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르몬시터-50화 (50/86)

#50. 오빤 내 거야, 내 거라고!

2017.10.22.

요란한 초인종 소리가 났다.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인터폰을 확인한 견의 눈이 커졌다.

“얘는 또 왜 온 거야?”

딩동, 딩동, 딩동딩동딩동.

열어줄 때까지 누를 기세다. 섭호 귀에 얼마나 거슬릴지 짐작한 견이 마지못해 문을 열었다.

잠시 후, 금지가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섭호 오빠 아파? 정말이야? 많이 아픈 거야? 어디가 아픈 건데!”

“조용히 해. 이제 약 먹고 자러 갔는데 너 때문에 깨겠어.”

금지가 울먹울먹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아픈 건데…… 병원 안 가?”

“어떻게 알았어? 너 정말로 여기다 몰카 달아놓은 거 아니야? 걸리면 죽는다.”

“아니야! 아까 오빠랑 할아버지랑 통화할 때 옆에 있었어. 좋은 그림이 생겨서 드리러 갔다가 같이 차 마셨다고. 오랜만에 다 같이 점심이나 먹자고 하셨는데…….”

가뜩이나 큰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그제야 모단을 본 금지가 손등으로 눈가를 꾹 눌렀다.

“안녕하세요, 언니. 벌써 살림 합치신 거예요? 부럽다…….”

“예? 합치긴 뭘 합쳐요?”

“잠깐, 그래서 우리 섭호 오빠가 화병 난 건!”

“아니라니까! 아침에 전화 받고 온 거예요.”

자초지종을 들은 금지가 견을 노려보았다.

“쓸모없는 인간.”

“자기소개하지 말고 나가. 너 있으면 섭호 없던 병도 생기고 안 아프던 골치도 아파.”

“절대 안 깨우고 귀찮게 안 할게. 머리맡에 앉아서 가만히 보기만 할게.”

“그게 무슨 귀신 같은 짓이야?”

“섭호 오빠 방 2층이지?”

금지가 몸을 돌렸다. 견이 한마디 하려는데 모단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발소리도 내지 않으려 조심하며 계단을 올라가는 금지를 본 견은 눈썹을 찡그렸다.

거실까진 몇 번 쳐들어온 적 있었어도 2층은 처음이다.

굳게 닫힌 문들 중 어떤 게 섭호의 방인지 고민하던 금지는 신중하게 손잡이 하나를 골라 쥐고 잡아당겼다.

소리 없이 열리는 문 사이로 기대하던 향이 스쳤다. 한 번에 잘 고른 것 같다.

‘난 이렇게 사소한 우연마저도 운명이라고 우기고 싶을 만큼인데…….’

오빠는 듣는 척도 안 하겠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침대에 모로 누워 있는 섭호의 뒷모습이 보였다. 구겨진 이불이 얕게 오르락내리락했다. 미동도 하지 않는 걸 보면 깊이 잠든 것 같았다.

차마 다가가지도 못하고 뒷모습만 한참 지켜보던 금지는 시선을 돌렸다.

한쪽 벽이 책으로 꽉 차 있다. 섭호 특유의 체취 중에 저 많은 종이들의 냄새도 섞여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 스쳤다.

꺼내기 편한 위치에 경영과 창업, 비서실무 관련 책이 있고 그 위에는 대학에서 전공한 컴퓨터 관련 책들이 있다. 프로그래밍, 해킹, 사이버보안 등등 한글로 쓰여 있는데 읽어도 모르겠는 팔뚝 두께의 책들이.

중간에 소설과 에세이 등도 섞여 있고, 뜬금없는 요리책도 몇 권 보였다. 맨 아래에는 고문서와 민담과 설화에 관한 책들에 심지어 의학 서적까지 있다.

‘혼자 상경계에 이공계에 어문학계까지 다 휩쓰네. 이러니 어떻게 안 좋아하냐고.’

책꽂이를 훑던 시선이 맞은편으로 향했다. 액자 몇 개가 세워진 깔끔한 책상이 보였다. 조심조심 다가가 보았다.

