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태자, 나는 당신이 싫어 (30)화 (30/61)

〈30〉

초대장에 적힌 그날 당일, 나는 먼저 만난 엘리를 따라 어느 라운지로 보이는 곳에 들어섰다.

입구에서는 먼저 선 이들이 편지지를 확인했고 그곳을 거쳐 들어가자 이내 큰 홀이 우리를 맞았다.

모인 사람은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대략 서른 명쯤 되어 보이는 이들은 가볍게 서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요, 베리안.”

엘리는 내 손을 잡고는 자연스레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익숙한 이들인 만큼 엘리는 여러 이들과 인사를 나눴고 나는 그녀의 뒤에서 조용히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줄 그 세 사람을 찾기 위해서.

“그런데 뒤에 그분은?”

조용히 서 있는 내게 시선을 둔 중년의 이는 서글서글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베리안 클로디예요.”

“클로디 영애? 아, 사교 클럽 운영 중이신.”

그 사람들 중 몇 이들이 나를 알아 보니 그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기가 더 쉬웠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내가 찾는 이는 아니었다.

엘리도 그것을 안다는 듯이 입 모양으로 미안해요, 중얼거렸다.

하지만 애초에 엘리의 탓이 아니었으니 나는 여기저기를 누비며 최대한 그 사람들을 찾았다. 어느새 엘리도 나를 도와 세 사람을 찾는 데에 열중했다.

그리고 그러던 중,

“베리안.”

나를 부르는 엘리의 얼굴이 밝았다. 그녀의 손끝이 한 남성을 가리켰다.

“찾았어요.”

그녀가 가리킨 이는 내가 찾던 두 번째 사람, 아이덴트 자작이었다.

테이블 끝에 홀로 쉬고 있는 듯 보이는 그는 마침 주변에 다른 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잽싸게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이덴트 자작님 맞으시죠?”

“아, 누구신지…….”

“베리안 클로디라고 해요.”

“아, 반갑습니다, 영애.”

내 인사에 그는 그리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안부 인사 정도를 뱉고 나자 나는 빠르게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여정에 참가하고 돌아오셨다 들었는데, 꽤 빠르게 이번 모임에 오셨네요.”

“네, 뭐 크게 다친 일도 없으니까요.”

“여정은 어떠했나요? 들어 보지 못한 이야기라 궁금하네요.”

“음, 별거 없었습니다. 제국 곳곳에 있는 마물을 잡거나 보안이 허술한 곳에 다녀오는 것이지요. 한데 클로디 백작님이 이번 여정의 상부가 아니셨습니까?”

참 빠르게도 핵심을 짚었다.

“아, 아버지께서는 이런 얘기는 잘 안 해 주셔서요.”

애써 가는 미소를 보이며 자작을 바라보자 그는 이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라도 제 아이에게는 들려주고 싶지 않을 듯하긴 합니다.”

“꽤나 힘든 일들이 많나 보죠?”

“네, 뭐, 없는 편이라고 할 수는 없죠. 애초에 마물 사냥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요.”

자작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응, 힘들기는 한가 보구나.

하지만 그 일이 힘들다는 것쯤은 저 길가는 아이를 붙잡고 묻는대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도 이번 여정은 빨리 끝난 편이라는데, 기사단 안에서는 단합이 잘되나 봐요.”

“다 적당한 편이죠. 그 많은 이들이 함께 자리해 있는데 아무런 불화도 없기는 힘드니까요.”

아아, 고개를 작게 끄덕이던 나는 넌지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혹시 기억에 남는 사람들 사이에 특별한 일화가 있었나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툭 던진 한마디에 자작은 잠시 답을 멈추고는 저를 살폈다.

“특별한 일화요?”

“……네.”

역시 너무 어색한 질문이었나.

나조차도 뱉으면서 수십 번을 고민한 질문인데, 그의 눈에 당연히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었다.

내가 대화에 뜸을 들이자 자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 말을 계속했다.

“뭐, 궁금하실 수 있지요.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이해해 주는 건가?

“하지만 보통 그런 일화도 개인 간의 일인지라, 저도 그다지 말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네요. 남의 이야기를 해 주는 것도 좀 그러니까요. 이런 일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이미 기사에 나온 일화 정도는 아실 테니까.”

그렇게 미소 짓는 자작의 모습에 차마 아쉬움이 남을 수가 없었다.

‘그치, 남의 이야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닌걸.’

“괜찮아요, 충분히 재미있던 대화였어요.”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다음에 또 뵐게요.”

“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랄게요.”

그렇게 자작은 휙 자리를 떠났고 나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자작의 반응을 들으면 우선 뭔가 일이 나긴 했는데.’

도통 그 일을 알 겨를이 없었다.

세 사람 중 자작을 제외하곤 참석한 이는 없었다. 다음 하론의 만남까지 시간을 가지기에는 너무 늦을 게 분명하고.

역시 나 혼자서 이런 일을 조사하기란 어려웠던 걸까.

“진짜 뒷조사라도 맡겨야 하나…….”

이따금씩 다른 이들의 뒷 세계 정보처가 부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는 정보상은 물론, 정보상을 아는 친우마저 없으니.

한숨만을 내쉬며 한탄하고 있자, 등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클로디 영애?”

“자작님?”

레이즌의 고위 귀족 중 내게 친근한 코란 자작이 내게 반갑게 다가왔다. 그의 가슴팍에는 키첼로 만든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여기서 보게 되네요.”

“그러게요. 잘 지내셨죠?”

“너무 잘 지내고 있어서 문제 아니겠습니까. 영애는 어떠신지.”

“저야 뭐, 이리 도와주시니 잘 못 지낼 리가 있나요. 브로치가 참 예쁘네요.”

그 말에 자작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귀한 거라 잘하고 다니지도 않습니다, 가끔 이런 자리에 올 때만 쓰지요. 좋은 선물인 만큼.”

“그렇게 말해 주시니 저야말로 감사하네요.”

‘이렇게 말해도 귀하긴 했지. 그걸 하나 찾겠다고 며칠을 고생…… 어?’

불현듯 어느 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 여관. 가면을 빌려준 여관의 신문. 그것에 쓰인 내용도 개인적인 것들이 많지 않았나?

그 가면을 쓴 남성이 분명 말했었다. 주인이 이것을 보는 걸 그리 원치 않을 거라고, 이미 팔리고 있는 것을 보지 말라 하지는 않을 테니 공개적으로 팔리는 것도 아닐 테고.

그럼 분명 그 정보를 받는 곳이 있다는 건데.

내 머릿속에는 한 단어만이 새겨졌다.

‘정보상.’

내 손으로 못 찾는다면 다른 이의 손을 빌리면 되는 일이었다.

‘어차피 물러설 데도 없어.’

뭐라는 잡을 수 있으면 잡는 것이었다.

다시 그 여행길에 오를 이유가 생겨 버렸다.

“이게 뭐 하는 거야?”

하나 그 다짐이 바로 그 출발 당일에 막힐 줄은, 정말 예상 못 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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