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조력자를 구하는 중입니다 (2)
“또래의 호위? 네게는 호위 소대의 기사들이 있잖니?”
그 호위 소대가 속한 성기사단 3대대장인 로젤리아가 급히 물었다.
기사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지 놀란 기색이었다.
“그들이 못 미더운 건 아니에요. 다만…. 저처럼 어른들하고만 다니는 아이는 저뿐이더라고요.”
“그거야, 세실 네 안전을 위해.”
“그래서는 누가 봐도 여염집 아이로는 보이지 않겠던걸요….”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외모를 가렸어도 너는 은사를 진 자니.”
“괜히 주목받을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네 기사들이 있으니 상관없다.”
…그래, 대강 예상했던 전개였다.
로젤리아의 단호한 대꾸에 아버지는 옆에서 고개만 끄덕여 동감을 표시했다.
나는 회심의 대사를 날리기 위해 입술을 꾸물거리면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만들었다.
“경들은 너무 아저씨라서…. 같이 다니기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요.”
란셀도, 브랜든도 미안해! 내가 다 큰 그림이 있어서 그래….
내 말을 들은 아버지와 로젤리아의 낯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연무장에서 한껏 그은 그들의 원숙한 외모를 생각하면 반박할 수 없을 테니까….’
아무튼 외모 갖고 이러는 건, 미안하기 그지없는 거였다.
내가 란셀과 브랜든에게 다시금 마음속으로 사죄하는 동안, 아버지와 로젤리아는 아무런 말도 빚어내지 않았다.
먼저 침묵을 깬 건 아버지였다.
“아니면 무예에 재능이 있는 말벗을 새로이 사귈까?”
“저는 늘 함께 다닐 수 있는 이가 필요한 거예요. 제 또래의 귀족 아이들은 언젠가 아카데미에 들어갈 거니까요….”
그리 말하며 나는 서글픈 낯을 지어 보였다.
귀족들이 다니는 아카데미에 황실 직계도 다닐 수야 있었지만, 황실이 그걸 허락할 리가 만무했으니까.
그러니까, 일종의 동정심 자극이랄까?
‘너무 생떼 같나…?’
나는 고개를 떨구고서 스푼으로 그릇을 갉작대며 분위기를 살폈다.
아버지와 로젤리아가 서로 슬그머니 눈빛을 교환하는 것이 보였다.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기색이었다. 막무가내를 부리는 법이 없는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말이다.
‘주의를 끌었으니, 절반은 성공!’
물론 잠행 나가고 싶다고 몇 달 동안 조르긴 했지만…. 여러분의 막둥이가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 때도 됐잖아요?
“세실. 네 또래라 봐야 수련생은커녕 종자라도 될까 말까인데.”
후후, 드디어.
내가 계산한 대로 나온 아버지의 말에 나는 준비해둔 답을 술술 읊었다.
“종자라도 좋아요. 그러고 보면 6소대는 전투 소대가 아니어서 전담 종자도 없잖아요? 안 그래도 기사들이 허드렛일을 스스로 하는 게 신경 쓰였는데….”
“네 호위로는 고작 여덟 시간, 그것도 4교대로 근무하니 그럴 여유는 된단다, 세실.”
로젤리아가 상관의 마인드로 칼 같이 잘랐다.
‘고작 여덟 시간이라니….’
물론 황성에서 근무하는 기사들은 생활 자체가 근무이니 계산은 그게 맞지만…. 전생 현대인으로서는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무엇보다 내 호위를 하겠다고 그들이 기사가 되지는 않았을 거니까….’
여덟 시간씩 아기방 문지기를 하던 그들에 대한 마음의 빚은 10년이 지나도 덜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 이건 비단 나만을 위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 마음을 다잡으며 나는 내처 말을 이었다.
“이젠 저도 열 살이 되어서 활동이 많아질 테니 업무 부담도 늘 테고요.”
“네가 성년이 될 때까지 충분한 보호를 받으라고 8인을 들인 거란다.”
로젤리아의 즉답에 아버지도 끄덕끄덕.
8인의 호위가 과한 것, 다들 아셨군요…?
“게다가 외부인을 급작스레 프리지어궁에 들이는 건 안 될 일이다.”
드디어, 내가 가장 걱정한 지점이 등장했다.
지금 내 곁을 지키는 이들은 모두 로젤리아가 추천한 기사들과 유모가 추천한 시녀들이었으니까.
이제는 더 이상 기사들 핑계를 대면 안 될 때였다.
“…그 종자들을 잘 키우면 제가 성년이 되었을 때도 믿고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요?”
“6소대의 기사들이 마음에 안 드니?”