오래된 가족사진이다. 어렸을 적에 뵌 적 있는 위 비서님과 임신한 배를 한 손으로 감싸고 있는 아내, 그리고 아주 어린 섭호.

옆에 있는 다른 사진 속에는 아내 대신 섭호와 닮은 남자아이가 한 명 더 있다. 이목구비는 닮았지만 한눈에 봐도 가냘파 보였다.

동생을 낳다가 엄마가 돌아가셨고, 힘들게 태어난 동생도 병 때문에 오래 살지 못했다고 했다. 우연히 그 얘길 듣고 나서야 섭호가 걸핏하면 아픈 견을 왜 그렇게 챙기는지 알 것 같았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잘 아는 사진이 있다.

열다섯 살,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두 개쯤은 더 큰 지협이 있고.

열한 살, 고작 4학년인데 금방 지협의 키를 따라잡을 것 같은 섭호가 있고.

그때까지만 해도 고만고만했던 열두 살 견과 열 살 금지가 있다.

견의 생일이었고, 큰 파티가 있었다. 위 비서님을 따라왔던 섭호를 거기서 처음 보았다.

오빠들이랑은 웃고 말도 잘하면서 저만 옆에 가면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게 너무 서러워서 결국 울음을 터뜨렸더니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그랬다.

“내가, 서울말을 잘 못 해서.”

서울말 말고 다른 말도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웃기만 했다. 그 이후로는 긴 말은 안 해도 피하진 않았다. 나름 챙겨주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몇 년을 보지 못했다. 다시 보았을 때는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금지 맞지, 하며 어색하게 인사하던 키 큰 소년.

이유 없이, 정말 아무런 이유 없이 좋았다.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애썼던 기억뿐이다. 살갑진 않아도 나름 귀여워해 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멀어졌다.

못 한다던 서울말은 미울 만큼 완벽해지고, 금지라고 부르던 호칭은 온데간데없이 아가씨로 바뀌었다.

대체 언제가 첫 고백이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셀 수도 없을 만큼 마음을 표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더 초연해지기만 했다.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심장이 저렸다. 감정인지 습관인지 저도 헷갈릴 지경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섭호를 좋아하지 않는 삶은 상상이 안 된다는 것.

금지가 발을 내디뎠다. 침대 아래를 빙 돌아 그의 얼굴이 보이는 쪽으로, 소리 죽여 한 걸음씩 다가갔다.

감은 눈가가 열로 발그스레했다. 마음 같아선 이불도 당겨 덮어주고 베개 아래 떨어진 물수건도 다시 올려주고 싶은데. 차마 그러지 못하고 수건만 치워주었다.

시트에 남은 물자국만 하릴없이 바라보는데, 바로 옆 협탁에 놓아둔 책이 눈에 띄었다.

책갈피를 끼워둔 페이지를 무심코 열어본 순간, 금지는 숨을 삼켰다.

언젠가 제가 심술을 가득 담아 찍어놓은 입술자국.

‘……뭔데, 이게.’

그새 감기가 옮았을 리도 없는데, 손발이 아리고 눈앞이 어질거렸다.

투둑, 주르륵.

비꽃 몇 방울이 떨어지다 소나기가 오는 것처럼,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한 번 터지자 걷잡을 수가 없었다.

책을 꼭 쥔 채로, 금지는 눈물만 뚝뚝 떨어뜨렸다.

턱이 얼얼하도록 이를 악물고, 두 눈을 꼭 감고, 어떻게든 가라앉히려고 했으나 감정은 요동치기만 했다. 일어나 나가야 하는데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훌쩍.

젖은 소리에 섭호는 잠에서 깼다.

잔뜩 찡그리고 눈을 뜨자 자그마한 형체가 얼비쳤다. 눈을 의심했다.

‘아가씨가…… 왜 여기 앉아서 울고 있는 거지.’

꿈인 게 분명했다. 잠귀가 밝은 편이라 누가 들어오려는 기척만 났어도 깼을 테니까.

약 때문에 모든 감각이 무뎌졌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섭호는 그저 눈앞의 금지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질어질 몽롱한 게 역시 현실이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달래줘도 괜찮지 않을까…….’

