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화
북방식 샤벨 타이거 스튜
그렇게 본격적으로 샤벨 타이거의 영역을 걸어간 지 몇 시간, 우리는 드디어 샤벨 타이거의 보금자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곳이 샤벨 타이거의 보금자리가 맞나요?”
“그래. 저 동굴 안에 샤벨 타이거와 약초꾼이 있을 거다.”
나는 수풀 너머로 보이는 동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냥감을 추적하는 것은 제법 오랜만이었지만 아직 사냥꾼의 추적 실력은 녹슬지 않은 것인지 어떻게든 해가 지기 전에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여기까지 오면서 다른 샤벨 타이거의 습격을 한 번도 안 받아서 일찍 도착할 수 있었네요!”
“뭐, 그런 셈이지.”
나는 마리에 말에 대충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나 내 옆에 있는 카리나는 작은 목소리로 마리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 운이 좋아서 습격을 안 받은 게 아니야. ‘습격을 받지 않는 길’로 이동한 것뿐이지.”
역시 베테랑 모험가쯤 되니까 눈치가 빠르네.
굳이 숨기려고 한 것도 아니었으니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도대체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왜 굳이 모험가를 하려고 하지? 그 정도 능력이 있다면 네 말대로 정말 최고의 사냥꾼으로 살아가는 것도 문제가 없었을 텐데.”
“꼭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그리고 그걸 위해서라면 모험가를 하는 게 가장 적합했을 뿐이고.”
“하고 싶은 일…?”
“그건……. 잠깐.”
카리나의 질문에 무언가 대답을 하려고 한순간, 동굴에서 한 마리의 샤벨 타이거가 나왔다.
크르르르르…….
샤벨 타이거는 무언가를 경계하듯 주위를 둘러보며 냄새를 맡다가 곧 우리를 발견하고는 우리를 향해서 으르렁거렸다.
역시 이만큼 접근하면 냄새로 알아채나.
사실 지금까지 안 들킨 것도 운이 좋았지.
“이런, 들켰다! 선수를 친다!”
“제, 제가 활로 엄호할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마리의 활시위가 당겨지는 것보다도 빠르게 뛰쳐나간 것은 카리나였다.
샤벨 타이거의 토벌 등급은 개체에 따라서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동 등급 상위의 마수이다.
각 마수의 등급이 동일한 등급의 모험가 4명이 파티를 이루어야 토벌할 수 있는 적정 등급이라 판정한 것을 생각한다면 샤벨 타이거 한 마리는 동 등급의 모험가 4명의 전투력과 비등하다는 계산인 것이다.
그런 마수를 단신으로 사냥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러나 카리나의 경지는 평범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었으니.
카리나는 아무리 장신의 여성이라 하더라도 쉽게 들 수 있을 것 같지 않게 생긴 베틀 엑스를 등 뒤에서 꺼냈다.
그 반응은 신속.
카리나는 10kg는 될 것 같이 보이는 그 도끼를 아무런 무게가 실리지 않은 것처럼 휘둘렀다.
“오러…!”
마리의 말대로 카리나의 배틀 액스는 신속하게 출수 되었을 뿐 아니라, 도끼날에는 흐릿하게나마 푸른색의 오러가 맺혀있었다.
설마 카리나가 그렇게 빨리 자신에게 쇄도할 줄은 몰랐다는 듯 샤벨 타이거는 마치 잘 벼려진 칼날과도 같은 자신의 송곳니를 사용하여 카리나의 배틀 액스를 막으려 했다.
카앙!
도끼와 이빨이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쇠와 쇠가 부딪힌 것 같은 금속의 충돌음이 밀림에 울려 퍼졌다.
샤벨 타이거는 그 다급한 방어 덕분에 머리뼈가 부서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웬만한 금속으로도 부술 수 없다는, 금속보다도 단단하다 알려진 샤벨 타이거의 송곳니가 부서진 것이다.
저런, 그런 외모로는 짝짓기는 글렀네.
크헝헝!
놈은 자신의 송곳니가 부서질 줄 몰랐다는 듯 당황 섞인 소리를 냈지만, 곧 그 이상으로 굴욕이라는 듯 사납게 포효하며 카리나에게 달려들었다.
자신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샤벨 타이거에 카리나는 다시 한번 배틀 액스를 휘둘렀지만, 그것은 이미 카리나를 먹잇감이 아니라 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샤벨 타이거에게는 더는 통하지 않았다.
마치 바닥으로 꺼지는 것처럼 급작스럽게 몸을 낮춘 샤벨 타이거의 행동에 카리나의 배틀 액스는 허무하게 샤벨 타이거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샤벨 타이거는 금방이라도 카리나의 옆구리를 잡아 찢을 것만 같았다.
