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르몬시터-78화 (78/86)

#78. 알아보았다. 이해해 주었다. 믿어주었다

2018.01.28.

커다란 화살이 날아와 박힌 것처럼, 묵직하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다.

말이 안 된다. 상식적으로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뇌에서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순간들을 저절로 끄집어내 퍼즐처럼 착착 맞춰가고 있었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가 떠올랐다.

자고 일어나면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남자.

그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었다. 한 달에 한 번, 제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아프지 않다는 남자도 있는데 이런 일도 없으리란 법은 없겠다고.

“어차피 모단 씨가 있으면 변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중에 말하려고 했어요.”

어린 목소리로 듣는 ‘모단 씨’라는 호칭에 좀처럼 적응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더 신뢰를 쌓은 다음에 말하면 조금은 더 쉽게 믿어주지 않을까 하고, 그런 핑계로 미루다가…….”

견이 이렇게 우는 걸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알아보았을까?

확실한 건, 수많은 우는 아이들을 봤지만 이렇게 아프게 우는 아이는 보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만 울어…….”

그만 저까지 울음이 차오르고 말았다.

모단의 눈물을 보자마자 뚝 그친 견이 벌떡 일어섰다.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그녀 앞에 서서 손을 꼭 잡았다.

“미안해요. 울지 마요. 내가 다 미안…….”

그 말을 듣자 눈물이 더 나왔다.

지나치게 길었던 오늘 하루, 종일 보이지 않는 견 때문에 마음 졸였던 것, 갑자기 나타난 무탈이가 꺼낸 말들까지 쌓이고 쌓이다 결국 터져 버린 거였다.

“울지 말라니까…….”

아무리 손을 잡아도 훌쩍이는 소리는 더 가빠지기만 했다.

견은 망설이다 두 손으로 모단의 뺨을 감싸고 열심히 물기를 닦아냈다. 그러다 한껏 팔을 둘러 목을 안았다.

멈칫했던 모단은 눈을 꼭 감았다. 눈물을 틀어막으려고 한 건데, 더 큰 것이 치받쳤다.

눈을 감으니 느껴졌다.

품의 너비는 달라도, 온기와 향기만큼은 익숙하다는 게.

“……괜찮아. 고마워.”

가까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작은 어깨를 잡아 조금 떨어뜨린 후에 마주 보았다.

아득히 내려앉는 것만 같은 기분.

눈빛마저 같아 보였다.

믿을 수밖에 없다는 걸 느끼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믿기가 어려웠다.

머리도 가슴도 침착하게 식히려 애쓰던 모단은 한 가지를 떠올렸다.

“혹시, 어깨에…….”

모단을 쳐다보기만 하던 아이가 아, 하더니 웃옷 어깨를 한쪽으로 끌어 내렸다.

설마 했던 위치에 또렷이 자리한 쌍둥이점이 눈앞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말로 일곱 개 찾을 걸 그랬어요. 소원 들어달라고, 딱 한 번만 내가 하는 말을 무조건 믿어달라고 했으면…….”

일말의 의심조차 바스라졌다.

한 침대 위에서 서로의 몸에 있는 점을 찾겠다며 달콤한 실랑이를 벌였던 순간.

그토록 은밀한 얘길 아이에게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저리도록 앙다물고 있던 모단의 입술이 맥없이 떨어졌다.

“백견…… 견이 씨……?”

속삭이다시피 희미한 그 부름에, 견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모단은 언젠가 받은 편지 속 또박또박한 견의 글씨를 떠올렸다.

열두 살 이후로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한 달에 일주일을 앓았다던.

‘그게…… 이런 뜻이었다니.’

그러고 보니 그 편지를 받기 전에, 좋아하는 누나가 제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며 시무룩해하던 무탈이에게 편지를 써주면 어떻겠느냐고 말했었다.

한 번 풀어진 매듭은 술술 풀려 나갔다.

벚꽃이 흩날리던 어느 밤, 코피가 멎은 후에 저를 부서져라 껴안았던 것.

그 후로도 보름이면 신기하게도 코피가 났고, 내내 제 손을 꼭 잡고 있었고, 피가 멎으면 긴 한숨을 내쉬며 웃곤 했다.

남들과 조금만 달라도 살기 힘든 세상에, 그런 걸 감추고 어떻게 살아왔을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힘들었겠네요.”

그녀가 알아보았다.

이해해 주었다.

믿어주었다.

작은 뺨 위로 새 눈물이 떨어졌다.

참으려고 애쓰는 것 같은데 도저히 멈춰지지 않나 보다. 세게 말아 물고 있는 입술과 바짝 힘이 들어간 눈썹 사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모단은 제가 다 아픈 것 같았다.