로젤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리 기사들을 믿는대도 내 안전이 우선인 그녀이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을 거였다.
“아뇨, 그럴 리가요.”
나는 그것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머쓱해서 헤쭉 웃으며 덧붙였다.
“그들이 언제까지나 프리지어궁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언젠가는 1대대로 돌아가서, 성기사단장이 되실 언니를 보좌해야 하지 않겠어요?”
내 말에 아버지와 로젤리아가 놀란 눈치였다.
‘내가 여기서 이런 얘길 꺼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신 게지.’
내 호위 소대는 전투 소대가 아니어서, 보급이나 인사 등의 행정을 담당하는 3대대에 묶여 있었다. 그것도 맨 끝 6소대로.
문제는 그들이 이런 한직에 머무르기에 아까운 인재들이라는 거였다.
그들의 성취감을 생각해도, 로젤리아의 미래를 생각해도 그들이 10년 안에는 그들이 내 호위 일을 그만두는 게 맞았다.
“세실, 그들은 기꺼이 네게 충성을 바친 자들이야.”
“그건 제가 기억도 못 할 때의 일이잖아요.”
정말로 기억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로젤리아가 눈썹을 늘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세실, 혹시 네가 한 살일 때 격랑이 일어났던 것을 기억하니?”
“…네. 어렴풋하게요.”
내가 영재 콘셉트를 잡고 있어도 기억력이 온전한 걸 티 낼 수는 없어 대강 얼버무렸다. 그러고 보면 뇌가 아직 다 안 자랐는데도 기억력이 이리 좋은 걸 보면 세실리아 유전자가 좋기는 좋은 모양이었다.
“그때 네가 어머니와 황태자 전하께 간언을 드렸다. 그것도 기억하니?”
“허허, 그랬댔지, 그랬댔어. 그 자리에 없었던 게 이 아비의 한이야.”
“어머니께서 그렇다고 하시더라고요.”
실은 그것도… 기억하지만.
그게 간언이라고까지 포장되는 것이 어색해서, 나는 또 배시시 웃고 말았다.
“네가 격랑의 전사자들을 예우하는 데 신분의 차별을 두면 안 된다고 했다지?”
“…네에.”
“그리고 그 평민 출신의 전사자 중에 네 호위 기사들의 동료들도 있었다는 것, 혹시 아니?”
“그렇겠죠….”
6소대의 기사들도 내 호위만 아니었다면 당연히 차출됐을 거니까.
“그날 이후로, 네 호위 기사들은 기꺼이 너를 존경하고 주군으로 섬기기로 다짐했단다.”
“저야 어차피 은사를 졌으니….”
“그래, 서임받을 때 황실에 맹세했으니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 반대로 말해, 그들이 네 호위 임무가 어렵지 않대서 애초부터 경시한 적 없다는 소리야.”
로젤리아의 말에 나는 마음이 울렁이는 것 같았다.
그저 전생의 가치관을 갖고서 영재로서 예쁨받고자 입을 놀렸던 것뿐인데….
‘실제로 그때 황실의 결정에 제국민들이 감명받아서, 성기사단을 비롯한 제국군에 평민과 천민 출신의 입대 지원자가 늘기도 했댔지.’
그것이 내 곁을 지켜주는 이들의 마음까지 움직였을 줄은 몰랐다.
나는 명치께가 간질간질해지는 것 같아, 탁자 아래로 맞잡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니 세실, 그들에 대해 너무 걱정할 것 없다.”
“하지만, 그들이 언젠가 언니와 함께 1대대에 가야 한다는 건 진심이에요!”
“허허, 세실이 제 기사들의 장래도 챙길 줄 알고. 주군이 다 됐구나.”
아버지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스튜 그릇을 치우고 디저트를 내오라는 짤막한 손짓. 식당에 있던 이들을 물리기 위함이었다.
시종들이 나가자 아버지는 로젤리아에게 말했다.
“한편으로 세실의 말도 일리가 있구나. 지금 성기사단장인 카렐 공이 수년 안에 은퇴하지 싶으니, 너도 슬슬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
맞아요, 맞아. 나는 아버지의 말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로젤리아는 10년 안에 성기사단장이 될 거였다. 그래야 레오폴트의 쿨한 상관이 되니까.
그런데 지금 내 호위 소대를 관리하겠답시고 덩달아 3대대장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었다.
‘로젤리아가 내 안전을 책임지는 데 큰 자부심이 있어서 그래….’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고마운 마음. 해야 할 일은 해야 할 일.