부스럭대는 기척에 놀란 금지가 눈을 들었다.

이불을 반쯤 걷어내고 손을 꺼낸 섭호가 금지의 뺨을 쓸어주었다. 그 별거 아닌 동작도 쑤시고 힘들어서 금방 팔이 툭 떨어졌다.

기껏 닦아준 뺨 위로 서러운 눈물이 더 미어졌다.

“나빠.”

또렷한 목소리에, 다시 이불 속으로 팔을 넣으려던 섭호가 멈칫했다.

“나쁘다고.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못됐어.”

‘꿈이 아니야?’

날카로운 현실감이 약기운도 통증도 순간적으로 밀어냈다.

“제일 나쁜 거잖아, 그거! 관심이 없으면 신경도 쓰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말아야지, 좋아해 주지 않을 거면 나도 안 좋아할 수 있게 그렇게 해줘야지, 왜 계속 여지를 남기고, 흑…….”

눈물범벅으로 쏟아내는 말들이 아프게 파고들었다.

그녀가 처음 고백했던 날,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아른거린다.

저는 대학생이고 그녀는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여자 동기와 찍은 사진을 봤다며 교복을 입은 채로 지방에 있는 제 학교까지 찾아왔었다.

“나 오빠 좋아한단 말이야! 오빤 내 거야, 내 거라고!”

그 철없는 말에,

눈물콧물 범벅이 된 얼굴에,

교복 치마를 꼭 움켜쥔 손과 분을 못 이기고 연신 굴러대던 발에,

눈에 담기조차 벅찬 모든 것에 설레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웃지도 울지도 못했던 날.

열이 더 오르는 것 같아 섭호는 눈을 감았다.

지금은 안 된다.

‘아버지도, 윤호도, 나도, 회장님과 돌아가신 사장님과 도련님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나 하나 때문에 누를 끼칠 순 없어.’

오래전에 금지의 큰오빠를 만난 적이 있었다.

늦둥이 막내인 그녀와 오빠들은 열 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나서 거의 삼촌뻘이었다.

나이도 지위도 까마득하게 위인 그 사람을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가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남들 눈에는 사람 좋게 웃는 얼굴이었겠지만 바로 앞에 있는 저에게는 보였다.

눈동자에 가득 찬 경멸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거라는 직감을 주는 적의가.

“나는 백견도 성에 안 차는 사람이야. 백지협 정도라면 모를까. 그런데 두 놈 다 우리 금지를 우습게만 보고, 친동생 같다느니 시답잖은 소리들이나 하고 말이야. 그런데 희명그룹 안주인도 아니고 근본 없는 비서놈이랑 맺어지는 꼴을 내가 두고 볼 것 같아?”

기침이 나오려는지 가슴이 뻐근했다. 섭호는 입술 안쪽의 살을 짓씹었다.

‘노블에서 함부로 손댈 수 없을 만큼 이사님과 도련님의 후계 구도가 견고해지면, 나 대신 정모단 선생님이 충분히 도련님을 살펴줄 수 있게 되면, 그렇게 모든 게 완전히 자리를 잡고 나면, 희명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되어서…….’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에 이마와 눈이 차가워졌다.

금지가 새로 적신 물수건을 올린 거였다. 늘어뜨려 두었던 팔도 다시 넣어지고, 이불이 어깨쯤에서 도닥여졌다.

섭호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가십시오. 감기 옮습니…….”

대답 대신, 따뜻하고 말캉한 것이 입을 막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제 입술에 다녀간 게 뭔지 알고도 남았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늘 붉게 도드라진 그 입술.

눈꺼풀 안에 우주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다시금 꿈인가 싶었다.

“옮을 거야. 오빠 때문에 아플 거고 울 거고 화낼 거야. 죽을 때까지 신경 쓰이게 만들 거야.”

지금도 온 신경이 쏠려 있는데, 얼마나 더.

“한 번 더 하기 전에 얼른 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어나 앉을 수만 있었으면, 그동안 잘 참아왔던 것들을 한꺼번에 쏟아냈을지도 모르니까.

