이기에는 나쁘지 않겠지.

“분명히 이 동굴 안에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어있을 거라고요! 오래전에 멸망한 고대 제국의 보물이 숨겨져 있거나 아니면 은거한 위저드가 만든 던전일수도 있어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니겠지.”

기껏해야 야생동물이 자리 잡은 정도겠지.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눈을 반짝이는 마리를 보니 그냥 기대하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뒷말을 삼켰다.

그래. 어차피 실망할 거라면 꿈이라도 꾸게 해주는 게 좋겠지.

그렇게 나와 마리는 때아닌 동굴 탐험에 나서게 되었다.

.

.

.

“생각보다 긴데.”

“이건 분명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어있다는 징조라고요!”

얼마 걷지 않아서 동굴의 끝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그 동굴은 제법 깊었다.

물론 길의 모양새가 불필요할 정도로 구불구불한 것으로 보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이 아님은 확실했으나 마리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흥미진진한 눈으로 탐색을 계속할 뿐이었다.

뭐, 신날 만도 하겠지.

모험가를 꿈꾸며 엘프의 마을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지금껏 하는 일은 시골 마을을 잠깐 들린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숲길을 걷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는 평소 엘프의 마을에서 하던 것과 큰 차이도 없었는데 그런 와중에 미지의 동굴이라는 모험 요소가 넘치는 경험을 하게 됐으니 들뜨는 기분도 이해가 간다.

마치 첫눈을 보고 신난 강아지와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르르르…….

“역시 저는 개인적으로는 던전보다는 고대 제국의 유산 쪽이 취향인데요. 쿠르트 씨는 어떤 쪽이 취향인가요!”

“쉿. 조용히.”

“...쉿?”

내 말에 마리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똑같이 입술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슬슬 나올 거라 생각했다.

사람 두 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널찍하고 깊이도 제법 되는 동굴이었다.

이 정도의 입지를 가진 동굴이라면 야생동물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걸어서 5분 거리에 지하철역과 대형 쇼핑몰이 모두 존재하는 오피스텔 급으로 금싸라기 부동산이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그런 장소에 지금까지 아무런 동물도 보이지 않는 게 수상했는데.

크와앙!

“내 뒤로 숨어라.”

마수는 아니네.

동굴의 깊숙한 곳에서 튀어나오며 기습을 감행한 생물체의 정체는 곰이었다.

과연 곰이라면 마수를 제외한 생태계의 최정상에 존재하는 생물.

입지 좋은 노른자 땅을 분양받기에 부족함이 없지.

곰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무단침입한 이물질을 없애버리겠다는 듯 앞발을 크게 휘둘렀다.

휘이익

크워엉?

크, 크워어어

그러나 그 곰의 혼신의 힘을 실은 스윙은 내 손에 가로막혀서 당초 목표로 삼았던 나의 몸에는 닿지도 못했다.

곰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래봤자 마수도 아닌, 그냥 보통의 동물.

그렇다면 순수근력 싸움으로 붙어도 나는 패배하지 않는다.

곰은 당황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자신의 앞발을 앞뒤로 움직였지만 내가 힘을 풀지 않는 한 빠질 리가 만무했다.

“흠. 곰 고기라.”

나쁘지는 않지만, 지금의 환경에서는 좀 곤란하다.

고기의 잡내를 뺄 조리도구도 마땅치 않은 데다 장기 보관을 위해서 훈연하려 해도 동굴이라는 위치도, 날씨도 모두 적절하지 않다.

그 이전에 장작으로 사용할 훈연재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한두 끼 정도는 먹을 수 있겠지만 그 이외의 남는 고기는 버려야 하는 셈이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식으로 음식을 낭비하는 것은 전직 사냥꾼으로서 별로 내키지 않는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동행인이 고기를 먹지 못하는 엘프이기 때문에 혼자 먹기가 좀 그래.

“쯧. 어쩔 수 없지.”

전직 사냥꾼으로서 먹지도, 시체를 가공하지도 못할 동물을 사냥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곰 정도로 생명의 위험이 되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곰의 앞발을 놓아주었고, 내가 팔을 놓아주자 곰은 언제 달려들었냐는 듯 그대로 몸을 돌려서 헐레벌떡 도망쳤다.

그래도 눈치는 빠르네. 만약 거기서 눈치 없이 다시 한번 덤볐다면 그때는 진짜 죽여버리려 했는데.

“와. 쿠르트 씨는 정말 강하네요. 리저드맨은 모두 그렇게 강한 건가요?”

“뭐. 내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강하기는 했지.”

그렇게 우리는 다시 동굴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

.

.

과연 조금 전에 쫓아냈었던 곰이 이 동굴의 유일한 거주자였는지 그 이외에 다른 생물은 없었다.

그렇게 이따금 동굴 속의 신기한 풍경들을 구경하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걸었다.

“쿠르트 씨. 저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어요.”

“와. 정말?”

“어쩌면 이 동굴……. 아무런 보물도 숨겨져 있지 않은 자연 발생한 동굴인 것 같아요!”

와. 드디어 알아챘구나.

나는 곰이 나온 순간에는 눈치를 챘을 줄 알았는데.

설마 이제야 눈치를 채다니.

“그래서 아주 실망스러웠겠다.”

“으음……. 하나도 실망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어요.”

“그렇다니 다행이네.”

“아직 모험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서두르지 않으려고요.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느긋하게 모험 그 자체를 즐기는 거예요.”

구우우우우

“...배고프냐?”

“헤헤헤……. 오래 걸었더니……. 저 슬슬 식사하는 게 어떨까요?”

“그래. 슬슬 밥 먹을 시간이 되기는 했지.”

“그러면 저기 앉기 좋아 보이는 바위가 있는데 저기서 먹을까요?”

“아니. 그건 좀 기다려봐. 조만간 좋은 장소가 나올 것 같으니까.”

나는 몇 분 전부터 느껴지는 감각을 따라 길을 걸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걷기를 조금 더 지나자 곧 풍경이 화악 달라지며 우리는 동굴의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나도 마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의 독자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완결까지 최선을 다해서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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