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르몬시터-23화 (23/86)

#23. 조금이라도 설레면

2017.07.19.

지협의 손이 운전석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차 문이 열리고, 어디서 많이 본 긴 다리가 밖으로 나왔다.

“에휴.”

모단의 입에서 반쯤 포기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백견이다.

하도 불쑥불쑥 등장해 대니, 이제 제 방 옷장이나 침대에서 기어 나오지 않는 이상 그렇게까지 놀라진 않을 듯했다.

흡사 레드카펫을 앞에 두고 차에서 내린 배우처럼 후광까지 거느린 그가 한 손으로 머리를 넘겼다.

“나 운동하러 가던 중이었는데 옆 차선에 형 차가 보이기에 따라온 것뿐이야. 어디 가나 궁금해서.”

지협도 모단도 안 받아주자, 견은 정말로 억울한 눈을 했다.

“누구나 그러지 않나요? 가다가 아는 차가 보이면 궁금해서 따라가 보고 그러지 않나?”

‘너 말고 아무도 안 그러거든요?’

“너 말고 누가 그래?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잖아.”

모단이 하고 싶은 말을 지협이 대신해 주었다. 견은 그런가, 하고 바로 수긍했다.

“근데 형은 나인 거 어떻게 알았어?”

“나도 네 차 번호쯤은 알고 있는 데다 워낙 대놓고 따라오기에.”

“그러긴 했지. 몰래 따라가면 수상해 보일까 봐.”

견이 몸을 틀었다.

“근데요, 정모단 선생님.”

모단이 눈으로 ‘왜, 인마’ 했다.

“왜 지협이 형 차를 타고 와요?”

이번에는 ‘뭐, 인마?’ 하는데, 지협이 한 걸음 물러섰다.

“정모단 씨가 대답 좀 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이만 가봐야 해서.”

“예에?”

“다음에 회사에서 뵙죠.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협은 정말로 뒤도 안 돌아보고 차에 타더니 사라져 버렸다.

‘이런 무대책 또라이를 나한테 넘기고 그냥 가버린다고? 이거 실화냐?’

멀어지는 차 뒤꽁무니를 멍하니 바라보던 모단이 몸을 돌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치 오늘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이라도 한 사람처럼 서 있는 견을 보자 슬슬 골이 올랐다.

“뭔데요? 그새 한 달이 지났어요?”

“견우직녀도 아니고 어떻게 매번 정해진 날만 봅니까?”

“뭐요?”

“한 달에 한 번씩 보는 건 공식적인 거고, 비공식적으로 종종 볼 수도 있는 거죠.”

견이 비스듬히 짝다리를 짚었다.

“근데 왜 지협이 형 차를 타고 왔냐니까요? 둘이 어디 갔다 오는 건데요?”

“가다가 아는 차 보고 따라가던 중이었다면서요? 마저 따라가 보지 그래요?”

“이제 그쪽은 전혀 안 궁금해요. 정모단 씨가 오늘 누구랑 뭘 했는지가 궁금해 죽을 것 같은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제 이 인간과 비공식적으로 만나 얼토당토않은 대화를 주고받는 것에도 익숙해지려고 했다. 그게 더욱 열이 받았다.

“백견 씨.”

“네.”

“만난 김에 확실히 하고 넘어가죠. 이렇게 수시로 사생활 침범당하는 거 딱 질색이거든요?”

“나랑 똑같네요. 나도 내가 정해둔 영역 안에 허락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오면 예민해지는데. 퍼스널 스페이스 알죠? 타인에게 침범당하고 싶지 않은 거리요. 그게 엄청나게 좁아서.”

“그걸 그렇게나 정확히 잘 아는 사람이! 말과 행동이 안 맞아도 정도가 있지!”

“근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예외. 퍼스널 스페이스가 0이 돼요.”

휘이잉.

어디선가 바람 한 줄기가 불었다.

오묘한 정적이 내려앉으려다가, 낮게 깔린 모단의 목소리에 밀려 휙 날아갔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퍼스널 스페이스가 0이 된다고.”

“그전에.”

“예외라고?”

“맨 앞에!”

“아, 좋아하는 사람.”

데에엥.

모단은 방금 들린 이 묵직한 종소리 같은 것이 제 머릿속에서 난 게 맞는지 의심했다. 뒷골이 띵하고 눈앞이 어찔한 걸 보니 맞는 것 같았다.

“설마 그 좋아하는 사람이 나예요?”

