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화
삼족계로 만든 프라이드 치킨
한참을 마리의 잔소리를 듣고 난 나는 어쩐지 의뢰를 받았을 때보다 더 피곤한 정신이 되어서 내 방으로 올라갔다.
차라리 바실리스크를 사냥하고 말지.
....
그런데 닭날개라고 하니까 삼족계는 있는데 삼익계는 없나?
날개 부위는 다리만큼 경쟁이 심하지는 않아서 굳이 3개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3개 있으면 좋지 않나?
아니, 발상을 역전시켜서 문어 닭이라고 해서 다리가 8개인 닭은 없나.
오랜만에 상당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프라이드 치킨과 함께 마신 맥주 탓일까.
마음이 해이해진 것인지 머릿속에 실없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계단을 올라서 내 숙소로 들어가려 했는데 복도의 한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카리나?”
“아……. 올라오셨군요.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카리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농담조로 가볍게 말했지만 나는 카리나의 그 모습에서 무언가 중요한 용건이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상식적으로 중요한 용건이 없다면 내 방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치사하게 혼자만 도망치다니.”
“그건 죄송합니다. 하지만 살 인간종은 살아야죠.”
뻔뻔하기는.
처음에는 이것보다는 딱딱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편하게 대하고 있네.
“...그래서 무슨 용건인데.”
“잠시 제 방에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카리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방을 가리켰다.
음. 여자의 방에 가는 건 라키아 이외에는 처음인데.
.
.
.
카리나의 방은 여성의 방이라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방의 한구석에는 잘 손질된 배틀액스 한 자루와 평소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손도끼 두 개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그녀가 사냥한 듯 일자로 거대한 상처가 나서 상품으로 쓰기에는 품질이 조금 애매한 곰의 가죽이 장판을 대신하여 깔려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카리나의 방을 구경할 때쯤에 카리나가 고개를 숙이고는 다짜고짜 본론을 이야기했다.
“저를 제자로 받아주세요!”
아, 뭐, 당연히 이런 내용이었겠지.
“제자…?”
“그렇습니다! 처음 샤벨 타이거를 토벌했을 때도 생각했지만, 오늘 일을 겪고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됐습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주세요.”
흐음…….
그런건가.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카리나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카리나는 무력만 따진다면 아마 은 등급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편일 것이다.
일단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 나이에 오러를 어느 정도 사용한다는 것만으로 보아도 그 사실은 명백했다.
시골 마을의 영지에서는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면서도 기사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경우도 수두룩하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카리나의 재능과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카리나의 모험가로서의 다른 기술이나 마음가짐은 솔직히 말해서 내 기준에서는 훌륭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마수를 추적하는 실력은 풋내기인 마리보다는 뛰어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출난 것 같지도 않았고 오늘 삼족계를 토벌할 때에도 마리와 함께 마수를 토벌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는가.
그것만 봐도 그녀의 마음가짐이 냉철하지 못함을 알 수 있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뭣하지만, 솔직히 객관적인 시점에서 보았을 때 나는 무력으로도 그녀보다 앞섰으며 마수를 추적하는 실력도 마음가짐도 그녀보다 몇 단계에 위에 있다고 봐도 좋겠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그녀가 나를 동경하고 나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괜히 열등감을 가지고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싹수가 노랗지 않음을 알 수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자인가.
마음은 기특하지만 나도 나대로의 생활이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가르칠 생각은 없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담아서 카리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자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특별히 시간을 할애해서 뭘 가르칠 수는 없는데?”
“괜찮습니다! 특별히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가끔 한마디 조언을 해주는 것만으로 만족하겠습니다!”
“미리 말하지만 그렇게 본격적인 가르침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제가 옆에서 보고 알아서 공부하겠습니다! 부디 허락만 해주십시오!”
뭐…….
생활에 방해가 되지만 않는다면 받아들이는 거로 할까.
“뭐, 정 그렇다면 우선은 사냥감을 추적하는 기술을 하나 알려주도록…….”
“저에게 현모양처가 될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뭐?”
내가 잘못 들었나?
그걸 왜 나한테 찾아?
“...아! 그러고 보니 제가 마음이 급해서 설명을 아직 안 했군요.”
“설명이 좀 많이 필요할 것 같다만…….”
“사실 저는 모험가가 되기 위해서 북방의 고향을 떠난 게 아닙니다.”
“그 이야기는 전에 한 번 들었지.”
“제 꿈은 도시의 사람들처럼 귀족 아가씨가 되는 것입니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책 속 귀족 아가씨처럼 자수하고 요리를 하며 가족들을 위해서 조용히 헌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 오랜 꿈이었습니다.”
카리나는 과거를 회상하듯 자신의 침대맡에 놓인 배틀액스를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었다.
지금의 대화 부분에서 배틀액스를 쓰다듬을 필요가 있어?
“하지만 혹독한 환경에서 마수와 생존경쟁을 하는 제 고향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모두 마수를 사냥하는 거친 삶을 살아가고 그런 곳에서는 귀족 아가씨가 되는 제 꿈은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그렇겠지.