“꺄아아악! 카리나 씨!”
“걱정하지 마라.”
고작 샤벨 타이거 한 마리에게 쩔쩔맬 정도의 실력이라면 굳이 우리에게 모험가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려주겠다고 덤으로 끌고 가지는 않았겠지.
실제로 샤벨 타이거의 이빨은 곧바로 카리나의 몸을 난도질할 것만 같이 가까웠지만 카리나의 표정은 변하지 않고 있었으니.
아마 지금의 모습은 우리에게 모험가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경고하려고 일부러 빈틈을 보인 것이겠지.
그리고 샤벨 타이거의 이빨이 옆구리에 닿기 바로 직전.
카리나는 배틀 액스를 놓고는 번개와 같은 속도로 허리춤에 있는 작은 보조용 손도끼를 꺼냈다.
파팍!
그리고 한줄기 섬광 같은 푸른 실선과 함께 겹치듯이 들리는 두 번의 타격음.
그것으로 끝이었다.
샤벨 타이거는 카리나의 옆구리까지 고작 한 뼘만을 남겨놓은 채로 손도끼에 머리가 으깨져서 절명하였다.
.
.
.
“카리나 씨! 괜찮으세요!?”
“저는 괜찮아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카리나는 샤벨 타이거를 정리하였다.
“그보다 약초꾼의 생사를 확인하는게 먼저다.”
“쿠르트 씨! 어떻게 카리나 씨가 방금 전 그렇게 아슬아슬한 싸움을 했는데도 걱정하는 말 한마디 안 할 수가 있죠!?”
그거야 실제로는 생사가 위험하지 않았으니까지.
“아닙니다. 쿠르트의 말이 옳아요. 지금은 대상을 구출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생사가 위험할 수도 있어요.”
“거 봐. 내 말이 맞지?”
“으으…….”
그렇게 우리는 뭐라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마리를 뒤로하고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그리 넓지 않았고 우리는 곧 동굴의 한구석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약초꾼을 찾을 수 있었다.
“괜찮으세요!? 어떻게 해요! 아무런 대답이 없어요!”
“호들갑 떨지 마라. 기절한 것뿐이야. 숨은 쉬고 있어.”
약초꾼의 모습은 여기저기 찢기기는 했지만,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로 큰 부상은 없는 듯 보였다.
솔직히 살아 있을 확률은 반반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살아 있을 줄이야……. 정말……. 정말 다행이다.”
“카리나 씨 울어요?”
“크, 크흠! 누가 운다는 말이죠! 그보다 샤벨 타이거를 한 마리 쓰러트리기는 했지만 여기는 아직 샤벨 타이거의 영역입니다. 다른 샤벨 타이거가 소란을 알아채고 접근할 수 있으니 약초꾼을 데리고 신속히 영역에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카리나는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면서도 울지 않았다고 잡아떼며 말했다.
도끼를 쓰는 모습은 영락없이 전투민족인데 이런 부분에서는 또 한없이 소녀 감성이네.
하지만 카리나의 경고는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아니, 사실 경고가 늦은 것은 아니었다.
그 녀석은 처음부터 동굴의 한구석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니까.
“카리나! 피해라!”
크헝헝!
“어딜!”
채앵!
내가 경고성을 내뱉자 카리나는 눈치가 빠르게 알아듣고는 곧바로 자신을 향해서 쇄도하는 샤벨 타이거에게 손도끼를 내리찍었다.
기습을 감행한 샤벨 타이거는 동굴의 입구를 지키던 샤벨 타이거보다 덩치도 작았기 때문에 카리나의 손도끼를 받아내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저건…!”
“암컷이로군.”
약초꾼이 무사해서 아직 짝짓기하기 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짝짓기를 하기 바로 직전이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던 셈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성인 방송이나 먹방을 하는 중간을 목격했을 수도 있었구만.
둘 다 별로 보고 싶은 장르는 아니었기에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샤벨 타이거의 암컷은 자신의 기습이 먹히기는커녕 실패하고 그대로 반격까지 받게 되자 수컷과는 달리 미련을 가지지 않고 도망치려 하였다.
“아앗! 샤벨 타이거가 도망치고 있어요!”
“어디를 도망치려고!”
그러나 암컷이 완전히 동굴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카리나가 던진 손도끼가 마수의 옆구리에 박혔다.
깨애앵…!
카리나는 투척물에 까지는 오러를 못 담는 듯했기 때문에 관통력이 부족해서 즉사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마수가 입은 상처는 즉사에만 이르지 않았다뿐이지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치명상이었다.
실제로 샤벨 타이거는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동굴 밖으로 향하려 하였지만 끝내 노을이 지는 석양빛을 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엎어졌다.
