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화
북방식 샤벨 타이거 스튜
번식기의 샤벨 타이거는 사나웠다.
특히 암컷이 걸린 문제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것이 포위했던 샤벨 타이거의 절반을 쓰러트리고 마지막에는 각성종마저도 단 일격으로 쓰러트리는 규격 외의 괴물에게까지 사나울 정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마수들은 사나운 것이지, 미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이상으로 계속하는 것은 더이상 의미 있는 싸움이 아니라 개죽음이라는 것을 깨닫기 싫어도 깨달을 수 밖에 없는 일.
그리고 마수들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쿠르트가 마수들을 추적하기보다 쓰러져있는 마수들에게서 쇠꼬챙이를 하나씩 회수하는 것을 택했다는 것이다.
히, 히오옹…….
깨갱!
샤벨 타이거들은 그렇게 쿠르트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린 사이에 혹시라도 그의 마음이 변할까 망설이지 않고 그가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도망쳤다.
카리나가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막아서려 했던 마수들의 행진치고는 퍽 초라한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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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나는 쓰러진 마수들을 지나치며 쇠꼬챙이를 회수하는 쿠르트를 보며 생각했다.
그제야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맞물리지 않았던 이야기들.
20년 경력.
최고 사냥꾼.
자신이 주장하는 나이보다 확연하게 젊어 보이는 겉모습.
그것이 모두 모험가가 되고 싶은 청소년의 치기 어린 거짓말이 아니라 모두 사실이었다면…?
마나에 대한 깨우침을 얻은 인간종은 노화가 늦춰지고 젊음이 길어진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마나에 대한 깨우침을 얻어도 노화가 늦춰질 뿐 다시 젊어진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눈앞의 리저드맨의 피부 나이는 거의 십 대 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즉, 적어도 그 나이 때에 마나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왕국 최고의 검수(劍手)이자 검의 천재라 불리는 검공(劍公) 같은 수준의 재능을 가졌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카리나로서는 당시 모험가가 되게 해달라고 말하던 리저드맨이 왕국 최고의 천재와 맞먹을 정도의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설마 그 모든 말이 진실이었을 줄이야.
오히려 그 정도의 실력과 재능을 가지고 겨우 ‘최고 사냥꾼 따위’ 였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쿠르트 뿐만 아니라 하프 엘프인 마리시아 또한 나에게 무언가를 계속 말하려 했지……. 설마! 그 하프 엘프는 처음부터 이것을 모두 알고서 나를 설득하려 한 것이었나!?’
“꺄악! 쿠르트 씨! 왜 이렇게 강해요!? 이렇게 강하다고는 말 안 했잖아요!”
‘아. 딱히 그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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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마수들에게서 모든 쇠꼬챙이를 회수한 나는 다시 동굴 앞에 모여있는 마리와 카리나에게 다가갔다.
“네 말은……. 모두 사실이었군.”
“그러니까 처음부터 나는 진짜라고 말했잖아.”
“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요!”
그 순간 나와 카리나의 사이에 마리가 뻔뻔하게 끼어들었다.
오해를 받은 건 난데 왜 나보다 더 생색을 내는 거야.
그러자 카리나는 내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확실히……. 정식으로 사죄하겠다. 모험가 길드의 모두의 앞에서 망신을 준 것에 대해서도…….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너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됐어. 명예 같은 거 원래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이번 일은 아까 목숨을 걸어준 것으로 셈하지. 뭐.”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이 오해가 우리 둘만의 이야기였다면 사과를 받아준 것으로 끝났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오해가 퍼지고 말았으니. 모험가 일을 하려면 주변의 평판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정말이지! 제가 그렇게나 많이 이야기했잖아요! 쿠르트 씨는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아니. 많이라고 할 정도로 이야기하지 않았거든.
한두 번 하다 말았거든.
그러나 마리의 약삭빠른 태도에도 카리나는 성실하게 그녀에게도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마리시아 양에게도 미안해요. 제가 당신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에헴! 특별히 용서해드리죠!”
“후훗. 그거 고맙군요.”
“아. 그러고 보니까 하나 걸리는 게 있었는데.”
