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24 99. 연합 전쟁 =========================================================================
‘귀족들도 끝났겠군.’
든든한 방패라 생각했던 귀족들, 그들 역시 지금 상황으로 보아 끝장이 났을 것이다.
“어서 피하셔야 됩니다.”
불타는 신전을 바라보던 오낙스는 로니타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지금쯤이면 비밀 통로를 찾아냈을 것이다. 추적자들이 도착하기 전에 신성 제국으로 가야 된다.
“가지.”
마지막으로 신전의 모습을 담은 오낙스는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로니타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
“그게 무슨 소리야?”
교황 리슈르는 당황스런 목소리로 반문했다.
“헬리오카 제국에 있는 엘가브 신전이 공격 받았다고?”
리슈르가 당황한 이유, 그것은 바로 헬리오카 제국에 있는 엘가브 신전이 공격을 받았다는 보고 때문이었다.
“예.”
보고를 하던 가울은 리슈르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아직 보고는 끝난 게 아니었다.
“엘가브 신전 뿐만 아니라 헬리오카 제국에 자리 잡은 모든 신전들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엘가브 신전만 공격 받은 게 아니었다. 헬리오카 제국에 자리 잡은 모든 신전들이 공격을 받았다.
“발렌의 신전은?”
보고를 듣고 당황스런 표정을 짓고 있던 리슈르는 정신을 차렸는지 싸늘한 눈빛으로 가울에게 물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쾅!
가울의 보고에 리슈르는 책상을 내리쳤다.
“헬리오카 이 새끼들이!”
힘 왕국과의 관계가 있었기에 헬리오카 제국은 아군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군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분노가 치밀만한 제안을 한 것도 혹시나 힘 왕국과의 관계를 끊고 신성 제국에 붙을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일을 벌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니, 일을 벌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헬리오카 제국의 귀족들 중 상당수가 방패가 되어 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상황을 보아하니 방패 역시 박살이 난 게 분명했다.
리슈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있을 수 없다. 신전을 공격했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선전포고였다.
선전포고를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빨리 전쟁을 시작하게 될 줄 몰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성전의 시작이다.’
성전의 시작이었다.
“대사제들을 소집해.”
자리에서 일어난 리슈르는 가울에게 말했다.
“예, 교황님.”
가울은 리슈르의 말에 답하고 방에서 나갔다. 그렇게 가울이 나가고 리슈르 역시 따라 방에서 나가며 중얼거렸다.
“황제를 만나야겠어.”
황제 역시 지금쯤이면 신전이 공격 받았다는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방에서 나온 리슈르는 호위 성기사 둘을 데리고 황궁으로 향했다.
신성 제국에서 만큼은 황제와 동일한 권력 아니, 성전이라는 특수 상황에서는 그 이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교황이었다. 교황은 황궁에 도착함과 동시에 아무런 제지 없이 황제의 집무실로 갈 수 있었다.
“이제 곧 오실겁니다.”
현재 황제인 아뮬은 집무실에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교황인 리슈르가 왔으니 곧 집무실로 올 것이다.
리슈르는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뮬이 오기를 기다렸다.
끼이익
그리고 이내 문이 열리며 집무실의 주인인 아뮬이 왔다.
“안녕하셨습니까?”
리슈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있는 그대로 차를 홀짝이며 아뮬에게 인사했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말로만 하는 인사였다. 아무리 권력이 강한 교황이라고 하나 아뮬은 황제였다. 무례한 행동이었다.
아뮬 역시 그런 리슈르의 인사가 썩 마음에 드는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살짝 나빴다.
그러나 한, 두번 이런 것도 아니고 여태까지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해왔던 교황이였다. 거기다가 교황이 이런식으로 무례하게 군다고 해도 아뮬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건 교황인 리슈르였다. 아뮬은 그러려니 하며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것으로 기분을 풀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기분을 푼 아뮬은 리슈르의 반대편에 앉으며 물었다.
‘아마도 헬리오카의 일 때문이겠지.’
아뮬은 리슈르가 어째서 온 것인지 알고 있었다. 이미 정보원에게 보고를 받았다. 헬리오카 제국에서 신전을 공격했다는 놀라운 정보를.
‘어떤 말을 하려 온거냐?’
물론 아는 것은 그뿐이었다. 리슈르가 온 이유는 알지만 어떤 말을 하려 온 것인지는 알 지 못했다.
“차가...”
아뮬의 물음에 리슈르가 입을 열었다.
“맛있군요.”
차가 맛있다니? 아뮬의 물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답이었다.
‘허.’
리슈르의 뜬금없는 말에 아뮬은 피식 웃었다.
“그런가요?”
아뮬은 리슈르의 말을 받으며 잔에 차를 따랐다. 그리고 차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애초에 아뮬의 취향에 맞춘 차였다. 당연히 입맛에 맞았고 아뮬은 미소를 지었다.
“...”
“...”
그렇게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리슈르는 물론 아뮬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여는 것은 차를 마실 때 뿐이었다.
‘급한 건 내가 아니니까.’
차를 홀짝이며 아뮬은 생각했다. 어차피 급한 건 아뮬이 아니었다. 급한 건 리슈르였고 결국 정적을 깨는 것도 리슈르가 될 것이었다.
“보고 받으셨지요?”
아뮬의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정적, 정적을 깬 것은 바로 리슈르였다.
“무슨 보고요?”