“몰랐어요? 내가 처음부터 그렇게 티를 냈는데?”

휘둥그레지는 견을 마주한 순간, 다시 한 번 머리가 희끈거렸다.

‘나 지금 미친놈한테 고백받은 거야? 아니, 그보다! 진심이야?’

빠르게 눈을 깜박인 견이 되레 야단을 했다.

“그동안 내가 한 말 다 어디로 들었어요? 어떤 미친놈이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를 이렇게 쫓아다녀요? 난 관심 없는 여자한테는 절대 시간 안 쓰고 자존심도 안 접어요. 다른 남자들도 대부분 그럴 걸요? 그런 것도 몰라요?”

‘세상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이상한 놈이 꼭 내가 이상한 것처럼 말하는 것 좀 봐!’

한참을 입만 뻥긋거리던 모단은 간신히 평정을 되찾았다.

“좋아하는 거랑 필요한 거랑 헷갈릴 수도 있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

“골똘히 해봤어요. 근데 둘 다 맞아요.”

가까스로 가라앉힌 마음이 또 요동쳤다.

“나는 정모단 씨가 필요하고, 좋아해요.”

거침없고도 담백한 투였다.

지극히 당연한, 모두가 다 아는 일을 말하듯.

어질어질한 건 모단 혼자뿐인 듯했다.

“금사빠도 정도가 있지.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게다가 뭐 얼마나 좋게 마주쳤다고 그새 좋아지고 말고 해요?”

“17년 인연이면 충분한 거 아니에요? 얼마나 더 오래 만나야 되는데요? 엄마 뱃속에서부터 알고 지냈어야 합니까?”

“17년 동안 꾸준히 본 게 아니잖아요!”

“그럼 지금부터 17년 동안 꾸준히 봅시다. 난 좋아요.”

“와아, 때리고 싶다!”

제대로 튀어나온 속마음을 들은 견은 씩 웃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웃음기를 거뒀다.

깊고 올곧은 시선이 모단을 사로잡았다. 내가 다시 웃기 전엔 움직일 수 없어요, 하고 최면을 거는 것만 같았다.

“정모단 씨.”

모단은 들이마신 숨을 다 내뱉지도 못하고 굳어버렸다.

“좋아해요. 진심이에요.”

진중한 눈동자가 닻처럼 가라앉아 깊숙이 파고들었다.

“방금 내가 한 말, 자기 전에 이불 덮고 누워서 다시 잘 생각해 봐요.”

“뭐라고요?”

“그래도 화가 나면 아직은 날 안 좋아하는 거고, 조금이라도 설레면…….”

말끝이 흐려지며 길게 늘어졌다.

“설레면…….”

말을 잇지 못하고 멈춘 견이 슬그머니 입술을 깨물었다.

갑자기 그의 목덜미가 붉어지나 싶더니 순식간에 귀까지 빨개졌다. 야금야금 타고 올라온 홍조가 뺨까지 번졌을 때, 견이 휘청했다.

“뭐, 뭐예요? 아파요?”

“아뇨.”

견이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큰일 났다. 정말 미안해요.”

“왜요? 뭐가요?”

이마를 찡그린 견이 한 손으로 눈을 덮고는 중얼거렸다.

“정모단 씨가 자기 전에 누워서 내 생각 해주는 거 조금 상상했을 뿐인데 어지러워서…….”

“야 이……!”

병약한 미친놈에게 번번이 농락당하는 것에 울화통이 터진 모단이 한 손을 치켜들었다.

견이 그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끌어당겼다.

“정말이라니까요? 이거 봐요.”

그렇게 우악스럽게 당긴 것 같지도 않은데 맥없이 이끌려 갔다. 모단의 손이 견의 왼쪽 가슴 위에 턱 하니 얹혔다.

있는 힘껏 벌컥벌컥 뛰노는 박동이 손바닥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떡하죠?”

견은 모단의 손목을 꼭 부여잡은 채로 제 가슴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무섭다.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뛰어도 괜찮은 건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경이로운 감각에 집중하느라, 견은 저를 보는 모단의 눈동자에 불길이 이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야이 씨, 이거 놔! 안 놔?”

잡히지 않은 모단의 손이 견의 어깨며 팔뚝이며 등을 마구잡이로 강타했다.

“앗, 아야!”

정강이까지 걷어차일 뻔한 것을 간신히 피한 견이 흉기로 돌변한 모단의 나머지 한 손마저 얼른 붙잡았다. 아프지 않을 만큼만 세게 쥐고, 몸은 최대한 뒤로 뺐다.