카리나가 말하는 북방의 민족은 다른 말로는 바바리안이라고 부르는 민족들이었으니까.
일반적인 그들의 인식은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싸우는 전사들의 민족이라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저는 마을을 떠난 것입니다. 제 고향인 바바리안 민족을 떠나서 동화책 속 귀족 아가씨처럼 귀족 아가씨의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인간의 왕국 유스티아를 향해서.”
“그런데 왜 모험가를?”
역시 돈 때문인가?
내 말에 카리나는 조금 민망하다는 듯이 웃었다.
“돈……. 때문이라는 것도 있지만, 우선 귀족 아가씨가 되기 위해서는 귀족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우선 유명한 모험가가 된다면 귀족 남성을 만나기 쉬워질 거라는 것인가.
제법 계산적인 면모가 있구나.
그러나 카리나의 대답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 동떨어진 것이었다.
“제가 모험가로서 활약한다면 언젠가는 유스티아 왕국에서 저의 활약을 치하하여 귀족 작위를 내려 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저는 그때부터 귀족 아가씨가 되는 것이죠!”
....
아마 그런 방식으로 귀족 작위를 얻어도 카리나가 생각하는 귀족 아가씨의 느낌은 아닐 거 같은데.
“하지만 저는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 드디어 깨달았구나.
“그렇게 귀족이 된다고 해도 저에게는 귀족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쿠르트 씨에게 귀족 아가씨의 기본 소양이라고 할 수 있는 요리를 배우고 싶은 겁니다!”
“...아. 그렇구나.”
이걸 참 뭐라 대답해야 할지.
열성적으로 자신의 꿈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카리나는 나의 미묘한 눈을 보고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제 꿈이 이상한 겁니까?”
“뭐?”
“마을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제 꿈은 저의 주제에 맞지 않는 이상한 꿈이라고. 저에게는 배틀액스로 마수의 머리통이나 내려찍는 게 어울린다고 하더군요.”
“....”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부모님이나 다른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을 무시하고 마을을 떠났습니다. 반드시 현모양처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며…….”
카리나의 이야기는…….
왠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아서 웃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모험가 생활을 하면서 저조차도 제 꿈을 잊어가는 느낌입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현모양처는 온데간데없이 마수를 사냥할 뿐인 매일 이였고…….”
그렇게 말끝을 흐린 카리나는 곧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군요. 어쩐지 오늘 식도락에 진심이었던 쿠르트 씨를 보고 나니 헛된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하하. 오늘 들은 이야기는 못 들은 것으로 해주지 않겠습니까?”
카리나는 자신이 잠시 흥분했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카리나의 표정 밑에 감춰진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또다시 자신의 꿈이 다른 누군가에게 부정당하리라 여기는 두려움이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이 자신의 꿈을 부정하기 전에 스스로가 먼저 겁을 먹고 진심이 아니었다며, 내 주제에 무슨 그런 꿈을 꾸겠냐고 스스로를 먼저 부정하는 것으로 갑옷을 껴입는 것이었다.
그 감정은 나 자신이 잘 아는 감정이었다.
전생에 요리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나를 보면서 보내던 이해할 수 없다던 그 눈길.
그리고 이번 생에서 더 맛있는 요리를 찾아서 세상을 돌아보겠다는 말을 했을 때 이해하지 못하던 마을의 리저드맨들의 눈길.
그런 눈길을 수도 없이 맞아서 결국 지레 겁먹고 움츠리게 된 사람의 눈이었다.
“아니. 못 들은 것으로 할 수는 없지.”
“쿠, 쿠르트 씨…?”
“요리, 가르쳐 준다고.”
다리가 세 개 달린 삼족계를 본 사람들은 제대로 날지도 달리지도 못하는 삼족계를 보고는 잘못된 진화를 한 생물이라 비웃었다.
차라리 더욱 커다란 날개를 가지거나 날쌘 다리를 얻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삼족계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한 것이라고.
삼족계는 하나의 다리를 더 얻음으로써 다른 새들에 비해서 더 강한 번식력을 가지고 종족을 널리 퍼트릴 수 있었으니까.
그런 것처럼 카리나는 잘못된 꿈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바바리안들과 다른 꿈을 가진 것뿐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리저드맨의 마을을 뛰쳐나온 나도, 폐쇄적인 엘프 마을의 문화를 거부하고 세계를 구경하기 위해 나온 마리시아도.
각자의 사회에서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이단아처럼 보일지도 몰라도 나는 결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말에 카리나는 어린아이처럼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쿠, 쿠르트 씨! 아니, 스승님!”
“스승님은 무슨……. 편하게 불러.”
“쿠르트 오빠!”
“...아니. 그냥 쿠르트 씨라고 불러.”
내 말에 카리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들었다는 듯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껴안았다.
참고로 슬쩍 확인해본 카리나의 요리지식은 절망적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화는 다소 가라앉은 이야기였지만
다음화부터는 다시 밝은 모험요리 이야기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