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5 75. 학살자 =========================================================================
* * * *
“아빠 저도 따라 가면 안되요?”
라피드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었다.
“위험하니까, 나중에 가자.”
초롱초롱한 라피드의 눈빛에 명후는 흐뭇한 미소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음에 답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세 사람에게 말했다.
“제가 없는 동안 잘 부탁 합니다.”
세 사람은 소국 ‘힘’의 세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왕궁 기사단장 프라미너스, 로겐 공작 그리고 궁중마법사 하이트였다.
“예, 주군.”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시길.”
명후의 말에 프라미너스와 로겐이 답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하이트는 로브 안으로 손을 넣어 뒤적이더니 곧 스크롤을 꺼내 명후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여기 말씀 하셨던 워프 스크롤입니다. 무사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하이트가 꺼낸 것은 바로 이곳 왕궁으로 귀환 할 수 있는 워프 스크롤이었다. 명후는 워프 스크롤을 받아 인벤토리에 넣은 뒤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왕궁에서 나왔다.
“일단..”
왕궁에서 나온 명후는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스크롤을 꺼냈다.
<워프 스크롤 : 넥서스[레어]>
제한 : 없음
사용 시 헬리오카 제국의 수도 넥서스의 제 1 광장으로 워프 한다.
명후가 꺼낸 스크롤은 바로 헬리오카 제국의 수도인 넥서스로 워프 할 수 있는 워프 스크롤이었다.
물론 최종 목적지가 넥서스인 것은 아니었다. 명후의 최종 목적지는 신성 제국의 수도인 메디프였다. 넥서스로 가는 이유는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로브를 쓰고 가는게 좋겠지?”
스크롤을 꺼낸 명후는 이어 로브를 꺼냈다. 로브를 꺼낸 것은 혹시나 알아보는 이가 있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매우 귀찮은 상황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가볼까.”
로브를 착용 한 명후는 그대로 스크롤을 찢었다.
스아악
스크롤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곧 명후는 빛과 함께 헬리오카 제국의 수도 넥서스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웅성웅성
“급처 아이템 삽니다! 고가에 삽니다!”
“100레벨 대 레어 아이템들 팝니다! 많이 사시면 더 싸게 팔아요!”
“고독 길드에서 길드원 구합니다!”
제 1 광장이라 그런지 유저들이 참으로 많았다. 명후는 북적이는 유저들의 사이를 지나치며 생각했다.
‘역시 공적에 관심 없는 사람도 많구나.’
명후는 신성 제국에서만 공적으로 선포 된 것이 아니었다. 헬리오카에서도 공적으로 선포가 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곳에 모여 있는 유저들은 공적에 대해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긴, 공적이 나 하나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관심을 보일 리 없지.’
처음에는 수많은 유저가 달려들면 어떻게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공적이 명후 하나도 아니고 애초에 공적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쓸 때 없는 걱정이었던 것이다.
“야, 근데 그거 들었냐?”
“어떤거?”
“이번에 공적 된 그 유저.”
물론 명후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 유저들은 명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명후는 유저들의 분위기를 살피며 제 1광장에서 나와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어디로 가십니까?”
얼마 뒤 워프 게이트에 도착 한 명후는 마법사의 물음에 인벤토리에서 골드를 꺼내 건네며 말했다.
“고반으로 갑니다.”
헬리오카 제국과 신성 제국의 교차 게이트가 있는 도시 고반.
“워프 합니다.”
품안에 골드를 넣은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후는 주문이 끝난 순간 고반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바로 붙어 있어 참 괜찮단 말이야.’
고반에 도착 한 명후는 곧장 반대편에 있는 교차 게이트로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이제 곧 만날 수 있겠네, 황제랑 교황.’
명후가 신성 제국의 수도 메디프로 가려는 이유, 그것은 바로 신성 제국의 황제와 교황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적대 상태를 풀려면 둘의 승인이 필요하다 했지..’
공적으로 선포 당한 순간 나타난 메시지를 명후는 잊지 않고 있었다. 공적으로 선포 됐으며 적대 상태가 되어 신성 제국 소속 NPC와 유저를 죽여도 범죄자 수치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그리고 적대 상태를 풀기 위해서는 신성 제국의 두 태양 황제와 교황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승인 해줄 리 없겠지만..’
애초에 공적으로 선포한 것이 그 둘이었다. 찾아간다고 해서 공적 상태를 풀어 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명후가 그 둘을 만나려는 것은.
‘신 새끼들...’
신성 제국의 황제와 교황의 뒤에 있는 존재이며 지금의 상황을 만든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주신 에칼림과 엘가브 등의 신들 때문이었다.
‘깽판치면 강신이라도 하겠지.’
명후는 황제가 있는 황궁이나 교황이 있는 대신전에서 난동을 부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난동을 부린다면 강신을 하는 등의 반응을 보일 것이고 명후는 대화를 나눠 볼 생각이었다.
“1골드입니다.”
생각을 하는 사이 명후는 교차 게이트에 도착했고 마법사에게 게이트 이용비 1골드를 건넨 뒤 다시 한 번 워프했다.
[신성 제국의 영토입니다.]
[사제 NPC와 마주칠 경우 정체가 발각 될 수 있습니다.]
[사제 NPC의 신성력이 높을수록 발각 가능성이 높습니다.]
“...?”
신성 제국에 들어 온 순간 나타난 메시지에 명후는 고개를 갸웃 할 수밖에 없었다. 사제와 마주칠 경우 발각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메시지.