“고마워요, 모단 씨…….”

물기가 그렁그렁한 눈과 빨개진 코끝을 멍하니 보던 모단이 하, 하고 숨을 뱉었다.

예전에,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주겠다고 했을 때 울 것 같은 얼굴로 고맙다고 하던 견과 정확히 겹쳐 보였다.

많은 일들이 그렇듯, 알고 나서 다시 보니 오히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견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날 만도 했다. 본인이 얼마나 황당했을지도 더더욱 이해가 갔다.

‘나 같아도…… 쉽게 말 못 했을 것 같아.’

온전히 적응하고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오히려 미안했다. 무월경이라는 걸 털어놓기 위해, 친엄마와 한성어패럴에 대한 말을 꺼내기 위해 제가 고민했던 시간보다 몇 배는 길고 무거운 시간을 홀로 앓았을 것 아닌가.

그 많은 말들을 삼키고, 모단은 한마디만 했다.

“안아줘도 돼요?”

대답도 듣지 않고 작은 몸을 꼭 안았다.

그리고 견에게 늘 그러듯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었다.

얼마간 얌전히 있던 견이 슬그머니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와 두어 걸음 물러섰다. 그러고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적당한 곳에 일주일만 숨어 있을게요. 모단 씨는 어머님하고 안전한 곳에 가 있어요.”

“같이…….”

같이 가자고 하려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

혜숙에게 이 아이가 누구라고 설명할 것인가. 적당히 둘러댄다 해도 혜숙을 마주하는 견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할까.

견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 웃었다.

“미안해요. 내가 어린이집에 전화해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괜히 수군대는 말 듣게 될 것 같아서. 어머님께 안 좋은 일이 생겨서 며칠 동안 옆에 계셔 드려야 한다고 하면 어때요?”

모단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안 가요.”

“네?”

“혼자 놔두고 어딜 가요? 아동 학대예요, 그거.”

견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동은 무슨.”

누가 봐도 일곱 살인 얼굴로 삐딱한 말을 하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했다.

하나 모단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일반 회사원들도 비슷하겠지만 교사는 더더욱 갑자기 쉬기 힘들어요. 서류가 아니라 아이들이 허공에 붕 떠버리니까. 마음 놓고 쉬지도 아프지도 못해요.”

“교사도 사람이잖아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면 쉴 수도 있는 거…….”

“엄마만 피해 계시라고 할게요. 난 괜찮아요.”

“그래도.”

“혼자 못 두겠어요.”

이렇게 작은 아이를.

“사실은 같이 있고 싶어요.”

그 안에 갇힌 내 사람과.

“알잖아요. 내가 무탈이 얼마나 예뻐했는지.”

모단은 부러 환히 웃었다.

울컥하려는 찰나에 고맙게도 다른 것이 생각나 주었다.

“맞다, 밖에 백지협 이사님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허둥대는 모단에 비해 견은 차분했다.

“괜찮아요. 다 알고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아까 병원에서 통화하면서 먼저 말했나 보다. 그래서 지협이 짐 싸라는 핑계로 저만 데리고 직접 여기까지 온 거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러니까 다들 진작에 말을 했으면…… 어휴.”

급히 휴대폰을 찾은 모단이 전화를 하면서 안방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몸도 안 좋으신데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해서…… 금방 나갈게요.”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커다란 가방에 이것저것을 챙겨 나왔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요.”

“아니, 그러지 말고 모단 씨도 같이…….”

단호하게 손을 내저은 모단이 얼른 현관을 나서 대문 밖으로 나갔다.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는 차의 조수석 창문을 똑똑 두드리고 문을 열었다.

“이거 저희 엄마 짐이에요. 면목 없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정모단 씨는…….”

“저는 견이 씨와 같이 있을게요.”

지협의 눈이 커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 ‘견이 씨’라는 말에서 대강 상황을 짐작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람이라도 붙여두겠습니다.”

모단은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

“하루만이라도 쉬어요. 오늘만 쉬면 주말이잖아요. 그러고 나서 며칠만 지나면 내가 다시…….”

“견이 씨 말대로 오늘만 가면 주말이잖아요.”

졸졸 따라다니며 늘어놓는 견의 말을 모단이 부드럽게 잘랐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가야 별말 안 나와요. 그리고 혹시 누군가가 나까지 주목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출근 안 하면 얼마나 수상하겠어요.”

모단이 물기가 살짝 남은 머리카락을 대강 묶고 가방을 챙겼다.

“혼자 집에 있을 수 있죠?”

“내가 이렇다고 해서 진짜 애 취급을 하면.”

