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77 94. 벌 =========================================================================
* * * *
“...?”
리슈르는 의아한 표정으로 가울을 보았다.
“그게 무슨소리야?”
그리고 이어 가울에게 물었다.
“징벌군들이 어떻게 됐다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리슈르의 물음.
“...”
가울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하기에는 리슈르의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징벌군이..”
거기다가 리슈르 역시 대답을 다시 듣기 위해 물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부 죽어?”
리슈르가 계속해서 물었던 이유,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진 이유. 그것은 바로 힘 왕국으로 떠난 징벌군 때문이었다.
“...예.”
이제는 답해야 될 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가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메테오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보호막을 만들 시간도 없던건가?”
징벌군에게는 보호막이 있었다. 징벌군의 인원을 생각해보면 보호막으로 능히 메테오를 막아낼 수 있었다.
“아닙니다. 보호막은 만들었다고 합니다.”
리슈르의 말에 이번에는 가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
가울의 답에 리슈르는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보호막을 만들었는데 메테오에 왜 죽었단 말인가?
‘설마 메테오에 죽은 게 아닌가?’
메테오가 떨어졌다는 가울의 말에 리슈르는 당연히 메테오에 의해 징벌군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혹시 메테오에 죽은 게 아닌 것일까?
“그럼 뭐에 죽은 거지?”
리슈르는 가울에게 다시 물었다.
“...?”
그러자 이번에는 가울이 의아해 했다.
‘메테오라고 말씀 드리지 않았나?’
방금 전 징벌군이 죽은 원인을 메테오라 말한 것 같은데 리슈르가 그것을 왜 또 묻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설마..’
그러다 문득 든 생각에 가울은 입을 열었다.
“메테오가 다섯 번 떨어졌습니다.”
“...!”
가울의 답에 리슈르는 놀랐다.
‘다섯 번?’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다섯 번이었다. 아무리 많은 신력이 들어간 보호막이라 하더라도 메테오를 다섯 번이나 막는 것은 무리였다.
“아무래도.”
가울은 계속해서 이어 말했다.
“힘 왕국의 수호룡들이 개입한 것 같습니다”
힘 왕국을 수호하는 다섯 수호룡들. 그들이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메테오가 다섯 번이나 떨어질 이유가 없었다.
“감히 뱀 따위가.”
리슈르는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어 가울에게 말했다.
“신탁이 내려 온 건 없었나?”
아탁샤, 히갈, 카리마 신전의 사제, 몽크, 성기사들이 죽었다. 해당 신전의 신들 역시 그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무언가 신탁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직접 나서준다면 좋겠지만..’
가장 좋은 상황은 신들이 직접 나서는 것이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었다. 직접 나서기에는 너무나도 큰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서면 마왕 같은 특별한 존재들 역시 개입을 할 것이었다.
“예, 아탁샤 신전을 제외한 히갈, 카리마 신전에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거기다 엘가브 님께서도 신탁을 내려주셨다고 합니다.”
가울이 답했다. 리슈르의 예상대로 신탁이 내려 온 상황이었다. 가울은 이어 어떤 신탁이 내려왔는지 신탁의 내용을 말했다.
* * * *
“왜 가만히 있으라는거야!”
희망과 절망의 신 히갈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내 아이들이 죽었다고!”
히갈이 이렇게 성난 이유. 그것은 바로 자신을 믿는 신도들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한, 두명이 죽은 게 아니었다. 수천 명이 죽음을 맞았다.
“가만히 안 있으면?”
그런 히갈의 성난 목소리를 듣고 있던 엘가브가 물었다.
“내가 직접 나서야지.”
엘가브의 물음에 히갈은 목소리처럼 성난 표정으로 답했다.
“진심이야?”
그런 히갈의 답에 엘가브가 말했다.
“네가 나서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거야?”
히갈은 신이었다. 신 인 히갈이 직접 나선다면? 중간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약속에 의해 나서지 않는 마왕들 역시 기다렸다는 듯 나설 것이었다. 즉, 히갈이 개입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당연히 알지. 내가 그깟 마왕 녀석들 눈치를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에휴.”
엘가브는 히갈의 답에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옆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에칼림을 보았다. 그리고 히갈 역시 엘가브와 마찬가지로 에칼림을 보았다.
“응? 왜?”
그런 둘의 시선에 에칼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둘에게 말했다.
“내가 직접 나서도 되나?”
분명 성나 있던 히갈이었다. 그런데 에칼림에게 묻는 지금 히갈의 목소리는 상당히 조심스러워져 있었다. 마왕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지만 주신인 에칼림의 눈치는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에칼림은 피식 웃으며 히갈에게 답해주었다. 그런 에칼림의 답에 히갈은 히죽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뒤로 돌아 히갈은 밖으로 나갔다.
“왜 그걸 허락해?”
히갈이 나가자마자 엘가브가 에칼림에게 말했다. 그런 엘가브의 말에 에칼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에휴.”
에칼림의 미소에 엘가브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재빨리 밖으로 나와 점점 작아져가는 히갈에게 달려갔다.
“히갈!”
“...?”
히갈은 엘가브의 외침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로 돌아 엘가브를 보았다.
“그 녀석을 직접 죽이기라도 한다는 뜻이야?”
