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르몬시터-63화 (63/86)

#63. 더 가지면 가졌지 잃지는 않을 겁니다

2017.12.06.

퇴근 후, 견은 <갤러리 한>으로 향했다.

며칠 전 한규철 사장에게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시간이 될 때 개인적으로 따로 만나보고 싶다는 얘기였다.

‘아직 대놓고 움직이진 않았으니 한성어패럴에 관심을 가졌다는 걸 알 리는 없고. 그럼 갑자기 왜? 역시 내가 블랑아이로 돌아와서?’

사원이고 대표고를 떠나 제가 다시 희명그룹 일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긴장하며 주시하는 이들이 있긴 했다.

우습게도, 그중 대부분은 제가 회사에서 밀려났을 때 누구보다 먼저 등을 돌리고 썩은 동아줄 취급했던 이들이었다.

전시가 한참 전에 끝났을 시각이라 갤러리 입구며 주위까지 한산했다.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직원 한 명이 문을 열어주며 안내했다.

“관장실로 바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전시실은 어두웠고, 계단에만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얼핏 보이는 어두컴컴한 공간이 괜스레 스산하게 느껴졌다. 학교나 병원처럼 낮에만 사람이 많은 장소에 밤에 갔을 때 느끼는 이질감과 비슷했다.

3층 관장실 앞에서 노크를 한 직원은 들어가 보시라는 말을 남기고 내려갔다.

견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왔나, 백견 군.”

“예. 안녕하셨습니까.”

예의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띤 한규철이 소파 쪽을 가리켰다. 테이블 위에 갓 우려낸 듯 보얀 김이 올라오는 차 두 잔이 놓여 있었다.

한규철이 가운데에, 견은 직각으로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갑작스러웠을 텐데 흔쾌히 시간을 내주어서 고맙네.”

“별말씀을요. 조용히 만나뵙게 되니 더욱 좋습니다.”

이런저런 뻔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은 후, 한규철이 넌지시 운을 뗐다.

“실은 그림을 하나 선물하고 싶어서 불렀네.”

“저한테요?”

“회장님보다는 자네에게 더 어울릴 것 같은 그림이 있어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친분이 꽤나 두터운 백 회장에게도 특별한 이유 없이 그림을 선물한 적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가끔 그럴 때가 있거든. 그림을 보자마자 아, 이건 누구 것이로구나, 하고 떠오르는 경우가.”

얼마간 날카로워진 견의 눈매를 미처 보지 못한 한규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번 보겠나?”

견은 입을 다물고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한규철이 관장실 안쪽에 있는 문을 열었다. 어쩐지 아래층들에 비해 좁아 보인다 했더니 문 너머에 널찍한 공간이 더 있었다. 작품 보관실인 듯했다.

앞서 들어선 그가 한쪽 벽을 가리켰다.

“이 그림일세.”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50호가량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유화가 아니라 한국화 물감을 썼다.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그림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미완의 작품처럼 보였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의미 없는 낙서 같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 넓게 칠해놓은 게 다인 것 같은.

색으로 만든 면의 모서리는 뭉툭하게 번져 있었는데 의도한 건지 서투른 건지 모호했다. 그럼에도 색의 조화와 질감에 이끌려 응시하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색의 이름으로는 그 오묘함을 다 표현할 수 없는 색들 중, 견은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모단색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가장 뜨거운 색과 가장 차가운 색이 절묘하게 섞인 보랏빛.

모란처럼 화려하면서도 자목련처럼 우아하고, 무지개 끄트머리처럼 신비로운 여운을 남기는 빛깔.

“유명한 작가의 그림은 아니지만 갖고 있다 보면 큰 도움이 될 걸세.”

견의 입술 끝이 희미하게 틀어졌다.

섭호와 제가 동시에 주목한 찌라시 몇 줄이 머릿속을 스쳤다.

한규철이 죽은 딸을 추모하기 위해 이 갤러리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고가의 미술품을 이용해 교묘하게 탈세를 저지르기 위해서라는 것.

무명 화가들을 소속 작가로 영입해 적극 후원하는 것도 겉으로는 선행처럼 보이나, 뒤에서는 옳지 않은 방식까지 동원해 가며 소속 작가들의 작품 가격을 뛰게 만들어 엄청난 이득을 얻는다던 것.

그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한규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 딸이 많이 아팠었네.”

견의 턱이 바짝 굳었다.