그리고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듯 ‘크허어어엉’하고 길게 늘어지는 울음소리를 끝으로 더이상 숨을 쉬지 않게 되었다.
“후우. 동굴에 숨어있던 마수도 모두 소탕했으니 이제 약초꾼만 데리고 돌아가면 되겠군.”
“쿠르트 씨. 약초꾼 부축하는 것 좀 도와주세요.”
“아니. 기뻐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은데.”
“네…? 그게 무슨…….”
크허어어엉!
크허어어엉!
그러나 마리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숲속을 울리는 사나운 마수의 울음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우후죽순으로 울려퍼졌기 때문이다.
“뭐지?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수컷 샤벨 타이거들의 울음소리야.”
“뭐라고?”
“암컷 샤벨 타이거가 죽기 전에 내지른 단말마를 들은 거야. 곧 이쪽으로 찾아오겠군.”
샤벨 타이거는 원래 개인행동을 하며 무리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생물이다.
그러나 그 마수들에도 특별한 예외라는 것이 존재하는 데 번식기 철에 암컷이 관련된 일이 발생했을 때가 그중 하나다.
번식기 기간 중, 암컷 샤벨 타이거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그것이 자신보다 더욱 강한 마수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컷 샤벨 타이거들은 무리를 지어서 공격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이 새끼들 호랑이가 아니라 흑우인데?
“젠장!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 빨리 약초꾼을 들고나와! 신속하게 이동해야 한다!”
“네, 넷!”
카리나의 판단은 신속했고, 카리나는 즉시 샤벨 타이거에 옆구리에 꽂혀 있던 손도끼를 회수해서 동굴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동굴 밖으로 나간 카리나는 그대로 못이 박힌 것처럼 제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카리나 씨? 어째서 멈춰 계신…….”
“이건…….”
동굴 밖으로 나선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동굴 밖을 포위하듯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샤벨 타이거의 무리였다.
크르르르…….
그 마수들은 동굴의 입구에 쓰러진 두 마리의 동족들을 보고는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의 살기를 우리에게 내뿜고 있었다.
“크윽……. 이 정도 숫자라면 어떻게든……. 마리시아 양, 엄호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쿠르트는 약초꾼을 데리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라. 끝나면 신호를 줄테…….”
그 와중에도 카리나는 베테랑 모험가답게 즉시 유효한 전략을 내뱉으려 했지만, 그 말조차도 마지막으로 나타난 샤벨 타이거의 모습에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른 샤벨 타이거들보다 1.5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크기를 가진 녀석이었다.
원래도 샤벨 타이거의 송곳니는 숏소드 정도의 길이는 되었지만, 그 마수의 송곳니 길이는 거의 롱소드와 맞먹을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네다섯 살 정도 어린아이의 키는 될법한 길이의 이빨.
그리고 그보다도 특이한 것은 다른 샤벨 타이거와는 달리 새하얗게 새어버린 체모의 색이었다.
“저, 저 마수는…?”
“각성종까지…….”
각성종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는 네임드 급이라고도 불리는 마수다.
일반적인 생물이 마나로 인해 변이된 것이 마수라면, 각성종은 그렇게 변이된 마수가 어떠한 외적인 요소로 다시 한번 변이를 일으킨 개체를 의미한다.
각성종의 일반적인 토벌 등급은 원종과 비교하면 최소한 한 등급은 높여서 책정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눈앞의 백색 털을 가진 샤벨 타이거는 토벌 등급 은, 적어도 은 등급 모험가 4명이 상대를 해야 하는 적이라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토벌 등급 동에 해당하는 샤벨 타이거 무리조차도 감당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등장한 각성종.
그것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지금까지 카리나가 먼저 움직여줘서 끼어들기가 애매했지만 이제는 진짜 나서야겠지.
사냥꾼의 철칙 또 하나.
사냥꾼으로서 배운 기술과 능력은 인간종을 상대로 발휘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실력 발휘를 한다면 쉽게 해결될 일임에도 끝까지 망설여왔다.
인간종을 상대로 자신의 무력을 과시하는 것은 실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쳐야 할지 아닌 것으로 쳐야 할지 좀 애매한 감이 있잖아?
하지만 상대가 마수라면 더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다.
그렇게 내가 배낭에서 무기가 될만한 것을 꺼내려는 때 카리나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설마 일이 이렇게 되다니. 이것은 전적으로 임무의 난이도를 잘못 예측한 나의 잘못이다.”
“신경쓰지 마라. 그러니 저 마수들은 내가…….”
“쿠르트.”
“뭐?”
“미안하다. 내가 너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너는 모험가가 되기에는 너무 약하고 어리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착오였다. 모험가 길드에 돌아가거든 접수원에게 내가 모험가의 자격을 허가했다고 말해라.”