엘가브는 히갈의 의아한 눈빛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그리고 엘가브의 물음에 히갈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나선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직접 상대한다는 뜻이었다.
“아탁샤가 그녀석에게 소멸됐다는 것 모르는 건 아니지?”
“알고있지.”
히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녀석을 죽이는 일은 나 혼자 하는게 아니야.”
“...?”
“카리마도 같이 간다.”
카리마 역시 신도들의 죽음으로 분노 한 상태였고 히갈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
“그럼 난 이만.”
히갈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엘가브는 말없이 히갈을 보다가 뒤로 돌아 다시 에칼림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같이 간대.”
에칼림이 있는 곳으로 돌아 온 엘가브는 바로 에칼림에게 말했다.
“누구랑? 카리마?”
엘가브의 말에 에칼림이 반문했고 엘가브는 말하는 것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했다.
“호오.”
에칼림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런 에칼림의 탄성에 엘가브가 물었다.
“어떻게 될 것 같아?”
“뭐가?”
“히갈과 카리마 이 둘이 그 녀석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글쎄.”
엘가브의 물음에 에칼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일 수도 있고 죽이지 못할 수도 있지. 내가 미래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하아, 결과를 알려달라는 게 아니라 네 생각을 묻는거야.”
에칼림은 엘가브의 말에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 인간..”
“...”
엘가브는 에칼림의 말에 집중했다.
“강해. 내가 바르타슈를 이겼을 당시보다 더.”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그러나 바르타슈를 해방 시킨 그 때 에칼림은 느낄 수 있었다. 예전 바르타슈를 봉인 했을 때에 자신보다 더욱 강하다는 것을. 그것은 확실했다.
“...!”
엘가브는 그런 에칼림의 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에칼림 보다 더?’
당시 에칼림 역시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미 인간인 상태로 주신이었던 바르타슈의 강함을 뛰어넘었을 정도로 그때의 에칼림은 강했다. 그런데 더욱 강하다니?
‘그럼...’
엘가브는 미간을 찌푸렸다. 히갈과 카리마가 같이 간다고 해도 답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히갈과 카리마가 전력을 다한다 하더라도 인간 시절 에칼림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의 에칼림보다 강한 상대를 상대한다면? 당연히 질 것이다.
“왜 안 말린거야? 그 정도로 강한걸 안다면..”
엘가브는 에칼림에게 말했다. 그렇게 강한걸 안다면 말려야 했다. 그런데 어째서 말리지 않았단 말인가?
“선택을 존중해준거야.”
에칼림은 엘가브의 말을 끊으며 답했다.
“그리고 히갈과 카리마 둘이라면 가능성이 있어.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인간일 뿐이니까.”
인간, 인간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엘가브는 에칼림이 무슨 의미로 인간이라는 단어를 사용 한 것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모르겠어.’
그러나 알 수가 없었다.
“기다려보자고.”
에칼림은 엘가브에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 * * *
파타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키페리누스님에게 부탁드려야 되는 건가.”
키페리누스, 알리온 왕국을 수호하는 수호자였다. 힘 왕국에서 수호자가 나섰으니 이쪽에서도 수호자가 나서야 된다.
“하지만..”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어떤 분인지 알 수가 없으니.”
키페리누스가 어떤 존재인지 파타 역시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왕가 대대로 내려오는 것은 키페리누스를 호출하는 방법과 한 세대에 한 번 호출이 가능하다는 규칙 뿐이었다.
“그래도..”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왕국의 수호자가 될 정도니 범상치 않은 존재인 것은 분명했다.
스윽
파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수호자 키페리누스를 호출 할 수 있으며 왕가의 보물이 보관되어 있는 왕궁 비밀 창고로 향했다.
“흐음.”
이내 왕궁 비밀 창고에 도착 한 파타는 가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벽 앞에 멈춰 선 파타는 침음을 내뱉으며 옆에 비치되어 있는 날카로운 단검을 들었다. 단검을 든 이유, 그것은 바로 피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파타는 단검으로 손가락을 살짝 찔렀다. 역시나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파타는 인상을 쓴 채 벽에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스아악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벽에 변화가 일어났다. 문양, 알리온 왕국을 상징하는 연꽃이 벽에 나타났다.
연꽃은 나타남과 동시에 사라졌다. 물론 연꽃만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연꽃과 함께 벽 역시 사라졌고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파타는 단검을 내려놓고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공간은 거대한 공동이었는데 텅텅 비어 있었다. 공동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공동 한 가운데 있는 돌기둥 뿐이었다.
물론 이곳에 온 건 보물을 찾는게 아닌 키페리누스를 호출하기 위함이었기에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파타는 돌기둥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단검으로 상처를 낸 손가락을 들어 돌기둥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벽이 변화가 일어났듯 돌기둥도 변화가 일어났다. 돌기둥에 연꽃 문양이 나타난 건 아니었다. 대신 돌기둥이 부서져 내리며 연꽃 모양으로 변했다.
“이제 기다리면 되는건가.”
돌기둥에 피를 흘리는 것, 그것이 바로 알리온 왕국의 수호자 키페리누스를 호출하는 방법이었다. 파타는 수호자 키페리누스가 나타나길 기다리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부터 다시 일일연재 복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