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 나는 당신이 싫어 (3)화 (3/61)

〈3〉

말도 안 돼.

믿기지 않는 상황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기에는 정말 모든 것이 되돌아와 있었다.

내 가문. 내 사람들. 나 자신까지도 5년 전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모습들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그것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돌아왔다.’

내 사람들과 내 가문이 남아 있던 때로 돌아왔다.

모든 것을 잃었던 그때와는 달랐다. 다시 살아갈 수 있다. 내 모든 것을 무너트린 것들로부터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었다.

환희와 혼란, 두려움과 기쁨이 공존하는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멍한 발걸음을 이내 어딘가를 향해 달려 나갔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식당.

끼익—

그곳의 문을 밀어 열자, 방 안에는 한 여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리안.”

“……어머니.”

2년 전,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쇠약해진 모습으로 매번 침상에 누워 나를 마주했던 모습이 아닌, 혈색이 도는 얼굴로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네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미안했단다.’

2년 전 이유 모를 병으로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가, 살아 있다.

매번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사과를 건네던 그녀의 목소리가 더 이상 위태롭게 들리지 않았다.

손에 힘을 주어 말아 쥐었다. 손톱이 박힐 듯이 살을 짓누르고 있었으나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시려 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런 내 마음을 숨긴 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녀 역시 다가온 나를 보며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

대체 얼마 만에 마주하는 그녀의 거짓 없는 웃음인가.

“어서 자리에 앉으렴.”

그녀는 내게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착석을 권했고, 내가 그 자리에 앉자마자 하나둘씩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감동하던 것도 잠시, 빵과 수프, 연어 스테이크가 앞의 테이블을 채워 갈 때마다 내 표정은 서서히 굳어 갔다.

‘음식 상태가 왜…….’

황실에서만 식사를 한 지 몇 년이 된 것도 있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로 음식의 상태가 뭔가 이상했다.

수프는 기존보다 옅은 색이었고 연어는 반대로 색이 조금 탁했다.

귀족의 식탁치고는 어딘가 모자란 그 식탁을 보자마자 잠시 잊고 있던 당시의 기억이 돌아왔다.

‘우리 가문이 무너져 가고 있던 사실들이.’

클로디 백작가. 이곳이 처음부터 무너져 가던 상황은 아니었다. 이전부터 꽤나 좋은 입지에 위치해 있는 가문이었으니까.

하나 어느 날 사교계에 퍼진 한 소문은 그것을 완전히 무너트렸다.

‘백작가에서 귀족파로 돌아섰다며?’

‘황실의 기사단장이라는 사람이 어찌.’

그것 역시 처음에는 분명 고작해야 해프닝으로 남았어야 할 터무니없는 소문이었으나,

‘후작님이 그리 말씀하셨으니…….’

그 이야기의 출처가 당시 굳건하던 후작가였기에 그 파급력은 급격히 커져, 이후 어머니와 사교계 이들 사이의 다툼이나 아버지의 문제들로 인해 그 진하기를 더해 갔다.

그렇게 소문이 기정사실화가 되어 가며 명성에 차차 금이 가자, 우리 가문과 손을 잡고 있던 이들도 점차 그 손을 뿌리치기 시작했다.

사교계에서의 소문은 꼬리표와 다름없었다.

소문에 들려오는 것들이 모두 사실이고 부풀린 일들조차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태반이었으며 그 소문에서 낙인찍힌 가문과 가까이 지내는 가문들은 대부분 그와 같은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에 따라 ‘한번 무너진 가문은 피한다.’ 이것이 사교계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우리 역시도 그와 같은 경우였고.

물론 오래전부터 이름 있던 백작 가문이 그 소문 한 번에 몰락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그 압박으로 입지가 확연히 좁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현재 우리 가문은 모든 사교계 만남을 피하고 다른 가문과의 교류도 없는, 완전히 배척당한 상태니까.

‘그 뒤로 사교계 소문도 늦어져 후작이 일을 벌인 것 역시도 나중에야 알았지.’

그리고 현재 테이블이 빈약한 것 또한 식사 재료의 비용이 가문에서 사용해야 할 돈을 빼고 남은 돈으로 책정되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우리에게, 풍족한 식사는 사치였었고.

‘그리고 그것에 질린 이후 헤일론의 손을 잡았었지.’

나이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왜 그랬을까. 정말 멍청하게도.

이미 수없이 많은 후회와 가책을 태우며 마음속이 피어오른 연기로 가득하건만 아직도 더 태울 것들이 남아 있었다.

불쾌감이 다시 한번 가슴을 죄어 와 홀로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

지금 나는 돌아와 있었다. 앞으로 시간은 충분했고 그동안 잘못 걸었던 길을 피해 되돌아 걸어가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일 황실에 갈 준비는 끝냈니?”

순간 내 생각을 뚫고 들어온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네?”

잘 못 들었다는 듯이 그녀의 말을 되물었다.

“내일 황태자 전하의 성년식이잖니. 모든 가문이 필수적으로 참여를 해야 하니까.”

쨍—

손에 쥐고 있던 나이프가 접시 위로 곤두박질쳤다.

“……어머니, 혹시 오늘 날짜가 어떻게 되지요?”

“오늘은, 5월 12일이지.”

‘아, 이런.’

내가 되돌아온 시간은 5년. 길게만 보이는 그 시간은 사실 그리 길지 않았다.

내가 돌아온 시점은 황태자의 성년식 전날.

나는, 헤일론과의 첫 만남이 성사되기 일보 직전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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