‘헬리오카에서는 이런 거 없었는데?’
신성 제국과 마찬가지로 헬리오카 제국 역시 공적으로 선포 된 상태. 그러나 헬리오카 제국에서는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성 국가와 일반 국가의 차이 인 것 같았다.
‘사제를 피해 다녀야 되는건가.’
메시지를 본 명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많은 사제들을?’
명후의 최종 목적지는 황궁과 대신전이 있는 신성 제국의 수도 메디프였다. 그리고 메디프에는 신성 제국의 수도답게 엄청난 수의 사제들이 존재한다. 그들을 피해 황궁이나 대신전에 도착한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지, 어차피 난동 부리면 몰려들텐데. 미리 눈치 챈다고 해서 상관은 없지.’
그러나 이어서 든 생각에 명후는 메시지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어차피 황궁이나 대신전에서 난동을 부릴 생각이었다. 안들키고 도착하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 발각 된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어보였다.
저벅저벅
“어디로 가십니까?”
명후는 교차 게이트에서 나와 반대편에 있던 신성 제국의 워프 게이트로 이동했고 마법사의 물음에 입을 열었다.
“메디프요.”
“15골드 되겠습니다!”
“여기요.”
“메디프로 워프합니다.”
골드를 받은 마법사는 앞서 워프 게이트 마법사들과 마찬가지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곧 명후는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최종 목적지 메디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메디프에 도착 한 명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웅성웅성
워프 게이트 근처라 그런지 사제 NPC들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이들은 전부 유저들이었다.
‘이쪽이었지?’
명후는 예전 메디프에 왔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대신전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야 근데 그 유저는 어떤 기분일까?”
“누구?”
“공적이 된 그 유저 있잖아.”
“아, 명후라는 유저?”
“그래, 그 유저. 진짜 기분 개 같겠지? 어떻게 제국 두 곳에서 공적으로 선포를 해버리냐.. 나였으면 캐릭터 삭제하고 다시 키우겠다.”
“안 그래도 그 사람 접었다는 썰이 퍼지고 있던데?”
“하긴..”
대신전으로 걸어가며 명후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유저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 공적으로 선포 했으며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신성 제국이라 그런것일까? 명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유저들이 상당히 많았다.
바로 그때였다.
[사제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유저들의 대화를 들으며 걸음을 옮기던 명후에게 메시지가 나타났다.
멈칫!
메시지를 본 순간 명후는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멈칫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주시하고 있는 사제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상하게 생각 할 것이었다.
저벅저벅
‘누구지?’
명후는 자연스레 다시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확인했다.
‘저녀석인가?’
그리고 곧 명후는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 사제를 발견 할 수 있었다. 표정이나 분위기로 보아 메시지에 나온 사제가 분명했다.
명후는 방향을 틀어 사제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곁눈질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제를 보았다.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명후를 보던 사제는 몸을 돌려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명후는 점점 멀어져가는 사제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제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사제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사제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사제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
.
그 뒤로도 명후는 자신을 주시하는 수많은 사제들을 마주 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명후는 살짝살짝 방향을 틀거나 근처 지나가던 유저들의 뒤에 숨어 사제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드디어 보이는구나.’
그렇게 사제들을 피하며 대신전으로 걸어가던 명후는 저 멀리 보이는 대신전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도착이었다. 목적지인 대신전이 보이자 명후는 걸음속도를 좀 더 올렸다.
[사제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사제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사제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대신전에 가까워져 그런 것일까? 메시지가 동시에 3개나 나타났다.
‘뭐, 이제는 상관 없겠지.’
그러나 명후는 메시지를 보고도 방향을 튼다거나 숨지 않았다. 이제 곧 대신전에 도착하는데 굳이 피할 이유가 없었다.
‘음?’
하지만 이어진 상황에 명후는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저벅저벅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제들은 시간이 조금 흐르자 명후에게 관심을 끄고 다시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끝이야?’
어이가 없었다. 주시가 오래 되면 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상황은 허무하게 종료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향을 틀거나 유저들을 방패삼아 숨지 않았을 것인데 살짝 아쉬웠다.
[사제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명후는 더 이상 메시지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잠시 쳐다보다가 다시 제 갈길을 갈 사제들이었다.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명후는 사제와 메시지들을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고 이내 대신전 입구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대신전 입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명후는 인벤토리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엘가브의 사도, 유저 ‘급살’이 당신을 발견했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한 걸음 옮기자마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사제가 주시한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나타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메시지의 내용은 앞서 꾸준히 나타났던 메시지가 아니었다.
‘엘가브의 사도?’
이번에 나타난 메시지는 엘가브의 사도가 발견했다는 메시지였다. 사제가 아닌 엘가브의 사도였고 주시가 아닌 발견이었다.
‘잠깐 급살이라면..’
문제는 메시지 중간에 나타난 유저의 캐릭터명이었다.
스윽
명후는 메시지에서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곧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익숙한 외모 당황스런 표정. 명후가 잘 알고 있는 그 급살이었다. 명후는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는 급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급살님. 오랜만이네요.”
멍하니 명후를 보던 급살은 명후의 인사에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로그아웃.”
스아악
전투 상태가 아니었던 급살은 곧장 자리에서 사라졌다.
“어?”
예상치 못한 급살의 행동. 명후는 당황스런 표정으로 급살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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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요일입니다!
이제 곧 월요일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