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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리저드맨은 햄버거가 먹고 싶다-12화 (13/78)

제 12화

달맞이꽃 샌드위치

비록 좁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유 있다고도 할 수 없었던 구불구불했던 길이 한순간에 넓게 펼쳐지며 그 앞에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공동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공간.

넓이만 해도 어지간한 귀족의 저택 한 채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에 높이는 그 이상이어서 천장까지 족히 20m는 되어 보였다.

그리고 그 천장의 중앙에는 동그랗게 뚫린 구멍이 있어 그 사이에서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고 그 밑에는 아주 작은 크기의 샘과 달빛을 받고 자란 것으로 보이는 새하얀 꽃밭이 촉촉하게 젖은 채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비를 피하고자 우연히 들어왔던 동굴에서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아름다운 광경.

하지만 그 아름다운 꽃밭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공동의 한쪽 구석에 세워진 작은 오두막이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지 매우 낡은, 방치된 지 몇십 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이 지난 것처럼 보이는 오두막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봐요! 쿠르트 씨!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분명히 이 동굴 안에 무언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거짓말. 바로 전에까지 자기도 이 동굴 안에 인공물 따위는 없을 거라고 했던 주제에.

그리고 이건 던전도 아니고 보물도 없잖아.

나는 얄밉게 으스대는 마리를 무시하고는 오두막의 안을 조사해보았다.

분명히 이 동굴의 모습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물인 그대로였다.

그것은 분명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사냥꾼으로서 마수들의 흔적들을 추적했던 경험과 초월자가 되며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난 감각들은 보통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작은 흔적까지도 살필 수 있었으니.

그렇다면 이 오두막이 방치된 것이 사람의 흔적이 모두 지워질 정도로 오래전의 이야기거나 아니면 여기에 살던 사람은 오두막을 지은 뒤로 밖에 나가는 일 없이 은둔하는 생활만을 했거나 였다.

그중에서 전자의 가설은 바위로 된 동굴 안에서 흔적이 사라질 정도로 오랜 시간이라면 그 전에 오두막이 먼저 사라졌을 테니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가장 유력한 가설은 이 오두막에 기거하고 있었던 인물이 자의든지 타의든지 이 공동에서만 생활했다는 이야기인데.

무언가 사연이 있는 인물이라는 걸까.

오두막의 안으로 들어섰다.

오두막의 상태는 겉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욱 처참했는데 나무가 완전히 썩어버린 것인지 조금만 발걸음을 잘못 디뎌도 밑으로 쑥 꺼질 것만 같았다.

“쿠르트 씨. 저도 같이 구경해요! 꺄아악!”

우지끈

거봐. 바로 빠져버리잖아.

“...안 그래도 조심하라고 하려 했는데. 손잡아.”

“고, 고마워요.”

나는 썩은 나무를 잘못 밟고 다리가 빠진 마리를 도운 뒤 다시 한번 오두막의 안을 살펴보았다.

나무로 대충 모양새만 갖춰놓은 오두막답게 안에는 별다른 물건이라 할만한 게 없었는데 놀라운 점은 그 얼마 없는 물건들의 모양이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록 너무 오래 방치되어서 골동품 이상의 가치는 없어 보였지만 원래대로라면 하나 같이 매우 높은 가치를 가졌으리라 예상되는 아티펙트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귀한 도구인 아티펙트들까지 도저히 회생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다니…….

도대체 얼마나 오래 방치된 거지? 몇십 년은커녕 몇백 년 정도 방치된 것일지도 모르겠군.

비록 마법에 대해 조예가 없어서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라면 이 오두막에 살고 있던 사람은 매우 높은 계급인 것이 확실해 보였다.

“이 정도 되는 물건을 가진 사람이 어째서 이런 오두막 안에…?”

“아앗! 이것 좀 보세요!”

“뭔데?”

“이 방 주인의 일기 같은데요!”

마리는 오두막의 주인이 쓰던 일기를 들고 흔들었다.

그러나 이미 오두막을 이루던 나무도 썩을 정도로 오랜 시간 방치된 곳에서 일기라고 멀쩡했을 리가 만무했고 그 일기는 마리가 들고 흔드는 대로 실시간으로 삭아서 없어지고 있었다.

“흔들지 마!”

“어, 어떻게 하죠?”

마리는 뒤늦게 일기를 들고 흔들던 것을 멈췄지만, 그때쯤에는 일기는 거의 일기였던 것에 가깝게 변한 뒤였다.

“후우. 일기가 너무 훼손되어서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없네.”

“히잉……. 죄송해요.”

