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8 2. 대왕여우와 스킬북 =========================================================================
“...”
명후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 대왕여우를 바라보았다. 대왕여우는 명후를 힐끗 보고 그저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닐 뿐이었다.
“...잡을 수 있을까”
분명 잡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마주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곰보다도 거대한 대왕여우의 덩치는 명후를 주눅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곰보다 더 세겠지?”
곰이 여우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하긴 하지만 대왕여우는 보스몬스터였다. 급이 달랐다. 급으로 보나 덩치로 보나 보스몬스터인 대왕여우가 곰보다 약할 것 같지는 않았다.
“...”
명후는 잠시 고민했다. 사냥을 시도 할지 아니면 마을에 들려 더욱 완벽한 준비를 한 뒤 다시 잡으러 올지.
“...시도해보자”
짧은 고민 끝에 명후는 결국 사냥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마을에 들려 준비를 해오면 잡을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 분명했지만 지금 이 기회를 놓친다면 대왕여우를 찾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죽으면 뭐.. 준비해 오면 되지.”
생각해보니 이번에 죽게 된다면 준비를 한 뒤 다시 잡으러 오면 그만이었다.
저벅저벅
명후는 서서히 대왕여우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후우.”
이내 대왕여우 앞에 도착한 명훈느 숨을 내뱉으며 긴장을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 이를 악물었다.
‘시작 해볼까!’
서걱!
-...
“...”
빠르게 검을 휘둘러 대왕여우의 옆구리에 상처를 낸 명후는 아무런 고통의 소리 없이 고개를 돌려 무심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대왕여우를 보고 잠시 멈칫거렸다.
스윽
-크허어어어엉!
그리고 이내 몸을 돌려 포효하는 대왕여우의 모습에 명후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
명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이미 포효와 함께 날아간 상태였다.
‘... 템 맞춰도 안 될 것 같은데..’
공격 한 번 했을 뿐이고 포효 한 번 들었을 뿐이지만 명후는 준비를 하고 와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크허엉!
퍽!
그리고 이내 날아오는 여우의 발에 맞은 명후는 그 생각이 맞았음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 무슨 공격 한 방에 2천이 달아!’
공격 한 번 맞았을 뿐인데 생명력이 2천 가까이 깎여나갔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력으로는 아무리 잘 맞아봐야 3방이라는 소리였다.
다닥
명후는 재빨리 대왕여우와의 거리를 벌렸다.
-...
대왕여우는 여전히 무심한 눈빛으로 명후를 쳐다보고 있었다. 명후는 그런 대왕여우를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저벅저벅
그리고는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크릉
대왕여우는 그런 명후의 모습을 보며 맘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를 내더니 명후를 향해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윽 다다다닥!
명후는 대왕여우가 한걸음 내딛은 그 순간 뒤로 돌아 질주하기 시작했다.
-...크허어어엉!
대왕여우는 그런 명후의 행동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포효하며 명후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 * *
다다다닥
명후는 달리고 또 달렸다. 대왕여우는 여전히 그런 명후의 뒤를 추격하고 있었다.
“그만 쫓아와 이 새끼야!”
-크허어어엉!
명후는 인상을 찌푸린 채 외쳤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듯 대왕여우의 포효소리가 들려왔고 명후는 이를 악물며 도망쳤다.
‘저 딴 표정으로 왜!’
한없이 무심한 눈빛으로 죽을 듯이 쫓아오는 대왕여우를 명후는 이해 할 수 없었다. 무심한 눈빛과 죽을 듯이 쫓아오는 대왕여우의 모습은 너무나도 괴리감이 들었다.
‘지 서식지도 아닌데 왜!’
거기다 이곳은 여우서식지가 아니었다. 처음 도망갈 때에만 해도 명후는 여우서식지만 벗어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우서식지를 벗어났음에도 대왕여우의 추격은 계속 되었고 명후는 다른 녀석들의 서식지로 들어가면 멈추어질 것이라 생각해 늑대 서식지로 향했었다.
하지만 늑대 서식지에 들어왔음에도 대왕여우는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대왕여우의 추격은 늑대서식지에 도착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늑대 새끼들이 뭔 여우를 무서워 해!’
명후는 저 멀리 슬금슬금 사라지는 늑대들을 보며 다시 한 번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 늑대 서식지에 도착 한 명후는 늑대들이 선공습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짝 걱정했다. 그러나 뒤 따라오는 대왕여우를 떠올리며 걱정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몰려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왕여우의 시선을 분산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아웅!!