나는 로젤리아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당장에 바꾸자는 건 아니에요. 나중에 6소대 기사들이 1대대로 돌아갈 날이 왔을 때, 본인들이 직접 키운 기사들에게 자리를 넘기면 안심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나는 세실리아의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로젤리아는 심란한 마음을 감추지 않은 채 한참 동안 나를 마주 보았다.
제 수하들의 보직을 변경하는 문제, 제 장래에 대한 문제 등. 고민이 쉽지는 않을 거였다.
동시에 내 말에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것까지.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네 놀이 상대도 돼줄 종자들을 뽑아서 말이지?”
고민을 마친 로젤리아가 느릿하게 말했다.
“헤헤, 네.”
“그래, 세실도 곧 아가씨가 될 텐데, 언제까지 쉰내 나는 아저씨들하고 다닐 순 없지.”
로젤리아의 그 강직한 성품만큼이나 정직한 어조의 농담.
히힛, 나는 그 어색함이 사랑스러워 헤실헤실 웃었다.
“자, 그럼 세실의 소원대로 6소대의 종자를 모집해볼까?”
“만세! 아버지, 언니, 감사해요!”
나는 두 손을 맞잡고 얼굴에 웃음을 가득 채운 채 아버지와 로젤리아를 번갈아 보았다.
옛다, 세실리아 깜찍한 표정 대방출 서비스!
내가 신나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그래, 오늘 내가 예기치 않게 제안했을 뿐이지, 언젠가는 일어나야 할 일이었어. 그걸 두 사람 다 받아들인 거고.’
내 호위 기사들이 언제까지고 내 호위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어떻게 모집을 한다. 제국군에 들어와 있는 종자들을 좀 차출할까?”
“아뇨!”
핫, 너무 곧바로 말했나.
로젤리아에게 의견을 구하기 위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아버지가 깜짝 놀라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그래서는 케인을 데려올 수가 없는걸.’
나는 재빨리 미리 준비해둔 계획을 하나 더 꺼냈다.
“저는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요, 아버지.”
“많은 이들에게라면?”
“꿈을 펼치기 위해 어려운 사정을 극복하고 상경했다거나…?”
얼마 안 있어, 성기사단 3대대 6소대의 수련생을 뽑겠다는 황제의 칙령이 황성 내 모든 귀족들의 타운하우스에 전해졌다.
기사가 되기 위해 상경한 아이들은 제국군 종자로 들어가지 못하면 귀족가 사병의 종자로 일하기 때문이었다.
‘케인도 어느 귀족가 기사의 종자로 들어갔다가 황성 수비대의 근위 기사가 됐댔으니까.’
3대대에, 그것도 6소대라니. 저런 변두리 부대의 종자를 뽑는 데 칙령씩이나 내리느냐던 반응도 잠시.
이내 그것이 4황녀의 호위 소대인 것을 알고 공문을 꼼꼼히 읽었을 거였다.
“황성에서 멀리 떨어진 영지 출신이면 좋겠어요. 근방에 연고가 없어야 제게 더 충성할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특히 형편이 좋지 않은 영지에서 온 이들을 뽑으면 미담도 될 테고요.”
이 공고는 귀족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내 호위 기사들의 종자가 되어 그들에게 사사한다면, 성기사단의 기사로 서임받는 건 따놓은 당상이었다.
게다가 4황녀의 호위 기사가 될 터.
그런 자리에 연이 닿은 아이를 밀어 넣고 싶은 건 당연했다.
“막내 전하께서 어려운 영지 출신의 종자들을 친히 후원해 주시기로 하셨다며?”
“또래의 수련생들을 호위 기사들의 종자로 삼겠다고 하시는데, 참 속도 깊으시지.”
“그런데 평민들의 출신이 보증되는 것도 아닌데 괜찮으실까? 험한 자라도 붙는다면….”
“그래서 영주들의 추천장을 받으신다는 모양이야. 막내 전하께도, 종자들에게도 좋은 기회겠지.”
“재능 있는 수련생들을 차출하는 모양새로 보일까 봐서, 그 애들이 원래 속했던 가문에도 포상을 하신대.”
“그 포상 받으려고 급히 종자를 들이는 작자들이 있는 건 아니겠지?”
“에이, 막내 전하 일인데 폐하께서 허투루 하시겠어?”
호사가들에게는 즐거운 이야깃거리도 되었다.
덕분에 이번 일에 대한 소문은 귀족 사회를 넘어 황성 전체에 널리 널리 퍼졌다.
좋은 쪽으로 해석한 소문들로.
역시,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가 있고 요정… 같은 세실리아의 미모가 있으니 뭘 해도 꽃 노래였다.
‘케인이 아직 어느 가문에 들어가지 못했어도, 소문이 널리 났으니 지원할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