기필코 패겠다는 의지와 안 맞겠다는 의지로 점철된 둘 사이에 격렬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니, 나는 그냥 너무 신기해서! 잘못했어요!”

“놓으라고!”

“놓으면 때릴 거잖아요!”

“맞을 짓을 안 하면 될 거 아니야!”

“안 할게요.”

그 말을 믿는 건 아니었으나, 이러고 있는데 누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그것도 골치 아플 것 같아 마지못해 발길질을 멈췄다.

모단의 손을 놓자마자 두어 걸음 물러선 견이 들릴 듯 말 듯 덧붙였다.

“……오늘은.”

“확 그냥!”

“말도 험하고 손도 맵고. 이런 분이 애들한테는 어쩜 그렇게 다정하실까.”

“내가 애들한테 다정한 거 봤냐고!”

“네.”

그러고 보니 옥상에서 노는 걸 보고 간 적이 있긴 했다.

모단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거칠게 넘겼다.

“백견 씨, 그렇게 한가해요? 일은 안 해요?”

멈칫한 견의 목소리가 한풀 꺾였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일들이 많아서요.”

“핑계대지 말아요. 백견 씨보다 훨씬 가진 거 없고 힘든 사람들도 악착같이 살아요.”

모단의 눈빛이 더없이 차디찼다.

“한 달에 일주일은 그렇다 쳐요. 나머지 3주는 왜 낭비하는 건데요?”

“낭비라뇨. 정모단 씨 만나는 게 왜 낭비…….”

“낭비 맞아요. 그 멀쩡한 허우대랑 스펙으로 일을 하면 다시 경영천재 소릴 들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나한테 미친놈 소리밖에 못 듣고 있으니까.”

모단은 마저 쏘아붙였다.

“남들은 가지려고 발악을 해도 쉽게 못 갖는 것들을 날 때부터 쥐고 태어났으면, 적어도 남들 눈에 그게 아까워 보이지는 말아야죠. 저 금수저가 내 손에 쥐어졌으면 저딴 식으로 안 썼을 텐데, 그런 생각 들게 만들지 말라고요.”

회초리처럼 따끔한 말들이 견을 후려쳤다.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사는 사람이라면 제가 괜한 참견을 한 거구요.”

매몰차게 돌아선 모단은 대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겨진 견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다 됐습니다.”

“아유, 감사해요.”

볼일이 있어 원장실로 들어서던 모단이 멈칫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남자 유아체육교사가 원장실 한복판에 놓인 사다리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전등이 갑자기 나갔는데 갈아주신 거 있죠. 정 선생님,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네, 원장님.”

“카페테리아에서 커피 좀 사다 주실래요? 체육선생님들 드시고 가시게요.”

원장이 카드를 건넸다. 모단은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아닙니다, 원장님. 그러실 필요까지 없는데.”

“애들 데리고 실컷 놀아주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시원한 거라도 드시고 가세요. 윤 선생님은 누리반 수업 중이신가? 곧 끝나죠?”

체육교사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의자에 앉았다.

모단은 바로 어린이집을 나와 1층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아이스아메리카노 세 잔 주세요.”

카운터 바로 앞의 의자에 앉은 그녀는 길게 하품을 하다가 얼른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잠을 설쳤더니 하루 종일 멍하네.’

이게 다 백견 때문이다.

자기 전에 이불 덮고 누워서 다시 잘 생각해 보라던 말이 기다렸다는 듯 떠오르는 바람에.

근데 더 큰 문제는, 생각했던 것만큼 화가 나질 않았다는 거다.

곱씹을수록 열이 오르는 건 맞는데, 그러니까 결코 설렌 건 아닌데, 뭔가 간이 안 맞는 음식처럼 애매했다.

뭐가 더 들어간 건지 덜 들어간 건지도 모르겠고, 분명 입에 착 붙진 않는데 쏟아버리기엔 미련이 남는 그런 기분이랄까.

홧김에 너무 몰아붙였나 싶은 생각까지 더해지는 통에 더 심란했다.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한 말이라 더 상처받은 건 아닌가 싶어서.

뒤척이다 보니 어느덧 새벽이라, 이제 그만 생각하고 자야겠다 하고 돌아누웠다.

한데 그 말 대신 생각난다는 게, 목까지 빨개져서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리던 얼굴이라니!

‘와, 진심 이건 아니지! 이러면 왠지 그 자식 바람대로 된 것 같잖아!’