리슈르의 물음에 아뮬이 되물었다. 물론 진짜 몰라 되물은 것은 아니었다. 아뮬이 되물은 이유는 리슈르가 차 맛이 좋다 말한 것과 같은 이유였다.
“...”
한순간 리슈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것을 본 아뮬은 속으로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헬리오카 제국에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리슈르가 재차 말했다.
“아, 그 보고!”
아뮬은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는 듯 탄성을 내뱉는 것으로 리슈르의 말을 자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들었습니다. 헬리오카 제국에서 신전을 공격했다고.”
“...”
리슈르는 자신의 말이 잘리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문 채 아뮬을 보았다. 아뮬을 보는 리슈르의 눈빛은 곱지 않았다.
“헬리오카와 전쟁을 시작 할 생각입니다.”
한동안 아뮬을 바라보던 리슈르는 입을 열었다.
“아, 그렇습니까?”
아뮬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말이다. 거기다 이에 대해 어떻게 할 지 생각도 해두었다.
“기사와 병사들을 내주세요.”
담담한 아뮬의 목소리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리슈르였지만 이내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은 기사 2만에 병사 10만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기사 2만과 병사 10만,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거기다 기사와 병사는 리슈르의 소관이 아님에도 너무나도 당당했다. 마치 당연히 내어줘야 된다는 느낌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뮬은 리슈르에게 말했다.
“...?”
리슈르는 아뮬의 답에 의아했다. 뭐가 죄송하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아뮬의 말에 리슈르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뮬은 리슈르의 요구를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평소라면 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미간을 찌푸린 리슈르를 보며 아뮬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전쟁이 시작된 이상 여태까지 그래왔듯 저희는 본토의 방어를 맡을 생각입니다.”
신성 제국의 힘은 크게 두개로 나뉜다. 성기사, 몽크, 사제들로 이루어진 교황의 힘과 기사, 병사들로 이루어진 황제의 힘이었다.
그렇게 힘이 두개로 나뉘어져 있기에 전쟁 시 행동도 보통의 국가와 달랐다. 교황의 힘인 성기사와 몽크, 사제들은 공격을 황제의 힘인 기사와 병사들은 방어를 맡는다.
“기사 2만과 병사 10만을 내드린다면 본토를 지키는데 차질이 생깁니다.”
“...”
리슈르는 아뮬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망할 녀석이!’
그저 속으로 아뮬을 욕 할 뿐이었다. 교황은 공격을 황제는 방어를 하는 것. 보통은 그렇게 하는게 맞다.
그러나 보통 그렇다는 것이지 무조건 교황은 공격을 해야하고 황제는 방어를 해야 되는게 아니었다. 황제가 공격을 교황이 방어를 할 수도 있다.
거기다 기사 2만과 병사 10만을 내준다고 본토를 지키는데 차질이 생긴다? 차질이 생길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아무리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신성 제국과 헬리오카 제국은 거리가 멀다. 즉, 헬리오카 제국의 병력이 본토에 침입 할 가능성은 현저히 적었다. 거기다 신성 제국은 주변 국가들과 매우 친하다. 이미 연합에 들어오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든든한 방어막까지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토를 지켜야 되기에 병력을 내줄 수 없다는 것은 변명이었다. 그냥 병력을 내주기 싫은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뮬이 다시 한 번 말했다. 물론 말과 달리 아뮬의 말과 분위기에서는 전혀 죄송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리슈르가 아뮬을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후회요?”
아뮬은 리슈르의 말에 답했다. 물론 아뮬은 리슈르가 말한 후회가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굳이 그 뜻을 알고 있다고 아는 척 할 필요는 없었다.
스윽
리슈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회 할 겁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리슈르는 아뮬에게 말하며 방에서 나갔다. 아뮬은 리슈르가 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다가가 앉았다.
‘어떻게 하려나?’
의자에 등을 기대며 아뮬은 생각했다.
‘흔들 수도 없을텐데.’
아무리 분리되어 있다고 하지만 같은 국가의 사람이었다. 아뮬의 소관하에 있는 기사와 병사들 중 일부는 신전과 매우 친밀했다. 하지만 아뮬은 얼마 전 기회를 통해 그들을 대부분 처리 할 수 있었다.
리슈르가 병력을 내어 달라했고 신전과 친밀한 기사와 병사들을 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전부 죽음을 맞았다.
“무슨 생각해?”
바로 그때였다.
귓가에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에 아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지 보지 않았지만 아뮬은 이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레퓨렘님 오셨습니까.”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레퓨렘이었다.
“응, 잘 지냈어?”
“예, 저야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는 게 없으니까요.”
레퓨렘의 말에 아뮬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는 게 없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오셔도 되는겁니까?”
아뮬은 레퓨렘에게 물었다. 레퓨렘은 발렌의 신이었다. 그리고 현재 발렌은 신성 제국과 전쟁 중이었다.
“왜? 다른 신들에게 들킬까봐?”
레퓨렘은 아뮬의 물음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제국에 현신해 있는 신들이 없으니까. 위에서 내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신은 없거든.”
아뮬의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직접 현신해 있는 것이 아니면 레퓨렘의 기운을 느낄 수 없다.
“에칼림도 내 기운은 못 느낄 걸?”
주신인 에칼림이라 해도 현신하지 않는 이상 느끼지 못한다. 만약 느낄 수 있는 신이 있다면 이렇게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그렇군요.”
아뮬은 레퓨렘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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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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