“백견 군도 아팠다고 들었는데 극복하고 다시 일하는 모습을 보니 이렇게라도 격려해 주고 싶어졌어.”

시계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공간, 견의 차분한 목소리가 묘한 정적을 깼다.

“실례지만 따님은…… 어디가 아프셨던 겁니까?”

“암이었네.”

한규철의 눈길은 줄곧 그림에만 향해 있었다.

“뱃속에 몹쓸 것을 품었지.”

견은 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것 때문에 죽었어.”

어느새 차게 식은 손끝이 손바닥을 찌르며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끼쳤다.

“이 그림, 받아주겠나?”

말랐는지 고였는지 알 수 없는,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우물처럼 음습한 노인의 눈동자가 견을 응시했다.

흔들림 없이 그를 마주하던 견이 선웃음을 머금었다.

“송구합니다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한규철의 고개가 슬며시 기울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블랑아이 직원이고, 한성어패럴은 거래처가 아닙니까. 대표나 담당자는 아니라고 해도 제가 사장님께 대외적으로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귀중한 물건을 받는 것은 여러모로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침묵하던 한규철이 웃음을 터뜨렸다.

“여전히 융통성이라고는 없구만.”

견은 잠자코 웃기만 했다. 그림에는 더 이상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럼 현실적인 덕담이나 한마디 해줄까. 늙은이의 괜한 참견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닙니다. 귀히 듣겠습니다.”

“자네만 한 나이에 하는 가장 흔한 착각이 뭔지 아나?”

탁한 물기로 속내를 감춘 눈과, 맑은 총기 뒤에 벼려진 날을 숨긴 눈이 맞부딪쳤다.

“돈과 명예, 권력보다 사랑이 위에 있을 거라는 착각이야.”

견은 귀로 들리는 소리보다 그 사이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려 애썼다.

“자네는 필부(匹夫)가 아니라 희명그룹의 후계자 아닌가. 싸구려 물감보다도 쉽게 바래고 갈라져 버리는 감정 따위에 눈이 멀어 많은 걸 잃지 않길 바라네.”

한규철의 입가에 웃음인지 경련인지 모를 파문이 일었다.

“호르몬이 일으키는 착각에 놀아나지 말라는 뜻이지.”

“저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사랑은 호르몬이 일으키는 뇌의 착각이자 감정의 오류라는 말이요.”

견은 짐짓 가벼운 투로 치기 어린 말을 흘렸다.

“한데 돈보다 호르몬이 더 다루기 힘든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그런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남자는 살면서 세 가지 끝을 조심해야 한다고. 혀끝, 손끝, 그리고 그 끝.”

본능에 가까운 직감이자 판단이었다.

모단이 제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바꾸어놓았는지, 눈앞의 이 남자에게만큼은 절대 드러내선 안 될 것 같았다.

사랑놀음에 딸을 잃은 것이 한이 되어 기회가 될 때마다 누구에게나 하는 말이라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 뭔가를 알고 떠보는 얘기라면…….

“아직 젊어 그런지 유혹이 많습니다. 꼭 필요한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공공연히 제 뒤를 따라다니는 견차반이라는 수식어와, 호르몬시터가 아니었던 수많은 여자들을 되새겨 줄 필요가 있었다.

그 의도가 먹힌 것인지, 한규철은 풀어진 얼굴로 껄껄 웃었다.

“그맘때 남자들이 다 그렇긴 하지. 그럴수록 신중해야 할 걸세.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명심하겠습니다.”

견은 천진하게 미소 지었다.

“돈과 명예, 권력. 더 가지면 가졌지 잃지는 않을 겁니다.”

***

깊은 새벽, 뒤척이다 눈을 뜬 한규철의 아내는 침대 옆이 비어 있는 것을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물도 마실 겸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있는 남편을 보고 소스라쳤다.

“아유, 당신. 혼자 거기서 뭐 해요?”

부연 달빛이 다인 어둑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그림자가 꿈틀 움직였다.

“……생각을 좀.”

한숨을 내쉰 아내는 주방에서 물을 한 잔 따라 들고 남편의 옆에 앉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술을 마셨는지 물을 마셨는지 모를 잔 하나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람 마음이 그렇더라고. 이제 나랑 무슨 상관인가 싶으면서도, 막상 속 편하게 잘 살려는 꼴은 못 보겠더란 말이지.”

“무슨 말이에요, 그게?”

