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화
삼족계 토마토 달걀 볶음과 샤벨 타이거 BLT 샌드위치
마리와 카리나가 음식을 받은 것을 확인한 나는 내 몫으로 나온 메뉴들에 신경을 집중하였다.
우선 처음으로 먹을 음식은 토마토 달걀 볶음이다.
토마토 달걀 볶음이라고 하면 스크램블 에그에 토마토가 곁들어진 음식이라고 해서 케첩을 뿌린 스크램블 에그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한 입 먹는 순간 입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달걀의 보들보들함.
스크램블 에그에 케첩을 넣는다면 강렬한 산미와 짠맛이 달걀의 고유한 맛을 덮어버리겠지.
물론 그것도 그 나름대로 싫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케첩이 아닌 그냥 토마토를 넣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달걀 본연의 보들보들한 식감과 부드러운 맛은 케첩 & 스크램블 에그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맛이다.
스크램블 에그 자체에 토마토의 채즙이 듬뿍 스며들어서 느껴지는 것은 케첩처럼 강렬하진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산미.
산미뿐만이 아니다.
토마토는 서양 요리에서 감칠맛을 낼 때 최우선으로 들어간다고 보아도 되는 야채이다.
일식에서는 달걀말이의 감칠맛을 끌어올리기 위에 다시마 육수 또는 가다랑어포 육수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토마토 달걀 볶음은 토마토를 사용해서 감칠맛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스크램블 에그 안에서 토마토에서 배어 나온 감칠맛이 보들보들한 식감과 합쳐져서 부드럽게 넘어간다.
토마토의 산미가 완전히 각성하지 않은 아침의 위장을 일깨우면서도 달걀의 부드러움이 위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준다.
그것은 위장의 조용한 각성.
그야말로 아침으로 먹기에는 더없이 어울리는 메뉴였다.
이 세계에서 삼족계는 어리석은 동물의 상징과 같다.
수많은 동화에서 삼족계는 우둔한 동물로 나온다.
날개가 퇴화하여 더이상 하늘을 나는 것을 꿈꾸지 못한 어리석은 생물은 비행을 대신하여 질주를 선택했다.
두 발로 달리는 것보다 빠른 것은 네 발.
그렇다면 세 개의 발을 가진다면 네 발로 달리는 것만은 못해도 두 발로 달리는 것보다는 빠르지 않을까?
그래서 나온 결과물은 엉뚱한 위치에 달려버린 세 번째 다리다.
그렇게 닭이었던 생물은 삼족계가 되었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세 번째 다리는 다른 두 다리와 보조를 맞춰서 달리기보다 오히려 불편한 위치에 달리게 된 것으로 오히려 다른 두 다리를 방해하였고 결과적으로 다리가 두 개인 닭보다도 달리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삼족계가 나오는 동화는 보통 욕심이 많은 사람에 대한 경고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조소로 이야기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감히 삼족계가 어리석은 동물이 아니라고 말하겠다.
삼족계가 비행을 포기하고 얻은 것은 질주가 아니라 번식이었다.
두 개로 늘어난 총배설강은 그들의 자손을 두 배로 남길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 수많은 인간종에게 종족을 불문하고 선호하는 가축으로 자리 잡게 만든 것이다.
가축이 되는 것까지 그 생물이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삼족계의 생존전략은 훌륭하게 성공한 것이었다.
그래.
이 토마토 달걀 볶음에는 삼족계의 삶의 정수가 담겨있는 것이다.
“아아……. 이것은 생명의 맛이구나.”
“저, 저기. 괜찮은 것인가요?”
“아. 쿠르트 씨요? 놔둬요. 가끔 저래요.”
삼족계가 남긴 생명의 맛에 대해서 진지한 감상을 남기고 있으려니 주변에서 카리나와 마리가 나를 보고 뭐라 숙덕거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카리나는 내가 토마토 가지고 스튜 말고 다른 요리를 하니까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굴었으면서, 어느새 토마토 달걀 볶음을 한가득 입안에 밀어 넣고 오물오물 잘도 먹고 있었다.