-아우우우우!
역시나 명후의 달리기는 많은 늑대들의 시선을 끌었고 늑대들은 명후를 향해 다가왔다. 명후는 그런 늑대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대왕여우의 시선을 분산 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곧 자신의 뒤를 쫓는 대왕여우를 발견한 늑대들은 다가오다 그 자리에서 멈칫하더니 이내 뒤로 슬금슬금 사라졌다. 이런 상황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반복됐다.
‘죽어야 되나..’
죽을 때까지 쫓아 올 것 같았다. 명후는 시간낭비하지 말고 그냥 개기다 죽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아우!!
일반 늑대에 비해 3~4배는 거대한 늑대가 자신을 발견하고 소리 지르며 달려왔다. 명후는 여태까지 보아왔던 늑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거대한 늑대를 보며 작은 희망을 가졌다.
-...
그러나 곧 자신의 뒤를 쫓는 대왕여우를 발견한 늑대는 여태까지 보아왔던 늑대들처럼 자리에 멈추어 머뭇거렸다. 명후는 그런 늑대의 모습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큰 늑대도 별 수 없는 것 같았다.
-아..아우!!
하지만 명후는 이내 자신을 향해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늑대를 보며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런 늑대를 보며 명후는 찌푸렸던 미간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크허허허허헝!
-아우...
그러나 이내 명후는 다시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대왕여우의 포효소리에 달려오던 큰 늑대가 기죽은 듯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아,아니야! 그러지마!’
명후는 자리에서 멈춘 늑대를 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런 명후의 외침이 들리지 않았는지 늑대는 쓸쓸히 뒤로 돌아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
명후는 늑대의 모습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쓸쓸한 늑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달릴 뿐이었다.
‘... 그냥 개기자.’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명후는 이내 대왕여우에게 덤비다 죽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크허헝?
명후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대왕여우 또한 걸음을 멈춘 후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리냈다.
“네가 이겼다! 이 여우 새끼야!”
명후는 대왕여우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런 명후의 외침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대왕여우는 이내 몸을 웅크리며 공격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무심했던 눈빛이 서서히 공격적으로 변했다.
“...?”
명후는 서서히 변하는 대왕여우의 눈빛을 보며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옆구리에 상처를 냈을 때에도 자신을 공격했을 때에도 무심했던 눈빛이었다. 그런 눈빛이 지금 공격적으로 변했다는 것이 명후는 이해가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크릉
뒤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릉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다시 한 번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에 명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분명 늑대일 것이지만 어떤 늑대이길래 대왕여우 앞에서 소리를 내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했다.
“...”
이내 울음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명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명후의 뒤에는 한 마리의 늑대가 위풍당당 서 있었다. 일반 늑대가 아니었다. 쓸쓸히 돌아갔던 큰 늑대보다 훨씬 더 큰, 대왕여우와 거의 비슷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늑대였다.
‘...어?’
그렇게 늑대를 바라보던 명후는 그 큰 늑대의 발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하늘을 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퍽!
명후는 하늘을 날며 자신의 생명력을 확인했다.
‘...2500?’
대왕여우에게 맞았을 때보다 더욱 많은 생명력이 깎여나갔다. 명후는 날아가는 자신을 신경 쓰지도 않고 서로를 향해 으르렁 거리는 두 짐승을 바라보았다.
-크허허헝!
-크르르릉!
‘뭐지.’
이내 땅에 떨어진 명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싸움을 하는 두 짐승을 보며 이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될지 생각했다.
‘튀자!’
그러나 생각 할 것도 없이 명후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며 뒤에 있는 나무가 우거진 숲을 향해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다다닥!
이내 우거진 숲 안에 들어온 명후는 재빨리 뒤로 돌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하아.”
숲을 헤치며 달리는 명후는 대왕여우에게 벗어났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이내 저 멀리 보이는 빛을 보며 어서 마을로 돌아가자 생각했다.
“어서 가자!”
명후는 그렇게 외치며 숲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이내 활짝 미소지어져있던 얼굴이 빠른 속도로 굳었다.
“...”
휘익휘익
명후는 발바닥이 무언가 허전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아니, 내리려고 했다.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는 자신의 몸만 아니었다면 분명히 고개를 내려 허전함의 정체를 보았을 것이었다. 명후는 도저히 아래를 볼 자신이 없었고 그저 입을 열어 외칠 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명후의 몸이 절벽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