“아니. 네가 파손시킨 것도 있지만 일기 자체가 워낙 오래 방치되어서 풍화된 부분이 상당히 많아. 거기에 얼마나 오래전에 쓰인 건지 문자 자체도 지금의 방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그런가요! 제 잘못이 아니군요! 그나저나 일기에는 뭐라 쓰여있나요?”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얼마 없어서 모두 읽지는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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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 □월 13일

이 세상에 드디어 멸망의 □□□□.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로부터 도망치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들은 모두 □□□□.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나까지 □□수는 없었으니까.

수도에서 도망치면서 있는 대로 훔쳐 온 □□□□□해서 보호막을 □□면 적어도 나는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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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그 이상은 읽을 수가 없었다.

“쯧. 읽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네.”

그나마 가장 훼손이 덜 된 부분을 펼쳐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위쪽의 절반도 안 되는 부분뿐이었다.

그나마도 군데군데 글자가 지워져 있었고.

그 이외에 다른 페이지들은 아예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의 중간중간들이 날아가 있어서 해석조차도 되지 않았다.

“딱히 일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법한 정보는 안 쓰여있네.”

“보물의 위치가 적혀있다거나 그런 것은 없나요?”

“있겠냐.”

나와 마리는 그대로 오두막의 안을 더 수색해 보았지만, 그 이외에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우리는 아쉬운 대로 나름 골동품으로서 가치가 있어 보이는 망가진 아티펙트들을 챙기고는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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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두막을 먼저 조사했지만 진짜 관심이 있었던 것은 공동의 중앙에 자라고 있는 순백의 꽃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맛있는 음식은 마지막에 먹는 편이라 탐색을 뒷순위로 미루어 두었지.

“와아. 꽃이 너무 이뻐요.”

마리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 꽃을 보고는 그저 감탄할 뿐이었지만, 사냥꾼으로서 경험이 많은 나는 그 꽃이 어떤 꽃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이건 달맞이꽃이다. 제법 귀한 꽃인데.”

“달맞이꽃이요? 혹시 마수화된 식물이라거나…….”

내 말에 마리는 식물 마수에 당했던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것인지 진저리를 치며 물러났다.

“걱정하지 마라. 마수 종류는 아니니까. 그저 순수하게 매우 귀한 꽃일 뿐이다.”

“깜짝 놀랐잖아요. 그런데 매우 귀하다고 강조할 정도라면 무슨 특별한 효능이 있나요?”

“달맞이꽃은 약을 만드는데도 연금술의 촉매로도 쓸 수 있는 매우 귀중한 풀이지.”

“그러면 지금 당장 채집하죠!”

“하지만 꽃을 꺾고 나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며칠 만에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채취해갈 수는 없다.”

“히잉……. 그러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잖아요.”

“아니. 달맞이꽃에는 그 이외에도 한 가지 더 쓰임새가 있지. 지금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종류의 쓰임새가.”

“어떤 쓰임새요?”

“꽃잎이 매우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어서 제법 맛있는 별미라는 것이지. 자, 식사시간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요리 재료들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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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이 별미라는 말에 마리는 조금 전까지 꽃밭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하던 자세는 어디 갔는지 식탐으로 가득 찬 얼굴로 꽃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마리를 두고 가방에서 슬슬 보존 기간이 아슬아슬한 호밀빵을 꺼냈다.

개인적으로는 빵이라면 버터와 우유가 들어간 다른 곡물 없이 밀가루만으로 만들어진 새하얀 빵이 취향이었지만 그런 빵은 가격도 비싼 데다 고급품이라서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애초에 마리가 있으므로 버터와 우유는 처음부터 넣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면 내 선택은 애매하게 버터와 우유가 빠진 밀가루 빵이 아닌 차라리 거칠거칠한 식감을 가진 호밀빵이었다.

호밀빵이라고 해서 순수하게 호밀만으로 이루어진 빵은 아니었다.

대충 빵의 구성성분은 밀가루와 호밀이 반반 정도 섞어서 만든 빵이었다.

실제로 전생에서도 시중의 마트나 빵집에서 구할 수 있는 호밀빵이라고 광고하는 것들도 대다수는 호밀과 밀가루를 섞어서 구워진 빵이라는 걸 아는가?

실제 호밀만으로 빵을 구우려면 빵이 부풀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볼륨감이 없고 딱딱한 빵이 나온다.

여러 가지 대중매체의 중세에서 묘사되는 속이 검은 딱딱한 빵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종류의 빵이다.

그렇기 때문에 밀가루와 호밀가루를 잘 배합하는 것이 곡물 특유의 향이 물씬 느껴지면서 식감도 그럭저럭 괜찮은 빵을 만드는 비결이다.

그 호밀빵을 나이프로 반을 가르면 만들어진 지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빵의 사이에서 향기로운 곡물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그리고 그 안에 며칠간 여행을 하면서 길에서 따온 식용이 가능한 풀들을 씻어서 넣는다.