더 아픈 건지, 이제 아프지 않은 건지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저 꺼질 듯 몽롱하기만 했다.

‘나야말로, 나쁘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여지를 둘 겁니다.’

***

금지가 한동안 내려오지 않는 사이, 모단은 견에게 양해를 구하고 냉장고를 열었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일주일에 두 번씩 오시고 나머지는 섭호가 거의 다 한다는데, 방송에 나오는 냉장고처럼 깔끔했다. 어지간한 재료는 다 손질되어 찾기 쉽게 보관되어 있었고, 밑반찬도 충분했다.

두어 번 먹을 수 있을 만큼 죽을 끓여놓고,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는 동안 견은 식탁 의자에 앉아 모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도와준다고 알짱대다가 채 10분도 안 돼서 걸리적거린다며 쫓겨난 참이었다.

“다 됐어요. 이따 데우고 반찬 꺼내서 먹기만 하면 돼요.”

“고마워요.”

“고맙긴요. 혹시 자고 일어난 후에도 비서님 열 안 내렸으면 그땐 꼭 병원…….”

의자에서 일어선 견이 모단을 꼭 끌어안았다.

“섭호 극진히 간호해 주고 나서 다 나으면 고맙다고 해야겠어요. 덕분에 모단 씨 예쁜 거 많이 봐서.”

“예쁜 거 뭐요. 팅팅 부은 얼굴에 화장 하나도 안 한 거?”

“응. 전에도 말했지만 밖에 나갈 때 화장 꼭 하고 다녀요. 안 한 건 나만 보게.”

“나중에 콩깍지 벗겨지고 나서 딴소리나 하지 마요.”

“딴 건 다 벗어도 콩깍지는 안 벗을게요.”

뭔 생각을 했는지 모단의 뺨에 흐뭇한 홍조가 번졌다.

느슨하게 팔을 푼 견이 모단의 입술을 내려다본 순간, 계단 쪽에서 기척이 났다.

“……에잇.”

팔을 거두고 두어 걸음 물러난 견이 주방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금지가 견을 쏘아보았다.

“바보는 감기도 안 걸린다더니 혼자 건강한 것 좀 봐.”

“그렇게 따지면 네가 제일 무병장수할 거다. 나가.”

“언니, 다음에 봐요. 우리 섭호 오빠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내 비서 챙겨준 건 내가 감사할 테니까 내 집에서 나가라고.”

모단에게만 방긋 웃어 보인 금지가 총총 가버렸다.

충혈되어 있던 금지의 눈동자를 보고 짠해진 모단이 중얼거렸다.

“저 두 사람,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맘이 안 좋네요.”

“섭호도 다 생각이 있을 거예요.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이죠.”

견의 표정도 썩 좋지만은 않았다.

모단이 아, 하고는 거실로 향했다.

“깜박했네. 줄 거 있어요.”

“뭔데요?”

소파 옆에 두었던 쇼핑백을 집어 든 모단이 오다 주웠다, 하는 투로 건넸다.

“월요일에 첫 출근이잖아요. 수고하시라고요.”

생각지도 못했다는 얼굴로 받아 든 견이 눈만 끔벅이다 물었다.

“나 주는 거예요? 선물?”

“네.”

입모양으로 우와, 한 견이 소파에 앉더니 상자를 꺼냈다.

“지금 열어봐도 돼요?”

모단이 옆에 앉으며 고개를 까닥했다.

넥타이를 꺼내 본 견의 얼굴 가득 들뜬 웃음이 떠올랐다. 2층에 있는 환자만 아니었다면 더 요란을 떨고도 남았다.

“고마워요, 정말. 가진 것 중에 제일 마음에 들어요. 매일 이것만 하고 다닐게요.”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사람들이 회장님 손주가 서민 코스프레하나 보다, 하면 어쩌려고.”

모단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헤실대던 견이 불쑥 목을 내밀었다.

“이왕이면 직접 매줘요.”

그러더니 타이를 제 목에 걸고 끝을 건넸다.

“월요일 아침에 해달라고 할 순 없으니까 지금 해주고 가요. 그대로 빼놨다가 하고 갈게요.”

“어…… 그게.”