뭐, 다들 맛있게 먹고 있는 것 같으니 나도 계속해서 아침을 먹을까.
그다음으로 먹을 메뉴는 물론 샤벨 타이거의 고기를 훈제한 베이컨을 사용한 BLT 샌드위치.
양상추의 아삭아삭한 식감과 토마토의 상큼한 산미, 그리고 베이컨의 육향과 고기의 씹는 맛.
3가지의 적절한 밸런스로 이루어진 요리.
첫입을 베어 물면 처음 느껴지는 것은 호밀빵 특유의 곡물 향.
밀가루 빵과는 달리 정제되지 않은 거친 느낌이 입안을 고소함으로 가득 채운다.
씹어보면 마치 호흡을 할 때마다 입안에서 들어온 곡물의 향기가 코를 통해서 다시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의 고소한 풍미가 자신이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있다고 실감하게 만든다.
거기에 호밀빵 특유의 퍼석퍼석한 식감에 부족함을 느낄 때쯤에 느껴지는 것은 아끼지 않고 듬뿍 넣은 양상추의 아삭아삭한 식감.
씹을 때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주장하는 양상추의 식감, 그러나 결코 지나치게 부담스럽지는 않은.
안에서 물이 샘솟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촉촉한 양상추가 호밀빵 단독으로 먹었다면 퍼석퍼석했을 식감을 싱그럽게 살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호밀빵과 양상추 둘이라면 식감은 훌륭하지만, 풍미가 부족하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토마토였다.
채즙을 풍부하게 품고 있는 토마토는 양상추와 함께 씹을 때마다 상쾌한 채즙으로 입안을 가득 채우며 특유의 상큼한 향이 식욕을 자극한다.
잔뜩 넣은 양상추가 식감을 살린다면 토마토는 양상추만큼 많이 넣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감만은 양상추에 뒤지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해낸다.
그리고 양상추와 토마토가 식욕을 이끌어낸다면 등장하는 것은 주인공인 베이컨의 차례였다.
고기를 훈연하는 과정에서 아끼지 않고 돈을 털어 넣어서 훈연에 쓰이는 장작부터 겉에 발라둔 향신료까지 아낌없이 쏟아부은 샤벨 타이거 베이컨의 맛은 그야말로 극상.
양상추와 토마토가 끌어 올린 맛의 기대치.
그것은 있는 힘껏 높아져 버린 장대높이뛰기의 허들과도 같다.
어중간한 음식이라면 너무나 올라버린 허들을 통과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꾸러질 수도 있는 위기.
하지만 샤벨 타이거 베이컨은 너무나도 쉽게 높이 올라버린 허들을 가볍게 통과한다.
건너편이 비쳐 보일 정도로 얇게 썰린 베이컨을 몇 장이나 겹쳐서 넣은 것으로 훈제로 바짝 말린 고기임에도 전혀 퍽퍽함이 느껴지지 않는 기름진 식감을 자랑한다.
그리고 마치 요리의 완성은 고기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야채만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고기에 대한 욕망을 일깨운다.
그래. 이 느낌이야.
이 고기에 대한 욕구를 있는 힘껏 고양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토마토 달걀 볶음을 먼저 먹은 것이다.
사실 베이컨을 프라이팬에 먼저 구운 뒤 거기에서 흘러나온 기름을 사용해서 토마토 달걀 볶음을 만들었다면 더 맛있는 토마토 달걀 볶음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토마토 달걀 볶음과 BLT 샌드위치를 따로 만들었다.
그것은 어설프게 토마토 달걀 볶음에서 고기의 맛을 느낌으로써 BLT 샌드위치를 먹을 때 느끼는 고기의 감동을 줄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훌륭했다.
토마토 달걀 볶음을 먹으면서 서서히 깨어났던 위장이 한껏 달아올라 고기를 애원하는 순간에 비로소 샤벨 타이거 베이컨의 강렬한 맛이 입안에 들이닥친다.