“뭐지? 뭐든지 물어봐라. 내가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성심성의껏 대답해주겠다.”
카리나는 마음의 빚을 덜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말해주겠다는 듯 어깨를 펴고선 말했다.
“왜 마리한테는 경어 쓰면서 나한테는 안 쓰냐.”
“그, 그건…….”
카리나는 내 질문에 곧바로 어깨를 움츠리고는 말끝을 흐렸다.
“아! 그건 저도 궁금했어요!”
거기에 더해서 마리까지 두 눈을 빛내며 물어오자 결국 도망칠 구멍이 없어진 카리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듯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 그야 마리시아 씨는 언니니까……. 요.”
뭐?
마리보다 연하라고?
분명 아까 모험가 길드에서 듣기로는 마리가 스물네 살이라고 했는데.
그보다 어리다면 몇 살인 거야?
“그러면 너는 몇 살인데?”
“스물……. 셋이……. 요.”
뭐? 스물셋?
베테랑 모험가로 노련한 모습만 보여서 전혀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리고 외모도 이십 대 초반보다는 중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뭐지. 내가 리저드맨으로 너무 오래 살아서 인간의 외모를 가늠하는 능력이 떨어진 건가?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마리 또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것을 보면 그것은 아닌 듯했다.
“저보다 동생이었어요!?”
“나보고 애라고 하더니 이 중에서 가장 어리잖아!”
“으, 으으…….”
내 말에 카리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뭐라 할 말이 없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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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모든 오해가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큰 오해라고 할 수 있었던 카리나와의 오해는 비로소 모두 풀렸다고 할 수 있었다.
모험가 길드에 관한 남은 오해도 카리나가 적극적으로 해명해준다고 했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
다만 카리나는 아직도 자신이 오해한 것이 신경 쓰이는지 쭈뼛거리는 분위기였다.
개인적으로는 오해도 풀렸고 본인도 미안하다고 했으니 이쯤에서 좋게좋게 넘어가고 싶은데…….
구우우우…….
그 순간 동굴 내에서 누군지 모르는 공복을 알리는 소리가 났다.
마리, 또 너야?
나는 타박하는 눈으로 마리를 바라봤지만, 마리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야? 너 아니냐?”
“저 아닌데요! 뭐죠! 저는 뭐 맨날 밥만 축내는 엘프인가요!?”
대충 비슷하지 않나?
하지만 마리가 아니라면 이 소리는…?
“미, 미안하군……. 내 배에서 난 소리……. 입니다.”
내 의문 섞인 시선에 카리나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생명을 건 싸움을 각오했다가 그 결과가 허무하게 끝났으니 갑자기 긴장이 풀린 것이겠지.
그러고 보니까 점심도 안 먹고 산에 올랐네.
“이, 이건 생리 현상입니다! 오러를 사용하면 에너지가 크게 소모되어서…!”
“하기는 나도 오랜만에 운동했더니 조금 출출하기는 하네. 마침 저녁 시간도 가까워졌고.”
“그 정도의 오러를 사용하고서……. 조금 출출…?”
“그러면 산에 내려가기 전에 뭐라도 먹고 내려가도록 할까?”
마침 아직 어색한 카리나의 관계도 대충 정리해두고 싶으니.
대부분의 사소한 갈등은 같이 둘러앉아서 밥을 나눠 먹으면 그것으로 풀리는 법이니까.
“아! 찬성이에요! 저는 감자튀김이 먹고 싶습니다!”
“여기서 감자튀김이 되겠냐고.”
“아니, 샤벨 타이거의 영역에서 밥을 먹겠다니! 그건 너무 위험한…!”
“위험한?”
“아니, 생각해보니 위험할 리가 없군……. 요.”
마지막으로 카리나까지 내 제안에 동의했고 그렇게 동굴에서의 저녁 식사가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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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괜찮은 고기도 사냥했겠다.
요리 메뉴는 자연스럽게 방금 잡은 샤벨 타이거를 사용한 요리로 결정되었다.
거기에 예상치 못하게 좋은 소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카리나가 나에게는 없는 희귀한 식재료를 제법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내가 가지고 있었던 향신료는 양이 거의 바닥이 나서 아껴야 할 판이었기에 기꺼이 카리나가 가지고 있는 식재료를 사용해서 요리를 만들기로 했다.