얼결에 넥타이를 쥐게 된 모단이 버벅거렸다.

“해본 적이 없어서 맬 줄 몰라요.”

“넥타이 한 번도 안 매봤어요?”

“네. 고등학교 교복에 있긴 했는데 지퍼로 된 거 하고 다녀가지고.”

“그럼 내가 처음인 거네요?”

그게 뭐라고, 가뜩이나 환한 얼굴이 더 반짝반짝해졌다.

“내가 알려줄 테니까 그대로 따라서 매면 돼요.”

견이 모단의 손을 제 손처럼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끝이 차근차근 교차되고 감기고 묶였다.

“이상하다. 원래 이런 모양 아니잖아요. 매듭이 왜 이렇게 삐뚤어졌지?”

“묶은 사람이 못난이같이 묶었으니까.”

“잘 가르쳐 줘야죠!”

“다시 하게 풀어봐요.”

모단이 낑낑대며 타이를 풀어냈다. 견이 다시 손을 잡았다.

“이쪽을 짧게, 여기는 길게 잡은 다음에 겹치고 감아서, 그렇죠. 위에서 아래로 뻬내면, 됐죠?”

“어! 이번엔 좀 된 것 같아요! 아니구나. 뒤가 더 길잖아.”

“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낫네요.”

“이제 감 잡았어요. 다시 해볼게요.”

“그럼 혼자 해봐요.”

견이 한 손으로 타이를 주욱 풀어내고는 목을 내맡겼다. 모단이 더듬더듬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잠깐, 이거 아닌데. 어디로 넣어서 빼는 거였지? 잠깐만요.”

“적당히 묶었다 풀었다 해요. 기분 이상해지려고 그래.”

잠시 고개를 들고 눈을 흘긴 모단이 다시 집중했다.

“이제 된 것 같은데. 그쵸?”

어느새 바짝 붙어 있게 된 줄도 모른 채, 매듭을 이리저리 당겨 모양을 잡는 데만 열중한 모단에게로 다디단 시선이 쏟아졌다.

“그동안 만든 교재교구가 얼만데. 이 정도는 손쉽게 뚝딱…….”

푸스스 웃은 견이 손가락으로 모단의 코끝을 톡 쳤다.

놀라 동그래진 눈이 올려다보는 순간, 참지 못하고 입술을 포갰다.

이러면 아픈 사람한테 너무 미안한데.

동시에 그렇게 생각했지만, 더 미안하게도 금방 머릿속이 하얘져 버렸다.

갓 내린 커피에 따뜻한 우유를 붓고 휘젓는 것처럼, 느른하고 부드러운 입맞춤에 녹아서.

할 수만 있다면 주말 내내 늘어지게 안고 싶은 욕심을 힘겹게 뿌리치고, 견과 모단은 소파를 벗어났다.

같이 현관을 나서 정원을 가로질렀다. 견이 대문을 열어주고, 모단이 먼저 나섰다.

바로 앞에 세워져 있는 꼬마자동차를 본 견이 눈을 크게 떴다.

“모단 씨, 차 있었어요? 운전도 할 줄 알아요?”

“엄마 차예요. 주말이라 회사 안 가셔서 끌고 나왔어요.”

차에 탄 모단이 시동을 건 후에 한 팔을 창틀에 걸치고 까닥거렸다.

운전석에 앉은 그녀를 신기한 눈으로 보던 견이 몸을 낮췄다. 모단은 눈높이가 맞기를 기다렸다가 음흉하게 속삭였다.

“누나가 운전 말고 다른 것도 다 잘하거든?”

순식간에 넋이 빠져나간 견의 이마를 한 손으로 스윽 밀어낸 모단이 씩 웃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니까 또 무슨 일 있으면 불러요. 알았죠?”

그녀가 곧장 액셀을 밟았다. 오래된 엔진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만큼은 얼핏 스포츠카 뺨쳤다.

터프하게 멀어지는 차 뒤꽁무니를 멍하니 지켜보던 견이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무시무시한 누나에게 심장을 삥 뜯긴 통에 정신이 혼미했다.

“너무 멋있어서 현기증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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