“알았어요, 알았어.”

장난스레 웃은 모단이 신발을 신었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올게요.”

“조심해요.”

걱정이 가득한 눈을 내려다보던 모단은 쭈그리고 앉아 눈을 맞췄다.

“아무 생각 말고 푹 쉬어요. 고민하고 자책한다고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건 아니니까.”

견은 잠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나가고, 텅 빈 집에 혼자 남았다.

소파로 돌아간 견은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겼다.

‘지협이 형도 출근했을까? 몸은 괜찮나? 섭호는 얼마나 다친 거야.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더 무섭다는데…….’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생각밖에 할 게 없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아주 오래된 고민에 도달했다.

‘왜 하필 나일까.’

각자의 고민이야 있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이 평범하게 살아가는데, 나는 어쩌다 이런 저주를 뒤집어쓰게 된 걸까.

몸이 소파 아래로 푹 꺼지는 듯했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땅속으로, 어딘지 모를 깊은 물속으로 하염없이 가라앉는 것만 같다.

생각을 털고 일어선 견은 모단의 방으로 들어갔다.

찬찬히 방을 구경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도 조금씩 흐트러져 있는 게 오히려 맘을 편안하게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 집에서 살았다더니, 그런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책상은 학생용이고 침대도 좀 작아 보였다. 서랍에는 아주 옛날에 유행했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최소 고등학교, 어쩌면 중학교 교과서도 꽂아두었을 것 같은 책꽂이 앞에 앉은 견은 찬찬히 훑어보다가 맨 아래에서 졸업앨범을 발견하고 꺼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모단을 금방 찾아냈다. 확실히 앳되긴 한데 지금과 크게 다르진 않다.

문득 부러워졌다. 저는 누리지 못한 고등학생 시절도, 그때의 모단을 매일 보고 함께 보냈을 이들도.

앨범을 넣으려다 일기장을 발견했다. 양심의 가책쯤이야 본능 수준의 호기심이 가뿐히 밀어냈고, 견은 얼른 펼쳐 보았다.

날짜를 따져 보니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보다.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일기를 써보겠다는 다짐이 첫 장, 소소한 학교 얘기로 두 장, 그다음에 세 장 쓴 게 다다. 뒤쪽은 깨끗했다.

‘작심삼일이란 게 이런 거군.’

혼자 큭큭대던 견은 제법 길게 쓰여 있는 마지막 일기를 읽다가 웃음을 거뒀다.

―……그래서 얼른 내 생리대를 빌려주었다. 앞으로도 종종 잊어버리고 왔으면 좋겠다. 얼마든지 줄 수 있는데. 어차피 처치 곤란이니까.

그런데 남녀공학이라 그런지 애들이 쉬쉬하는 게 좀 웃겼다. 여중 때는 교탁 앞에서 생리대 있는 사람! 하면 뒤에서 막 던져 주고 그랬는데.

생리가 창피한 건가? 여자라면 거의 다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러고 보니 살 때도 꼭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서 준다. 혹시 예쁜 캐릭터나 명품 브랜드 로고가 그려져 있으면 당당하게 들고 다닐지도?

말해주고 싶다. 생리 안 하는 게 더 창피하다고.

‘예쁜 캐릭터나……’ 하는 구절 옆에 앙증맞은 무늬들까지 그려져 있다.

사춘기 시절, 이미 월경을 시작한 다른 친구들을 보는 모단의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이나마 전해지는 듯했다.

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당장 내일이라도 시작할지 모른다고 초조해하지 않았을까.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견은 일기장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모단의 침대로 올라갔다.

사랑스런 체향이 가득 밴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눈을 감았다. 생각이 너무 많아 무거워지니 잠 속으로 도망치고 싶어졌다.

모단을 만나기 전에 터득한 일종의 요령이기도 했다. 시간의 흐름을 잊으려면 자는 게 최고다.

조금씩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견은 생각했다.

‘눈 떴을 때 모단 씨 돌아올 시간이 다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

그날 아침, 모단은 아이들이 오기 전에 열린 교사회의에서 원장을 비롯한 모두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어제 갑자기 조퇴해서 죄송합니다. 바다반 아이들 하원까지 잘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엄마가 뺑소니 사고를 당할 뻔하셨다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

밤새 준비한 말을 들은 교사들은 어머어머, 하며 본인들이 더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잘 해결됐다니 다행이에요.”

“그런 상황이면 나라도 놀랐겠네.”

원장은 다른 교사들까지 쭉 둘러보는 척 모단을 살폈다.

어제 전화기를 넘어오던 고함이 아직도 생생했다. 어린이집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바깥에도 절대 나가면 안 된다던 위압적인 목소리.