“그 아이를 조사해 보라고 시켰다가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았지 뭔가.”

“그 아이라니…….”

아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반면, 한규철의 얼굴에는 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얼마 전 민옥 교수의 전시회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들어버린 말.

관장실에서 내려오려던 차에 백견과 손여은이 주고받던 대화가 귀에 들어왔고, 분명 정모단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흔한 이름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올해 초 희명그룹으로 옮겼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제껏 길면 1년, 짧으면 반년에 한 번씩 그랬듯 사람을 시켜 확인해 보았다.

하루도 되지 않아 좋지 않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설마…… 사라 아이 말인가요?”

사라 아이라고 지칭하는 것조차 끔찍하다는 듯, 한규철은 사납게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이제 와서 그 아이는 왜…….”

“이제 와서라니. 예전부터 살피고 있었어. 언제 입을 함부로 놀릴지, 언제 뒤통수를 치고 제 몫을 챙기려 들지 모르잖나.”

아무리 법적으로 남남이라 해도 친자 확인 등을 들먹이며 소란을 벌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돈도 돈이지만 제 딸이 더러운 구설에 올라 사람들의 흥밋거리로 전락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럴 거면 진작에 나서지 않았겠느냐고 하려던 아내는, 흉흉한 남편의 분위기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지 애비를 닮아 아주 되바라진 아이였지. 보통이 아니었어. 안 그런가?”

한규철이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그 눈에 어려 있는 광기에, 아내는 저도 모르게 제 팔을 쓸어내렸다.

외동딸을 빼앗긴 남편의 분노는 딸을 데려간 놈에게 향했다가, 그가 죽고 나자 그들이 남긴 아이에게로 향했다. 남편은 뱃속에 생긴 그 아이 때문에 딸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아이가 사라의 치부만 아니었어도 예전에 손을 썼을 텐데. 함부로 먼저 건드렸다가 되레 탈이 날까 봐 내버려 두고 있을 뿐이지.”

아내는 잠자코 물을 마셨다. 그저 물일 뿐인데 이상하게 차고 써서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제 분수에 맞게 조용히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

“푸합!”

견이 보내준 사진을 확인한 모단은 육성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도 섭호가 몰래 찍은 것인 듯, 시골집 마루 위에 대자로 널브러져 있는 견의 사진이었다.

시골 5일장 핫 아이템쯤 되어 보이는 화려한 패턴의 일바지는 다리 길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칠부바지가 되어 있었고, 손에는 야무지게 호미까지 들려 있었다.

“뭐예요, 이게?”

[뭐긴 뭐예요. 체험 삶의 현장이지. 나 죽을 뻔했어요.]

“엄살은. 근데 집이 정말 근사해 보이네요. 진짜 옛날 시골집이네.”

[조금 불편한 것도 있긴 한데 가끔 오면 아늑하고 좋아요. 언제 한 번 모단 씨도 데려오고 싶다.]

“내가 백견 씨보다 일을 더 잘할 것 같긴 하네요.”

이번 주말에는 저를 키워주신 비서님께 효도하러 가야겠다며 섭호와 함께 시골로 내려간 그였다.

섭호는 아껴두었던 연차를 써서 월요일까지 머물고, 견 혼자서 올라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도 나름 칭찬받았어요. 내가 원래 맘먹고 하면 뭐든 잘하거든요.]

“오죽하겠어요. 위 비서님이랑 두 분이서 월간 농촌 화보 정도는 찍으셨겠지. 감자밭 두 사나이쯤 되려나.”

제가 말해놓고 모단은 피식 웃었다.

견도 낯설지만 섭호가 헐렁한 옷을 입고 밭일을 하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았다.

모단에게 섭호는 늘 완벽한 슈트 차림에 똑 부러지는 표준어를 구사하는 냉철한 비서의 이미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경운기를 세단처럼 몰고 농기구와 혼연일체가 되어 사투리로 견을 쪼는 광경을 직접 보았다면 할 말을 잃었겠지만.

[솔직히 해마다 와서 캐라고 할까 봐 농사 그만 지으시라고 할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새참으로 먹어보니 너무 맛있어서 감자랑 옥수수랑 이것저것 다 싸달라고 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까 트렁크에 박스며 포대자루가 이만큼…….]

“아하하하.”

[아무튼 엄청 많아요. 할아버지 갖다 드리고도 한참 남으니까 모단 씨네 집에도 갖다 줄게요.]