특히, 카리나가 가지고 있던 식재료 중에서는 작은 통에 담긴 껍질을 벗긴 토마토가 눈에 띄었는데 살짝 맛을 보니 단순히 껍질을 벗겨서 보관한 것만이 아니라 이국적인 향신료의 맛도 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 그건 내 토마토…! 고향의 맛이 그리울 때 조금씩 아껴먹던 건데…!”
흠. 고향의 맛인가.
그렇다면 토마토에서 나는 이국적인 향은 북방민족이 주로 사용하는 향신료겠지.
그러고 보면 카리나는 북방민족 출신이라고 했나.
그래. 정했다.
우선은 카리나가 사냥한 샤벨 타이거 중 한 마리에서 먹을 만큼만 고기를 도려낸다.
지금은 우선 조리에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는 없는 상황이니 그나마 살이 부드러운 안심으로 할까.
고기를 모두 해체하지 않고 안심만 따로 잘라내는 것은 다소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그쪽이 맛있는 고기를 얻을 수 있기에 귀찮더라도 감수한다.
그 뒤 잘라낸 고기는 최대한 빠르게 핏물이 빠질 수 있도록 재빠르게 주사위 모양으로 잘라내서 찬물에 담가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수의 고기는 조리를 가하지 않고 먹으면 식중독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고기와 함께 카리나의 가방에 있던 해독초를 같이 물에 넣는 것이다.
해독초에도 여러 종류가 존재하는데 마침 카리나가 가지고 있던 해독초는 고기와 같이 재워두는 것으로 마수 고기의 독성을 제거할 수 있는 종류의 해독초였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해독초는 일반적인 해독초보다 몇 배는 비쌀 텐데…….
과연 은 등급의 모험가는 다르구만.
“아앗…! 내 고급 해독초가…!”
그리고 핏물이 빠지기 기다리는 동안 요리에 넣을 야채들을 썰기 시작한다.
야채라고 해봤자 카리나가 가지고 있던 당근과 토마토, 마리가 가지고 있던 감자뿐이이었지만, 가능하면 양파까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거기까지 바라는 것은 어렵나.
“아앗……. 내 당근…! 간식으로 먹으려고 아껴둔 건데!”
보통 당근을 생으로 먹나? 그것도 간식으로?
그리고 야채를 모두 손질했다면 진작에 불을 피워서 끓고 있는 중화 냄비에 넣는다.
여기에 덤으로 카리나가 가지고 있었던 포도주를 향을 내기 위해서 모두 투입한다.
“아앗…! 내 포도주가…! 북방식으로 담근 거라 귀한 건데…!”
향이 좀 특이하다 싶었는데 북방식이었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핏물을 빼두었던 샤벨 타이거의 안심을 냄비에 넣은 뒤, 소금과 후추, 무지개 벌꿀로 간을 한다.
카리나는 차마 나에게 뭐라 불만을 표하지 못하면서도 내가 요리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할 때마다 애절한 신음성을 흘렸다.
아니, 은 등급 모험가면 돈도 많이 벌 텐데 뭐가 문제야?
누가 보면 내가 강제로 뺏는 줄 알겠다.
내가 어디 나쁜 데에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좋은 곳에 쓰겠다잖아.
그렇게 자신의 식재료 들이 모조리 나의 냄비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카리나는 하염없이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카리나의 그 슬픈 시선을 모른 척하면서 불 온도를 조절하며 스튜를 끓이기를 약 삼십 분.
어느 정도 국물이 졸아들면서 어느새 국물 밖으로 식재료가 튀어나오며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국물보다 썰어 넣었던 야채나 고기가 더 눈에 띌 정도로 졸아들었다면 끝이었다.
마침 카리나가 가지고 있었던 식재료 중에 말린 바질이 있어서 그것을 잘게 잘라서 스튜의 위에 얹으면 그것으로 완성이었다.
북방식 조미료로 담근 껍질 벗긴 토마토와 북방식으로 담근 포도주를 이용한 요리.
북방식 샤벨 타이거 스튜의 완성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나오는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