궁금해 죽을 것 같았으나 선뜻 물어볼 수가 없었다. 경비실에서 들은 말 때문이었다.

출근하는데 경비원이 슬그머니 다가와 어제 혹시 어린이집에 무슨 일 있었냐고 묻는 게 아닌가. 왜냐고 되물었더니 백견이 급히 전화해서 사설 경호원을 회사로 들여보냈다는 거였다.

경비원은 백견 아들이 온 거 아니냐며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부잣집 애들은 유괴당하기도 쉬워 어릴 적부터 보디가드들을 달고 다닌다며 아는 척을 하는 것이, 무탈이는 오지도 않았다고 해도 안 믿을 분위기였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무슨 얘기가 퍼질지 몰라 대꾸도 제대로 안 하고 올라와 버렸다.

‘젊은 남자 목소리긴 했어. 시간상 백견이 맞는 것 같은데. 정 선생님이랑 무슨 관련이 있나? 무탈이가 정말 백견 아들이고, 뭔가 위험한 일이 있을 뻔했고, 그래서 담임을 찾았다? 뭔가 말이 안 되는데…….’

“원장님?”

퍼뜩 정신을 차린 원장이 헛기침을 했다. 딴생각을 하는 사이 회의는 다 끝나 있었다.

“아, 네. 그럼 다들 들어가 보세요. 오늘도 수고들 하시고요.”

교사들이 주섬주섬 일어나 나갔다. 원장은 눈치를 살피다 모단의 옷자락을 슬쩍 잡았다.

둘만 남은 후, 원장이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기, 정 선생님. 그럼 어제 원에 전화했던 사람은 누구예요?”

모단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우물거리다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답했다.

“……남자친구요.”

“응?”

“제가 전화를 못 받으니 그쪽으로 연락이 가서…… 중간에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고……. 아무튼 너무 경황이 없어서 결례를 저질렀다면서 정말 죄송하다고 하더라고요. 죄송합니다.”

거듭 고개를 숙이는 모단을 보며 원장은 입만 벙긋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회장 손주하고…… 맞다, 그러고 보니 특별근무팀을 같이! 거기서 눈이 딱!’

원장의 머릿속에선 이미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된 후였다.

“알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얼른 교실로 돌아가 보세요, 선생님.”

“예? 예.”

모단은 꾸벅, 하고는 몸을 돌렸다.

원장의 태도가 미묘하게 깍듯해졌다는 건 알지 못한 채로.

“어휴, 정말…….”

점심을 먹고 난 후, 아이들이 노는 사이 모단은 허겁지겁 옥상 놀이터로 올라왔다.

동후가 하고 있던 미아방지 목걸이가 사라졌는데, 교실이며 가방을 아무리 뒤져 봐도 없었다. 아무래도 오전에 놀이터에서 놀다가 끊어진 것 같아 올라와 본 참이었다.

‘옘병, 은도 아니고 금이야……!’

양말 한 짝만 잃어버려도 곤란한데 묵직한 금목걸이라니. 아무리 샅샅이 뒤져 봐도 반짝이는 거라고는 보이지 않는 통에 아찔할 따름이었다.

“미치겠다…….”

터덜터덜 옥상을 나선 모단은 원에 내려가기 전 화장실에 들렀음을 떠올리고 얼른 15층 화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남자화장실엔 아무도 없었고, 모단은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서서 화장실 바닥을 살펴보았다.

“오! 여깄다!”

맨 안쪽 소변기 아래에 끊어진 목걸이가 떨어져 있었다. 모단은 뛸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소스라친 모단은 얼결에 바로 뒤에 있던 청소도구함 칸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잠깐, 왜 숨었지? 이러면 더 변태 같지 않나? 목걸이 찾으러 온 거였다고 하고 나가면 될 것을.’

이미 늦어버렸다. 모단은 스스로에게 구박을 퍼부으며 문고리를 잡고 숨을 죽였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바로 앞까지 가까워지더니 누군가가 말했다.

“소문 들었어? 아주 제대로 퍼졌던데.”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 목소리였다.

“내 말이 맞지? 이 정도만 퍼뜨려도 효과 좋을 거라고 했잖아. 벌써부터 백견 두고 죽일 놈 살릴 놈 하는 사람들 많은가 보더라. 주식 떨어질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거지. 별거 아닌 것 같은 찌라시가 주가를 오르락내리락하게 하니까.”

백견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모단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도 일두 너…….”

뒤이어 들려온 다른 남자의 목소리까지 듣는 순간, 눈마저 질끈 감았다.

“사고까지 낸 거는 좀 심한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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