“그 말은…?”
“여기는 내가 최대한 막아보겠다. 약초꾼을 데리고 도망쳐라!”
그렇게 말한 카리나는 나와 마리를 몸을 감싸듯이 막아서며 배틀 액스에 오러를 불어넣었다.
참나.
오해가 풀리면 한 방 정도는 갚아주려 했는데.
그래. 목숨 한번 걸어줬으니 이번에는 봐준다.
.
.
.
‘설마 여기서 각성종을 마주하다니.’
카리나는 자신이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 가벼운 마음으로 임무를 맡은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모험가 생활을 하고 나서 딱히 방심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과한 자신감이 붙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뿌득
모험가를 시작한 이상 죽음은 언제나 각오해둔 바였다.
하지만 지금 카리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사실보다도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를 임무에 동행시킨 것이었다.
모험가 세계의 일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데리고 온 것이었는데 역으로 위험에 노출되게 만든 것이 무엇보다 그녀의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
이러려고 임무에 데리고 온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모험가 길드에서 심사를 볼 때 어린아이의 억지라고 무시하지 말고 차분하게 들어줬다면 좋았을 텐데……. 이제 와서는 사과를 할 시간도 없는게 아쉽군. 아니, 그렇다면 하다못해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저 소년을 무사히 도망치게 만든다.’
그렇게 그녀가 죽음을 각오하고 배틀 액스에 오러를 불어넣었을 때였다.
그녀의 등 뒤에서 쿠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리나.”
“빨리 도망쳐라! 각성종을 상대로는 나도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왜 모험가가 되고 싶냐고 했었지? 나는 모험가가 돼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
“뭐…?”
내 말에 카리나는 샤벨 타이거 무리를 상대로 대치하던 것도 잊고 무의식중에 뒤를 돌아보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보게 된 것은 짙은 푸른색으로 감싸인 쇠꼬챙이가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마치 작은 유성이 꼬리를 달고 날아가는 것처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짙푸른 오러를 남기고 날아가는 쇠꼬챙이의 모습.
깨갱!
깨개갱!
그 모습은 어딘가 현실감이 없어서 한 박자 늦게 울려 퍼지는 샤벨 타이거의 비명 또한 어딘지 멀게만 느껴졌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쿠르트는 샤벨 타이거의 한복판에서 푸르게 빛나는 쇠꼬챙이를 들고 사냥을 하고 있었다.
“지금 무슨…!”
카리나는 반사적으로 쿠르트에게 지금 당장 도망치라고 내뱉으려 하였지만, 곧 쇠꼬챙이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피를 흩뿌리며 쓰러지는 샤벨 타이거의 모습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모양만을 따지면 나뭇가지보다도 얇은 쇠꼬챙이를 들고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전신(戰神)처럼 샤벨 타이거를 사냥하는 쿠르트의 모습은 어딘가 현실감이 없었다.
그렇다. 그것은 더이상 싸움조차도 아니었다.
마치 토끼 우리 안에 늑대를 풀어 넣은 것 같이.
그것은 일방적인 사냥이었다.
그렇게 절반 정도의 샤벨 타이거가 그 쇠꼬챙이에 뚫리고 베여서 쓰러졌을 때 보다 못한 각성종 샤벨 타이거가 행동에 나섰다.
그 샤벨 타이거의 속도는 지금까지 카리나와 쿠르트가 사냥해온 마수들과는 수준부터가 달랐다.
한순간이지만 멀리서 보고 있던 카리나조차 움직임을 놓칠 정도의 속도.
“위험해!”
그렇게 각성종 샤벨 타이거가 쿠르트의 머리를 씹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그 자리에 서 있던 쿠르트의 모습이 사라졌다.
“누가 위험하다고?”
“어, 어떻게…?”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되돌아온 쿠르트의 모습에 카리나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각성종이 있던 위치와 쿠르트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는 사이.
쿠르트를 덮치는 자세 그대로 굳어있던 각성종 마수가 천천히 쓰러졌다.
그리고 그 마수가 쓰러지고 나자 그전까지는 각도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그 마수의 머리에는 쿠르트가 들고 있었던 쇠꼬챙이 하나가 턱 아래에서 정수리까지를 그대로 관통해 있었다.
“후우. 그러고 보면 바실리스크 때부터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번식기에 미쳐서는. 어디 여자랑 인연 없는 리저드맨은 서러워서 살겠나.”
쿠르트는 자신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카리나에 대해서는 눈치채지도 못하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는 두 편에 나눠서 올릴 분량이었지만
공모전 규칙상 하루에 두 편을 초과해서는 못 올리기에 한 편에 합쳐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