개인적으로는 샌드위치에는 토마토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양상추, 하다못해 양배추라도 넣고 싶지만 그런 야채들이 길거리에 나 있을 리도 없으니 적당히 타협한다.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쓴맛이 나기 때문에 그 맛을 덮어줄 소스가 중요하다.

사워크림이나 사우전드 아일랜드 같은 생크림 베이스나 마요네즈 베이스도 좋겠지만 그 둘은 장기보관에 어울리지도 않고 각각 생크림과 계란이라는 동물성 식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기각.

사용하는 것은 소금, 식초, 식용유를 사용한 신맛과 짠맛을 베이스로 하는 즉석 드레싱.

거기에 무지개 벌꿀을 아주 조금 넣어서 단맛을 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극소량으로 넣을 것.

지나치게 많이 넣어서는 단맛이 다른 맛을 가리게 되는 데다 무지개 벌꿀 자체의 향이 호밀빵 자체의 곡물 향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단맛은 그 자체로도 메인으로 내세우기 부족함이 없지만 의외로 단맛을 소량 첨가하는 것으로 짠맛이나 신맛을 강조하는 보조역할로서도 손색이 없다.

평소라면 이것으로 샌드위치의 속은 완성이지만 오늘은 특별한 재료를 하나 더한다.

나는 달맞이꽃으로 손을 뻗어서 식물이 상하지 않게 그 꽃잎들을 몇 개씩 여러 송이에 나눠서 딴다.

달맞이꽃에서 나는 향기는 강렬한 풍미가 길에서 따온 풀들이 나는 쓴맛을 완벽하게 덮어줄 것이다.

실제로 전생에서 터키나 이란 같은 서아시아 쪽에서는 장미를 우린 물인 장미수를 요리할 때 향신료로 넣었지.

달맞이꽃도 가능하면 물에 넣고 졸여서 향을 우려내서 그 액기스를 드레싱에 넣는다면 그 향이 몇 배는 진해지기는 하겠지만, 역시 여행 중에는 그렇게까지 수고를 들이기가 쉽지 않다.

아쉬운 대로 꽃잎을 그대로 샌드위치 안에 띄엄띄엄 배치하면 이것으로 완성이다.

간편식 달맞이꽃 호밀 샌드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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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를 하나 더했을 뿐인데 이렇게 맛이 달라지다니!”

마리는 내가 내준 샌드위치를 마치 햄스터처럼 볼 안에 욱여넣으며 동시에 나를 칭찬했다.

확실히 지금까지 길에서 채취한 식용 풀들을 넣어서 샌드위치를 하면 무지개 벌꿀을 넣은 드레싱을 사용해도 쓴맛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는데 달맞이꽃이 품고 있는 특이한 향 때문인지 이번 샌드위치는 별로 쓴맛이 나지 않았다.

향을 따지면 바닐라와 비슷한데 완전히 바닐라와 같지는 않고 뭐라 다른 향신료로는 비유하기 힘든 특이한 향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그냥 월광(月光) 같은 향이라고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나는 간편하게 만든 것치고는 높은 완성도로 나온 샌드위치에 만족하면서 쉬지 않고 입을 움직였다.

역시 샌드위치 하나에 세 장 정도만 넣기를 잘했다.

쓴맛을 덮어주지만 반대로 향이 너무 튀어서 호밀빵 자체의 곡물 향을 완전히 지우지도 않고 적절한 것 같군.

쓴맛도 안 나고 오일드레싱이 빵에 잘 스며들어서 퍽퍽하지도 않다.

쓴맛을 잘 처리했기 때문에 아낌없이 풀을 채워 넣었고 결과적으로 식감도 풍성해졌다.

평소에는 이 쓴맛과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야채를 일정량 이상 넣기가 힘들었단 말이지.

“하나 더 먹고 싶은데요!”

“그래. 그럴 줄 알고 여러 개 만들어 뒀다.”

“야호!”

나는 재빠르게 샌드위치 하나를 먹어치우고는 하나 더 먹기를 희망하는 마리에게 쓴웃음을 짓고는 만들어둔 샌드위치를 하나 더 꺼내주었다.

처음, 이 공동에 들어왔을 때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어느새 비도 그쳐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커다란 보름달이 은은하게 월광(月光)을 내뿜고 있었다.

비록 이 공동에 살았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알아내지 못했고, 대단한 보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우연히 찾게 된 동굴에서 뜻밖에 작은 모험을 하고 마침내 찾아낸 작은 비밀의 장소에서 보름달을 보면서 먹는 때늦은 저녁 식사는 제법 낭만이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때로는 전혀 화려하지 않고 대충 있는 재료들로 만든 소박한 요리들이

큰맘 먹고 외식을 하는것보다 마음에 스미는 것을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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