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 나는 당신이 싫어 (25)화 (25/61)

〈25〉

“와아…….”

저도 모르게 터진 감탄 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백작저의 고용인들이 땀 흘려 준비한 방에 들어서자 두 사람은 방을 처음 확인했을 때의 나처럼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정말 잘 꾸며졌네요.”

“정말요. 저희 티 파티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인데요.”

두 사람의 극찬을 고용인들이 들었어야 했는데.

‘아가씨 첫 티 파티인데!’

‘더 화려하게 꾸며야지!’

레이즌의 일로 가문에 들여오는 돈이 늘어나자 자연스레 고용인들의 복지도 좋아졌다. 그것 때문일까 요즘 그들의 사기는 감히 내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나와도 조금 더 친해진 거 같고.’

“아니에요, 카슬라 저택의 티 파티도 정말 좋았는걸요.”

손사래를 치고 있기는 했지만 고용인들의 노력이 그대로 빛을 발하니 뿌듯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껏 미소를 띤 채로 방 안의 케이크와 차가 준비된 테이블로 두 사람을 이끌었다.

“디저트까지 완벽하네요.”

케이크를 조금 잘라 입에 넣은 엘리의 찬사였다.

“고마워요.”

“저희 둘이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하하, 저한테도 다 들린다는 거 알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엘리의 중얼거림과 그것을 들은 비안의 대꾸에 두 사람의 신경전은 또다시 발발했다.

저 순해 보이는 비안과 항상 맑게 웃기만 하던 엘리가 서로 매섭게 노려보는 모습이 처음엔 참 어색했으나 그들의 신경전이 예삿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그저 하하, 웃으며 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젠 그냥 저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며 차를 한 모금 넘기고 있자 어느새 주제가 바뀐 대화에 엘리가 우는 소리를 냈다.

“요새 일이 바빠져서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요.”

남이 할 일까지 자기가 떠맡아야 하는 일이 얼마나 별로인지에 대해 중얼거리던 엘리는 그대로 테이블 위로 엎어져 버렸다.

“하긴 요즘 한창 바쁠 시기긴 하죠.”

움직이는 이들이 딱 늘어날 시점이니까.

잘게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 위를 덮은 엘리의 머리칼을 잠시 만지작거렸다.

‘오, 솜사탕 같아.’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계속 움직이자 엘리는 가벼운 웃음을 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일하다 와서 머리가 엉망일 텐데요.”

“음? 되게 부드러운데요.”

그녀의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참 신기했다. 왠지 연분홍빛 중에서도 색소가 빠진 느낌의 은은한 빛이 돌아서.

머리칼을 만졌다가 어느새 빗질까지 하던 와중, 계속해서 사업 이야기를 이어 가던 엘리가 아,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베리안, 베리안도 사교 클럽을 운영 중이시죠?”

“아, 네, 그렇죠.”

안 그래도 최근 들어 레이즌에 할 일이 많다 보니 신경을 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요즘은 서류 양이 많이 줄었지, 아마?

케이크 위에 올라간 딸기를 콕 찍어 베어 물자 생글생글 웃던 엘리는 제게 어느 제안을 건넸다.

“그럼 베리안도 하론에 들어오는 건 어때요?”

“하론이요?”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을 되묻자 곁에서 차를 마시던 비안이 답을 했다.

“사업체를 가진 영애, 영식들의 모임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서로 교류를 할 수도 있고 정보를 나눌 수도 있으니 굳이 안 나갈 이유가 없어 꽤 많은 사람들이 속해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이어서 엘리가 말을 이었다.

“들어오는 데에 필요한 자격은 개인 사업체의 유무, 딱 그거 한 가지예요. 간단하죠?”

그 말들에 눈이 번뜩였다.

여러 정보들이 있다면 레이즌 경영을 제외하더라도 여러 상황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너무도 솔깃한 정보에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면…….

‘사교계는 피하고 있던 중인데, 어차피 그곳도 사교계의 인물들이 있는 곳이 아닐까.’

아직 사교계는 조금 불편한 탓에 걸리는 게 없지만은 않았다.

“고민해 볼게요.”

내 대답에 엘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방긋 웃으며 제 가방에서 한 편지 봉투를 건넸다.

“나쁘지 않을 거예요. 장담할게요. 자, 여기.”

연하늘색의 편지지에 금색 왁스를 떨어트린 봉투가 내게 쥐어졌다.

“시간, 장소는 나와 있으니 생각나면 꼭 들러 줘요.”

“좋은 정보 고마워요.”

이후로 편지에 대한 조금의 설명을 들으며 흐른 시간에 엘리와 비안은 자연스레 다음을 기약하며 방을 나섰다.

“뭐 하는 짓이야?”

대기 중인 마차로 돌아가는 길, 굳어 버린 표정의 비안은 엘리를 불러 세웠다.

“내가 뭘?”

“그 편지. 하론에서 받은 거. 그걸 줘 버리면 넌 어쩌려고?”

조금의 불안감이 섞인 표정에도 엘리는 하,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뱉었다.

“내가 그쪽에 쌓아 둔 게 얼마인데 이 정도로 걱정을 해. 대충 말해도 알아들을 사람들이야.”

“그래도.”

비안의 목소리가 굳었다. 그의 손이 그를 지나치려는 엘리의 한 팔을 쥐어 잡자 엘리는 미간을 좁히며 그를 돌아보았다.

“내 일이야. 내가 주고 싶어서 준 거고. 걱정되는 건 알겠지만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어떻게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닌데.”

“그깟 초대장, 다른 이들한테 넘기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너도 알면서 왜 이래?”

그녀의 눈빛에 비안은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놓았다.

“그럼 내 걸 네가 가져가.”

“내가 왜 네 걸?”

“나는 어차피 그쪽에 지분도 많이 없고, 영애를 돕는 것도 나보다는 네가 낫겠지.”

그 말에 엘리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호오, 베리안이 걱정되는 거야?”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지, 뭐. 관심 있어?”

저보다 훨씬 작은 엘리의 장난에도 비안은 차마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돌아가, 편지는 따로 보낼 테니.”

엘리는 아하하, 웃으며 마차에 올라탔다.

“그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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