탄수화물과 식이섬유로만 가득 찼던 식단에 비로소 단백질이 공급되며 감동을 자아내는 울림을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 BLT 샌드위치에는 내가 직접 만들어준 수제 마요네즈가 아끼지 않고 들어있었으니, 마요네즈에서 느껴지는 산미가 담긴 기름진 맛은 마지막으로 부족했던 퍼즐을 채워주는 것이다.
빵에서 나오는 탄수화물, 야채의 비타민과 식이섬유, 베이컨에서 단백질, 그리고 마요네즈의 지방으로 완성되는 균형 잡힌 샌드위치의 왕도.
기본기에 충실하기 때문에 충격적인 반전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건실하고 흔들림이 없는 실패하지 않는 맛의 정석.
BLT 샌드위치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과도 같은 맛이었다.
그렇게 BLT 샌드위치의 마지막 한 입까지 먹어치운 나는 비로소 만족스러운 한숨과 함께 식사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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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오랜만에 먹는 BLT 샌드위치는 역시 맛있군.”
“저도 맛있었어요! 잘 먹었습니다!”
“저 또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토마토로 스튜 이외의 다른 음식이 나왔을 때는 당황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조리를 해도 맛있을 줄이야.”
“쿠르트 씨의 샌드위치는 최강이라고요! 저는 알고 있었지만요!”
“과연……. 스튜뿐만 아니라 이렇게 온갖 종류의 요리에 통달하다니……. 그렇다면 역시…!”
마리와 카리나 또한 아침을 모두 먹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하지만 모든 평화가 그렇듯이 언제까지 일상은 유지되지 않는다.
평화로운 일상이란 언뜻 보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물장구를 치는 백조와 같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 쿠르트 씨! 하고 싶은 말이…….”
“슬슬 모험가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음? 방금 무슨 말 하려고 하지 않았어?”
“아, 아닙니다. 그보다 슬슬 모험을 시작하는군요.”
내 질문에 카리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뭐, 중요한 일이라면 본인이 알아서 이야기하겠지.
“아! 드디어 시작인가요?”
내 말에 마리는 감탄사를 띄우며 기대에 찬 얼굴을 했다.
샤벨 타이거 무리를 사냥하고 지난 며칠간 우리는 여독을 풀고 새로운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특별히 의뢰를 수주하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기만 하였다.
실제로 나도 샤벨 타이거의 해체를 의뢰하고 남는 고기로는 훈제를 하고, 또 요리에 필요한 요리도구와 희귀한 향신료를 구매하는 것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으니 의뢰를 수주하지 않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오늘로 끝이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야 할 때였다.
“흐음. 생각보다 이르네요. 샤벨 타이거의 각성종을 사냥해서 당분간 돈 문제는 없을 텐데.”
“맞아요. 샤벨 타이거를 사냥하지 못해서 약초꾼에게 받은 보상밖에 못 얻은 저조차도 아직 돈이 꽤 남아있으니까요.”
“그래. 약초꾼의 구조보상인 몇십 실버조차도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면 보름은 족히 보낼 수 있는 돈이죠. 하물며 각성종의 사체라면 모험가 길드에 해체비를 따로 지급했다 하더라도 몇 골드에 가까운 돈이 남았을 터. 하지만 수중에 그렇게 많은 돈이 남았다 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위험에 도전하는 정신이라니.”
“돈과 상관없이 모험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죠! 그것이 진정한 모험가 정신이니까요!”
“아니. 돈 때문인데. 돈 다 썼어.”
더욱 다양한 요리를 하기 위해서 요리도구랑 희귀한 향신료를 눈에 보이는 대로 구매했더니 어느샌가 돈이 다 사라지고 없더라고.
솔직히 말해서 며칠 더 있으면 모험가 길드의 숙소비도 간당간당하다.
참 신기한 일이야.
그렇게 말하는 나를 두 여성은 믿을 수 없는 얼간이를 본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참나. 내가 마리도 아니고 리저드맨을 그런 눈으로 보다니 실례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모험가로서 첫 여행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모험중에도 요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팬아트의 표지 사용을 허락해주신 므밍 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