모단은 두 손으로 가볍게 뺨을 두드렸다.

‘고작 그게 뭐라고 잠도 제대로 못 잔 건지. 뭔가 바보 같은 게 옮은 거 아냐? 정신 차리자.’

무심코 눈을 돌리는데, 구석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키 큰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위 비서님?’

습관적으로 주변부터 둘러보았다. 견이 보이지 않음을 확인한 모단은 망설이다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섭호가 책을 놓고 몸을 일으켰다. 모단은 일어설 필요까진 없다고 손짓을 했으나 섭호는 늘 보던 단정한 자세로 섰다.

“잘 지내셨습니까?”

“네. 무탈이도 잘 지내고 있나요?”

섭호는 지하에 있는 사내 헬스장에서 몇 시간째 운동 중인 견을 떠올렸다.

원래는 개인적으로 운동을 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회사로 가야겠다고 했다. 사원들이 주로 점심시간과 퇴근 후에 몰린다는 점을 고려해 새벽과 오전을 택했다.

“네.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 같습니다.”

“다들 많이 보고 싶어 해요. 저도 그렇고요.”

“무탈이도 선생님을 많이 보고 싶어 할 것 같네요.”

아직 월경할 때도 안 됐는데 견은 며칠 전부터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말수도 확 줄어들고, 뭔가 생각이 많아진 듯 보였다.

아직은 물을 때가 아닌 것 같아, 섭호는 어쩐지 모단과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짐작만 했을 뿐이었다.

만난 김에 넌지시 알아볼 방법이 없나 싶어 머리를 굴려보는데, 주문하신 음료 나왔다는 부름이 들렸다.

“그럼 다음에 또 봬요, 비서님.”

모단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돌아섰다. 섭호는 얼결에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다.

“저, 선생님!”

“네?”

“혹시 우리 도련…….”

그때였다.

두다다다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야무진 손날이 모단의 옷자락과 섭호의 손 사이를 팍 갈랐다.

“너 뭐야?”

방금 자기가 하려던 말이 옆에서 들려오는 통에 모단은 황당해졌다.

눈이 번쩍 뜨이게 화려한, 안면이 있는 미녀가 앙칼진 눈으로 저를 보고 있었다.

“누구냐고. 누군데 오빠랑 말 섞고 있어?”

“아가씨.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다 봤어. 방금 오빠가 이 여자 잡는 거. 내가 갈 때는 단 한 번도 잡은 적 없으면서! 뭐야? 이 여자 누구야?”

‘누가 보면 사랑과 전쟁에 나오는 양다리 불륜녀인 줄 알겠네. 이러다 회사에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모단이 진정하라는 의미를 담아 여자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오랜만이네요.”

“뭐라고요?”

섭호를 몰아붙이던 여자의 눈에 확 당황한 빛이 어렸다.

“누구세요?”

“전에 그쪽이 클럽에서 2차 가자고 했던 여자요. 이름이 어떻게 되셨더라? 백지협 이사님이 얘기하시는 거 얼핏 들었는데. 금지였나?”

“어, 맞아요! 저 금지예요, 황금지! 혹시 언니가 정모단 선생님?”

“그렇습니다만.”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외친 금지가 좀 전에는 꺾을 기세이던 모단의 팔을 꼬옥 잡았다.

“저 언니 만나러 온 거예요!”

이렇게나 빠른 태세전환이라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정말 죄송해요. 사실은 얼굴이 잘 기억 안 나서 이름하고 여기 어린이집에서 일하신다는 것만 듣고 무작정 온 거였어요.”

반갑게 생긋대던 눈에 냉기가 홱 스쳤다.

“근데 먼저 한 가지만 확인하구요. 섭호 오빠랑은 무슨 사이죠?”

금지에게 잡힌 팔을 스윽 빼낸 모단은 언젠가 지협에게 들은 말을 적절히 써먹었다.

“위 비서님께서 대답 좀 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이만 가봐야 해서.”

“어어, 언니! 잠깐만요. 만약에 아무 사이 아니라고 하면 은혜를 갚고 싶단 말이에요. 밥을 좋아하실지 차를 좋아하실지 술을 좋아하실지 백화점을 좋아하실지 몰라서 카드만 가져왔어요.”

모단이 잡상인 사절하듯 단호하게 한 손을 들어 보였다.

“안 받아요.”

그 말만 남기고 커피를 챙겨 총총 사라져 버렸다.

카페테리아 안에 섭호와 금지, 둘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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