“고마워요. 엄마도 좋아하시겠다. 일단은 어린이집 선생님네 시댁에서 주셨다고 할게요.”

[완전 틀린 말은 아니네요. 정모단 씨도 어린이집 선생님이고 위 비서님이 저한테는 아버지나 마찬가지니까.]

“하여간 틈만 나면…….”

무슨 고백이며 청혼을 습관처럼 한다. 밥 먹었냐거나 잘 잤느냐는 인사보다 몇 배는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매번 심장이 뒤숭숭해지는 게 더 놀랍다.

[괜찮으면 바로 들러서 내려주고 갈까 하는데. 나 지금 죽전휴게소니까 한 시간 안 걸릴 것 같아요.]

“피곤하지 않으면 와요. 오늘 엄마 집에 안 계셔서 괜찮아요. 친구분들이랑 1박 2일로 놀러 가셨거든요.”

[왜 그렇게 위험한 말을 하고 그래요?]

“대체 어느 부분이 위험한 건데요?”

[여자친구가 오늘 우리 집에 아무도 없어, 하면 남자는 본능적으로 악셀을 더 세게 밟게 되는 거 몰라요?]

“알 게 뭐람. 감자랑 옥수수만 내려주고 조용히 갈 거면서 뭘 그래요.”

[말투에 경각심이 너무 없는데? 엊그제까진 조용히 갔지만 오늘은 안 갈 거라고 하면 어쩌려고?]

“언제든지 덤벼요. 라면 먹고 갈래요?”

[와, 나…….]

본인 말대로 견은 엊그제까지도 조용히 갔고, 여전히 모단을 애지중지했다. 9단계까지의 실력은 나날이 일취월장하고 있음에도 끝까지 선을 넘지는 않았다.

막판에 꼭 제가 더 힘들어할 거면서 스킨십이 넘치는 걸 보면 신체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로 금욕 아닌 금욕을 하는 중인 것 같았다.

더 캐묻지 않기로 결심한 모단은 대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은근한 도발이 섞여 있었는데, 이제는 견이 안 넘어올 거라는 걸 아예 전제로 깔고 맘 편히 건드리는 중이다.

견은 제 인내심을 시험하러 온 악마가 빙의한 것 같다며 걸핏하면 주기도문과 반야심경을 섞어 외워댔지만 그럴수록 모단은 스트레스가 사르르 풀리는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견에게 변태라고 구박하는 횟수보다 구박을 받는 횟수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운전 오래 해서 피곤할 텐데 라면 먹고 좀만 쉬었다 가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아윌킵유세잎.”

[뭘 맨날 세잎이야. 얼마나 데인저러스한지 확인시켜 줄 수도 없고 진짜.]

모단은 키들키들 웃었다.

매번 안달이 나서 투덜거리는 게 뭐라고 이리 좋은지,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표정이 어찌나 매력적이고 중독적인지 안 괴롭힐 수가 없다.

‘안 넘어오면 안 넘어오는 대로 귀엽고, 넘어오면…… 크흠.’

모단은 잠시 음란마귀를 밀쳐 두고 마음을 착하게 가다듬었다.

“집 앞에 도착하면 전화해요. 운전 조심하고요.”

[알았어요. 이따 봐요.]

전화를 끊은 모단은 후다닥 세수를 하고 옷 서랍을 열었다.

목 늘어난 티셔츠 대신 안 차려입은 듯하지만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대충 묶은 듯하지만 예쁘게 묶었다.

그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아까 하던 교구 만들기에 전념했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서 힘들긴 한데,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 마음이 들떴다.

한참 열중하고 있는데 밖에서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단은 고개를 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쾅쾅, 쿵, 쾅쾅쾅.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맞았다. 세게도 아니고 눈치라도 보듯 끊어가며 느릿느릿 두드리는 소리.

도착하면 전화하랬더니, 집에 엄마 안 계신다는 말을 듣고 장난을 치는구나 싶었다.

“뭐야. 옆에 잘 보면 초인종 있는데. 본인 집에 비하면 너무 작아서 안 보였나?”

손을 털고 일어선 모단은 얼른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쑥스러워서 그에게 말은 못 하겠지만, 솔직히 주말 내내 많이 보고 싶었다.

“휴게소라더니 어떻게 벌써 왔…….”

모단은 대문을 반쯤 연 그대로 멈췄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견이 아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